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용 시인의 첫 시집 [하늘공장]
(삶이보이는창, 2007년 7월 10일)


『하늘공장』은 1992년부터 노동자문예 『삶글』에 시와 소설을 발표하면서 창작 활동을 시작했고, 2002년 제11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한 임성용 시인의 첫 시집이다. 구로, 안산 공단에서 공장노동자로 일한 바 있는 시인은 노동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실을 이론적인 차원에서 목격하거나 표현하지 않고 직접적인 체험에 근거함으로써 시의 진실성과 진정성을 높이고 있다.

노동부에서 발표한 「2006년 산업재해 현황」을 보면 전체 노동자의 0.77%인 89,911명이 산업재재를 당했고, 그 중 2,454명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난다. 자본주의 태동 이후 발생된 변화의 가장 큰 부분 중 하나가 사람의 육체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위의 자료는 보여준다. 「발」,「발코니」,「웃는 뼈」,「눈 밝은 아이」,「복사꽃 그늘」,「유리공」 등과 같은 임성용 시인의 많은 시편은 노동현장에서의 노동자의 육신에 새겨지는 자본의 흉포함을 고발하고, 또 이를 통해 희망을 모색한다.

임성용 1965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났으며 구로, 안산 공단에서 공장노동자로 일했다. 1992년부터 노동자문예 『삶글』에 시와 소설을 발표하면서 창작 활동을 시작했으며, 2002년 제11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다.

::책 속에서

하늘공장

저 맑은 하늘에 공장 하나 세워야겠다
따뜻한 밥솥처럼 해가 뜨고 해가 지는 곳
무럭무럭 아이들이 자라고 웃음방울 영그는 곳
그곳에서 연기 나는 굴뚝도 없애고 철탑도 없애고
손과 발을 잡아먹는 기계 옆에 순한 양을 놓아 먹이고
고공농성의 눈물마저 새의 날갯짓에 실어 보내야겠다
저 펄럭이는 것들, 나뒹구는 것들, 피 흐르는 것들
하늘공장에서는 구름다리 위에 무지개로 필 것이다
삶은 고통일지라, 죽어도 추억이 되지 못하는 고통을
하늘공장의 예배당에서는 찬양하지 않을 것이다
힘없이 잘린 모가지를 껴안고 천천히 해찰하며
내일이라도 당장 하늘공장으로 출근을 해야겠다
큰 공장 작은 공장 모두 하나의 문으로 통하는
하늘공장에 가서, 저 푸르른 하늘공장에 가서
부러진 손과 발을 쓰다듬고 즐겁게 일해야겠다
땀내 나는 향기를 칠하고 하늘공장에서 퇴근하는 길
지상에 놓인 집 한 채가 어찌 멀다고 이르랴



::시인의 말

내 꿈은 파괴되고 버려졌다.
함께 땀 흘려 일하고, 함께 분배하고자 했던
생산공동체의 꿈은 처음부터 불량덩어리였던가?
돌아볼수록 불편한 그 길에서, 나는 빚을 잔뜩 지고 서 있다.
그러나 나는, 사람 사는 세상이 이루고자 하는 꿈을 믿는다.
살면서, 잡풀 우거진 농장과 공장 사람들의 얼굴을 잊지 않을 것이다.

시는 내 삶의 위안과 기록이었을 뿐, 아무 것도 아니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왜냐면 나는 그럴듯한 시로 삶을 포장할 능력이 없다.
내 인생이 멍텅구리로 망가지더라도 말에 닳고 닳은 입술을 갖지 않으리.
더구나 목구멍이 기름지고 똥구멍이 구린 일은 없으리.

요즘, 매일같이 능평리를 지나간다.
그곳에는 어머니가 계신다. 나는 떡갈나무 무성한 묘원을 바라만 보았다.
아마 그분은 먼발치에서, 인사도 없이 바쁘게 달려가는 나를 보고
한숨을 크게 내쉴지도 모른다.

2007년 임성용


::추천글

시가 삶에게서 공중부양을 일삼는 작금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임성용의 시는 확실히 뒤떨어진(?) 게 분명하다. 도리어 삶의 바닥에서 배밀이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임성용의 시에서 어떤 까칠까칠함을 느꼈다면, 삶에 대한 그의 본능적인 배밀이 자세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자세가 아니라면 “울음조차 눈물조차 굳어”지는 일과 “가슴 속 유압유가 차오”르는 일을 하나의 인후부로 동시에 노래하지 못할 것이다. 무슨 놈의 시가 맨날 구체적인 경험세계를 노래해야 하느냐는 불만과 어떤 넌덜머리를 백번 양보해 접수한다 하더라도, 분명한 것은 시는 몸이 발생시키는 리듬이지 관념이 어림잡는 추상화된 형식이거나 이미 전제된 가치를 증명하는 실험도구가 아니라는 것. 여기서 임성용의 시는 성큼 자신만의 길로 들어선다. 임성용의 이번 처녀 시집은 그것을 증명하고 있으며, 그 길의 성격이랄까,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구절에 여실히 드러나 있다. “우리에겐 살아가야 한다는 궁상이 있을 뿐이다.” 어찌 보면 산파 같은 이 전언에는 아주 짧은, 그러나 존재론적인 전율을 일으키는 힘이 있다. 거칠어 보이는 그의 시에 마음을 머물게 하는 뭔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현실의 밑바탕에서 으르렁대는 삶의 ‘힘’을 임성용이 느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해봤다.-황규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