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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는 '전국작가대회'가 열렸다.
[사진-통일뉴스 김규종 기자] | | '태어나 한 일이라곤 죄 없는 사람 데려다 팬 일과
주리 튼 일과 전기로 살갗 지지는 일과 사흘 밤낮
잠 빼앗는 일과 방 훔치고 난 걸레처럼 육신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물 먹이는 일과
절벽에서 저수지에서 최전방 병영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감쪽같이 죽여 없애는 일을
그 무슨 자랑인 냥 생의 주어진 의무로 알고 살아왔던
너를 민주와 자유와 평화의 이름으로 처단하노라...'
(이재무 시 '너는 죽어 티끌로라도 오지 말아라' 中)
가을의 한 가운데 서 있는 10월 9일 주말 저녁, 지는 낙엽과 함께 국가보안법이 소리 없이 사라지길 바라는 작가들의 절규와 해학이 퇴근길을 서두르는 시민들의 발목을 잡았다.
오후 6시 30분경 세종문화회관 앞마당에 자리를 잡고'국보법 폐지!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위한 전국작가대회'를 마련해 숨죽여가며, 혹은 끌려가면서도 써온 주옥같은 시 보따리를 풀어놓은 시인들은 시민들의 가슴속에 '잠입'하여 국가보안법 폐지를 절절히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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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조시 '너는 티끌로라도 오지 말아라'를 낭송하는 이재무 시인.
[사진-통일뉴스 김규종 기자] | | 민족문학작가회의 주최로 열린 이날 행사에서민족문학작가회의 염무웅 이사장은 "국가보안법 철폐가 작가의 표현의 자유와 창작 진전을 위해 긴요하며 민주발전에 기여할 것이란 뜻을 전하기 위해 모였다"고 행사 취지를 밝히고 "선배 문인들은 국가보안법에 걸려 10년 가까운 세월을 고통 속에 살았으며 심지어 이광운 시인은 꿈속 이야기를 적은 일기장으로 보안법에 저촉되기도 했다"며 "이 웃지 못할 비극은 이제 끝장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65년 당시 소설 '분지'로 필화사건을 겪고 1년 반 남짓 조사를 받으면서 창작과 검열이라는 사회적인 문제로 확산, 세간의 주목을 받은 소설가 남정현 씨는 "철폐된 국가보안법을 환영하는 신나는 축제의 한마당이 돼야 할 시대에 국가보안법 철폐를 외쳐야 하는 우리의 처지가 한스럽고 어이없다"며 찹찹한 심정을 전하고 "이 법은 박물관에 진열할 성질의 물건이 아니라 땅속 깊이 묻어야 할 저주스러운 마물이다"며 국가보안법 폐지에 온 작가들이 발 벗고 나설 것을 호소했다.
'붉은산 검은피'란 시로 옥고를 치룬 오봉옥 시인은 검찰 조사과정에서 자신이 '북한시인 오봉옥'으로 둔갑한 사례와 이 시를 극으로 만들려던 노래패 희망새와 시를 소지하고 있던 학생들이 연행된 웃지 못할 사연을 소개하며 "국가보안법이 분열을 야기시키는 한나라당 의원들이나 잡아냈으면 한다"고 말해 참가자들의 환호를 받았다.
한편, 전국작가대회장 주변에는 작가와 시민사회단체 참석자 외에 약 50여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모여 시인들의 시 낭송을 경청하는 등 유례 없는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세종문화회관 계단에 삼삼오오 모인 시민들은 시인들의 시 낭송이 끝날 때마다 박수를 치며 대회에 자연스럽게 참가했으며 행사장 한켠에 마련한 현수막에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는 한마디를 정성들여 적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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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의 시낭송에 환호하는 참가자들. 멀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시낭송을 경청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김규종 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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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회를 마친 뒤 환호하는 작가들. [사진-통일뉴스 김규종 기자] | | '조목조목 성문법 또한 이렇게 하자
안으로 독사와 같이 독을 품고
국민에게든 인민에게든 누명과 굴레 씌우는 짓
55년 따로국밥의 허전한 살림살이 위에
영구분단의 거멀못을 씨와 날로 쳐대는 짓
그런 법 따위 법률 따위 헌신짝으로 던져버리자...'
(고규태 시 '고무찬양의 노래' 中)
김남주 시인의 시 '전향을 생각하며'와 이광웅 시인의 시 '그때 그 순간 악마가...'등 작고한 시인들의 시를 낭독한 시인들은 각자 준비해온 창작시를 낭송했으며 민족문학작가회의 사무총장인 김형수 시인은 창작시 '예언자'를, 고규태 시인은 '고무찬양의 노래', 김해화 시인은 '그 놈이 있다', 최자웅 시인은 '동터를 누비기 위하여', 박남준 시인은 '택도 없다'를, 박영희 시인은 80년대 후반 일제징용문제를 취재하러 북한을 방문했다가 7년형을 선고받은 뒤 창작한 '가석방자의 노래'등을 낭송해 박수를 받았다.
작가들은 민족문학작가회의 자유실천국제분과 오수연 위원장이 낭독한 선언문을 통해 "마치 강물에 금을 그어 물고기를 통제하는 것처럼 무모한 법규를 강요하면 인간의 의식은 자유를 잃는다"고 지적하고 "조국에 대한 불평도 잠꼬대 안에서는 가능"해야 하며 "우리가 신봉하는 절대가치에 대한 신념들도 취중에는 더러 야유할 수 있어야 한다"며 사상을 억압하는 국가보안법을 비난했다.
이들은 국가보안법 속에 살아온 세월을 "수시로 저녁의 어두운 거리를 지나며 나무들과 건물들 위에서 하늘이 소용돌이치고, 그 너머에서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있는 분단사회의 광기를 보고는 했으며, 어떤 검은 새의 날개가 늘 우리의 정신을 지배하고 따라다니는 듯 했다"고 표현하고 정치인들을 향해 "국가보안법이라는 이 지독한 야만에 대한 향수를 버려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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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필화사건들을 만들어낸 국가보안법 법전이 낫에 의해 찍혀 무너지고있다.
[사진-통일뉴스 김규종 기자] | | 작가들은 태백산맥, 자본론, 다시읽는한국현대사, 철학에세이, 한라산, 막심고리끼의 어머니 등 이른바 '이적표현물'들을 새끼줄로 줄줄이 엮고 있는 대형 국가보안법 상징물을 낫으로 찍는 이삼헌씨의 퍼포먼스를 지켜본 뒤 대회를 마무리했다.
"자기검열 안 해본 작가가 없다"
<미니인터뷰> 민족문학작가회의 염무웅 이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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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뉴스 : 작가들에게 있어 국가보안법 철폐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 염무웅 : 국가보안법이란 것이 작가들의 의식뿐만 아니라 무의식까지 통제하는 사상적 억압이다. 그러므로 이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한 작가들은 끊임없는 자기검열에 시달릴 수밖에 없고 따라서 제대로 된 창작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국가보안법이 폐지돼야 한다.
또 작가들의 표현의 자유뿐만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는 진정으로 인간다운 세상이 되고, 억압과 차별이 없는 올바른 세상을 만들기 위해 국가보안법은 폐지되어야 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국가보안법은 그동안 정권 안보를 위해서 이용되어왔고 인권탄압의 도구가 되어왔고, 또 남북 분단의 수단이 되어 왔는데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는 것이야말로 이 모든 모순을 철거하는 첫 걸음이다. 국가보안법이 폐지된다고 모든 게 다 해결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 '자기검열'을 해본 적 있는가?
■ 물론 있다. 이런 게 없는 작가가, 글 쓰는 사람 치고 이런 게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작가뿐만 아니라 문필활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자기도 모르게 혹은 알게 수위를 조절하게 된다.
어느 시대든 불가피하게 이런 게 있지만 60년 가까운 동안에 국가보안법 체제 하에서의 검열이란 것은 학문과 예술의 정상적인 발전을 저해하고 대한민국의 국시라 할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 자체를 왜곡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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