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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료] 2001년 회원 여름수련회 발제문(박영근)
이름 관리자
첨부 2001_민족문학작가회의_회원_하계수련회_발제문.hwp (30.9K)


                                        2001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 하계수련회 발제문


민족문학작가회의, 새로운 네트워크를 위하여
 박영근

1.
90년대 이후 작가회의는 자신의 일을 대체로 조용히 진행시켜왔다. 그것을 80년대에 비해 일종의 변모를 보였다고 이해해야 될지, 아니면 침체라고 받아들여야 할지는 작가회의가 펼쳐온 일들에 대한 분명한 점검과 성찰 속에서 따져질 성질의 것이지만, 일단 겉으로 드러난 것들 중에서 확실하게 보이는 것은 자신의 뚜렷한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의 지루하게 되풀이한 비평에 의하면, 그 배경과 원인은 문민정부 이후 이루어진 /'/보다 민주화된/'/ 어떤 정치적 조치들과 사회주의 진영의 몰락에 있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 연대의 관념적이고 급진적인 정치주의가 현실의 변화를 감당하지 못함으로 해서 생긴 자기모순적인 결과라고 하기도 한다. 또는 자본에 의한 전지구적 포섭이라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에 부응할만한 작품의 생산이 이루어지지 못한 데서 그것을 찾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이후 작가회의가 민족문학이라는 이름과 내용으로 끊임없이 제기했던 어떤 문제들이 지금에 이르러 해소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 문제들은 새로운 단계에서 심화되었거나, 또는 보다 복잡한 지형을 그려내고 있는 것으로 나에게는 이해된다. 가령 비평가 정남영은 자본의 발전 정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987 무렵부터 자본의 사회 장악력은 현저히 확대된다. 자본은 이전에 장악하지 못 했던 영역으로 흘러 들어가 이제 사회 전체에서 자본의 통제 아래 놓이지 않는 영역, 상품화가 진행되지 않은 영역은 점점 찾아보기가 힘들게 되었다. 그리고 이 영역은 전산망과 이동통신망으로 연결되어 어느 곳으로나 자본의 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다.(…중략…) 자본이 사회를 거의 완전하게 장악하여 사회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생산기계처럼 된 /'/실질적 포섭/'/ 단계의 사회에서는 자본의 창조력이 인간의 창조력을 완전히 가려버린다. 바꾸어 말하자면 자본의 힘이 모든 것을 만든다는 환상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 환상이지만 현실을 기만하여 힘을 갖는 환상이다. 인간의 힘에 대한 의존도도 없고, 다른 외부적 힘-예컨대 신-에 대한 의존도 없이 자기 스스로 작동하는 거대한 체계, 인간 주체가 말소된 /'/순수한/'/ 자기작동의 거대한 체계, 주체 없는 과정, 이것이 바로 이 환상에 그려진 사회의 모습이다. 여기서 인간 개인은 의미를 박탈당하고 거대한 기계에 딸린 부속품으로 변한다."
-「단절의 경험과 창조적 개인」

자본이 전일적으로 우리 삶의 세계를 장악해가는 상황 속에서 지난 십여 년 동안 작가회의는 자신이 놓여 있는 현실을 냉엄하게 바라보는 속에서 성찰을 수행한 적이 있었던가. 그것이 조직의 차원이든 문학의 차원이든 뚜렷한 쟁점을 생산하지 못했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고민과 갈등을 자기과제로 제출하지 못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기간 동안 이루어졌던 작가 황석영의 방북과 감옥생활은 출옥 이후 그가 출간한 작품과 함께, 그래서 의미가 있어 보인다.」 지금에 이르러 우리 내부에서 앙상한 문학적 위계질서만을 보게 되는 것만큼 가슴아픈 일은 없을 것이다.

2.
 그 동안 작가회의라는 범주에서 일어난 가장 주목할만한 변화의 내용을 들라하면 많은 사람들은 서슴없이 지역작가회의의 등장이라고 말할 것이다. 지역간의 상당한 정도의 불균등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갖는 의미는 대단하다. 다른 무엇보다 그것이 중요한 까닭은 /'/주변/'/으로 소외되어 모습이 희미했던 문학을 우선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열렸을 뿐만 아니라, 그 가능성을 지역이라는 실체로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문학적 현실/'/이 태동했다는 데 있다. 다른 또 하나는 지역의 특수한 역사와 현실을 전문성에 의지하기보다는 지역적 /'/존재/'/, 즉 지역적 삶의 눈으로 탐구할 수 있는 문학적 가능성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살펴야 할 것은 그것이 지역간의 수평적 연대를 이룰 수 있는 틀로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따지고 보면 작가회의를 일으켰던 큰 뼈대 중의 하나가 80년대의 상당한 기간 동안 각 지역에서 일어났던 문학소집단운동이 아니었던가. 당시 그 소집단운동을 돌아보건대, 지금도 새롭게 살아나는 의미 중의 하나는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의 진보적 대중성이다. 문단 추천이라는 글쓰기의 낡은 전문적 회로를 그것은 깨뜨리면서 문제의 핵심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자신의 주된 에너지로 전화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껏 이루어진 성과를 냉정히 살펴보면 그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발견/'/이라고 부를 만한 성취가 있었던가는 따로 물어야 할 것처럼 보인다. 우선 그 문학적 시선에 있어서 서울이라는 중심으로부터 자유로운가 하는 점이다. 향토운동적 관심이나 작품의 문학적 성취 따위를 훨씬 뛰어넘어 지역의 구체적 현실을 만나지 못할 때 지역작가회의의 활동은 당연히 자족적인 문학소그룹의 움직임 정도로 되어질 것이다.
오늘날 민족문학이 가져야 할 중요한 지향은 다름 아닌 지역이라는 구체적 공간 성의 회복이다. 최원식 선생의 글을 빌려 지역이라는 공간을 탐색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놀라운 성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말하려고 한다. 백석 문학에 대한 해석이 바로 그것이다.

"공간의 구체성을 집중적으로 탐구하는 작업이 오히려 방언의 경계, 지방의 경계 를 넘어 국민언어로 고양되는 비밀은 무엇보다도 그 시각에 있다. 예컨대 백석을 보자. 얼핏 보면 무슨 고향에 대한 자연주의적 묘사처럼 보이는 그의 시는 섣부른 관념이 좀체 투과하기 어려운 개체성, 거의 즉물적인 육체성으로 견고하다. 이 때문에 그의 시는 들큰한 낭만주의의 고향타령이 결코 아니다. 그만큼 그의 시에는 지성의 통제가 빛난다. 지성의 힘으로 구축된 개체성을 바탕으로 한 백석 시는 전형을 평균과 혼동하기 일쑤였던 카프의 쁘롤레뜨꿀뜨와는 더욱 구별된다. 모더니스트들이 즐겨 노래하는 도시가 아니라 도시로부터 희귀하게 보호된 오지의 사람들을 끈질기게 그려냄으로서 시인은 빤한 결론으로 달려가지 않은 채 도시로 대표되는 식민지 자본주의의 문제들을 침통히 응시한 것은 아닐까? 이처럼 우리 근대문학의 위대한 전통은 지방을 지방주의가 아니라 전국적 또는 세계적 시각으로 접근함으로 써 방언의 경계를 넘는 보편성을 획득하였던 것이다."

3.
세상이 달라졌다
저항은 영원히 우리들의 몫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가진 자들이 저항을 하고 있다.
세상이 많이 달라져서
저항은 어떤 이들에겐 밥이 되었고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권력이 되었지만
우리 같은 얼간이들은 저항마저 빼앗겼다
세상은 확실히 달라졌다
이제는 벗들도 말수가 적어졌고
개들이 뼈다귀를 물고 나무 그늘로 사라진
뜨거운 여름 낮의 한때처럼
세상은 한결 고요해졌다
-정희성의 시「세상이 달라졌다」전문

정희성 선생의 시를 나는 반복해서 읽는다. 선생의 시는 다만 현실에 대한 침묵과 환멸일 것인가. 생각건대 그것뿐이라면 이 시는 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는 침묵과 환멸로서의 작가 현실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그 비애를 /'/달라진 세상/'/과 대립시켜 풍자의 세계로 이끌고 있는 것인가. 나는 그렇게 읽는다. 이 시의 진실에 의지해서 말하건대, 상당 기간 동안 당연한 것처럼 있어 온 작가회의의 침묵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물론 그렇다. 다양한 문학적 입장들이 서로 길항하면서 토론되어야 하듯이 서로 다른 정치적 입장들 또한 수용되어야 한다. 삶의 상식적 가치들이 온전히 지켜져 내려온 역사와 현실 속에서라면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하거니와, 그런 의미라면 오히려 흐뭇하게 바라볼 일일 것이다.
그러나 어떤 입장이나 태도가 삶과 역사의 진실을 왜곡하거나 억압한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여기서 조선일보 등의 문제나 대우자동차 노동자 폭력진압과 같은 상황이 작가들 앞에 서게 되는 것이다. 이 글은 지금 어떤 전략이나 전술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문학이 어쩌면 자신의 사회적 존립을 위해서 지켜야 할 근본주의에 대한 것이다. 작가적 양심이 사라진 장인들의 세계를 작가회의는 받아들일 것인가. 윤리가 죽어버린, 아니 그 시체가 상품이 되는 물질의 세계를 받아들임으로서만 작가적 생존이 지속되는 상황을 그냥 지켜보아야 하는가.

나는 모리배들한테서 언어의 단련을 받는다
아아 모리배여 모리배여
나의 화신이여
-김수영의 시 「모리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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