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아카시 꽃이 조롱조롱 매달려 피었습니다. 다디단 향기가 오월의 아침을 가득 채우며 머리 위에서 내려옵니다. 그 향기의 단맛을 느끼며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시간은 행복합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시골 학교 선생을 하다 아카시 꽃 피는 오월에 군대에 입대하였습니다. 그때 아이들과 헤어지며 "저 꽃이 피어 있는 동안은 나를 기억했다가, 저 꽃이 지거든 나를 잊어다오" 하고 인사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새로 오신 선생님과 정을 붙이고 지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훈련을 잠시 쉬는 시간에 논산 훈련소 연병장 마당에 누워 바라보는 하늘에 아카시 꽃이 하얗게 지면서 하늘 가득 날아가는데 어찌나 아이들이 보고 싶던지요. 나는 참을 수 없어 '보고 싶다 보고 싶다'고 길고 긴 편지를 아이들에게 썼습니다. 지금도 아카시 꽃이 피면 그 생각이 납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려면 무엇보다 아이들을 좋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아이들과 같이 있는 것이 좋고, 아이들과 함께 가르치고 배우는 시간이 좋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좋아야 합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게 몸에 배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건너 간 사랑이 되돌아옵니다. 루소는 이렇게 말합니다.

한 인간을 교육하고자 계획할 때는 감히 그 일을 계획하기에 앞서서 그 사람 자신의 인간됨이 형성되어 있어야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제시해야 될 본보기는 그 사람 자신 속에 있어야만 한다. (……)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 자신이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이 되도록 할 일이다. 만약 그대가 어린이 주변에 있는 모든 자들의 스승이 되지 못한다면 어린이의 스승도 결코 되지 못할 것이다.

(……) 주어야만 할 것은 여러분들의 시간이고 마음씨이고 그대들 자신이다. 왜냐하면, 어떠한 일을 해준다 할지라도 사람들은 언제나 그대들의 돈이 결코 그대들 자신은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관심과 호의가 어떠한 선물보다도 더 효과적이며, 또 실제적으로 더 쓸모있다는 증거는 얼마든지 있다.

(……) 단지 보시(布施)만 하지 말고 자비를 베풀라. 자비의 행위는 돈보다도 더 많이 고통을 경감시킨다. 사람을 사랑하라. 그러면 그들 또한 여러분을 사랑하리라. 사람들에게 봉사하라. 그러면 그들 또한 여러분에게 봉사하리라. 사람들의 형제가 되어 주라. 그러면 그들 또한 당신들의 형제가 되어줄 것이다.

어린이의 스승이 된다는 일은 이렇게 어려운 일입니다. 어린이 주변에 있는 모든 자들의 스승이 될 수 있어야 비로소 어린이의 스승이 될 자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남을 본받으라고 할 게 아니라 그 자신이 본보기가 되어야 스승이라는 것입니다. 지식만 가르치는 이가 스승이 아니라 시간을 내 주고, 마음을 주고, 자기 자신을 주는 사람이 스승이라는 것입니다.

자비의 마음으로 아이를 대하는 이가 스승이라고 합니다. 진정으로 아이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봉사하고, 그들의 형제가 되어주는 사람 그가 곧 스승이라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아이들에게 사랑받고, 아이들이 그를 위해 봉사하고, 아이들이 그의 형제가 되어주는 사람 그가 스승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진정으로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봉사하고 그들의 형제가 되어주었는가 생각하며 아카시 꽃을 올려다봅니다. 바람이 아카시 꽃 향기를 한 움큼 뽑아가지고 허공 너머 어딘가로 긴 꼬리를 끌며 사라집니다.

<2009. 5.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