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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김사인
30년, 하는 제 소리에 놀라
까까머리는 꿈에서 깨어난다
교련복을 챙기고 도시락을 싸고
서둘러야 할 시간
웬 생시같은 꿈!
서울로 어디로 떠나 대학생 되는 꿈 술 담배 배우고 여자도 배우는 꿈 자취로 하숙으로 돌다가 군대 3년 푹 썩는 꿈 눈매 고운 여자 얻어 장가드는 꿈 그 여자와 집 장만하는 꿈 그 여자와 아이 낳는 꿈 아이 자라는 꿈 직장생활 여의치 않는 꿈 뒤늦게 승진하는 꿈 주식으로 한 몫 잡는 꿈 다시 꼬라박는 꿈 도망치는 꿈 우는 꿈 부모님 한 분 먼저 가시는 꿈 남은 분 모시는 일로 집안 뒤집히는 꿈 아이들 때문에 차마 갈라는 못 서는 꿈 집 넓히는 꿈 승용차 커지는 꿈 접대에 골프에 정신 없는 꿈 명퇴 하는 꿈 고교 졸업 30년 안내장 받는 꿈 '내라는 돈이 뭐 이렇게 많대요' 마누라 잔소리 듣는 꿈 30년, 하고 중얼거리며 차가운 거울 앞에 서면 헐거운 머리칼 너머 거울 저편,
수 1의 정석과 정통종합영어를 우겨넣은 가방을 끼고
발갛게 상기된 앳된 그가 달려간다
가까스로 지각을 면하고 교실로 들어가는
까까머리 그의 새벽 꿈자리가
기뻤는지 슬펐는지
쉬 알 길은 없다.
꿈인 듯 생시인 듯
30년, 하고 가만히 말해보면
궂은 저녁의 쓰디쓴 소주 한 잔과 뉘우침의 냄새가 나는 듯하다
명치 끝 어디선가 매운 은단냄새가 올라오는 듯도 하다,
김사인충북 보은 출생, 1982년 동인지 <시와 경제>의 동인으로 참여하여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밤에 쓰는 편지]가 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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