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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식을 결여한 박정희 기념관을 폐관하라!
유신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역사의 정당한 발전이 일부 수구세력에 의해 비정상적인 과정으로 선회하는 반동의 시기를 목도하고 있다. 박정희 기념관 건립은 정치적․경제적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적 염원을 유신 이전으로 되돌리려는 반(反)역사적 행위이며, 동시에 민주주의의 성전(聖殿)에 피를 바친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주체들에 대한 정치적 사형선고이다.
1961년 5월 16일, 박정희는 민주주의에 대한 대중적 열망인 4․19 혁명정신을 유린하고 권좌에 올랐다. 4․19 혁명 이후의 혼란상과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를 척결한다는 대의명분을 내세우고 권력을 쟁탈한 그는, 이후 민정이양의 약속을 어기고, 심지어 부정으로 얼룩진 선거를 통해서 대통령에 오르면서 긴 독재의 행보를 시작했다.
18년의 철권통치 기간 동안 그는 겉으로는 부정부패의 척결과 산업의 근대화를 외쳤지만, 실제로는 굴욕적인 한일협정을 체결하여 민족의 자존심을 팔아넘겼고, 헌법적 권리를 주장하는 숱한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으며, 민주주의를 주창한 정치인과 시민들을 고문하고 살해하는 등 초법적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경제개발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노동자의 기본권마저 유린한 그는 몇몇 재벌들에게 특혜를 제공함으로써 독점자본주의의 기반을 만들었고, 삼선개헌으로 헌정을 유린하는 등 우리 사회의 정당한 발전과,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부정하는 반민주적 폭정으로 엄혹한 유신의 시대를 이어나갔다.
그는 산업적 근대화를 달성한 민족의 영도자가 아니라 권력욕에 불타서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총을 앞세워 진압한 독재자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기념관은 군사쿠데타에 불과한 5․16을 “민족중흥과 근대화 혁명”을 위한 혁명으로, 4․19 혁명 이후를 “시위의 남발과 혼란”으로 규정함으로써 한편으로는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들의 염원을 폄하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5․16을 미화하는 몰역사적인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박정희기념관은 박정희시대의 ‘빛’과 ‘어둠’이라는 공과는 물론이고 ‘어둠’을 은폐․미화함으로써 ‘어둠’을 ‘빛’으로 간주하는 반동적 역사인식을 서슴지 않고 드러내고 있다.
‘기념’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현재의 삶을 가능하게 만든 과거의 유산을 되새기고, 나아가 미래적인 실천의 가치로 그 유효성이 입증된 것을 역사적으로 평가하는 행위이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유신독재의 상징인 박정희는 기념의 대상이 아니라 청산의 대상이다. 분단과 군사독재로 이어진 오욕의 20세기, 그 한가운데에 박정희의 유신 18년이 자리하고 있다. ‘공정사회’와 ‘복지국가’를 지향하고 있는 지금, 한국사회가 과연 유신의 망령을 되살림으로써 얻을 수 있는 역사적 실익과 교훈은 없다. 다만 있다면 이 사회의 극소수에 불과한 수구세력이 자신들의 정치적 권력을 이용하여 과거를 미화하고, 나아가 민주주의를 향해 걸어온 대중의 역사를 왜곡함으로써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 것일 뿐이다.
우리에게 유신시대는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정당한 요구와 권리가 가로막힐 때 어떠한 결과가 도래했는가를 보여주는 역사적 교훈은 될지언정 결코 ‘기념’이라는 말로 되살려야 하는 시간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신의 망령을 되살려낸다면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는 무고한 광주시민들을 학살하고 권좌에 오른 5공 세력의 기념관이 들어서게 되는 상황을 또 다시 목격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 한국작가회의는 1974년 표현의 자유와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던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한 문인단체이다. 반독재 민주화의 역사적 과정에서 결성된 한국작가회의는 박정희 기념사업의 즉각적인 중지와 유신시대에 대한 역사적 청산작업이 우리 시대의 역사적 소임임을 밝히는 바이다. 따라서 박정희 기념관은 즉각 폐관해야 한다.
박정희기념관의 성역화는 결국 유신체제의 피해자이자 저항자였던 한국작가회의를 비롯한 제 민주세력에 대한 역사적 도발이다. 그들은 어떤 반성의 기미도 없이 역사의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피해의 시간’을 ‘치유의 시간’인 양 기만하고 있다. 윤리적 통치력을 상실한 유신체제의 허구적인 기념비들로 자유의지가 넘치는 이 시대를 끌고 가겠다는 그 후안무치함은 누구의 상상력이란 말인가. 우리는 작가의 양심과 명예를 걸고 이 잘못 씌어진 기념비들을 허물어갈 것이다.
2012년 2월 28일
(사)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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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