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무처 메일로 보내온 조영옥 선생님의 시입니다.
이라크 남자의 사진
조영옥
비가 내리고 차창에 김이 서린다
손등으로 몇 번 쓸어 내리면
한 뼘의 시야에서도 세상이 다 보인다
파고드는 눈빛으로 보고 싶은 세상이다
봄비 속에 선명해지는 생명들.......
내가 이렇게 생명의 아름다움에
취해 있을 때
멀리 이라크 어느 마을에는
포화와 잿더미 세상에
넋을 놓고 앉아 있는
한 남자가 있다
울부짖는 아이를 숨기듯 품고
기대앉은 벽에 스며들 듯
스며들고 싶은 듯
앉아 있는
약소국의 남정네가 있다
이유도 모른 채 죽어 가는 이웃을
찢긴 살점을
언제 나를 앗아갈지 모르는
시간을 바라보며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남자
그 남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가슴속에 회오리바람이 일고
나는 고개를 돌린다
비가 내린다
길 가 산수유 노란 꽃망울
불끈불끈 솟아오르는데
가슴속에서 떨어져 내리는 것은
피다
꽃내음보다 먼저 풍겨오는
비린내다
꽃망울의 수만큼 내지르는
비명소리다
그러나 모든 것이 차창 밖이다
손으로 만질 수 없이
풍경은 사라지고
빈손만 남는다
앙상한 이라크 남자 잡아주지 못하는
힘없는 손만 남는다
그러나 기도할 수 있는
전쟁반대를 외칠 수 있는
손이 남아 있다
가장 막다른 끝이 조그만 시작이란 것을
손이 말하고 있다
비가 내리고
손이 젖어 내린다
|
이전자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