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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시절 야간행군을 하면서였다. 해질 무렵 완전군장을 한 뒤 먼 길을 나섰다. 이윽고 사위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강원도 산골의 길은 칠흑처럼 캄캄했다. 발바닥은 활활 타올랐다. 땀으로 흠뻑 젖은 몸을 이끌고 허방을 짚듯 간신히 걸었다. 그러다 어느 외딴 집을 지나갔다. 고향집과 그리 다르지 않은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누추한 집이었다. 낮은 담 너머로 백열등 불빛에 물든 창호문이 보였고 거기에 그 집 식구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불빛이 무척이나 따뜻하게 여겨졌다. 까닭 모를 눈물이 났다. 누추한 집만큼이나 가난할 게 틀림없었을 그 집에 사는 이들의 단란한 저녁 시간이 사무치게 부러웠다. 내가 언젠가 한번쯤 가져본 적 있으나 앞으로 영영 내 삶에서 재현할 수 없는 과거처럼 느꼈던 거다. 그러나 나의 부러움이 증오가 되지 않은 건 아마도 내게 돌아갈 누추한 집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또한 나의 부러움은 다른 형태의 증오가 되기도 한다. 저 가난하고 순박한 이들의 삶을 각다분하게 만드는 이 세상의 모든 비인간적 조건들을 나는 증오한다. 밤이 찾아왔을 때 하루 동안의 노동으로 고단해진 몸을 이끌고 돌아와 피붙이들과 더운 밥 나눠먹을 방 한 칸조차 허용하지 않는 문명이라면, 촉수 낮은 백열등 아래서라도 서로가 하루 동안 무사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안락한 시간을 보장하지 못하는 문명이라면 과연 그런 문명이란 지지할 가치가 있는 것인지.
증오는 쓸모 있는 감정이다. 인간답지 못함에 대한 증오. 인간을 인간일 수 없게 만드는 조건들에 대한 증오야말로 인간을 인간이게끔 해 준 격렬하고도 원초적인 본능이었는지도 모른다. 가난한 이들에게 존엄을 요구하는 건 폭력이다. 그들의 존엄을 짓밟은 채 그들에겐 처음부터 존엄이란 없었다고 조롱하는 자들을 나는 증오한다
<2010. 0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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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in 미디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