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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유실천위원회] 3.15 유성 희망버스 참가 후기(백정희 소설가)
이름 자유실천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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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희망버스 참가 후기]


삼십 년 전의 나를 만나고 오다
                          - 3.15 유성 희망버스에 올라

                                                                                                             백 정 희(한국작가회의 / 소설가)
 
링거를 맞고 오른 희망버스

3.15 유성희망버스를 타러 가기 전날 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뜬눈으로 뒤채다 날이 밝았다. 며칠동안 위염과 과민성대장염으로 제대로 먹지 못하고 설사를 하는 통에 탈진상태가 되었다. 매일 링거액을 맞으며 버티던 중이었다. 이렇듯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로 참여했다가 주위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게 될까봐 걱정되었지만, 유성기업에서 노동자로 일하던 내 꽃다운 시절이 엊그제 일처럼 떠올라 누워만 있을 수가 없었다.
출발하기 하루 전에는 병원에서 링거 두 병을 연거푸 맞았다. 아무래도 링거액으로라도 기운을 저축해두자는 마음에서였다. 내 몸이 따라줄 지가 걱정되었으나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번 유성 희망버스를 꼭 타야한다고 나 자신을 재촉했다. 최악의 경우 밤중에 택시라도 잡아타고 병원으로 갈 각오로 용기를 낸 것이다.
 이번 작가들의 유성 희망버스는 한국작가회의의 자유실천위에서 준비했다. 나 말고도 서울에서 열다섯 명의 작가들이 함께 가기로 했다. 한국작가회의 사무처장인 김성규 시인이 전화를 걸어와 아픈 몸으로 무리하지 말라고 했다. 농성하려면 들판에서 밤을 새울 수도 있는데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걱정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나는 걱정이 되어 희망버스 기획단에 전화를 걸어 밤에는 어떻게 지낼 것인지를 물어 그 쪽의 상황을 대충은 알고 있었다. 사무처장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나는 꼭 가야겠다는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그곳의 상황에 맞게 만반의 준비를 했다. 큰 담요와 미니담요, 휴대용 찜질팩 일곱 개, 스웨터와 여분의 점퍼, 입고 있는 내의 외에 여분의 내의도 한 벌 더 넣었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인해 바닥에 앉는 것이 불편한 나는 낚시용 의자도 챙겼다. 메고 갈 배낭에 짐이 가득 찼고, 또 다른 가방에 담요도 챙겨 넣었다. 전쟁에 임하는 태도로 이렇게 철저한 준비를 하고서도 나는 내 몸을 믿을 수가 없어 불안했다. 유난히 추위를 타는 나로서는 만약에 차가운 밤 기온으로 병이 악화되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들었으나 밤중에 병원이나 서울로 돌아오더라도 이번에는 꼭 가야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했다.

겨우 하룻밤을 있다 올 것인데도 커다란 짐 보따리를 두 개나 지고 든 나는 3월 15일 아침 9시에 집결지인 대한문 앞에 도착했다. 10시 출발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이른 시간이었다. 송경동 시인과 전 기륭전자 분회장 김소연씨가 차례로 눈에 들어왔다. 나는 김소연씨와 인사를 나누고, 송경동 시인과는 목례로 인사를 하고 나서 작가회의 회원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벌써 삼십 년도 넘게 지난 일이지만, 나는 유성기업에서 노동자로 일했다. 2011년 유성기업 사태를 지켜보며 나는 남다른 안타까움을 느꼈다. 거리에 쓰러진 유성기업의 노동자들을 보며, 나 자신이 피투성이 된 몸으로 쓰러져 있는 아픔을 느꼈다. 그런 아픔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내 동료를, 내 형제를 만나러 가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에 얹혀 있던 빚을 갚는 기분이었다. 희망버스를 타고 옥천을 향해 가는 내내 나는 과거 유성기업에서 노동자로 일하던 기억이 되살아나 만감이 교차했다.

  

철탑에서 외치는 154일의 절규

옥천 나들목에 도착하니 발길을 막는 경찰차와 경관들이 철통같이 담을 만들어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기세에 굴하지 않고, 전국에서 희망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이 철탑의 이정훈 지회장을 향해 모여 있었다. 수많은 깃발을 나부끼며 90여 대의 버스를 타고 달려온 사람들의 모습에 놀라움과 잔잔한 감동을 느꼈다. 철탑 아래로 이정훈 지회장의 부인이 울먹이며 편지글을 낭송하고 있었다. 철탑 위의 이정훈 지회장을 보는 순간 나는 내가 가지고 온 짐들이 부끄럽게 여겨졌다. 아니 그 동안 나와는 상관없는 일처럼 멀리서 침묵하고 있던 나 자신이 부끄럽게 생각되었다. 높은 광고탑 위에서 땅을 밟고 걷거나 뛰는 자유를,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을 스스로 내려놓은 채 쌩쌩 부는 겨울 찬바람을 견뎌낸 지 벌써 154일째이다. 단신으로 광고탑 위에서 겨울을 넘긴 이정훈 지회장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가슴이 뜨거워지고 울컥 눈물이 나왔다.
땅 위에 발을 딛고 걷는 것과 뛰는 것, 어두운 밤이면 잠을 자는 것은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으로 누릴 권리이다. 심야노동을 철폐하고 주간 2교대를 실시해 달라는 너무도 소박한 조건을 들어달라고 그는 철탑 위에 스스로 올라가 세상에 대고 외치고 있는 것이었다. 아니 민주노조 파괴행위에 대해 호소하고 있는 것이었다. 무슨 화려하고 호화로운 삶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밤이면 잠 좀 자게 해달라는 것,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할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요구는 악의적인 노조 파괴 술책과 편향된 공권력 앞에 무참히 짓밟히고 있는 것이다. 전태일 열사가 온 몸을 불 태워 부르짖었던 노동자의 기본권이 아직도 이행되지 않는 이 나라의 현실이 개탄스러웠다. 
내가 유성기업의 노동자로 일하던 시절이나, 삼십 년이 지난 지금이나 노동자의 현실은 별로 나아진 게 없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가도 이 나라의 노동자는 여전히 노예나 종과 같이 살아가고 있다. 기업의 심장이요 이 나라의 동력인 노동자를 기업주는 여전히 냉대하고 있다. 노동자는 인격이나 감정 따위는 상관없이 그저 일하는 기계에 불과하다는 기업주의 사고가 바뀌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서글펐다. 꽃다운 나이에 제대로 잠을 못 자고, 새벽같이 일어나 밤늦도록 잔업과 야근에 시달리던 나의 과거에서 한발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기만 했다. 전태일 열사가 노동자의 근로기준법을 외치며 자신의 몸을 불살랐던 지가 벌써 사십 여 년이 흘렀건만 노동자는 여전히 밤이고 낮이고 상관없이 기업주의 명령에 복종하며 기계 같이 혹사당하고 있다.


나는 유성기업의 노동자였다

삼십 년 전, 나는 대학 진학의 푸른 꿈을 안고 서울에 왔다. 그러나 나는 곧바로 대학에 갈 형편이 안 되어 학비를 벌기 위해 취직을 해야만 했다. 공장지대 이곳저곳을 헤매고 다니다가 유성기업의 모집광고를 보았다. 대학 등록금은 둘째 치고 하루, 하루 먹고 살 생활비가 없던 나는 유성이고 어디고 고를 여유가 없었다. 
유성 기업에 첫 출근을 하던 날, 나는 관리자를 따라 들어선 공장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기계만이 공룡처럼 서 있는 공장 풍경은 삭막하기만 했다. 그곳이 내가 일할 곳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요란한 소음을 발산하는 기계를 하나씩 꿰차고 서서 일을 하고 있는 남자직원들 틈에 회색작업복 차림으로 고개를 숙인 채 일하는 창백한 안색의 여공들이 기이하게 보였다. 아니 두려움이 앞섰다. 그렇다고 다른 직장을 구해 떠날 형편도 못 되었다. 
새벽부터 출근하여 재건체조로 시작되는 유성 기업의 하루는 고단하고 힘든 노동의 연속이었다. 하루 종일 기계 옆에 서서 남자직원이 깎아내는 이런저런 링들을 들여다보며 불량품을 골라내다보면, 고개도 뻣뻣하고 다리도 몹시 아팠다. 무엇보다 공장 한쪽에서는 뻘건 쇳물이 끓고 있고 기계의 소음과 쇳가루 분진이 날리는 공장 안은 위생적으로 열악하기만 했다. 마스크를 쓰고 일을 해도 하루일과가 끝나면 쇳가루 분진이 스며들어 콧속이 시커멓게 되어 있었다.
일거리가 밀리지 않도록 화장실 가는 시간마저 눈치를 봐야했다. 거의 매일 같이 해야 하는 잔업은 저녁 여덟시가 넘어서 끝이 났다. 잔업이 있는 날은 저녁 식사 대용으로 삼립 크림빵 한 개씩이 배급되었고, 꽃다운 아가씨들은 쇳가루 분진이 날리는 기계 틈에 쭈그리고 앉아 마른 빵을 우적우적 씹었다. 잔업만 있는 날은 그래도 다행이었다. 예고 없이 갑자기 떨어지는 야근이 있는 날은 밤 열 시를 넘기곤 했다. 온종일 선 채로 야근까지 마치고나면 몸은 파김치가 되었다. 약한 내 체력으로는 감당하기가 너무나 힘들고 고달픈 나날이었다.
“자고 있는 것 보면 꼭 죽은 사람 같아서 겁이 나. 몇 번이나 언니 코에다 귀를 갖다 대보고는 그랬어.”
함께 자취방에서 생활하던 여동생은 자고 있는 나를 보고 죽은 줄 알고 걱정했다. 너무나 지친 몸으로 쓰러져 잠이 들면 나는 숨을 쉬는 것도 힘이 들었다.   
  이렇게 유성기업의 노동자로 몇 년을 보내면서 내 꽃다운 젊음도 시들어가고, 대학에 대한 푸른 꿈도 잃은 채 나는 회색 빛 작업복 안에서 지쳐갔다. 그렇게 하루하루 힘든 노동에 시달린 끝에 나는 폐에 병이 나고 말았다. 밤이면 기침을 하며 가슴을 움켜쥐고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깊은 절망이었다. 대학에 대한 꿈도, 푸릇푸릇하던 꽃 같은 젊음도 이렇게 회색의 작업복 안에서 시들어갔다.


노동자는 기업의 심장

삼십 여 년이 지나갔다. 그리고 유성기업의 한 노동자가 철탑 위에서 외치고 있다. 나는 철탑 위에서 손을 흔드는 이정훈 지회장의 모습에서 삼십 년 전 부천공장에서 쇳가루 분진이 날리고 기계소음이 요란한 그 때의 나를 보고 있었다. 밤늦도록 잔업과 야근으로 하루 종일 서서 불량품을 골라내는 일을 하며, 몸도 마음도 푸른 꿈도 점점 지쳐갔던 그때의 나를 보는 듯했다. 화장실에 가면 끝없이 눈물이 나왔으나 일거리가 밀릴까 봐 오래 있을 수도 없었던 시절. 그렇다고 유성기업을 박차고 나와 다른 직장을 구할 형편도 아닌 그때가 어제의 일처럼 눈앞에 되살아났다.
이제 소설가가 되어 글을 업으로 삼고 지내고 있지만 나는 노동자들이 남 같지 않게 느껴진다. 노동자가 없는 세상은 어떨까. 노동자가 없이 이 나라의 산업발전을 생각해볼 수 없다. 아니 노동자가 없는 이 나라 기업들을 생각해볼 수 없다. 그런데도 이 나라의 기업주들은 아직도 노동자를 소중히 여기기는커녕 노예나 종을 부리듯 하고, 공권력까지 이용하여 탄압까지 하고 있는 현실이 참으로 원망스럽다.
노동자는 기업의 심장이다. 심장은 계속해서 뛰어야 한다. 심장은 귀하게 보호되어야 한다. 이 나라와 이 나라의 기업들이 노동자를 심장처럼 여기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유성 희망버스에 올라, 철탑에 오른 이정훈 지회장이 제발 아프지 말고, 힘을 잃지 말고, 잘 버텨내기를 바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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