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편집자 주] 미국의 이라크 침략 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이라크로 떠난 오수연 회원이 보내온 기고문을 연재합니다. 작가회의가 공식적으로 파견한 첫 종군작가인 오수연 회원은 4월 17일 현재 현재 요르단과 팔레스타인 점령지를 거쳐 이라크로 들어갑니다. 지금까지 보내 온 메일과 전화로 미루어 작가의 건강상태는 매우 양호합니다. 또한 출국 초기에 비해 현지 적응도 꽤 훌륭하게 해내 지금은 활동에 탄력이 붙었습니다. 오수연 회원의 기고문을 아래에 전재합니다. 많은 관심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이라크가 미국의 폭격에 불타는 동안 사해(死海) 건너 팔레스타인은 바짝 얼어붙었다. 마구간에서 태어난 예수 덕분에 관광지로 유명했던 베들레헴도 인적이 끊겨 유령의 도시 같다. 대부분의 상점들은 철문을 굳게 닫았고, 사람들은 집 안에 들어앉아 숨을 죽이고 있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이라크의 미사일 오발이나 중동 전체를 오염시킬 생화학전이 아니다. 단지 이스라엘이다. 요리사 갓산반누라(23세)는 이스라엘이 조만간 팔레스타인으로 밀고 들어올 것이라고 말한다.
“이스라엘은 우리에게 두 가지 선택을 주었다. 하나는 우리가 태어난 땅에 살다가 살해당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죽기 싫으면 떠나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를 죽이거나 쫓아내고 이스라엘 정착촌을 만든다. 그리고 그린 라인(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경계선)을 다시 그으면 그만이다. 그게 그들의 방식이다. 이라크 전쟁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려 있는 이 기회를 이스라엘은 놓치지 않을 것이다.”
미국과 이라크가 주거니 받거니 하는 사이 이스라엘은 이미 두 달 전에 팔레스타인 자치구에 속한 베들레헴에 군대를 주둔시켰으며, 가자와 웨스트 뱅크 난민촌을 불도저로 파괴하고 있다. 미국인 평화 운동가 레이첼 코리는 이를 막으려다가 희생당했다. 그러나 코리의 죽음은 잠깐이나마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을지언정, 바로 다음날 같은 지역에서 난민촌 철거라는 동일한 사건으로 아홉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죽은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날마다 평균 다섯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가자 지역에서 죽고 있다. 그 중 한 명만 이스라엘에 대항해서 총을 든 무장 세력이고, 나머지 네 명은 이스라엘 군인들의 감시초소를 통과하다가 총에 맞아 죽거나, 초소가 막혀 병원에 가지 못해서 앰블런스 안에서 죽거나, 무너지는 집에 깔려서 죽은 민간인들이다. 그 중 두 명은 열두 살 미만의 어린이들이다. 이스라엘이 우리를 죽이기 위해서는 전쟁을 선포할 필요조차 없다. 왜냐하면 어떤 나라도 안 된다고 말하지 않고,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기 때문이다. 예루살렘과 가까운데다 관광지이기 때문에 매우 서구화됐음에도 불구하고, 베들레헴의 빈 벽마다 자살 폭탄 테러를 감행했거나 시도하다가 죽은 사람들을 영웅으로 묘사한 포스터가 붙어 있다. 이곳 주민들은 대부분의 자살 폭탄 사건이 이스라엘의 조작이라고 생각한다. 한 청년은 자기 친구가 64발의 총알을 맞고 죽었는데, 이스라엘 측이 친구가 이스라엘 관공서에 폭탄과 함께 뛰어들었다고 주장하는 그 시간에 그가 침대에서 자고 있는 걸 자신이 직접 보았다고 했다.
“나중에 전화를 받고 관공서로 시체를 확인하러 가니 내 친구의 몸은 창턱에 기대 있고 머리는 목에서 끊겨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나는 엎어져 있는 머리통을 뒤집어 얼굴을 보았다. 내 친구였다. 그러나 나는 울 수가 없었다. 내가 눈물을 흘리면 친구와 공범이라는 혐의로 체포될 것이고, 반 년 뒤에 나올지 몇 년이 걸리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것 때문에 나는 이스라엘이 진정으로 밉다. 그들은 우리가 인간이게 놔두지 않는다.”
사실이든 조작이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살 폭탄 테러를 죄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 큰 보복만 부르기 때문에 테러리즘에 반대한다는 후삼(19세)도, 제 또래의 젊은이들이 폭탄이라도 안고 돌진하고 싶어하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다.
“우리야말로 평화를 원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경제도 땅도 아니고 다른 나라 젊은이들처럼 젊음을 즐기는 정상적인 삶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게 불가능하다. 늘 등 뒤에서 총알이 날아오거나 길거리에서 몽둥이로 얻어터지고 끌려갈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떤다. 지금의 평화는 평화가 아니다. 이스라엘에게는 안전이고 점령이며, 우리에게는 학살이고 추방인 게 평화인가? 사담 후세인이 독재자라는 걸 우리도 안다. 우리가 후세인을 좋아하는 단 한 가지 이유는 그가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미국에 대항하는 유일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의 비폭력 저항운동을 돕는 국제적 조직 '국제 연대 운동'(International Solidarity Movement)의 베들레헴 본부에서 일하는 갓산 안도니 씨는 미국과 후세인의 충돌은 팔레스타인 문제의 잘못된 해결에서 파생된 또 다른 잘못일 뿐이라고 말했다.
“애초에 후세인을 길러낸 것도, 지금 그를 아랍의 영웅으로 만들고 있는 것도 미국이다. 후세인은 아랍이 박해받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인물이며, 아랍 박해의 핵심은 팔레스타인이다.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에 짓밟히는 한 후세인을 제거한다고 아랍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이라크 전쟁 전후로 이스라엘은 우리 땅에 들어와 불법적인 만행을 수없이 저지르고 있다. 우리가 고립되었고 자기들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테러리즘은 좌절에서 나온다. 우리가 좌절하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봐 달라.”
불 꺼진 베들레헴에 이스라엘 경비 초소의 불빛만 빤히 빛나고 있다. 아기 예수조차 겁먹을 듯한 정적이다.<베들레헴에서.>

처음 게시판 올린 날 2003년 3월 24일(금)- 작가의 눈/ 4월 18일(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