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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한밤중에 전기가 나갔다. 사위가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정적에 휩싸였다. 곧 들어오겠지 싶어 기다렸는데 깜깜무소식이어서 밖을 염탐했더니 평소라면 불빛들이 은성했을 인근 몇 블록이 어둠에 잠겼다. 정말 전기가 나갔다. 그리고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좀 즐거웠다. 대체 이게 얼마 만에 겪는 정전이란 말인가. 십수년은 된 듯했다.
어린 시절에는 정전이 유독 잦았다. 저녁 무렵에 전기가 나가면 고향마을은 고대로 되돌아간 듯 무섭도록 고요했다. 이따금 사람들의 불안을 대신 말해주듯 개 짖는 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식구가 밥상에 둘러앉았을 때면 꼼짝없이 숟가락만 빨아야 했다. 그런 일을 자주 겪다 보니 웬만한 집에서는 양초를 준비해뒀다. 대개는 정전이 오래 가지 않았다. 이따금 지루할 만큼 길어지기도 했는데 이놈의 전기는 왜 들어오지 않는 거냐며 전기를 마치 집 나간 자식 취급을 하던 어른들의 지청구마저 정다웠다.
촛불에 의지해 밥을 먹노라면 우리 식구가 고대에서 온 무리라도 되듯 새롭게 보였다. 그릇에 부딪는 숟가락이나 젓가락 소리도 더 크게 들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았던 건 촛불만이 가득한 방은 전혀 가난해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둠은 모든 걸 공평무사하게 취급하는 힘이 있었다. 나는 적당한 어둠이 가져다준 평화가 고마웠다. 옆사람의 숨소리와 온기에 좀 더 민감해지던 시간들. 그런 시간들을 다시 겪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가로등마저 꺼진 동네는 내가 처음 가 본 곳처럼 신비로웠다. 어두운 골목을 걷는 사람들마저 유쾌하게 여겨졌고 캄캄한 창에서 흘러나오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정겨웠다.
가끔 눈을 감으면 세상은 전혀 다른 곳이 된다. 미처 우리가 알지 못했던 것들이 어둠 속에서 기지개를 켜고 다가오기도 한다.
<2010. 0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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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in 미디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