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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팔트 외 1편
-효순이와 미선이의 추모문화제 다녀오는 길에
송 경 동
한 10년 넘게 거리에 있었다
차들이 다니는 도로로 걸어다녔다
어떤 땐 노동이었고
어떤 땐 통일이었다
이 땅에 전투적 민족주의자들이 있다는 것이 그 얼마나 다행인가
이 땅에 전투적 계급주의자들이 있다는 것이 그 얼마나 다행인가
하루도 쉬지 않고 죽어 나가는 사람들
끌려가는 사람들 얻어맞는 사람들
그리하여 나는 진한 사랑 한번 제대로 못해봤지만
하여 나는 고단한 휴식 한번 맛볼 틈이 없었지만
둑이 막아서면 회오리가 되어 얽히고
검은 역류에 밀리면 숨 가픈 자맥질로 쓰러지기도 하며
배웠다. 사랑을
또 누군가가 잊혀진 거리에
다시 실패하기 위해 도도히 서서 흐르는
새로운 사람들의 물결
그 물결 뒷전에서 출렁이는
설움 그리움 노여움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너희도 죽으리라"
저절로 노래가 되어 나오는 반도의 길
분노의 길, 대열이 지나고 난
텅 빈 아스팔트 검은 도로에
말라붙은 껌 한 조각도 차마 돌이켜볼 수 없네
* 인용부분 : 정태춘의 <일어나라 열사여> 중에서
우리는 알고 있다
그 길의 한 포기 풀들도 알고 있다
탱크가 잘못했다는 것을
탱크가 노란 선을 넘어
아이들을 토끼 몰 듯 몰았다는 것을
그 길의 짓이겨진 한 점 흙도 알고 있다
너희들이 나를 이렇게 짓이겼지 않았냐고
너희놈들이 그 주저앉은 더러운 엉덩이로 나를 밟고 지나가지 않았냐고
뼈마디 마디를 툭툭 끊어놓지 않았냐고
그 길 지나던 바람 한 점도 알고 있다
아이들이 소리 지르지 않았냐고
엄마! 아빠를 부르며 절규하지 않았냐고
제발, 제발을 외치지 않았냐고
난 다만 열넷이라고
우린 다만 꿈 많은 열넷 소녀들일 뿐이라고
그 길에 피 엉겨 누운 아스팔트도 알고 있다
아이들의 눈에서 얼마나 서러운 피눈물이 흘러 나왔는지
아이들의 몸에서 흘러나온 따뜻한 핏물이
자신을 붙들고 이 소식을 꼭 전해주기를
잊지 말고 꼭 전해주기를
저 더러운 이민족의 탱크가 내 몸을 짓밟고 갔다는 것을
이 세상 사람들 모두에게 전해주기를 꼭 부탁했다는 것을
이 땅의 모든 벌거숭이들
흙 한 줌 바람 한 점 꽃잎 하나
풀 잎새 한 잎 거기 지나던 새 한 마리들도 알고 있다
너희놈들이 그간 짓밟은 목숨이, 파묻은 목숨이 얼마였는지를
너희놈들이 그간 유린한 땅이 얼마였는지를
알고 있다 알고 있다
이 땅의 산천은 이 땅의 민중들은
"불평등한 소파를 개정하라
미군은 물러가라
이 땅에서만이 아니라
이 세계 모든 피 저린 땅에서
미군은 물러가라"
그것만이 미선이와
효순이를 우리가 다시 죽이지 않는 일임을
알고 있다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 12월 16일 구로금천 추모촛불행진 당시 추도시로 쓰였습니다.
송경동1967년 전남 벌교 출생. 2001년 '일과시 동인' 제6집으로 작품활동 시작. 전태일 열사 30주기 기념시집《나는 너다》공저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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