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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이었을 때, 비가 내리는 날 등교시간을 맞추려면 여느 날보다 좀더 서둘러 집을 나서야 했다. 학교에 가려면 제법 폭이 넓은 개천을 건너야 했는데 비가 내리면 평소에 이용하던 무넘깃둑 위로 물이 넘쳐흘러 좀더 하류 쪽의 제대로 된 다리를 이용해야 했다. 어느 날인가는 하굣길에 그렇게 물이 불어난 개천을 건넜다. 점심 무렵 비는 완전히 그쳤으나 오전 내내 내렸던 탓에 개천은 강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불어나 사납게 흘렀다. 그때의 하천은 흙빛의 거대한 한 마리 용 같았다.
둑으로는 건널 수가 없어 그 아래로 건넜다. 저 아래 다리로 에둘러 가는 것보다는 나은 듯 싶어서였으리라. 개천의 한가운데쯤에 이르러 가슴팍까지 물에 잠기고서야 뒤늦은 후회가 찾아왔다. 어찌어찌 무사히 건넜다 싶을 즈음 고무신이 벗겨졌다. 새하얀 고무신이었다. 차마 운동화가 갖고 싶다는 말은 못하고 지긋지긋한 검정 고무신만이라도 벗어나면 좋겠다 싶어 한참을 조르다 얻어낸 하얀 고무신이었다. 용감하게 하천을 건넜으나 집에 돌아가는 길이 어느 날보다 까마득했다. 새 고무신을, 그것도 새하얀 고무신을 잃어버렸으니 아버지에게 죽도록 얻어맞을 게 분명해 어디론가 도망가 칵 죽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행히 집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집에서 뛰쳐나갔다. 하지만 대체 가긴 어디로 간단 말인가. 근동을 배회하다 밤이 이슥해지자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 되어 집으로 기어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루 아래 댓돌에 놓인 또 다른 새하얀 고무신을 보았다. 그때 아마도 눈물을 찔끔 흘렸던 것 같다. 나는 오래도록 손바닥만한 마당 한가운데 서서 구름 걷힌 밤하늘에 쏟아질 듯 촘촘히 박혀 빛나는 별들을 사심 없이 올려다보았다. 이따금 별은 그런 식으로 우리 가슴에 들어오는가 보다.
<2010. 0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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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in 미디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