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2일 밤 서울 광화문 서울광장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조금 늦게 도착했다. 종로를 거쳐 남대문까지 갔다는 시위대가 덕수궁 앞을 지나 서울광장에 도착하고 있었다. 오후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쏟아지던 폭우 때문에 조금 걱정이 된 터였다.

그러나 그건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곧 깨달았다. 그 비에도 촛불을 꺼트리지 않은 채 우의를 나눠 입고 우산을 받쳐 든 사람들이 끝도 없이 내 앞을 지나 서울광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하긴 그 전날 새벽 물대포와 폭력적인 진압에도 꺼지지 않은 촛불이었다. 주변에서 나처럼 늦게 도착한 사람들까지 속속 모여들고 있었다. 족히 3000명은 되어 보였다. 비에 젖고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들이 든 촛불 앞에서 눈빛만은 유월숲처럼 생기 가득한 모습이었다.

▲ 서울 광화문 촛불문화제 현장 ⓒ이치열 기자 truth710@

빗속에서도 꺼지지 않던 촛불

미쇠고기협상 장관 고시의 관보 게재가 유보되었다는 뉴스가 들렸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정부와 여당이 한 달 넘게 계속되어온 촛불시위를 금방 끄면 꺼질 ‘급한 불’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건 큰 오산이다. 재협상은 당연한 것이고 재협상을 넘어 이들은 이 정부의 정책 전반에 대해 정부가 귀를 열고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한 보궐 선거장에서 시민이 폭행당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대운하는 강행하겠다고 했다가 보류하겠다고 했다가 다시 강행하겠단다. 정말 정부와 여당은 이 거대하게 반짝이는 이 촛불들을 ‘급한 불’이라고밖에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전날 밤에도 나는 광화문 거리에 있었다. 그날 새벽 여자 후배가 하나가 물대포에 맞고 온몸이 욱신거려 집에 있다는 소식을 접한 뒤 나는 바로 거리로 향했다. 이런 저런 일 때문에 촛불집회에 나오지 않는 날은 오히려 더 괴롭다는 사실을 요 며칠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많은 인터넷 언론매체들과 개인들이 촛불시위를 생중계하는 화면과 속속 올라오는 기사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은 그리로 달려가지 못해 안달이 나고 행여 폭력적인 진압장면이라도 눈에 띄면 발을 동동 구르고 눈물을 흘리느라 밤을 꼴딱 새우기 일쑤였으니 말이다.

그래도 이제 더 이상 거리에 있는 것이 외롭지 않다는 사실은 참 다행한 일이다. 인터넷 생중계를 수백만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은 적어도 그들이 이 거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알고 있다는 것이니 말이다. 예전 같았으면 단신기사로나 가볍게 처리했거나 아예 기사를 내보지도 않았을 언론사들이 이제는 이 촛불집회를 대서특필하고 심지어 방송사들은 속보를 내보내기까지 했다. 많은 젊음들이 분신을 해가며까지 민주주의를 외쳤던 1990년대 초반 단번에 그들을 ‘주사파’라고 매도해버린 일을 지금도 나는 생생히 기억한다. 그러나 지금 이 거리에서 그런 일 따위는 상상할 수도 없음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사실 언론을 움직인 것은 국민이다. 이번 광우병 쇠고기 파문만 봐도 그것은 확연하게 드러난다. 인터넷에 기사가 올라오면 바로 댓글을 달아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그 댓글 토론들 사이에서 자신의 생각의 균형을 찾아갔던 국민들은 정부가 언론이 제공하지 못한 정보를 검색하고 공유하기까지 이르렀다. 그런 모습이 고스란히 광장으로도 이어진 것이 지금의 촛불집회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거짓말로 일관하는 이 정부가 국민의 논리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국민들은 국민노릇도 하기 힘든 이 나라에서 야당노릇에 더해 심지어 언론 노릇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전날 밤 나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한 청년이 울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앳돼 보이는 20대 초반의 청년이 시위 대열 사이에서 서럽게 울고 있었다. 시위대 앞에서 경미한 충돌이 있었던 모양인데 그 쪽으로부터 부축되어 온 그는 그 자리에 주저앉은 채 주변 사람들의 위로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울음을 그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울분을 삭이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까지 국민들이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도 폭력으로 짓밟고 나 몰라라 뒷짐만 지고 있는 이 강고한 권력 앞에서 그는 상처받고 절망한 것처럼 보였다. 등이라도 다독여주고 올 걸, 하는 생각이 빗속에서 되살아나고 있었다.

국민이 움직인 언론

2일 밤 촛불집회는 10시가 못 되어 정리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좀처럼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삼삼오오 모여든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광화문 네거리로 옮겨가 신호등을 오가며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운전자들은 거기에 화답이라도 하듯 경적을 울려주었다. 몇몇 사람들은 트래픽 아일랜드에 서서 지나가는 차들에 현수막을 펼쳐들고 있었다. 철수하는 전경버스에도 손을 흔들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전경들도 함께 손을 흔들어 주었다. 트래픽 아일랜드에서 철수하던 전경 하나는 그 사이에 촛불을 들고 서 있던 여성에서 “누나 수고하세요”라고 수줍게 말하기도 했다. 이들 사이에 지난 밤 서럽게 울던 청년이 분명 섞여 있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곧 깨달았을 것이다. 비 오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나는 이미 국민이 승리했다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 김 근 시인은
1973년 전북 고창에서 태어나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1998년 문학동네신인상에 <이월> 외 네 편의 시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뱀소년의 외출》이 있다.

[2008. 6. 5. 미디어 오늘. 시인 김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