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장년’ 작가회의 ‘양심의 펜’을 다시 벼리며

[한겨레 2004-11-05 19:21]

[한겨레] 1974.11.18.101인 선언…
자주·민주화 싸움의 한 축 “…이에 우리 뜻있는 문학인 일동은 우리의 순수한 문학적 양심과 떳떳한 인간적 이성에 입각하여 다음과 같은 주장을 결의·선언하는 바이며…” 1974년 11월18일 오전 10시, 서울 세종로 의사회관 앞에 고은, 이호철, 백낙청, 조해일, 황석영씨 등 문인 30명이 모여들었다. ‘우리는 중단하지 않는다 -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시인 석방하라 - 자유실천문인협의회’라 쓰인 두 개의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문학인 101인 선언’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흩뿌렸다. ‘선언’은 김지하씨를 비롯한 양심수들을 석방할 것과 함께 자유민주주의의 정신과 절차에 따른 새 헌법을 마련할 것을 요구함으로써 유신체제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전신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자실)의 출범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민족문학작가회의(작가회의·이사장 염무웅)가 오는 18일로 창립 30주년을 맞는다. 6월 항쟁 직후인 1987년 9월 지금의 이름으로 개명한 자실-작가회의는 창립 이후 지금까지 사회 민주화와 민족 자주화를 위한 싸움의 한 축을 담당하였고, 그 싸움을 문학적으로 승화시키는 데에 매진해 왔다. 그 과정에서 허다한 회원 문인들의 연행과 투옥을 겪었으며, 창립 회원인 이문구와 조태일을 비롯한 몇몇은 그새 세상을 뜨기도 했다.

작가회의는 11, 12월 두 달을 창립 30주년 기념 기간으로 정하고 다채로운 행사를 마련한다. 우선 오는 13, 14일 강원도 인제 만해마을에서 전야제 삼아 열리는 제13회 전국 민족문학인 강원대회가 있다. 회원 300여 명이 참가하게 될 이 대회는 민족문학 세미나와 시낭송, 통일굿, 공연 등으로 꾸며진다. 김형수 작가회의 사무총장이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출범 30년’을 주제로 발표를 하고 회원들의 자유토론이 이어질 예정이다.

만해마을에서 민족문학대회
74년생 회원들 선언등 눈길 창립 30주년 당일인 18일엔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본대회가 열린다. 자실 출범 연도인 1974년에 출생한 젊은 회원들이 맡게 될 ‘30주년을 맞이하여’ 선언이 눈길을 끈다. 김정한, 한남철, 고정희, 김남주, 김도연, 김소진 등 작고 문인들은 액자 속 사진으로 현장에 동참해 남은 이들의 모습을 지켜볼 참이다. 행사장에서는 지난 30년의 발자취를 되짚어보며 주요한 필화사건 등을 영상에 담은 세미 다큐멘터리도 상영된다.

부대행사도 이어진다. 17~23일엔 서울 인사동 덕원갤러리에서 기록사진전과 도자기전시회를 겸한 시판화전 ‘21세기를 노래하는 새로운 목소리들’이 열린다. 남궁산씨의 판화와 함께 작가회의 소속 젊은 시인들의 시를 전시하는 행사다. 21~23일엔 같은 장소에서 문인 휘호와 작가 애장품, 육필 원고 등을 판매하는 바자회도 곁들여진다. 또 24일부터 다음달 8일까지는 서울 정동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전시실에서 김남주 시인 10주기를 추모하는 ‘사랑과 전투의 시인 김남주’전이 열린다. ‘김남주의 삶과 문학’을 주제로 한 심포지움도 마련된다.

작가회의는 이밖에도 문인 바둑대회와 등산대회를 통해 회원들의 화합과 친목을 도모하는 등 창립 30주년의 의미를 다각도로 되새긴다는 방침이다. 출범 당시 ‘101인 선언’의 작성자이기도 한 염무웅 이사장은 “작가회의가 숱한 고난 속에서도 지난 30년간 타락하지도 흩어지지도 않고 일정한 수준과 목소리를 지키면서 성장해 온 것은 자랑할 만한 일”이라면서 “‘민족(문학)’의 개념과 위상을 재정립함으로써 좀 더 넓은, 지구적 차원의 고민을 감당하는 단체로 나아갔으면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