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논평]
문학 지원, 문학 나눔의 취지에 맞는 문학나눔사업을 기대한다
논란을 빚었던 ‘문학나눔사업’이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으로 주관기관을 옮긴 뒤 ‘세종도서 문학나눔사업’이란 이름으로 첫 선정결과를 발표했다. 한국작가회의는 국제PEN한국본부와 함께 2013년 ‘문학나눔사업’ 폐지와 통합에 반대하는 성명을 낸 뒤 후속 조치 등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시기적으로 형편없이 늦긴 했지만 ‘문학나눔사업’의 존속을 확인한 것은 다행스럽다.
하지만, 문학 나눔 운영 방식과 문학도서 선정 결과를 놓고 본다면 ‘문학나눔사업’ 존속 의미는 급격하게 퇴색된다.
먼저, 선정도서의 대상 시기와 선정 횟수의 문제이다. 이번에 발표된 ‘세종도서 문학나눔사업’은 2013년 10월 31일부터 2014년 7월 31일 사이에 출간된 도서를 대상으로 하여 2014년 8월부터 접수와 심사가 진행되었다. 문학도서의 특성상 ‘2013.10.31.~2014.7.31.’ 사이에 간행된 도서는 벌써 구간도서이며, 수요처인 공공도서관 및 도서관, 복지기관에서는 이미 자체 예산에 의해 이 도서들을 구입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이 책은 보급 받는 쪽에서 보면 구간인데다가 중복된 책들이므로 이용 가치가 훨씬 떨어질 것이다. 우수한 문학도서의 보급과 국민의 향수기회를 확대하겠다는 취지를 생각한다면, 그 선정 시기와 횟수를 놓치는 건 치명적인 약점이다. 문학 신간이 서점 판매대에서 머무르는 기간이 한 달여임을 고려할 때, 이렇게나 뒤처진 시점에 그것도 단 한번으로 문학도서를 선정, 보급하는 것은 공공의 폭력에 가깝다. 수요처와 수요자들의 요구와 반응은 상관하지 않겠다는 투의 행정 편의로 밀어붙이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든다.
다음으로는, 우리가 우려한 대로 ‘출판 진흥’이라는 기구의 속성이 드러난 출판사 나눠주기식 선정 결과가 나타났다는 점이다. 도저히 우수문학이라고 이름 붙일 수 없는 종류의 책들이 우수하다고 인정되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도 있어 보인다. 물론, 모든 심사가 다 객관적이고 공정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납득할 수 있을 만큼의 균형은 갖추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문학나눔사업’에는 문학인의 창작여건을 개선하고 창작의욕을 고무한다는 취지도 들어 있느니만큼 문학인들이 납득할 수 있는 심사위원 구성과 심사 결과를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선정 공고에 제시된 심사위원 명단과 심사 결과 발표만으로는 사업의 진행과정을 충분히 이해하기 어렵다. 특히, 이번 선정에는 시·소설․아동청소년 분야와 같은 비중으로 수필 장르 선정종수가 많아졌는데 여기에 어떤 합당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수필장르가 구체적 선정기준 없이 출판사 나눠주기에 적절했기 때문은 아닌지, 비판과 저항의 문학적 가치가 덜 드러나기 때문인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혹시라도 무슨 의도가 개입된 선정종수 조정이라면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지막으로는, 문학나눔사업에 대한 해석과 보급도서의 활용 방안에 관해서이다. ‘문학나눔’이라는 말 속에는 책나눔을 넘어서는 어떤 의지가 스며 있다. 단순히 문학 책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문학 책과 함께 문학 향수도 나누겠다는 의미가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학 책만 보급해서는 안 되고 문학 향수도 같이 보급해야 한다. 그러자면 자연히 문학 나눔 책의 활용 방안도 찾아질 수 있다. 저자와의 대화, 문학나눔 콘서트, 우수독후감 모집, 홈페이지 등의 활성화를 통한 피드백 구현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아이템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문학과는 별다른 관련이 없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이러한 의지를 가지고 문학 나눔 진흥 방안을 추진할 수 있을는지 궁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시행 첫 해를 맞은 ‘세종도서 문학나눔사업’이 기구의 속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문학나눔사업 본래의 취지에 맞게 운영되기를 기대한다. ‘문학나눔사업’은 문학 분야로서 볼 때에는 가장 많은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이고 문학신간을 펴내는 출판사들 입장에서는 우수문학도서 출간의 가치를 확인받는 사업이다. 그러니 만큼 문학작품의 우수성과 공공성, 보편성을 획득하는 작품집을 공정하게 선정해야 하며, 문학인들과 문학향수자들에게 기쁨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사업시기 및 선정 횟수를 조정해야 한다. 우리의 문화적·정신적 가치를 대표하는 문학의 창작과 향수를 드높이는 것이 문학나눔사업의 제1목적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문학나눔사업’이 제도권 길들이기나 행정 편의주의, 산술적 효율 쪽보다는, 더 좋은 문학작품을 선정하여 다양하게 나눔으로써 온 국민의 정서와 교양이 깊어지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2014년 12월 18일
한국작가회의
성명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