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몸




서성란





물고기

그의 몸은 싱싱하고 날쌘 물고기처럼 물속을 헤엄쳐 다니고 있다. 길고 곧게 뻗은 두 다리는 쉬지 않고 푸드덕거려 물보라를 만들고 두 팔은 단단한 노가 되어 물길을 헤쳐 나간다. 그는 멈추지 않고 풀을 세 바퀴 돌고 물 밖으로 나간다. 조각상처럼 군더더기 하나 없는 젖은 몸에서 물방울이 땀처럼 뚝뚝 떨어져 내린다.
실내 수영장 안에는 아무도 없다. 풀 밖 높은 의자에 앉아 자유 수영을 하는 회원들을 지켜보던 코치도 언제 사무실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는 수영 팬티와 모자를 벗는다. 실내 수영장 어딘가에 감시 카메라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천천히 샤워실로 들어가 샤워기의 물을 튼다. 거침없이 쏟아지는 물줄기가 짜릿하다. 그는 운동을 끝낸 뒤에 반드시 차가운 물로 오랫동안 몸을 씻는다. 회원들이 모두 빠져나간 샤워실에는 청소하는 사내 혼자 바닥을 닦고 있다. 청소하는 사내가 그의 몸을 본다. 샤워할 때마다 그는 자신의 몸을 노골적으로 혹은 슬쩍슬쩍 훔쳐보는 눈길을 느낀다. 수영장 샤워실이나 헬스클럽 샤워실, 공중 목욕탕에는 언제나 그의 벗은 몸을 주시하는 눈들이 있다.
그는 훌륭한 몸을 가지고 있다. 그의 몸에선 불필요한 살점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매끈하게 빠진 몸에 붙은 단단한 근육이 그의 몸을 나이보다 훨씬 젊고 강하게 보이게 한다. 올해 그는 마흔 살이 되었다. 몸을 보고는 그의 나이를 짐작할 수 없다. 단단한 가슴팍 밑에서 배꼽 아래까지 몸은 거치적거리는 것 하나 없이 매끈하게 뻗어 있고 탱탱한 복부 아래 엉덩이는 마치 여자의 몸처럼 골반뼈가 도드라져 있다. 차가운 물에 오랫동안 노출돼 탱탱해진 고환 주머니와 길고 매끈한 페니스는 몸의 중심이고 완성이다.
그는 자신의 몸이 자랑스럽다. 술을 제외한 먹을거리에 누구보다 관심이 많고 먹는 양도 많지만 완벽에 가까운 몸을 유지할 수 있는 건 지나치리만큼 심하게 하는 운동 때문이다. 운동은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자신과의 비즈니스였다.
샤워를 끝낸 그는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자동차를 주차해 둔 지하 3층으로 내려가려고 엘리베이터를 탄다. 주차장 입구에서 손에 들고 있던 자동차 리모컨의 단추를 가볍게 누른다. 2, 3초 뒤 그의 감청색 무쏘에 시동이 걸린다. 운전석 문을 열고 의자 위로 튀어 오르는 그의 몸이 날렵하다.
그는 스물네 시간 영업하는 쇼핑센터로 가고 있다. 밤 열 시가 지난 시각이지만 쇼핑센터 주차장에는 장을 보러 온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그는 커다란 쇼핑 카트를 끌고 안으로 들어간다. 맨 처음 산 것은 한우 양념갈비와 버섯과 마늘이다. 그가 먹는 고기는 반드시 한우여야만 한다. 그가 매니저로 일하는 호텔 뷔페 식당에서는 한우 고기를 쓰지 않는다. 대부분의 손님들은 뷔페 식당 주방장이 갖은 양념을 넣고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재운 갈비나 불고기를 한우로 착각하고 먹는다. 뷔페 식당뿐 아니라 그가 일하는 호텔 한식당이나 중식당 모두 소고기는 미국이나 필리핀, 칠레에서 수입해 온 것을 쓴다. 그는 수입 고기와 한우를 구별해 내는 예민한 혀를 가지고 있다. 자신이 먹을 질 좋은 한우 고기를 사기 위해서 여러 쇼핑센터를 돌아다녔고, 결국 자신의 입맛에 맞는 고기를 파는 곳을 찾아냈다. 양념한 고기를 먹을 때는 팽이버섯을 곁들이고 생고기는 양송이버섯의 기둥을 떼고 고기와 함께 굽는다. 청경채와 치커리, 케일, 민들레 이파리, 깻잎과 상추를 조금씩 봉지에 담고 요구르트 한 줄을 쇼핑 카트에 담고 나서 계산대로 간다. 야채는 단지 시각 효과를 위한 장식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 저녁 메뉴는 한우 양념갈비다.


갈비

그녀는 아이에게 동화책 세 권을 읽어 주고 불을 끈 뒤 자장가를 불러 주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그녀를 깨운 건 그의 전화였다. 그는 오늘 저녁 식사로 양념갈비를 먹겠다고 했다. 갈비는 물론 그가 사올 것이다. 그녀는 갈비와 함께 먹을 반찬을 준비해야 한다.
예민하고 잠투정이 심한 아이라 언제 또 깨어나 그녀를 찾을지 알 수 없다. 아이가 자고 있는 방문을 닫고 부엌으로 나온다. 저녁 열 시가 지난 시간이지만 지금부터 저녁 식사 준비를 해야 한다. 퇴근 후 집에 와서 그녀가 만든 햄치즈샌드위치와 우유를 먹고 스포츠 센터로 간 그는 열 시 반경에야 집으로 돌아와 본격적인 저녁 식사를 한다. 그녀는 매일 두 번 저녁 식사를 차리고 설거지를 한다. 아이와 자신이 먹을 간단한 상을 보고 그가 먹을 저녁 식탁에는 고기와 생선, 볶음이나 찌개 따위를 준비한다.
그녀는 아이와 함께 호박과 두부를 넣고 끓인 된장찌개 하나만으로 저녁을 먹었다. 저녁 식사 후에는 아이에게 포도 한 송이를 주고 자신은 푸른색 사과 한 알을 먹었다. 설거지는 간단했다. 두 사람이 먹은 밥그릇과 숟가락, 젓가락. 남은 찌개는 가스불에 한 번 끓였다가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내일 아침 식사로 아이에게 한 번 더 줄 수 있다. 그녀는 흠집이 생겨서 싸게 파는 사과나 토마토, 복숭아를 믹서에 넣고 갈아서 주스를 만들어 아침 식사로 먹는다. 아이가 늦잠 자고 일어나 아침밥 먹을 시간이 없거나 밥맛이 없다고 할 때는 아이에게도 과일 주스를 만들어 먹이고 유치원에 보낸다. 그녀는 아침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그보다 한 시간 먼저 일어난다.
냉장고를 열고 양상추와 오이, 양파를 꺼낸다. 양상추는 손으로 찢고 오이는 반으로 잘라 어슷썰기를 하고 양파는 얇게 채 썬 뒤 접시에 담아 소스를 끼얹는다. 배추김치와 열무김치를 접시에 담고 풋고추와 마늘도 준비한다. 그가 양념갈비나 등심을 먹는 날은 저녁 준비가 한결 수월하다.
그녀는 벨 소리가 나기도 전에 먼저 현관문을 연다. 그가 현관문 앞에 도착할 시간을 그녀는 정확하게 알아맞힐 수 있다. 그녀는 아파트 주차장 쪽으로 난 부엌 창을 통해 그의 감청색 무쏘가 눈부신 조명을 내쏘며 단지 안으로 들어오는 걸 볼 수 있다. 부엌 창으로 고개를 내빼지 않고도 공중에 쏘아 올리는 조명탄 터지는 듯한 소리만으로 그의 귀가를 알아챌 수 있다. 그는 한겨울에 아파트 안에서 미리 자동차에 시동을 걸기 위해 자동 시동 장치를 달았지만, 이제 한여름에도 자동차에 올라타기 전이나 내릴 때면 키와 함께 열쇠고리에 매달린 자주색 시동 장치의 단추를 눌러 댄다.
그는 수영복과 세면도구가 담긴 가방과 갈비와 야채가 든 비닐봉지를 양손에 나눠 들고 들어온다. 그녀는 세면도구가 든 가방을 받아 욕실에 두고 비닐봉지를 들고 부엌으로 간다. 속이 깊은 도자기 냄비에 갈비와 국물을 넉넉히 붓고 가스불을 켠다. 팽이버섯은 밑동을 잘라 낸다. 버섯은 물기가 닿지 않아야 맛이 좋다. 고기가 익기 시작할 때쯤 냄비 뚜껑을 열고 갈비 위에 팽이버섯을 얹는다. 상추와 깻잎, 치커리, 청경채를 씻어 물기를 털고 접시에 담는다. 그녀가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그는 식탁 의자에 앉아 있다. 그는 식탁 의자에 앉아 신문 따위를 읽지 않는다. 식탁은 그에게 음식을 먹는 장소 이외의 다른 용도로 사용되지 않는다. 반찬을 나르고 마지막으로 갈비가 든 냄비를 식탁 위에 올려놓자 그는 오른손으로 쥐고 있던 젓가락을 번쩍 치켜들고 양념이 된 짐승의 살을 거침없이 입에 집어넣는다.
그는 아주 맛있게, 열심히 갈비를 먹고 있다. 그녀는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고기를 먹지 않는다. 그녀가 우연히 책을 통해 알게 된 한 채식주의자는 아침 식사로는 자신이 직접 재배한 과일이나 과일 주스를, 점심 식사는 수프와 곡류를, 저녁 식사는 과일과 야채로 만든 샐러드만을 먹고 백 살까지 건강하게 살다가 스스로 곡기를 끊고 죽었다. 그 사람은 자신이 먹을 과일과 야채를 직접 농사지었다. 고기와 알과 젖을 얻기 위해 가축을 기르지 않았고 죽은 짐승의 고기와 가축에게서 나온 알과 젖을 먹지 않았다. 그가 먹은 채소와 과일, 곡류와 딱딱한 열매, 땅콩과 올리브, 여러 씨앗 속에는 단백질과 지방 등 인간이 섭취해야 할 영양소가 풍부하게 들어 있었다. 그 사람은 담배와 알코올, 커피와 빵조차 입에 대지 않고 일주일에 하루는 금식을 해 위장을 쉬게 했다고 한다. 의사라는 사람은 병에 대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것을 알지만 건강에 대해서는 자신을 찾아온 환자만큼도 아는 게 없다고 말할 정도로 그는 건강하게 살다가 죽었다. 그 사람은 가축의 살을 먹지 않았을 뿐 아니라 가축을 기르지도 않았고 착취하지도 않았다. 날마다 죽은 짐승의 살을 요리하는 그녀는 항상 이 부분이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처럼 명치에 걸린다.
그가 먹을 저녁 메뉴에는 고기와 생선이 절대 빠질 수 없다. 그녀는 매일 저녁 갈비나 등심을 굽고 삼겹살로 제육볶음을 만들고 매운탕을 끓이고 장어를 굽는다. 그녀가 저녁 식사 준비에서 자유로운 날은 그가 혼자서 외식을 하러 가는 일요일 저녁 식사뿐이다.
오래전 그녀는 그를 따라 갈빗집에 간 적이 있다. 탁자와 바닥은 불에 지글지글 익으면서 함부로 튄 갈비 기름으로 반들거리고, 실내에 가득 찬 뿌연 연기와 냄새 때문에 그녀는 눈조차 뜰 수 없었다. 강당처럼 넓은 갈빗집 안은 손님들로 꽉 차고, 사람들은 고기와 술을 주문할 때마다 악을 쓰듯 큰 소리로 종업원을 불렀다. 소음과 냄새 때문에 그녀는 마주 앉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옷과 얼굴과 팔에 튄 기름을 물수건으로 닦으면서 빨리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가 갈비를 모두 먹어 치울 때까지, 그녀는 인내심을 가지고 불에서 익어 가는 짐승의 살 냄새를 참고 견뎌야만 했다.
그는 먼저 갈비의 살을 야무지게 발라 먹고 국물까지 깨끗이 먹어 치운다. 샐러드와 야채는 풍경처럼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녀는 서둘러 갈비 그릇을 치우고 뼈들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는다. 젖은 행주로 식탁을 닦고 2인용 돌솥 뚜껑을 연다. 밥공기에 뜸이 잘 든 쌀밥을 가득 담아 식탁 위에 가져다 놓는다. 그는 한여름에도 김이 펄펄 나는 뜨거운 밥을 먹어야 한다. 밥을 먹은 뒤에는 누룽지도 그의 몫이다. 갈비와 밥과 누룽지까지 먹고 난 뒤 그는 비로소 만족한 얼굴이 되어 의자에서 일어난다. 그녀는 김치와 야채를 냉장고에 넣고 설거지를 시작한다. 그녀는 날마다 그가 먹은 식기와 조리기구들을 커다란 들통에 넣고 오랫동안 삶는다. 칼과 도마와 행주를 끓는 물에서 건져 놓고 개수대를 꼼꼼히 소독한다.
욕실에서 양치질을 하고 나온 그는 방으로 들어가 잠옷으로 갈아입고 곧장 침대 위로 올라가 길게 다리를 뻗고 눕는다.
「고단한 하루였어.」
그녀가 설거지를 끝냈을 때 그는 이미 잠들어 있다. 그녀는 식탁과 침실 등을 끄고 아이가 자고 있는 방으로 건너간다.


돼지고기와 토마토

탁상시계가 울자 그녀는 꼼지락거리지 않고 곧장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나가 2인분의 쌀을 꺼내 물에 담가 놓는다. 쌀이 불려지는 동안 얼굴을 씻고 양치질을 한 뒤 잠옷을 벗고 헐렁한 고무줄 치마와 셔츠로 갈아입는다. 냉장고 야채 칸에서 콩나물이 든 비닐봉지를 꺼내 채반 위에 쏟아 놓는다. 껍질을 골라내고 물에 헹군 콩나물을 냄비에 담고 물을 부어 가스레인지 위에 올린 다음 재빨리 물에 불린 쌀을 씻어 돌솥에 안치고 가스불을 켠다. 얼굴을 씻고 양치질하고 옷을 갈아입고 콩나물을 다듬어 냄비에 담는 데 걸린 시간은 정확히 10분이다. 쌀은 반드시 10분만 담가야 한다. 불린 쌀이 가장 맛 좋은 밥이 되려면 정확히 시간을 지켜야 한다. 부엌에 있는 전기밥솥은 그를 위해 밥을 짓지 않는다. 그가 먹을 아침과 저녁밥은 언제나 정확히 10분 동안 물에 불린 쌀로 돌솥에 지어야 한다.
밥과 국이 끓는 동안 손질해 둔 더덕을 얇게 저며 여러 군데 칼집을 내고 고추장과 설탕, 참기름, 깨, 물엿, 다진 마늘을 넣고 양념장을 만들어 놓는다. 달궈진 프라이팬에 쿠킹 호일을 깔고 칼집을 낸 더덕을 얹어 양념장을 바른다. 더덕이 눌거나 타지 않게 뒤집으면서 양념장을 골고루 바른다. 콩나물이 한소끔 끓기 시작하자 냄비 뚜껑을 열어 다진 마늘과 파를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한다. 콩나물은 설익으면 비린내가 나고 너무 오래 끓으면 물러져서 아삭아삭한 맛이 없어진다. 콩나물국을 끓일 때 그녀는 항상 긴장한다. 콩나물이 덜 익거나 너무 푹 삶아지는 것 사이의 경계는 지나치게 짧다. 더덕구이를 접시에 담고 쿠킹 호일을 벗겨 낸 프라이팬에 기름을 칠해 놓는다. 밥이 뜸 드는 동안 달걀 두 개를 반숙하고 식탁 위로 반찬을 나른다.
그가 먹을 밥과 콩나물국, 더덕구이와 달걀 프라이, 김치와 젓갈과 장조림을 식탁 위에 차려 놓고 그녀는 자신이 먹을 주스를 만든다. 토마토는 잘 익어서 푸른 빛깔이 보이지 않는다. 믹서에 생수를 조금 붓고 네 등분 낸 토마토를 집어넣는다. 그녀가 유리컵에 토마토 주스를 따라 마실 때 그는 세수를 하고 욕실에서 나온다. 잠에서 깬 지 10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그는 왕성한 식욕으로 음식들을 집어삼킨다. 그가 남긴 누룽지는 그녀의 점심 식사가 될 것이다. 식사 후 그는 천천히 와이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매고 양복을 입는다. 밥 두 그릇, 국 한 그릇, 더덕구이 한 접시, 장조림, 달걀 프라이 두 개를 먹어 치우고 집을 나서는 그의 얼굴은 마치 빈속에 우유나 주스 한 잔만 마신 듯 허전하고 아쉬운 표정이다. 그가 밖으로 나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것을 본 그녀는 아이가 자고 있는 방으로 들어간다. 아이는 아직 자고 있다. 아이를 깨우지 않고 부엌으로 돌아와 설거지를 한다. 아이가 일어나면 먹을 수 있게 토마토 한 개를 냉장고에서 꺼내 씻어 놓는다.
그녀는 유치원 버스가 아파트의 경비실 앞에 도착할 시간이 10분쯤 남았을 때에야 아이를 깨워 옷을 입히고 얼굴을 씻긴다. 아이는 현관에 선 채 주스를 마신다. 그녀는 아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자 천천히 베란다로 간다. 유치원 버스가 오는 길목에는 노란 옷에 노란 모자를 쓰고 노란 가방을 멘 아이들과 엄마로 보이는 여자들이 서 있다. 그녀는 아침마다 베란다에 서서 아이가 유치원 버스를 타는 모습만 확인할 뿐 유치원 버스를 타는 곳까지 나가지는 않는다.
그와 아이가 집에 없는 오전 아홉 시부터 오후 두 시까지 그녀는 자유다. 집을 떠나 있을 수 있는 시간은 하루 중 오직 다섯 시간뿐이다. 아이가 유치원에 입학한 지 여덟 달이 지났지만 그녀는 하루의 다섯 시간을 예전과 똑같이 집에서 보낸다. 그녀는 아이가 유치원에 가기 때문에 자유롭고, 자유로운 시간 동안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다. 아이가 유치원에 입학한 후에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녀는 아이를 출산하기 전까지 초등학교 교사였다. 임신과 출산으로 비교적 불이익을 덜 받는 직업 중 하나가 교직이다. 그녀는 운이 나쁜 경우였다. 임신 말기에 임신중독증으로 더 이상 학교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휴직 신청서를 내고 아이를 낳았지만, 다시 학교로 갈 수 없었다. 몸의 회복이 느렸고, 엄청나게 늘어난 몸무게 때문에 출산 후에 치료를 받아야 할 지경이었다. 갑자기 찾아온 거식증 때문에 음식을 만들 때마다 구토를 했고 아이는 아침부터 오후까지 동네 놀이방에 맡겨졌다.
관절들은 서서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감당하기에는 무리였다. 복직을 포기하고 물리 치료와 정신과 치료를 함께 받았다.
이젠 치료를 받지 않지만 학교에서 받아 주지 않았다. 아이가 유치원에 입학한 뒤에 무슨 일이든 다시 시작하겠다고 생각했다. 정성 들여 이력서를 썼지만, 그녀는 여러 개의 이력서를 작성하면서 차츰 깨닫기 시작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사실을. 그녀는 어떤 일이든 하기 위해 자신의 전공과는 상관없는 곳에도 이력서를 냈다. 연락은 단 한 곳에서도 오지 않았다.

그녀는 비디오 덱에 테이프를 넣고 재생 버튼을 누른다. 거실 바닥에 요를 깔고 길게 눕는다. 텔레비전 화면 속에는 잿빛 승복을 입은 승려가 매트리스 위에 누워 있다. 승려의 움직임에 따라 천천히 다리와 팔을 움직여 본다. 다리를 조금 벌리고 길게 뻗는다. 두 손은 깍지를 껴 머리 밑에 넣는다. 발가락을 붙이고 발등을 곧게 뻗는다. 하나와 둘 동작은 발가락을 펴 위로 올리고 셋과 넷 동작은 아래로 뻗는다. 승려가 이르는 대로 호흡을 따라 한다. 누워서 자전거 타기를 한다. 승려의 동작은 단순히 자전거 타기가 아니다. 발가락과 발등을 곧게 펴고 호흡을 맞춰야 한다. 그녀는 다리를 벌리고 엎드린 자세로 두 팔을 90도 각도로 벌린다. 왼쪽 팔다리와 가슴을 오른쪽으로 젖히면서 숨을 내쉬고 제자리로 돌아오면서 숨을 들이마신다. 항상 이 동작에서 호흡이 막혀 애를 먹는다.
비디오 속의 승려를 따라 몇 가지 선(禪) 체조를 하다 말고 그녀는 요 위에 누워 움직이지 않는다. 간단한 동작 몇 가지를 따라 했을 뿐인데도 장거리를 뛰고 결승점에 도달한 마라톤 선수처럼 숨이 가쁘고 관절들은 삐걱거린다.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방으로 간다. 오늘 외출을 해야 한다. 아래층에 살고 있는 501호 여자를 따라가 교육을 받기로 약속했다. 501호 여자는 아이들 책과 학습지를 만드는 출판사 영업 사원이다. 여자는 사흘 동안 하루에 세 시간씩 시간을 내 강의를 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강의 내용은 자사에서 출간되는 전집과 학습지 소개라고 들었다. 사흘 동안 빠지지 않고 강의를 듣는 사람에게는 몇 가지 기념품과 그 출판사에서 발간되는 동화책을 할인해서 살 수 있는 혜택을 준다고 했다.
장롱을 열고서 그녀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는다. 몸을 끼워 넣을 만한 옷이 눈에 띄지 않는다. 장롱 서랍 속에 차곡차곡 개켜져 있는 바지들은 입어 볼 엄두도 내지 못한다. 아이를 낳고 그녀의 몸은 20킬로그램이나 불어났다. 남편의 와이셔츠와 함께 걸어 놓은 블라우스로 손을 뻗는다. 입고 있던 고무줄 치마와 셔츠를 벗고 심호흡을 한 번 한 뒤 블라우스를 입는다. 예상했던 것처럼 블라우스는 어깨에서 걸려 입을 수가 없다. 장롱 문을 닫아 버리고 브래지어와 팬티만 걸친 채 침대에 걸터앉는다. 트고 갈라진 뱃살 아래로 뻗어 있는 두 개의 다리는 거대한 공룡의 다리통을 연상시킨다. 젖가슴을 제외하고 발가락과 손가락까지 그녀의 몸은 이스트를 넣고 구워 낸 빵처럼 부풀어 있다. 아이를 낳은 뒤 탱탱하던 가슴은 탄력을 잃고 늘어져 버렸고 체격에 비해 빈약한 편이던 가슴은 이제 몸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어깨, 팔, 배, 엉덩이, 허벅지, 종아리, 발목, 손가락, 발가락에 붙어 덜렁거리는 살덩어리는 임신 중에 먹은 돼지고기가 몸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채 남아 있는 흔적이었다. 고기를 입에 대지 못하던 그녀는 어느 날 미친 듯이 돼지의 살을 먹어 댔다. 일주일 만에 체중이 5킬로그램이나 늘어났다. 몸속에 아이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녀는 이미 임신 중반으로 보일 만큼 배가 부르고 얼굴과 가슴은 동글동글해져 있었다. 그녀는 아침에 출근할 때 가방 안에 햄과 치즈가 들어간 샌드위치를 서너 개씩 담아 갔다. 1교시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이 화장실에 가거나 복도에서 놀고 있는 사이에 샌드위치를 꺼내 먹었다. 점심시간에 학교 교직원 식당에서 밥을 먹지 않고 교문 밖에 있는 고깃집으로 갔다. 혼자서 3인분의 삼겹살을 먹고 다시 학교로 들어가 화장실에서 오랫동안 양치질을 했다.
그녀는 반 아이들이 숙제를 해오지 않아도 야단치지 않았고, 수시로 자율 학습을 시키고 수업 중에도 자주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방학이 되자 집 안에서 꼼짝하지 않고 그가 밤늦게 사 들고 오는 돼지고기를 기다렸다. 그와 달리 그녀는 여러 종류의 고기를 먹지 않았다. 불에 구운 돼지 삼겹살과 통마늘 하나만으로 충분했다. 늦은 저녁을 먹고 잠든 뒤에도 종종 새벽에 깨어 창문을 열고 환풍기를 돌려 가면서 돼지고기를 구웠다. 걸레질을 할 때 몸을 굽힐 수 없게 되었고 발톱도 혼자 깎을 수 없었지만 그는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날마다 돼지고기를 사다 주었다.
그녀는 몸을 뒤척일 때마다 침대 매트리스가 삐걱거리는 게 불편해 바닥에 요를 깔고 따로 잤다. 뱃속에 있는 아이는 태동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얌전히 자라고 있었고 학교는 개학을 했지만 더 이상 일을 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외출복으로 고무줄 넣은 헐렁한 치마와 엉덩이 밑으로 내려오는 남방을 입고 느릿느릿 머리를 빗는다.


광어

그는 중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뷔페 식당 직원들은 특별한 날이 아니면 자신들이 일하는 곳에서 식사를 한다. 사실 뷔페 식당에선 수십 가지 음식을 만들지만 언제나 똑같은 메뉴라 그처럼 매일 식사를 하는 사람들은 진력이 날 수밖에 없다. 점심 식사로 먹은 탕수육은 뷔페 식당에도 있는 음식이다. 뷔페 식당 주방장은 솜씨 있는 사람이지만 중식부에서 먹는 탕수육과는 맛에서 확실한 차이가 난다.
그가 처음 뷔페 식당 지배인으로 왔을 때, 주방장과 직원들이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로 한 끼 식사로 많은 양의 음식을 먹었다. 먼저 죽으로 식사를 시작하는데 전복죽이나 잣죽을 죽 그릇에 가득 퍼서 세 번을 먹는다. 그다음 생선회와 갈비, 잡채, 탕수육을 먹고 난 뒤 김치와 밑반찬과 함께 쌀밥을 먹는다. 손님들은 평균 세 번 접시를 들고 음식을 담아 간다. 사람에 따라 그 양이 다르지만 뷔페 식당으로 식사를 하러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음식을 많이 먹지 않고 반드시 일정량을 남기는 습관이 있다. 그가 한 끼로 먹는 음식은 성인 남자 세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양이다.
그는 이제 뷔페 식당 음식을 많이, 즐겨 먹지 않는다. 직원들은 손님이 가장 많이 몰리는 시간을 피해 주방에서 식사한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한식부나 중식부, 일식부로 옮겨 다니면서 식사를 한다.
퇴근 시간은 일정하다. 호텔 객실부는 3교대로 근무하지만 전산부, 홍보부, 총무부 직원 들은 일반 직장처럼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을 한다. 식음료부 직원은 호텔 손님들의 식사와 서비스 때문에 2교대로 근무하지만, 호텔 총지배인과 매니저들의 출퇴근 시간은 항상 같다.
그는 음식을 만드는 주방으로 들어가 음식 재료를 체크한다. 주방은 늘 분주하다. 이른 아침에 배달된 재료들을 다듬고 손질해서 수십 가지의 음식을 만들어 내야 한다. 늘 비슷한 메뉴이지만 주방장의 그날 컨디션이나 재료의 상태에 따라 음식의 맛은 큰 차이가 난다. 주방장은 생선을 손질하고 있다. 주방장의 손에서 종잇장처럼 얇게 저며지고 있는 놈은 언뜻 보기에 광어처럼 생겼지만 도다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도다리는 죽은 지 벌써 몇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다. 그는 커다란 나무도마 위에서 펄쩍펄쩍 살아 움직이는 광어를 즉석에서 회 떠 먹고 싶다.
그는 매주 회 센터에 간다. 그가 수족관 안의 물고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가슴에서부터 발목까지 내려오는 두꺼운 고무 앞치마를 두른 주인 남자는 수족관 안에 있는 광어나 민어, 도다리, 놀래미, 우럭 따위를 커다란 뜰채로 건져서 곧바로 회를 뜬다. 그것들은, 마른행주로 물기를 닦고 회칼로 살점을 저며 내고 있는데도 나무도마 위에서 마지막 신경줄이 끊어질 때까지 꿈틀거린다.
그는 오늘 저녁 식사로 광어회를 먹을 생각이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은 뒤 체육관에서 러닝 머신을 30분쯤 타다가 사이클을 20분 타고 10분 동안은 역기나 몇 가지 기구를 이용해 몸을 풀 생각이다. 회 센터가 문을 닫기 전에 도착하려면 서둘러야 한다.


잡채

그녀는 501호를 따라 강의를 들으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슈퍼마켓에 들렀다. 동네 슈퍼마켓이라 규모는 작지만 야채와 과일, 생선, 고기 등 식료품을 빠짐없이 갖추고 있어 그녀가 단골로 드나드는 곳이다.
아이가 집에 오는 시간에 맞추려면 서둘러야 한다. 당면과 시금치, 당근, 양파, 부추, 느타리버섯을 조금씩 산다. 오늘 아이와 먹을 저녁 메뉴는 잡채다. 그녀는 종종 잡채를 만들어 아이와 나누어 먹고 남은 것은 냉동실에 얼려 놓았다가 2, 3일 뒤에 한 번 더 먹는다. 그녀와 아이가 먹는 것 중에서 만드는 데 시간이 가장 오래 걸리고 여러 가지 재료가 들어가는 음식은 잡채다. 최소한의 기름으로 볶고 무친 야채는 고기를 먹지 않는 아이를 위해 만드는 특별 음식이다. 젖병을 떼고 아이가 밥을 먹기 시작했을 때 그녀는 아이와 먹을 음식 목록에서 육식을 제외시켰다. 아이가 사용하는 식기들은 날마다 소독하고, 집 안에 밴 고기 냄새를 없애기 위해 그녀는 늘 창을 열어 놓고 환풍기를 돌렸다. 그가 식사를 할 때 아이는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거나 먼저 잠이 든 뒤였다. 아이가 육식의 맛을 알기 전에 그녀는 아이와 함께 뉴잉글랜드의 버몬트 숲으로 떠나고 싶었다. 그녀가 알고 있는 채식주의자는 이미 죽었고 채식주의자의 동반자 역시 세상을 떠났지만, 그곳에 가면 그들처럼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두 손에 야채가 담긴 비닐봉지를 들고 서둘러 아파트 현관 앞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노란색 유치원 가방을 메고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는 아이를 발견했다. 아이는 그녀를 보지 못한 듯했다. 미처 소리쳐 부를 틈도 없이 엘리베이터 문이 닫혀 버렸다. 아이가 탄 엘리베이터가 다시 1층으로 내려올 때까지 불이 들어온 숫자판을 올려다보며 천천히 심호흡을 한다.
아이는 잔뜩 화가 나 있다. 현관문 밖에서 벨을 누르고 그녀가 나오기를 기다리던 아이는 발로 현관문을 차며 엄마를 부른다. 아이는 제 엄마가 집 안에서 나오지 않고 자신이 타고 올라온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는 걸 보고 놀라 어리둥절해하다가 화를 낸다. 아이에게 엄마는 늘 현관문 안에 있는 존재였다. 엄마가 밖으로 나가는 일은 음식물 쓰레기나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뿐이다. 그때 역시 아이는 엄마와 함께 있었다. 엄마가 혼자, 자기가 없는 사이에 어디론가 나갔었다는 사실이 아이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언젠가 아이를 데리고 공중 목욕탕에 간 적이 있었다. 일요일이면 그가 아이를 데리고 목욕탕에 다녔다. 그녀는 오래전부터 공중 목욕탕에 가지 않았다. 아이가 아빠와 함께 목욕탕에 가면 그녀는 현관에서 그들을 배웅했고 돌아올 때도 현관에서 맞았다. 처음으로 그녀를 따라 공중 목욕탕에 간 아이는 표를 사가지고 들어가 탈의실에서 옷을 벗을 때까지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 여기는 아빠 목욕탕인데. 엄마, 목욕탕은 아빠만 가는 곳이야. 아빠 목욕탕이라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들릴 만큼 커다란 목소리로 말하는 아이에게 그녀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서둘러 탕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녀는 아이가 비디오를 보는 동안 음식을 만든다. 당면은 두 시간 동안 물에 불려 놓았다. 당근과 양파는 채를 썰고 올리브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에 볶는다. 시금치와 느타리버섯은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찬물에 헹구고 물기를 꽉 짠 뒤 파, 마늘, 깨, 참기름, 소금으로 양념한다. 물에 불린 당면은 끓는 물에 3분 동안 삶고 물기를 뺀 뒤 프라이팬에 올리브 기름을 두르고 충분히 볶는다. 커다란 프라이팬에 당근, 양파, 당면을 넣고 조리용 긴 젓가락으로 섞으면서 간장을 넣는다. 당면이 갈색으로 변하면 참기름과 설탕을 넣고 골고루 섞는다. 시금치와 버섯은 간을 맞춘 뒤에 넣고 마지막에 아이의 새끼손가락 길이만큼 자른 부추를 얹고 살짝 볶는다. 볶아 둔 깨는 먹기 직전에 뿌리면 된다.
아이와 식탁에 마주 앉았을 때 양복을 벗고 운동복을 입은 그가 저녁 식사로 광어회와 매운탕을 먹겠다고 말했다. 그는 식탁에 놓인 잡채를 외면하고 샌드위치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그녀는 서둘러 식빵을 토스터에 넣고 햄과 치즈, 달걀을 요리한다. 그는 샌드위치 두 개와 우유 한 컵을 마시고 체육관으로 갔다.
그녀와 아이는 느릿느릿 식사를 한다. 아이는 접시에 담긴 잡채를 반도 못 먹고 의자에 앉은 채 끄덕끄덕 졸고 있다. 졸고 있는 아이를 일으켜 양치질을 시키고 방으로 데려다 준다. 아이는 동화책을 읽어 달라는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잠이 든다. 그녀는 다시 식탁으로 돌아와 잡채 한 접시와 밥 반 공기를 오랫동안 천천히 씹어 먹는다. 입으로 잡채를 삼키면서 눈은 자신의 동그랗게 부푼 배와 살점이 덜렁거리는 허벅지와 뭉툭한 종아리를 보고 있다. 잡채를 씹어 삼키는 것은 입이 아니라 그녀의 허벅지와 종아리와 배다.


매운탕

단골인 그에게 회 센터 사내는 붕장어와 멍게를 덤으로 준다. 그는 오늘 쇼핑센터에 가지 않는다. 어제 산 야채만으로 회는 충분히 먹을 수 있다. 집으로 돌아가 그녀가 매운탕을 끓이는 동안 그는 광어회를 먹으면 된다. 그녀는 회를 먹지 않는다. 회뿐 아니라 육식은 일절 먹지 않는다. 채식만을 고집하는 그녀가 미친 듯이 돼지고기를 먹어 댄 것은 임신 10개월 동안이었다. 그녀가 얼마나 몰입해서 돼지고기를 먹었던지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는 침대에 누워 있는 그녀에게 미역국 대신 고깃집에서 포장해 온 제육볶음을 가져다주었다. 제육볶음을 본 그녀는 퉁퉁 부은 얼굴을 심하게 일그러뜨리며 화장실로 가버렸다. 퇴원해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고기는커녕 미역국조차 입에 대지 않았다.
어떤 재료든 그녀의 손만 닿으면 맛 좋고 보기 좋은 요리로 완성된다. 그녀는 뷔페 식당 주방장이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한 손맛을 가지고 있다. 그는 그녀가 만들어 주는 추어탕과 장어구이, 아귀탕과 아귀찜, 제육볶음, 돈가스를 좋아한다. 어떤 음식이든 재료만 있으면 척척 만들어 내는 그녀이지만, 그가 좋아하는 보신탕만은 질색을 한다. 어쩌면 그녀는 개고기 알레르기가 있는지도 모른다.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진다. 그는 광어회와 매운탕거리가 든 비닐봉지를 들고 주차장에서 아파트 입구까지 뛰어간다.
식탁 위에는 된장, 초고추장, 간장과 겨자를 담은 종지들, 상추와 깻잎을 담은 접시, 풋고추와 마늘을 담은 접시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그가 마른 수건으로 젖은 머리칼을 닦고 식탁 의자에 앉자 그녀는 회가 담긴 접시를 식탁 중앙에 놓는다. 그는 젓가락을 들어 얇게 저며진 광어회를 집어 겨자를 푼 간장에 살짝 찍어 입에 넣는다. 그는 회나 고기를 먹을 때 술을 곁들이는 치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흔히 사람들은 술이 회나 고기의 맛을 돋워 준다고 말하지만, 그가 보기에 그들은 회나 고기의 맛을 위해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술을 먹기 위해 안줏거리로 회와 고기를 먹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철저한 미식가다. 고기와 생선의 참맛을 알려면 알코올 따위는 입에 대지 말아야 한다.
그가 광어회와 붕장어, 멍게까지 먹고 나자 그녀는 채 썰어 놓은 무만 남은 회 접시를 치우고 그 자리에 매운탕 냄비를 올려놓는다. 매운탕 냄비는 식탁 위에서도 금방 식지 않는다. 그는 먼저 쑥갓과 미나리를 접시에 덜어 겨자가 섞인 간장에 찍어 먹고 나서 마늘과 고춧가루가 듬뿍 들어간 국물은 밥과 함께 먹는다.
그가 식사를 하는 동안 그녀는 어질러진 조리대를 치운다. 그와 그녀가 마주 앉아 식사하는 날은 일요일 점심이 고작이다. 일요일 점심 식사 때도 서로 다른 메뉴를 놓고 밥을 먹는다. 대개 그녀는 여러 가지 야채를 넣고 끓인 된장찌개나 김치찌개, 간단한 국으로 식사를 한다. 이제 그는 그녀의 식사 습관에 대해 간섭하거나 충고를 늘어놓지 않는다. 그는 일요일 저녁이면 새로운 음식을 먹기 위해 자신의 차를 몰고 꽤 먼 곳까지 나간다.
그는 그녀와 함께 외식을 하지 않는다. 언젠가 그녀와 갈비를 먹으러 간 적이 있다. 갈빗집은 주말은 물론 평일 오후에도 손님들로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고기맛이 좋기로 소문난 집이었다. 그 갈빗집을 찾아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갈빗집을 돌아다녔는지 그녀는 알지 못했다. 갈비의 양념맛이 독특했고 고기는 부드럽고 싱싱했다. 그가 양념갈비 4인분을 주문해서 다 먹어 치울 때까지 그녀는 샐러드와 김치를 조금 먹었을 뿐이었다. 그는 최고의 양념갈비를 앞에 두고 김치 따위만 먹고 있는 그녀에게 참을 수 없는 분노와 미움을 느꼈다.
그가 차를 몰고 밖으로 나가서 먹는 음식은 대개 개고기나 오리고기, 붕어 같은 민물고기 종류다. 개고기는 탕이나 전골 또는 수육으로, 오리는 로스구이와 진흙구이로, 민물고기는 찜과 매운탕으로 다양하게 먹는다. 그는 어느 곳에 가면 양념맛이 독특한 장어구이와 추어탕을 먹을 수 있는지 꼼꼼하게 메모해 두었다.
그는 매운탕 냄비 속에서 광어 몸통을 꺼내 접시에 놓고 뼈에 붙은 살점을 발라 먹는다. 광어회와 붕장어와 멍게가 담긴 접시에는 한 점의 살도 남아 있지 않다. 그녀는 2인용 돌솥 뚜껑을 열고 김이 나는 쌀밥을 밥공기 가득 퍼 담고 있다. 밥이 적당히 눌은 솥 안에 생수를 붓고 가스불을 켠 뒤 식탁 위로 밥을 가져다 놓는다. 그는 기름지고 뜨거운 쌀밥을 숟가락으로 퍼서 입에 넣다가 문득 앞에 서 있는 그녀를 본다. 그녀를 안았던 날이 언제였는지 까마득해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녀의 벗은 몸은 좀처럼 볼 기회가 없다. 그가 일요일 오후에 만나 함께 외식을 하고 모텔에 가는 여자의 몸은 그녀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그녀와 자주 섹스를 하지 않는 까닭은 냉소적인 몸 때문이다. 그는 오랜 시간 다양한 체위로 섹스하는 스타일이지만 그녀는 단순하고 짧은 섹스를 원한다. 식사를 끝내고 그는 칼로리가 많이 소모되는 섹스를 할 생각이다. 오늘 평소보다 좀 지나치게 많은 양을 먹었다. 위장을 편안하게 해주려면 디저트가 필요하다.
그는 평소처럼 식사를 끝내고 양치질을 한 뒤 곧장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녀의 주위를 서성인다. 그녀는 설거지를 한 뒤 그릇과 행주와 도마를 소독하고 식탁 등을 끈다. 그녀는 요리는 잘하지만 지나치게 동작이 굼뜨다. 욕실에 들어간 그녀가 나오자 그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거실 등을 끄고 침실의 붉은 등을 켰다.


디저트

욕실에서 나왔을 때 그녀는 자신의 벗은 몸보다 거실 등을 끄는 그를 보고 더 놀랐다. 그가 불을 끄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그가 침실의 붉은 등을 켜자 그녀는 속으로 낮게 숨을 내쉬었다. 그와의 섹스는 그녀를 불편하고 피곤하게 한다.
그는 옷을 벗고 침대 끝에 앉는다. 그녀는 벗은 몸을 감추기 위해 헐렁한 박스 티셔츠를 입고 침실 전등을 끈다. 섹스할 때 그는 환하게 불을 켜놓고 싶어한다. 그녀는 붉은 등조차 한사코 끄길 바란다. 그녀는 침대 위에 얌전히 눕는다. 그의 몸은 기계 체조 선수처럼 날렵하게 움직인다. 그녀는 그가 요구하는 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다. 그가 동작을 바꿀 때마다 그녀는 출렁거리는 자신의 뱃살 때문에 멀미가 날 지경이다. 다행히 방 안이 어두워서 그녀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그는 좀처럼 끝낼 것 같지 않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을 때까지 그는 동작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침대에 가랑이를 벌리고 누운 그녀는 그가 헤엄치는 실내 수영장 풀이거나 러닝 머신이거나 사이클이거나 역기나 배구공일 뿐이다. 그가 멈출 때까지 그녀는 묵묵히 무겁게 실린 몸을 버티고 있어야 한다.
땀으로 뒤범벅이 된 그가 그녀의 몸에서 떨어져 나간다. 그녀는 천천히 일어나 욕실로 가서 오래 샤워를 한다. 그녀가 마른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밖으로 나왔을 때 그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낮게 코까지 골며 잠들어 있다.


미꾸라지

그녀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두 손을 깍지 껴 머리에 대고 어깨를 편다. 숨을 들이마시면서 오른쪽으로 깍지 낀 팔을 최대한 당기면서 고개는 반대쪽으로 튼다.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면서 고개를 정면으로 되돌린다. 이번에는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틀고 숨을 내쉰다.
그녀는 녹화 테이프를 끄고 부엌으로 간다. 개수대 안에는 설거지할 그릇들이 쌓여 있다. 아침 식사로 그녀는 포도 한 송이를, 아이는 요구르트를 넣어 만든 사과 주스를, 그는 쇠고기무국과 장조림, 갈치조림을 먹었다. 기름기가 남아 있는 접시들을 종이타월로 닦고 수세미에 세제를 묻혀서 꼼꼼히 설거지한다.
설거지를 끝내고 501호를 따라 동화책과 학습지를 만드는 출판사에 강의를 들으러 가야 한다. 오늘이 사흘째 되는 날이다. 그녀는 강의를 들으러 가는 일이 즐겁다. 강의 자체는 새롭거나 재미있지 않다. 그저 하루 중 다섯 시간을 밖에서 보낼 수 있다는 게 그녀를 들뜨게 한다. 내일부터 외출할 일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벌써부터 마음이 답답해진다. 501호는 집에만 박혀 있는 그녀에게 백화점 문화 센터에라도 나가 보라고 했다. 오늘 강의가 끝나면 집에서 가까운 백화점에 갈 생각이다.
그녀는 501호가 다니는 출판사에서 기념품으로 준 동화책 두 권과 코팅 처리가 된 세계 지도를 옆구리에 끼고 백화점 쇼윈도 앞에 서 있다. '대 바겐세일'이라고 적힌 커다란 현수막이 나붙은 백화점 건물 앞에는 수영복, 민소매 티셔츠와 반바지, 모시 이불, 물놀이 기구 따위를 쌓아 놓고 파는 좌판이 펼쳐져 있다. 좌판 앞에는 백화점 직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핸드마이크를 입에 대고 손님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그녀는 북적대는 인파를 뚫고 백화점 정문으로 들어간다. 고무줄 넣은 긴 치마와 반팔 셔츠를 입은 그녀는 어깨에 핸드백을 메고 동화책과 세계 지도를 옆구리에 끼고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을 연방 손수건으로 닦는다. 백화점 1층 역시 걸을 때마다 쇼핑하는 사람들의 어깨가 서로 닿을 정도로 혼잡하다. 사람들의 숲을 지나 엘리베이터 앞에 선 그녀는 벽에 붙은 광고 포스터에 시선이 붙들렸다. '조화로운 몸을 찾아 떠나는 여행'.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안에 있던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떠밀리듯 밖으로 나오고 그녀는 자동 인형처럼 사람들 속에 섞여 엘리베이터 속으로 밀려 들어간다. 뾰족한 하이힐 굽이 그녀의 뭉툭한 운동화를 밟았고 누군가 어깨를 치는 바람에 동화책 한 권이 바닥에 떨어진다. 엘리베이터 구석으로 몰린 그녀의 몸은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납작하게 눌리고 옆구리에 끼고 있던 세계 지도는 볼품없이 찌그러지고 만다. 그녀는 '조하로운 몸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찾기 위해 8층에서 내린다. 문화 센터와 식당이 있는 그곳은 비교적 한산하다. 중식, 일식, 한식과 이태리 음식까지 골고루 갖춘 식당가를 기웃거리고 문화 센터 안으로 들어가지만 '조화로운 몸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없다. 그녀는 문화 센터의 강의가 아니면 여행사에서 내건 패키지 여행 상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여행사를 찾기 위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7층으로 내려간다. 7층은 가구와 가전제품이, 6층은 그릇과 침구가, 5층은 어린이 의류와 장난감이 가득 차 있을 뿐 여행사는 보이지 않는다. 4층과 3층과 2층까지 인내심을 갖고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조화로운 몸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찾아다닌다. 운동화를 신은 두 다리는 후들거리고 이마와 목덜미와 등은 땀으로 흠뻑 젖는다. 언제 떨어뜨렸는지 옆구리에 끼고 있던 세계 지도는 보이지 않는다.
이제 그녀는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을 것 같다. 팔다리의 관절들은 어디든 앉아서 쉴 것을 요구한다. 마땅히 앉을 만한 장소를 찾지 못한 그녀는 백화점 비상 계단이 있는 곳을 두리번거린다. '조화로운 몸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찾는 걸 단념했을 때 비로소 그녀의 눈앞에 '조화로운 몸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 보였다. 그건 백화점 문화 센터의 교양 강좌도 아니고 여행사에서 내건 패키지 여행도 아니었다. 매장 2층 구석진 자리 한쪽에 서 있던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비틀거리는 그녀에게 다가왔다. 부작용이 전혀 없고 단기간에 몸무게를 감량시킬 수 있는 한방 다이어트 식품인데요, 고객님한테 꼭 필요할 것 같네요. 일주일 동안만 저희 백화점에서 특별 세일가로 판매하니까 이번 기회에 이용하시고 효과 보세요. 절대 후회 안 하실 거예요. 그녀는 얼결에 백화점 직원의 손을 붙잡으면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때 귓가에 낯익은 소리가 들려온다.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고개를 돌리고 두리번거린다. 여성복을 파는 2층 매장 바닥에 맥없이 주저앉아 정체를 알지 못하는 소리를 찾아 귀를 연다. 쇼핑을 하던 여자들이 그녀를 힐끔거린다. 한낮 백화점 여성복 매장에서 들리는 소리는 그녀가 날마다 질리도록 들어야 하는 소리와 다르지 않다. 그것은 그가 공중에 쏘아 올린 자동차 무선 시동 장치의 소리이거나, 그녀가 매일 아침 과일을 갈아 먹는 믹서의 소음이거나, 가스불 위에서 쇠고기나 돼지고기가 익을 때 나는 소리이거나 생선 매운탕 끓는 소리이기도 했다.
그녀는 몸을 추스르고 일어나 지하 식품 매장으로 내려간다. 손님들로 빽빽한 과일 코너와 정육 코너 앞을 뚫고 수산물이 있는 곳을 향해 미끄러지듯 걸어가는 그녀의 몸은 한 마리 날쌘 미꾸라지처럼 보인다. 그녀는 백화점 식품 매장에서 구할 수 없으면 수산 시장에라도 나가 싱싱한 미꾸라지를 살 생각이다. 냉장고에는 산초 가루와 삶아 놓은 우거지가 남아 있다. 추어탕은 된장을 풀고 삶은 우거지를 넣고 끓이다가 믹서에 간 미꾸라지를 넣고 다시 끓인 뒤 다진 마늘과 생강을 듬뿍 넣어야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그가 이미 오늘 저녁 메뉴를 정했다면 오늘 저녁은 특별한 만찬이 될 것이다.




서성란1967년 익산에서 태어남. 1996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장편소설 [모두 다 사라지지 않는 달]과 소설집 [방에 관한 기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