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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젊은작가포럼] [산문]박일환/ 제2의 '여명의 황새울' 을 막아야 한다
이름 관리자



제2의 '여명의 황새울' 을 막아야 한다
[황새울에 평화를! 릴레이 기고] 박일환 '결코 내릴 수 없는 평화의 깃발'

2006-07-03 오전 11:45:05


아침에 학교에 출근해서 메일함을 열어보니, '문학집배원 도종환의 시 배달'이라는 제목의 메일이 도착해 있다.

열어보니 김용락 시인의 '단촌국민학교'라는 시를 플래시로 만든 것이다. 시인이 모처럼 어린 시절을 보낸 단촌국민학교에 들러, '콧수건을 접어 훈장처럼 가슴에 달고/ 땡땡땡/ 사변 때 포탄껍질로 만든 쇠종소리에 발도 맞추면서/ 검정고무신에 새끼줄을 동여매고 공차기도 하고/ 달빛과 어우러져/ 측백나무 울타리 밑을 기어 다니며 술래잡기도 하던/ 내 유년의 성터'를 추억하는 내용이다.

시를 읽어가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저절로 평택의 대추분교가 떠올랐다. 김용락 시인은 비록 '20년 만에 서 본 운동장은 텅 비어 쓸쓸하'다고 말하지만, 그래도 밟아볼 운동장이 있고 모처럼 찾아가도 옛 건물이 남아서 반겨주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대추분교를 다녔던 사람들은 앞으로 그런 호사(?)를 느껴 볼 기회 자체가 완전히 사라졌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국가의 무지막지한 폭력에 의해서.

지난 5월 4일. 나는 교무실에서 수업이 빈 시간에 실시간으로 인터넷에 올라오는 대추리 소식을 접하고 있었다. 참혹한 피의 제전이 펼쳐지고 있다는 기사와 관련 사진들을 바라보는 내내 안절부절못하며 슬픔으로 먹먹해 오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애를 써야 했다. 당장이라도 그곳으로 달려가 함께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마음과, 또 한편으론 참여정부와 군사정부가 과연 어떤 점에서 다른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데서 오는 참담함을 곱씹어야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끌려나가고 끝내는 대추분교 건물이 포크레인에 의해 찍혀내리는 장면에서 나는 참여정부가 스스로 자신들을 위해 울리는 조종(弔鐘) 소리를 들었으며, 대추분교의 잔해를 쌓아놓은 시멘트 더미는 바로 참여정부의 봉분(封墳)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선한 권력은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마지막 실낱 같은 기대를 무참히 꺾어버리는 것을 보고 나는 대통령 후보 노무현 씨의 뺨을 타고 내리던 눈물이 실은 악어의 눈물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부안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한 전과가 있는데도, 농민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생목숨을 앗아가고 그로 인해 경찰청장이 옷을 벗어야 했던 기억이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한데도, 여전히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하고 똑같은 짓을 하다니! 얼마나 정당성을 확신하고 있기에 그렇듯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기를 고집하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부안군민들을 이간질시켜 갈가리 찢어놓고, 대추리에서 떠난 사람과 남은 사람 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감정의 골을 만들어놓고, 어찌 동서화합을 이야기하고 국민통합을 들먹인단 말인가! 그야말로 서천 소가 웃고, 지나가던 참새가 물찌똥을 갈길 일이다.

정부 당국의 책임 있는 사람이 나와서 부안군민의 손을 잡고 그분들의 분노를 위로하며 함께 눈물이라도 흘렸다면, 쌀 수입 개방에 항의하는 농민들과 함께 아스팔트에 주저앉아 밤을 새면서라도 그분들의 고통에 귀 기울이고 정부 당국의 입장과 고민이 무엇인지 진솔하게 털어놓고 양해를 구하는 노력이라도 있었다면, 두 번이나 땅을 뺏기고 한겨울에 움막살이를 하며 겨우겨우 갯벌을 메워 농토를 만든 대추리 어르신들에게 엎드려 간청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주었더라면, 최소한 이렇게 속이 타들어가도록 억울하고 가슴 아프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지금 너무 순진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하지만 인간에 대한 예의와 존중이 없는 정치는 정치가 아니라 폭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폐허더미로 변한 대추분교의 모습을 바라보는 일은 쓸쓸하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그 흉물스러운 시멘트 더미 한가운데 누군가 깃발 하나를 꽂아놓았다. 깃대 끝에 가냘프게 매달려 있는 '평화'라고 쓰인 두 글자! 나는 그 사진을 보고 숨이 턱 막히는 걸 느꼈다. 외로이 나부끼는, 외로워서 오히려 찬연히
빛나는 평화! 한바탕 유혈폭력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평화는 그렇게 역설적으로 다가왔다. 우리들의 희망은 비록 여리고 가냘퍼 보이지만, 그래도 결코 내릴 수 없는 '평화'의 깃발처럼 의연하다.

지난 4월 29일에 열린 대추리 현장예술제 마지막 날 밤 행사에서 노순택 씨가 찍은 사진 슬라이드 상영이 있었다. 노순택 씨는 가족과 함께 아예 대추리에 거주하면서 황새울 사진관을 열고 주민들의 사진을 찍어왔다고 한다. 슬라이드 제목이 '울면 미군 오고 웃으면 미군 간다'였는데, 제목에 걸맞게 슬라이드에 담긴 대추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어린애처럼 천진난만한 미소를 보며 나도 모르게 콧날이 시큰했던 기억이 난다. 거대한 국가 권력 앞에서 대추리의 운명은 비록 백척간두에 서 있는 것처럼 위태로웠지만, 그래도 끝까지 낙관의 힘을 믿고자 하는 그 노력이 눈물겨웠기 때문일까? 아니면 하회탈을 닮은 대추리 어르신들의 웃음 띤 얼굴을 얼마나 오래 지켜줄 수 있을까 싶은 마음에서 오는 안타까움 때문이었을까?

이제 곧 대추리 마을의 빈집을 철거하고, 10월쯤에는 남아 있는 주민들마저 모두 내쫓을 계획이라고 한다. 대추분교에 이어 평화예술동산마저 짓뭉개고, 마을 전체를 형체도 없이 지워버리기 위해 지금쯤 열심히 제2의 '여명의 황새울' 작전을 세우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작전 계획이 집행될 때쯤 또 한번 미친 바람이 대추리 마을을 휘감아 돌 것이다. 평생을 농투성이로 살아 온 대추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절규를 무력으로 진압하고 강제로 쫓아내기 위해 죄 없는 전경들을 얼마나 몰아세울 것인가? 생각만 해도 아찔할 정도로 현기증이 인다.

대추리의 평화는 지켜져야 한다. 누가 뭐래도 대추리는 대추리 주민들의 것이고, 그분들의 동의 없이는 한 뼘의 땅도 빼앗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평화는 칼과 친하고 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쟁기와 친하고 보습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대추리에서 죽을 때까지 농사짓고 그 땅에 뼈를 묻겠다는
분들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 그것이 바로 평화인 까닭이다. 그 가까운 평화의 길을 놔두고, 어찌 미국의 대외 침략을 위한 전초기지로 사용하라고 목숨 같은 땅을 내줄 수 있단 말인가?

대추리를 지키기 위해 오늘도 누군가 평화의 깃발을 들고 논길을 걷고 있을 것이다. 그 논길의 대열에 선 당신의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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