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작가의 눈 제12회
반역자의 에술작품을 어떻게 볼 것인가
-- 예술의 윤리성에 대한 조그만 생각

정종환(전북작가회의 회원)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예술가는 자신의 예술 작품에 대하여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경고라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 현대사에서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민족문화와 민중의 삶이 짓밟힌 때를 회상하면 더욱 더 가슴에 와 닿는 말이다. 최근 국회의원들의 친일파 명단 폭로가 있었다. 여기에 여러 가지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이것은 그야말로 폭로일 뿐이다. 더구나 그 폭로의 기준이나 범위도 과거에 만들어진 반민특위에 따르고 있다. 정말 우스운 이야기다.

법은 시대의 산물이다. 시대가 변화해서 분단과 전쟁, 그리고 통일로 가는 길에서 어떻게 낡은 법으로 새로운 시대에 맞는 기준을 만들 수 있을까? 의문이다. 더구나 예술가의 반민족적 태도와 그러한 행동의 결과로 온갖 고통과 시련을 겪은 민중의 눈물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그러한 반민족적이고 반민중적인 예술가의 작품에 대한 비판이다. 그것은 사라진 예술가들을 물리적으로 처벌할 수 없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더욱 중요하다. 그들을 처벌하지 못해서 현재까지도 다양한 모습으로 생존하여 우리 사회의 부패를 획책하고 있는 숨은 그들의 변신을 찾아내기 위해서라도 그들의 예술작품을 철저히 분석하고 그러한 작품이 가능하게 만든 예술이론을 제시해야만 할 것이다.

사람들은 우리가 민족과 민중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억압하는데 앞장 선 그들을 처벌하지 못한 것을 자주 프랑스와 비교하여 자기비하를 일삼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그들과 본질적으로 열등하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우리의 해방을 자력으로 성취하는 데 실패한 것일 뿐이다. 그들의 반역행위도 우리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 하지 않다. 다만 그들은 그러한 반역자들을 물리적으로 처벌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작품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그러한 작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이론들을 비판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도 프랑스 사회가 다른 사회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건강한 것이다.

우리는 반역자들을 비난했지만 그들의 작품들과 이론들을 분석하고 연구하는지 궁금하다. 그래서 예술의 윤리성 문제를 제기하려고 한다. 예술의 윤리성은 정치와 미학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즉 예술의 윤리성은 그 예술가의 정치적 입장이 미학적으로 반영되는 것이다. 정치에 무관한 것은 그만큼 순수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현실의 모순과 사회변화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것은 그 만큼 예술가 자신의 성을 공고히 하는 것이며, 이것은 이기주의의 극단이기 때문이다. 들어가고 나가는 문도 없이 만든 그 성이 아무리 훌륭하고 튼튼하더라도 그 성 주인은 불행할 것이다. 그에게 삶은 처절한 고립과 고독이고 그 정서로 예술 활동을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역자의 예술작품을 그 자체로만 본다면 위대한 형식미를 갖추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화려함 뒤에 숨겨져 있는 독을 품고 있는 꽃이나 무서운 질병의 현란한 세포와도 같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선(善)으로 그 내용이 채워져야 한다. 선이란 자기부정이고 자기희생이며, 자신만을 생각하지 않고 인류를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 없는 형식미에 빨려드는 것은 수렁에 빠져드는 것과 같은 것이다.

따라서 예술의 윤리성 기준은 예술가의 삶과 그 작품이 인간의 삶을 선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하는 인격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데 얼마만큼 기여를 하는가에 달려 있다. 물론 윤리성이 갖추어져 있는 진정한 예술작품은 선전물과는 다르다. 예술작품은 인간의 마음과 양심을 움직여서 아름다운 행동을 자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과연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예술의 윤리성을 보여주는 예술가들이 얼마나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반역의 예술가들에게 특권을 단 한 번에 부여하는 셀 수 없이 많은 대회와 상들을 볼 수 있다.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는 반역의 예술가와 그 작품들이 우리 주위에는 무수히 많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보다 더 중요한 일은 폭로나 처벌뿐만 아니라, 반역자의 예술을 재생산하고 있는 사회구조와 예술이론을 비판하는 일이다.

처음 올린 날 2002년 3월 9일(토)
정종환 --------------
민족문학작가회의 전북지회 회원. 1961년 익산 삼기 출생. 원광대 철학과 강사.
문예미학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