신장현의 두 번째 소설집 [강남 개그]
(실천문학사, 2005년 9월 30일)
<세상 밖으로 난 다리>, <사브레>를 통해 세상의 고통에 대항하는 소설의 힘을 보여주었던 작가, 신장현의 소설집이다. 총 8편의 중단편이 수록된 이번 작품집은 희망 없는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아웃사이더들에 대한 연민과 분노를 담고 있다. 취업전장에서부터 성매매의 집창촌, 길거리 화랑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밑바닥을 분주히 오가며 날카로운 현실비판 의식을 보여준다.
각각의 이야기는 그 소재와 서술 방식이 퍽 다채롭다. 아홉 개의 삽화를 장면 번호를 붙여 모자이크 식으로 구성한 표제작 '강남 개그' 같은 코믹한 작품이 있는가 하면, 1980년 사북 사태 직전에 일어난 갱내 사고를 박진하게 묘사한 작품도 있다.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자본주의와 도시라는 괴물 같은 시스템의 인질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들이고, 작가는 이들이 입은 깊은 내상을 포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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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현
1958년 경기도 이천 출생. 1997년 「문학사상」 신인상에 단편 '홍콩의 손거울'이 당선. 소설집으로 [세상 밖으로 난 다리], 장편소설로 [사브레] 등이 있다. |
::책 속에서
강남은 목하 부글부글 끓고 있다. 보통의 아파트 한 채 값이 몇억대에서 몇십억을 호가하는 건 물론 재건축 바람이니 강남학군이란 것에 더해 입시 도사들이 판치는 신종 학원군락까지 들어서 너 나 할 것 없이 자식 가진 이들의 눈이 뒤집히게 하는 시속도 그렇고, 흥부집 이부자락처럼 깡총하고 빈한해진 다른 지역 물정까지 빼앗아 오는 듯한 기세에, 가릴 줄 모르고 넙죽넙죽 먹어대는 그 식욕이며 도무지 쌀 줄 모르고 뭉개고 있는 모양도 그렇다. 서울에서 강남은 창자 쪽이 불려진 모양이다. 그래서 개그가 필요한 것. 설사가 필요한 것.
-- '강남 개그' 중에서
::추천글
그의 소설이 이토록 현실과 밀착되어 있는 줄 나는 이제껏 몰랐다. 그의 관심은 우리 사회의 밑바닥을 저인망으로 훑으며 갖은 부조리, 부조화와 맞닥뜨린다. 주인공들은 고달픈 삶을 헤엄치며 무력하게 저항하거나 자조한다. 취업전장에서부터 성매매의 집창촌, 탄광, 샐러리맨의 사무실, 길거리 화랑까지 그의 발길은 용의주도하게 옮겨진다. 그리고 연민과 분노 속에 항변하고 질타한다. 현실 고발이 풍자와 해학으로 번뜩여 승화된다. 그런 가운데 나는 슬픈 만큼 아름다운 주인공 아름이의 말을 되새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서 남겨진 눈동자의 새 발자국을 지우려면... 그 사람이 사라진 곳을 오래오래 쳐다보면 된다고." - 윤후명 (소설가)
이 소설집에서 유사한 주제와 인물유형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그것은 작가 특유의 순수와 올바름을 향한 날선 의식이 분화와 변태를 거듭하며 급변하는 세태를 숨 가쁘게 따라잡아 다양한 변종들과 그들의 삶의 방식을 날카롭게 파헤친 결과이다. 세상은 삶의 임계점에 이른 사람들 모두에게 안겨주고도 남을 만큼 풍부하고 다채로운 독소들을 감추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뒤집어보면 살마들 모두가 그 독한 세태를 빚어낸 장본인들이다. 그러기에 작가는 뒤틀린 삶의 방식에 야유와 풍자를 퍼붓다가도 간간이 자기 성찰의 계기 또는 슬픔이 스며들 만한 여백들을 마련해두었으리라. - 황광수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