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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을 하던 K씨는 전통적인 야당지지자였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K씨 부부는 국회의원 노무현과 사진을 찍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그가 대통령이 되자 그 사진을 크게 확대해서 벽에 걸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K씨는 노무현대통령이라 부르지 않고 노무현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정부의 부동산정책으로 세금을 많이 내게 되고 그가 지은 연립주택에 살던 사람들이 한 집 두 집 나가게 되자 그는 노무현의 사진을 벽에서 내렸습니다. 그리고 대놓고 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그가 지난주에는 언론사 임원인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나 땜씨 이렇게 되었는갑다." 하면서 엉엉 울더랍니다. 칠순이 넘은 노인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버린 뒤 사람들이 가슴아파하는 그 슬픔의 정체에 대해 많은 이들이 여러 가지 답변을 내 놓고 있습니다. 그중에 민주화운동을 했던 이들은 "그의 좌절은 우리의 좌절이었고 그의 실패는 우리의 실패였으며 그의 한계는 우리의 한계였는데 모조리 노무현의 탓으로 돌리고 돌아서서 손가락질이나 하고 있었다."는 뒤늦은 자각과 미안함이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이라크파병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으나 대미관계에 있어서 우리나라의 한계가 있다는 현실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미 FTA와 신자유주의에 대해 분명히 반대하는 입장을 견지해야 하나, 경제를 어떻게 민주화할 것인가에 대해 우리의 준비가 미흡했고, 성장과 분배에 대해 국민을 설득할 프로그램이 부족했던 것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도 미안한 마음으로 시 한 편을 썼습니다.
그의 늑골에 금이 가는 것은
권위주의를 벗으려는 노력에 금이 가는 것
그의 정강이뼈가 부서지는 것은
지역주의를 깨보려던 시도가 부서지는 것
그가 피 흘리며 쓰러지는 것은
정의로운 역사를 세우려던 몸부림이 쓰러지는 것
그의 몸이 산산조각 나는 것은
우리의 민주주의, 균형 발전, 평화로운 나라를 향한
간절한 소망들이 산산조각 나는 것이므로
역사여, 당신의 가슴으로
이 조각난 육신을 받아 안아 주소서
(……)
그가 꿈꾸던 아름다운 가치들이
모조리 불에 타
허망한 연기, 한 주먹의 재로 사라지게 할 수는 없으니
잔혹한 시대여, 그를 우리의 벗으로 다시 돌려주소서
---졸시 '벼랑에 지는 꽃' 중에서
이제 노무현이라는 아이콘은 우리에게 많은 과제를 다시 고민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 스스로도 실패하였다고 인정하였다지만 그가 추구하고자 했던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 지역 균형발전, 평화로운 나라, 탈권위주의, 불의에 타협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증거를 보여주는 삶, 이런 가치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소중한 가치들입니다. 이런 가치들이 무시되거나 후퇴하는 시대를 더 이상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아픈 각성이 그가 벼랑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 뒤에야 생겨났다는 것이 미안하고 미안할 따름입니다.
<2009.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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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in 미디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