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지역 파견작가 오수연 회원이 보내온 두번째 기고문




이상한 날씨다. 진작 왔어야 할 봄은 안 오고 줄기차게 차가운 비가 내린다. 봄비가 아니다. 팔레스타인은 겨울이 우기이므로 이 비는 연장된 겨울비인 셈이다. 그리고 기온은 오히려 점점 내려가고 있다. 어떤 이들은 세상이 뒤숭숭하니까 계절마저 뒤집혔다고 말한다. 웨스트 뱅크의 대도시 나블루스는 무거운 구름 아래 반쯤 파괴된 채로 가라앉아 있다.
웬만큼 큰 건물은 철근과 벽돌 더미의 잔해로 변했고, 주거 지역조차 이가 빠진 것처럼 함몰되어 있다. 나블루스는 나지막한 산줄기에 둘러싸인 지형인데, 산꼭대기에 있는 이스라엘 부대가 수시로 포격을 해서 이렇게 폐허가 되었다. 왜 그들이 전투 상황도 아닌 평상시에, 하물며 민간시설을 공격했느냐고? 묻지 말라, 이스라엘의 안보에 관계된 비밀이다.
차들은 큰길을 두고 변두리의 비포장 길로 우회해 다닌다. 주요 도로는 이스라엘 군대에 봉쇄되었다. 그들은 예고 따위는 없이 걸핏하면 도시의 도로망과 지도를 바꾼다. 이유는 늘 똑같다. 보안사항이다. M-16을 메고 거리에서 설치는 이스라엘 군인들은, 내게 숨이 틀어 막히는 것 같은 답답한 그러나 익숙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70년대에 우리나라가 바로 이랬다. 불심검문, 통행금지, 긴급체포. 그러나 같은 민족끼리 그러는 것도 아니고 압제자가 타민족이므로, 지금 팔레스타인의 상황을 비유하려면 나는 좀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일제시대에 조선이 이랬을 것 같다. 일본인 순경이 칼 차고 나타나면 조선인들이 긴장했듯이, 이스라엘 군인들이 출몰하면 팔레스타인인들의 일상이 정지된다.
이스라엘 군인들의 접근을 알 수 있는 확실한 지표는 시장이다. 시장이 북적거리면 그들이 멀리 있다는 뜻이고, 노점상이 사라지면 그들이 가까워졌고, 상점들이 문을 닫고 길이 한산해지면 그들이 부근에 와 있다고 보면 된다. 피하라. 이스라엘 병사들의 손가락은 언제라도 총알을 발사할 수 있게끔 노리쇠에 걸려 있고, 팔레스타인인은 신분증인 그린카드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 자리에서 사살당할 수도 있다.
나블루스로 들고나는 모든 길목에는 이스라엘의 감시초소가 있다. 밧티바 지역의 감시초소는 황무지 한 가운데에 철책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여기를 피해 돌아가지 못하도록 이스라엘 군인들이 산과 들판에 총을 난사하므로 팔레스타인인들은 초소를 통과하는 수밖에 없다. 계속해서 내린 비로 진흙탕이 된 길 양쪽에 팔레스타인 장정들과 어린애를 거느린 여자들이 갈라서서 진눈깨비 섞인 빗줄기를 맞고 있다. 이 대열과 앞에 보이는 초소 사이의 빈 공간, 오십 미터쯤의 거리는 이스라엘의 힘과 팔레스타인의 공포가 만들어낸 좁혀질 수 없는 간격이다.
이스라엘 초병들은 세 시간 동안이나 아무도 통과시키지 않았다. 언제 통과시키겠다는 기약조차 없다. 비나 바람을 가릴 천장도 벽도, 다리를 쉴 의자도, 몸을 녹일 난로도, 따뜻한 차나 물 한 모금도, 화장실조차 없이 팔레스타인인들은 마냥 서서 기다려야 한다. 이렇게 선 채로 열두 시간 이상을 기다리게 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어제는 저쪽 편에서 길을 막아 일하러 나올 수가 없었고, 오늘은 이쪽에서 막아 집에 갈 수가 없다. 우리는 하루 중에 일하는 시간보다 초소 앞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길다. 며칠 전에는 이스라엘 군인들이 팔레스타인인들 사십 명을 네 시간 동안이나 벽을 향해 꿇어 앉혀 놓았다.”　
우리 일행이 도착하자 팔레스타인인들은 열심히 상황을 설명하며 기대를 품는 표정을 지었다. 외국인들이 왔으므로 이스라엘 군인들이 초소를 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횡포가 국제 사회에 알려지는 걸 원하지 않으므로 외국인들을 약간 의식한다.
"저들은 외국인들이 나타나지 않는 한 절대로 꼼짝 안 한다. 가라, 가서 초소를 열라고 말해 달라."　
앰뷸런스에 타고 있던 병원 직원은 창문을 내리고 우리에게 부탁했다. 그들은 초소 너머 데일샤람 마을의 임산부가 이상을 느끼고 약국에 갔다가 출혈을 일으켰다는 다급한 전화를 받고 왔건만, 여기에서 막혀 반시간 넘게 서 있노라고 했다. 그 사이에 임산부가 유산했다는 전화가 왔다. 앰뷸런스는 초소 앞에서 기다리다가 이제는 임산부를 돕는 게 아니라 아기를 잃은 여인을 살리는 임무로 바뀌었다.
우리 일행은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위협적인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 두 명만 초소에 접근하고 나머지는 뒤에 남아 사진을 찍거나 기록을 남기기로 했다. 선발대 두 명은 무기가 없다는 표시로 두 손을 벌리고 내딛는 발뒤꿈치를 뒷발의 앞에 대는 조심스런 걸음걸이로 초소로 다가갔다.
“왜 시민들을 통과시키지 않는가?”
“저쪽에 있는 이스라엘 정착촌을 방어하기 위한 조치다. 당신들이야말로 남의 나라에 와서 무슨 참견이냐?”
뻔한 질문과 응답이 반복된 끝에 이스라엘 군인들은 대단한 아량을 베푸는 듯이 초소를 열었다. 앰뷸런스가 제일 먼저 출발했으나, 초소 앞에서 탑승자들이 모두 내려 검문을 받고 차 안을 수색 당하느라 또 시간을 끌었다. 다음 차례는 유엔 난민구호 차량이다. 그들도 몽땅 차에서 내려 그린카드를 제시하고 트렁크를 열어 보였다. 유엔 직원일지언정 팔레스타인인 한 이스라엘 군인들은 특별 대접을 하지 않는다.
이스라엘 병사의 손짓에 따라 여인들 몇 명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며 초소로 걸어갔다. 팔레스타인은 여성의 순결을 강조하는 무슬림 문화권이므로, 이스라엘은 그걸 역이용해서 여성들을 희롱함으로써 팔레스타인 남자들의 자존심을 짓밟는다. 여자의 가방을 열어 생리대를 꺼내 자기들끼리 던지며 놀다가 바닥에 팽개쳐 버리는 일도 흔하다. 다행히 그날 초소의 병사들은 그토록 악랄하지는 않았지만, 빙글거리며 쓸데없는 질문으로 모욕감을 주었다. 그러나 치욕을 참는 여인들의 태도는 경탄스럽다. 귀를 닫고 마음을 닫고, 눈은 뜨고 있으나 눈빛은 안으로 향해, 그들은 자기 자신과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번에는 이스라엘 병사가 남자들더러 손짓을 했다. 나? 나? 앞줄에 선 남자들이 서로 자신을 가리키며 자기더러 오라는 말이냐고 묻는다. 이스라엘 병사가 고개를 끄덕이고 남자들 네 명이 출발한다. 멈춘다. 이스라엘 병사가 손바닥을 치켜들었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무리와 초소 사이의 텅 빈 길 위에서 남자들은 어쩔 줄을 모른다. 이스라엘 병사가 손가락 하나를 까딱한다. 네 명 중의 한 명이 뒤돌아서서 무리로 돌아온다.
“이 모든 게 이스라엘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건 거짓말이다. 저들의 목적은 우리를 모욕하고 괴롭혀서 기를 꺾으려는 것이다. 저들은 폭발물을 검사한다고 우리를 몇 시간이나 잡아놨다가는 가방도 열어보지 않은 채 돌려보내기도 한다. 무기 제작소라고 엉뚱한 공장을 폭격해놓고는 공장주는 심문하지도 않는다. 아무런 혐의 없이도 우리를 6개월 동안 감옥에 가두고, 그래도 풀어줄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죄목을 만들어 6개월 더 감옥살이를 시킨다. 우리는 그날 만날 이스라엘 군인이나 판사가 아침잠에서 깼을 때 기분이 좋기만을 빌 뿐이다. 저들에게는 원칙이 없다. 우리들의 목숨과 일상이 자기들 손끝 하나에 달려 있음을 보여주겠다는 의지만 있다.”　
팔레스타인 젊은이 후세인은 쓰디쓴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의 검은 곱슬머리는 비에 젖어 짙은 눈썹 위에 착 달라붙어 있다. 아까부터 내 머리 속에는 한 가지 의문이 맴돌았다. 설령 이스라엘이 안전을 위해서 이런다고 쳐도 과연 이게 효과적일까? 사람을 하루 종일 진흙 구덩이에 세워 놓고 무얼 바라는 걸까? 이스라엘은 안전을 명분으로 안전에 가장 나쁜 방법을 쓰고 있다. 팔레스타인인들로 하여금 피정복자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고 살 수 없게끔 만드는, 지속적인 학대와 자극.
며칠 뒤에 우리가 후알라 지역의 감시 초소에 갔을 때 상황은 더 나빠졌다. 이스라엘 병사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이 겉옷을 벌려 보이게 하고 야채 보따리까지 풀어 헤치며, 어디 가느냐, 왜 가느냐, 증명서를 보여라는 둥 깐깐한 질문을 던지면서 개인당 몇 분씩 시간을 끌었다. 그리고 적지 않은 사람들의 통과를 불허하여 되돌려 보냈다. 특히 이 지역은 인근의 대도시 라말라와 통하는 길목이라 팔레스타인인들은 끊임없이 몰려드는데, 초소를 통과하는 사람은 간간이 한 명씩이니 극심한 병목현상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이스라엘 군인들은 외국인인 우리 일행의 요구도 묵살했다. 이 며칠 동안 그들이 왜 이렇게 딱딱해졌는가?
“이유? 그런 게 있을 리 있나? 며칠 전에는 그럼 그들이 우리를 검문할 이유가 있었나?”　
대학생 함만은 라말라에 있는 종합병원에 검진을 받으러 가려고 아침에 초소에 왔다가 의사의 확인서를 받아오라고 퇴짜를 맞았고, 시내로 들어가 의사의 확인서를 받아오니 그 사이에 이스라엘 군인들의 교대조가 바뀌어 또 퇴짜를 맞았다고 했다.
“이게 우리들의 일상이다. 날마다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이 곤욕을 치러야 한다. 그리고 내일은 또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가 없다. 어제까지 있던 버스 터미널이 자고 나면 폐쇄되어 없어지고, 친척이나 친구가 잡혀가고, 이스라엘 초소가 완전히 막혀 직장도 학교도 무한정 문을 닫는 일도 다반사다. 우리는 계획을 세울 수도, 꿈을 가질 수도 없다.”　
교사 핫순은 감시초소를 통과하기가 힘들어서 부모님을 점점 뜸하게 방문하게 되는 게 가장 죄스럽다고 했다.
“내 고향은 바로 저 산 너머다. 그러나 가는데 하루 종일, 오는데 또 하루 종일이 걸리니 큰마음을 먹지 않으면 가지 않게 된다. 이스라엘인들이 원하는 건 바로 이것이다. 우리의 도시와 마을들을 분리하고 단절시킨다. 그리고 고립된 지역들을 서서히 옭죄어 말려 죽인다. 팔레스타인 농부들은 농사를 지어도 시장에 팔러 갈 수가 없으니 시골을 떠나고, 장사꾼들은 팔 물건을 들여올 수가 없어서 상점을 닫고 떠나고, 시민들은 생필품도 없고 일자리가 없어서 떠난다. 그러면 거기에 이스라엘 정착촌이 생긴다.” 　
초소 앞에서 대기하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 웅성거리는 군중이 되었다. 이스라엘 병사는 손을 치켜들어 뒤로 물러나라고 경고했다. 그들의 권위의 공간, 초소 앞 오십 미터 안으로 팔레스타인들이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줄에 선 사람들은 뒤로 물러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한다. 답답해서 분통 터진 뒷사람들이 밀어대기 때문에, 그리고 어린애들과 짐이 많아서 움직이려도 움직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병사는 오른쪽 어깨에서 총을 내려 왼손으로 총신을 받쳐 들고, 군중을 향해 총을 조준했다.
네 시간을 기다린 끝에 겨우 초소를 통과하면서 우리는 그 병사에게 그런 짓을 하면서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다. 그는 단 한 마디로 대답했다. “끔찍하다.” 눈 마주치기를 피했던 그 병사가 개인적으로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나는 아직도 잘 판단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가 끔찍하다고 느끼면서도 팔레스타인 군중에게 총을 들이대었듯이, 팔레스타인인도 죄책감을 느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간인들에게 테러를 하게 되지 않을까. 감시초소 앞에서 네 시간을 서 있으면서, 나는 나라도 도저히 이대로 참고 살지는 못할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 스스로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을 양산해내고 있는 셈이다.
감시, 봉쇄, 파괴, 고문, 암살 등 팔레스타인에서 저지르는 모든 만행에 대해 이스라엘은 한결같이 자신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댄다. 그러나 그들의 안전은 방어적인 개념이 아니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잠식과 침략을 그들은 자신들의 안전이라고 부른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맺어진 1967년 제네바 협약은, 점령국이 점령지를 식민지로 만들 목적으로 시민들을 이주시키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지도에 폭탄 자국처럼 찍혀 암세포마냥 증식하는 이스라엘 정착촌은 국제법상 불법이다. 정착촌이 불법이므로, 감시초소를 비롯해서 정착촌을 지키기 위한 이스라엘의 모든 군사 활동도 불법이다. 그들은 팔레스타인 땅에서 안전을 도모할 권리가 없다.
이스라엘인들은 늘 홀로코스트를 얘기하지만, 히틀러한테 매우 잘 배워서 지금 팔레스타인에서 똑같은 짓을 하고 있다. 2차대전 때 유대인들이 달아야 했던 다윗의 별과 지금 팔레스타인인들이 강요당하는 그린카드가 뭐가 다른가. 감시초소에 에워싸인 이곳이 유대인 게토와 무엇이 다른가?　
미국인 아타페는 자기가 낸 세금이 이 따위 짓에 쓰인다는 데 경악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해마다 30억 달러를 이스라엘에 지원하고 있으며, 올해는 특별히 100억 달러를 늘려서 130억 달러를 지원했다. 유럽의 도시를 옮겨놓은 듯이 번듯한 그 많은 이스라엘 정착촌들과 헤아릴 수도 없는 감시초소는, 그런 막대한 지원이 없다면 생길 수도 유지될 수도 없다. 팔레스타인인들이 대적해야 할 상대는 고작해야 스무 살인, 회의를 품고 있을지도 모르는 이스라엘 병사들만이 아니다. 그 이상이다. 최첨단 무기로 무장된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하는 이스라엘 군대 뒤에는, 세계를 주무르는 수퍼 파워가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인들은 팔레스타인이 해방되는 날 인류의 모든 문제가 풀릴 것이라고 말한다.(나블루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