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2001.09.1 게재

김용택(시인)

나는 지금까지 내가 태어난 곳에서 산다. 멀리 여행을 다녀 보지도 않았고, 또 여행을 멀리 다닐 생각을 해 보지도 않았다. 나는 다른 땅에서 내 인생의 그 어떤 희망을 걸어 보지 않고 살았다. 내가 다른 어떤 지방에 태어났어도 나는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우리 인간들이 숨쉬고 밥 먹고 사랑하고 잠자고 똥을 싸며 사는 일을 생각해 보면 우습다. 나는 우리 인간 세상에 대한 낙관보다도 비관 속에서 살아왔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날들에 대해서도 낙관의 환한 햇살보다는 비관의 더러워진 먹구름이 내 앞을 가리고 있음을 고백한다. 인간의 자연에 대한 오만은 끝을 모르고 길길이 날뛰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 우리 인간만이 사용했던 고유의 아름다운 말인 문명과 문화라는 말이 사라졌다. 그 자리에 인간들의 추잡한 야만이 자리잡은 것이다. 이제 우리가 사는 이 작은 지구를 우리만 살고 말 것이냐는 말은 너무 촌스러운 말이 되었다. 많은 이들이 지구에 대한 인간의 오만이 빚어 낼 불행할 사태를 경고했음에도 사람들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지금은 더 극악하고 무지하게 지구를 망가뜨리고 있다. 금방 우리 눈앞에 물이 더러워져서 먹을 수 없고, 숨쉬기 힘든 공기가 우리 숨구멍을 괴롭혀도 사람들은 끄떡하지 않고 물과 공기를 더럽히는 일을 쉬지 않는다. 산에서 산짐승들이 쫓겨나고, 물에서 물고기들이 사라지면 곧 사람들이 그런 것들로부터 쫓겨난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지금 끝없이 땅과 물과 공기를 죽이고 있다. 우리가 사는 이 문명은 아주 유감스럽게도 공포의 반문명이며 우리가 사는 이 문화는 분명히 야만적인 얼굴을 한 반문화이다.

어느 날 나는 전주 시내를 가로지르는 전주천 어느 다리 위에 서서 흘러가는 물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물은 정말 더러워질 대로 더러워져 있었다. 그 더러워진 물에 무엇인가 움직이는 것들이 있었다.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더러워진 물 속에서 움직이는 것은 붕어들이었다. 내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다. 저런 물 속에서도 고기들이 살다니. 나는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한 가지 상상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래, 그렇구나. 드디어 이제 저 물고기들이 저 더러워진 물에 적응을 해 가기 시작했어. 그런 무서운 일이 벌어진 거야. 이제 저 물고기들은 그 어떤 공해에도 적응해 가는 진화기에 들어선 거야. 이제 저 물고기들은 저 물 속에서 끊임없이 진화를 거듭해서 땅으로 올라올지도 몰라. 그래서 자동차를 잡아먹고 아파트를 뜯어먹고 사람을 잡아먹을지도 몰라.> 나는 겁이 났다. 나는 무서웠다. 나는 얼른 그 자리를 피해 갔지만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어지럼증을 탄다.

나는 생태학자도 아니고, 자연을 보호하자는 정부의 관리도 아니고, 새만금을 강행하자는 지역의 유력한 유지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음 지방 선거에 나서려는 유력한 인사도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지방 자치단체들의 장들과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지방 토호세력들을 생각하면 아랫도리가 부르르 떨리는 사람이다. 그들의 무지와 그들의 재당선을 위한 겁나는 몸부림에 나는 공포를 느낀다.

무서운 일이다. 그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이제 우리 인간들이 평안을 누리고 살 만한 곳은 다 사라지고 없다. 조금만 특이한 것이 있으면 다짜고짜 개발의 삽날을 들이대어서 관광지화하려는 그들은 내게 캄캄한 바위덩어리와도 같은 존재들이다. 그들의 한탕하려는 턱없는 욕심이 이 땅을 구석구석 다 망가뜨리고 있다. 새만금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저 이성을 잃어버린 찬반 논란은 아무리 냉정하게 보아도 내겐 그래서 무섭고 겁나는 일이다. 어쩌자는 것인가. 저 무지막지한 찬반논쟁을 보며 나는 인간들이 언제 저렇게까지 참혹하게 되어 버렸는가를 생각한다. 자연을 부르짖기 이전에 나는 망가질 대로 망가지고 더러워질 대로 더러워진 인간성을 생각한다. 이제 되돌릴 수 없이 파괴되어 황폐화된 것은 자연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성이라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과학을 믿는다. 과학으로 상처받은 세상은 과학으로 치료하리라는 손쉬운 생각을 한다. 나는 과학을 내세우는 사람들의 저 무지스러운 벽 앞에 절망한다. 새만금에 대한 이성을 잃어버린 찬반논쟁에 나는 솔직히 끼여들 마음이 없다. 다만 나는 바다가 땅으로 되는 것에 대해 극히 비과학적이고도 반경제적이라 생각한다. 사람들이 살 땅이 중요하다면 사람들이 살 바다도 중요한 것이다. 땅이 그렇게 만들어져 있으면 그대로 둘 일이다.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게 만들어 놓은 땅은 사람들이 바라보아도 좋은 것이다. 내 생각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지 않고 멈춘다. 제발 싸우더라도 좀 사람답게 싸우길 바란다. 그렇게 알기도 많이 알고 그렇게 공부도 많이 하고 그렇게 전북을 위해 애향심을 발휘하며 살겠다면 좀 사람답게 싸웠으면 좋겠다. 아이들 보기도 민망하고 내가 이 땅에 사는 것도 부끄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정말 사람답고 어른다웠으면 좋겠다. 코흘리개 아이들 앞에 서 있다가 어른들이 잘 살자고 싸우는 것을 보면 얼굴을 들 수 없을 때가 많다. 도대체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 이 세상에 문제는 없다. 다만 사람들이 문제인 것이다.

(현대문학 2001년 6월호 새만금 특집 중)

김용택(시인) --------------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1948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났다. 1982년 창작과비평사의 21인 신작시집 <꺼지지 않는 횃불>에 "섬진강 I"외 8편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85년 첫시집 <섬진강>을 간행한 이후 <맑은 날>, <누이야 날이 저문다>, <꽃산 가는 길>, <그리운 꽃편지>, <그대 거침없는 사랑>, <강 같은 세월>, <그 여자네 집>등의 시집을 출간했다. 산문집으로 <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 <섬진강 이야기>, <작은 마을>, <인생>이 있으며 장편동화 <옥이야 진메야>, 동시집 <콩, 너는 죽었다>가 있다. 김수영 문학상, 김소월 문학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