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박철 시인이 펴낸 첫 소설집 [평행선은 록스에서 만난다]
(실천문학, 2006년 9월 20일)

<김포행 막차>, <험준한 사랑>의 박철 시인이 소설가의 이름을 얻은 지 10년 만에 펴낸 첫 소설집. 소설의 무대 역시 작가의 오랜 삶의 터전이었던 '김포'를 택했다. 수록된 9편의 중.단편 소설은 '고향'이란 키워드로 묶을 수 있다. 각 이야기는 전통적인 서사 방식을 고수하며, 척박한 현실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첫 번째 수록작인 '깍새'는 여덟 살 때 고향을 떠난 인물의 고향 방문기다. 이발사를 낮추어 부르는 말인 '깍새'로 통했던 아버지의 존재는, 주인공으로 하여금 고향을 '증오와 분노, 수치심으로 얼룩진 고통의 공간'으로 여기게 한다.

동성애자의 일상을 소통의 욕망과 정체성의 문제로 심화시킨 '울돌목 사연', 불우한 과거를 떨쳐버리려는 아내의 욕망을 안온해 보이는 현재의 일상과 포개놓은 '그대의 혼성' 등은 사회적 소수자들이 세상과 맞서 싸우는 과정을 다룬다.

박 철
1960년 서울 출생. 1987년 「창비 1987」에 '김포' 외 14편의 시가 추천되어 시인이 되었고, 1997년 「현대문학」에 단편 '조국에 드리는 탑'이 추천되어 소설가가 되었다. 시집으로 <김포행 막차>, <밤거리의 갑과 을>, <새의 전부>, <너무 멀리 걸어왔다>, <험준한 사랑> 등과 꽁트집 <벗어제끼는 날들>, 어린이를 위한 책 <옹고집전>, <선비 한생의 용궁답사기>, <김포아이들> 등이 있다.

::책 속에서

나는 그들의 심사를 이해할 것도 같았다. 은행나무 아래 곤죽이 되어 늘어진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나 역시 그녀를 향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복수를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답답했다. 그렇게 한들 깍새가 다시 헤어디자이너로 대접을 받는 것도 아닐 것이었다. 부역자로 끌려간 할아버지의 몰매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세상엔 그저 막연히 폭력이 난무할 뿐이었다. 주인 잃은 주먹이 허공에 날아갈 뿐이었다. 정신이 혼미했다. 그리고 어느덧 나도 그 힘과 폭력에 가담을 하고 있었다.

- '깍새' 중에서

::추천글

박철은 '김포 출신'이다. 도시도 아니고 먼 변방이랄 수도 없는. 쓸쓸하고 아득하면서도 사람으로서의 온기가 물씬 나는 박철 문학의 운명성이 거기 있다고 믿는다. 그의 인물들은 주변부에 놓여 있으면서도 폭력적 탐욕에 완전히 매몰되거나 곡진한 삶으로부터 자신을 유리시키거나 하는 법이 없다. 감상과 허풍을 절제한 질박한 문장으로 주변부 삶의 풍경을 눈물겹게 그려내고야 마는 박철의 인간주의가 작품마다 중심선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 박범신 (소설가)

요즘 한국문학을 향해 내딛는 작가 박철의 발길은 역방향이다. 온갖 속된 욕망들이 뒤범벅인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작가의 삶도 역방향이다. 한국문학이 최신 유행과 흥행에 도취할 때, 작가는 토종(土種)의 문학에 천착하고, 한국 사회가 물신(物神)의 마력과 진보의 신화에 도취할 때, 잠시 떠났던 고향길 버스에 오른다. 그리고는 기포 벌판을 가로지르며 작가는, 흐느끼는 강물과 반짝이는 바람과 소곤대는 별빛에 도취한다. 고향 김포에 대한 작가의 원주민 의식은 단지 고향을 지키겠다는 의지, 한참 그 너머에 있다. 가령, '흔들새', '평행선은 록스에서 만난다'와 같은 수작(秀作)들에서 볼 수 있듯이,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과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노인의 지혜의 말씀은 잃어버린 내 안의 신성(神聖)에 대한 소중한 발견이자, 귀한 문학적 기록이다. 작가의 원주민 의식은 다름 아닌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 그 자체인 것이다. - 임우기 (문학평론가)

::차례

깍새
꺽새
흔들새
찍새
평행선은 록스에서 만난다
그대의 혼성
울돌목 사연
바퀴벌레
조국에 드리는 탑

해설 / 고인환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