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오늘의 한국사회가 민주주의에 정면으로 역행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다. 문제의 핵심에 있는 것이 대통령과 청와대라는 사실 역시 분명하다. 그러나 들끓는 여론과 무관하게 정부는 좌고우면하지 않겠다는 엉뚱한 고사성어를 남발하고 있다. 불통의 벽 앞에서 국민들은 모욕감에 치를 떨고 있다.

모.욕.감. 이것이야말로 오늘의 MB정권이 일관되게 국민들을 대하는 방식이다. 이 정권이 성립된 이후 임기가 보장되어야 할 공직에서 추방된 사람들이 끝없이 시달려야 했던 것은 모욕감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는 이 정부 들어 팽배하고 있는 모욕을 통한 제도적 폭력의 위험스러운 수위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용산에서 죽어간 철거민들은 사후에도 거듭 가해지는 모욕감에 치를 떨고 있다. 이른바 사회지도층이 연루된 탤런트 장자연씨의 죽음 역시 모욕감을 빼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화물연대 조합원이었던 박종태씨의 죽음 역시 모욕감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 죽음들은 죽음을 통해 인간다운 존엄과 품위를 증명하고자 한 데서 온 것이다. 그만큼 망자들에게 가해졌던 모욕감이 얼마나 치명적인 것인지 우리는 반문하게 된다.

이 정부가 들어선 이후 사실상 모욕감은 일상화되었다. 지난해 촛불정국을 관통하면서 국민들에게 가해진 공권력의 모욕적인 행태는 더욱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공권력이 자행하는 국민들에 대한 모욕은 상상을 초월한다. 경찰은 국민들에게 거리낌없이 색소분사기를 난사한다. 한때는 시위대를 검거하면 ‘특별수당’을 지급하겠다고 해 ‘인간사냥’이라는 여론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영정사진을 짓밟는 등 망자들에 대한 계속되는 모욕도 빠질 수 없다.

최근 한국의 민주주의를 진심으로 우려하는 서울대와 중앙대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발표되자 청와대의 핵심 관계자는 “서울대 교수가 몇 명인 줄 아나?”라는 말로 지식인들을 모욕했다. 하긴 전직 대통령조차 마음놓고 조롱하고 모욕하는 사회에서, 모욕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누구이겠는가.

그러나 이 정부가 국민을 제도로서 모욕하면 할수록 정권의 정당성은 내부에서 붕괴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아니 이미 그것은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국민에게 거듭 제도적 모욕을 가하고 있는 정부에 ‘소통’을 요구하는 것은 차라리 연목구어에 가까울 것이다.

지난 민주화 시기 한국사회가 성숙시켜 온 민주주의는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국민들의 자존심과 자부심은 붕괴하고 있는 대신, 모욕감은 압력을 더해 팽창하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은 입에 담을 수 없는 명제가 되고 있고, 사회정의는 사어(死語) 사전에 등재될 날이 멀지 않았다. 이 정부에 국민들은 이제 완전히 등을 돌리고 있다. 그런데도 등 돌린 민심에 대고 모욕을 그치지 않는 위정자들의 독선과 오만은 오히려 하늘을 찌르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이 찾아야 할 것은 단지 민주주의에 그치지 않는다. 민주주의의 복원을 넘어 인간됨의 존엄을 회복해야 한다. 존엄을 넘어 사람됨의 품위를 회복해야 한다. 모욕감으로 팽배해 있는 뒤틀린 현실을 넘어, 자존감과 자부심으로 빛나는 ‘품위 있는 사회’에 대한 열망을 실현해야 한다. 모욕감을 참아서는 안 된다. 우리가 괴물이 아니라면.

<2009. 6. 11 문학평론가·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