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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젊은작가포럼] [산문]손세실리아/ 나는 비겁했다
이름 관리자



나는 비겁했다
[황새울에 평화를! 릴레이 기고] 손세실리아 '슬픈 격문'

2006-06-02 오전 11:28:52


마지막 조문객

지난 5월 18일, 아버님께서 여든여덟의 일기를 끝으로 영면에 드셨다. 저녁 진지 잘 잡수시고 TV 뉴스까지 시청하신 다음 잠자리에 드셨다가 새벽녘 생을 접으신 것이다.

시낭송 녹음 일정이 잡혀 있던 터라 관계기관에 전화를 걸어 여의치 않은 상황에 대해 간단한 통화를 마쳤을 뿐 지인들에게 일일이 부음을 알릴 경황도 없이 고향 정읍으로 향했다. 저마다 꿈꾸지만 또한 저마다 이루기 힘든 죽음을 맞이하셨으니 축복이라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해보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바닥없는 슬픔은 마른 눈물로 쩍쩍 갈라질 뿐 그다지 위안이 되진 않았다. 일산 집에서 빈소가 차려진 정읍아산병원까지 세 시간 반, 그 길이 여느 때완 달리 멀고도 길게 느껴졌다.

가톨릭 신자인 아내를 좇아 영세를 받으신 아버님의 장례의식은 가톨릭 의식에 따르기로 했다. 가족을 잃고 비통해하는 상주들에게 누를 끼쳐선 안 된다며 음식은커녕 물 한 모금조차 사양하는 성당 신자들의 연도가 하루에도 서너 차례씩 이어졌고 마지막 가시는 길, 배웅하지 못하면 내내 아쉬워 할 친지들에게만 소식을 전했을 뿐, 아버님의 임종 소식을 가능한 외부에 알리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어찌 알았는지 먼 길 한 달음에 달려온 문단 선후배들의 애도가 이어졌다. 한사코 달려온 그들이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애사는커녕 경사조차 챙기지 못하고 살아온 나이지 않던가. 참으로 염치없는 노릇이다.

발인 날 새벽, 마지막 조문객이 도착했다. 작가회의 홈페이지를 통해 뒤늦게 부음 소식을 접했다며 부랴부랴 달려온 선후배들인데 이들은 현재 대추리와 어떤 식으로든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활동 중인 작가들이다.

대추리 문화예술인 마을 조성에 미더운 일꾼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대추리 만인보'를 다음 카페 <황새우울>에 연재하고 있는 서수찬 시인, 대추리가 있는 팽성읍 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작가들의 동참을 간곡히 호소하고 나선 류외향 시인, 그리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대추분교 철거만은 막아야 된다며 맨몸뚱이로 사수하다 군병력의 벽돌에 맞고 방패에 찍혀 이마 깨지고 뒤통수 터진 송경동 시인과 이재웅 소설가가 바로 그들이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공연, '비콘'

황새울 들녘 농수로에 물 대신 콘크리트가 채워지던 날,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두어 달 전, 논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하는 농민들을 보았다. 광목 끈에 목이 감긴 채 질질 끌려가는 반백의 가수를 보았다. 가난한 전업시인의 깨진 안경을 보았다. 평온하기만한 나의 일상으로 밀물처럼 밀려들던 함성... 함성을 들었다. 고통을 주체하지 못해 신음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시를 써야겠구나. 쓸 수밖에 없겠구나.'

생각을 굳히고 있는데 이런 내 마음을 간파하고 있었다는 듯 소설가 이인휘 선배가 전화를 걸어왔다. "대추리 현안에 관한 시..."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안 그래도 쓰려던 참이었어요. 써야지요. 쓸게요." "그래. 잘 됐다. 그럼 29일까지..." "네." 선배가 부탁한 시가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지 물을 필요도, 알 필요도 없었다. 긴박하고 절실한 사안에 대한 우리(문학인)들 끼리의 묵계다. 한 마디 말이면 통한다는 뜻이다.


대추분교 운동장 한켠에 움막처럼 설치된 비닐하우스에서는 매주 토요일 늦은 일곱 시에 비닐하우스 콘서트(약칭, 비콘)가 12주 동안 한 차례도 거르지 않고 이어졌다. 대추리 주민들과 미군기지 확장 토지수용에 반대하는 많은 이들이 먼 길 달려왔다. 실제로 제주, 경상, 전라, 강원, 경기도와 일본에서까지 공연에 참여하거나 참관하러 대추리에 다녀갔다. 대추리에서 나고 자란 가수 정태춘 씨는 신제국주의 미국의 야욕으로부터 한국인으로서의 자존을 지키고 고향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틈틈이 대추리에 내려와 삽자루를 잡았고, 비콘을 진두지휘했다. 그는 말했다.

"비콘은 슬픈 콘서트이지요. 세상의 끝에서 열리는, 가장 고립된 자들을 위한 벼랑 끝 콘서트입니다. 비장할 때 노래가 비로소 노래가 됩니다. 모두 그렇게 공연해주실 것입니다."

미술인, 영화인, 종교인, 문인, 무용가, 가수, 공연연출가, 시민단체, 일반시민, 학생, 대추리 솔부엉이와 막 패기 시작한 보리 이삭... 그리고 대추리에 뼈를 묻고 싶어하는 마을 어르신들께서 촛불 한 자루와 구성진 추임새로 비콘을 끝까지 빛내주셨다. 마지막 무대는 그야말로 한마당 잔치였다. 마을은 오전부터 뜻을 같이한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굿과 노래와 춤과 영상과 사물놀이가 늦은 밤 대추분교를 흥분시켰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축제현장 머리 위로는 군용헬기가 밤하늘을 저공비행하고 있었고, 몇 발짝 밖 마을 초입엔 군병력이 배치되어 있었다. 미군기지가 지척이다. 무대에 올라 자작시 '다시 격문을 쓴다'를 낭송했다. 대추리의 빼어난 서정과 넉넉한 인심을 시로 담아내지 못하고 격문에 담아내야만 했던 착잡한 심정으로 목소리는 바닥에 납작 가라앉았다. 자꾸만 감지되는 불길한 폭풍전야를 외면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어서 난생 처음 격문을 써내려갔던 것이다.

집을 떠나올 때 가방에 여벌의 옷가지를 챙겨 왔으나 사소한 몸싸움도 없었으므로 꺼내 갈아입을 필요가 없어져버렸다. 퍽 다행한 일이다. 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오면서 밤하늘에 소망 하나 내걸었다. '격문'이 필요 없는 평화의 세상이기를.

비겁했던 하루를 돌아보다
술잔 기울이는 선후배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상에 엎드려 토막잠에 빠졌었나 보다. 십여 분 흘렀을까? 누군가의 저음에 잠이 깨어났다. 최근 시집을 낸 경동이다.

"대추리는 대한민국의 현주소입니다. 미국의 강요에 의해 호락호락 대추리를 내주고 나면 끝일 줄 알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한반도 또 어딘가에서 이와 유사한 일이 거듭 되풀이되겠지요. 더더군다나 우리는 글 쓰는 일을 천직으로 삼고 살아가는 작가 아니던가요? 마땅히 싸워야지요. 싸우되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원칙이 있는데, 그건 바로 우리가 써내는 작품도 그만큼 치열해야 한다는 겁니다. 작품성이 전제되지 않는 싸움은 자칫 공허해질 우려가 크거든요. 그건 우리가 이 싸움에 작가로서 뛰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창작에 이전보다 치열히 정진했으면 합니다."

서 선배와 외향이와 재웅이도 저마다 각자의 의견을 내놓았다. 대화는 이후로도 한참을 이어졌고, 나는 그들의 빈 잔에 술을 채우는 것으로 대견하고 미더운 마음을 대신했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고작 시 한 편 썼다뿐 대추리를 위해 힘을 실어준 일이 없기 때문이다. 세 차례 다녀왔다곤 하지만, 정작 급박하고 위급한 상황에는 현장에 없었다. 2006년 5월 4일, 나는 비겁했다. 경동이와 재웅이가 부상으로 평택 모 병원에 각각 입원 치료 중이라는 속보를 접하고도 달려가지 않았다. 여리기만한 외향이가 대추리 투쟁 현장과 병원을 오가며 발 동동 구르고 있을 때에도 나는 열심히 전화질만 해댔다.


"괜찮니? 몇 바늘이나 꿰맸는데? 다른 데 다치지는 않았고? 응. 그래 천만다행이다. 그런데 병원비는? 너도 다치지 않게 조심하고."

그들이 문단에서 만난 내 선후배가 아니라 가족이었대도 그리 했었을까? 큰 부상이 아니라는 한 마디 말로 그렇게 쉽게 마음 놓을 수 있었을까? 혹여, 목소리 듣는 것으로 내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자는 속셈은 아니었을까? 만약 내 피붙이였다면 한달음에 달려갔겠지. 두 눈으로 상태를 직접 확인하고도 미심쩍어 의사를 붙잡고 이것저것 다짐받은 후에야 비로소 마음 놓여했겠지.

황새울 연가戀歌와 연시戀詩를 기다리며

대추리에 가보셨는지. 살림집과 영농창고의 벽
면을 가득 메운 평화의 벽화와 벽시를 보셨는지. 평화와 자유의 깨알 같은 염원을 보셨는지. 외지인을 맞는 살가운 인심을 느끼셨는지. 동네 한 바퀴 느릿느릿 걷다가 삽시에 너울너울 타들어가는 노을과 불현듯 마주쳐보셨는지. 그 주홍빛에 살아온 날들을 가만가만 물들여 보셨는지. 붉고도 붉게 울음 우는 들의 통곡을 들으셨는지. 거기... 내 늙은 부모와 형제와 이웃을 만나보셨는지.

수많은 부상자를 낸 대추분교 철거사태는 대추리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민족 간 비극이다. 우리끼리의 싸움이다. 소모전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싸움을 사주한 미국은 끄떡없다. 코빼기도 안 내비친다. 기지 철책이 지척임에도 불구하고 생존의 위협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우리 군의 엄호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저들은 오늘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mp3를 목에 걸고 나이키 운동화에 핫팬츠 차림으로 조깅을 즐겼을 것이다. 한국 병사가 구워주는 LA 갈비에 캔맥주를 곁들인 만찬을 하며 본국의 애인에게 전화를 걸어 그리움을 호소할 것이다. 하와이에서 보낼 휴가계획이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비행기표를 예매할 것이다. 철책 밖에선 대한민국의 수많은 청년들이... 들것에 실려 병원으로 호송되며 사방이 비명으로 아우성인데... 반미구호가 하늘을 찌르는데... 아예 관심조차 없다.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들녘을 통째로 호락호락 내줘버리고 이 모든 일들을 추억하며 술잔이나 기울이게 될 날이 어쩌면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가까이 와 있는지 모른다. 흔적없이 사라져버린 대추분교처럼 평화로운 마을 대추리도 어느 밤 감쪽같이 철거당할는지 모른다. 벼랑 끝에 선 자의 비장한 심정으로 지금 이 순간, 어느 거리에선가 슬픈 노래를 부르고 있을 대추리 출신 가수를 생각한다. 그의 고향 어르신들을 생각한다. 직파되지 못한 채 영농창고에서 싹이 나고 썩어가는 볍씨를 생각한다. 서해 노을을 생각한다. 솔부엉이를 생각한다. 평화동산을 생각한다... 이곳을 다녀간 가수들의 비가悲歌와 시인들의 슬픈 격문檄文을 생각한다.

내가 내게 묻는다. 국토의 사라진 서정을 기억하며 내 비겁함에 대해 때늦은 참회나 하고 말 것인가? 그대에게 묻는다. 다 빼앗기고 난 후 무심과 수수방관에 대해 두 주먹으로 가슴이나 내려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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