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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가 진행 중인 공사현장을 지나가는 일은 어쩐지 불편하다. 곧 허물어져 지상에서 사라질 것들에 대한 막연한 안타까움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런 감상보다 재빠르게 찾아오는 건 허물어지는 건물들 스스로 뿜어내는 스산한 기운들이다. 핏줄처럼 벽돌과 콘크리트 마감재 아래로 흘렀을 철근과 전선이 아무렇게나 삐죽 튀어나와 하늘을 할퀴고, 누군가 수없이 여닫았을 문들이 간당간당 매달린 채 삐걱대고, 깨진 창문으로 함부로 들이칠 무례한 시선들(나를 포함하여)이 교차하는 그곳은, 또한 추억의 무덤이기도 하다. 매장하고 나면 영영 복원할 수도 재생할 수도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곳에 추억을 지닌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이따금 되살아나기는 하겠지만. 어떤 공간은 처소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냄새로 과거의 일을 기억해내는 프루스트현상만이 우리가 무언가를 추억하는 유일한 방식은 아니다.
때때로 혹은 자주, 공간은 냄새보다 강렬하게 과거를 환기시킨다. 사랑을 고백했다가 퇴짜를 맞았다거나, 벗들과 정답게 술잔을 기울였다거나, 그보다 더 우울했거나 즐거웠거나 사소했거나 상관없다. 우리가 부려놓았던 감정들만큼 공간은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공간은 설령 그곳이 공공의 소유물일지라도 지극히 사적인 곳이기도 하다. 옛 전남도청도 그렇다. 그 건물이 남다른 점이 있다면 사적인 공간에서 다시 집단적인 기억의 공간으로 환원되었다는 것이리라. 그곳을 철거한다고 한다. 관(官)이 결심하면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시절임을 고려할 때, 옛 전남도청의 운명도 예상이 가능하다. 어쩌면 훗날 우리는 후회하는 것조차 잊을지도 모른다. 옛 전남도청의 철거가 사적인 기억의 박탈뿐만 아니라 역사의 철거를 시도했던 난폭한 행위였음을 깨닫는다 해도 우리가 매장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기억해내기가 쉽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2009. 5. 12 손홍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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