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하성란의 네 번째 소설집 [웨하스]
(문학동네, 2006년 8월 31일)

하성란의 네 번째 소설집. 2002년 출간된 <푸른수염의 첫번째 아내> 이후 4년 만이다. 2004년 이수문학상 수상작인 '강의 백일몽'을 비롯해 2002년부터 발표한 작품들을 모았다. 수록된 열한 편의 소설은, 주변적 현실과 일상의 환부를 원숙하고 세련된 솜씨로 짚어낸다. 하성란 소설의 특장인 사물에 대한 정치한 묘사도 여전하다.

표제작에 해당하는 '웨하스로 만든 집'을 비롯, 수록작의 대부분은 과거의 특정한 시간과 맞닿아 있는 이야기다. 작가는 부재하거나 왜곡된 과거의 시간과 기억을 통해, 현실에 도사린 일상적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단편 형식에 대한 의미 있는 탐구를 담고 있는 것도 이번 소설집의 특징이다. 의도적으로 문단을 나누지 않고 과거와 현재를 숨가쁘게 교차 편집하고('단추', '백일몽'), 등장인물들의 실체나 사건의 진상을 끝까지 밝히지 않음으로써 모호한 긴장 상태를 유지하는('그것은 인생', '임종', '낮과 낮', '그림자 아이') 등 다양한 실험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것은 일관되게 '시간과 시간 사이의 근본적 간극'을 형식화하는 데 집중된다.

하성란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9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풀'로 등단했다. 1999년 <곰팡이꽃>으로 동인문학상을, 2000년 <기쁘다 구주 오셨네>로 한국일보문학상을, 2004년 <강의 백일몽>으로 이수문학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 <루빈의 술잔>, <삿뽀로 여인숙>, <내 영화의 주인공>. <웨하스> 등이 있다.

::책 속에서

바싹 마른 마룻장이 바삭, 잘 구운 과자 소리를 냈다. 어머니가 살얼음판을 딛듯 조심스럽게 발을 뗐다. 바삭, 바삭, 바삭. 자매들은 웃었고 어머니는 특히 소리가 심한 곳을 찾아내려는 듯 마룻장을 모두 디뎌보았다. 둘째가 자신만만하게 소리쳤다. "과자로 만든 집이야. 마루는 음, 웨하스로 만들었어. 이건 웨하스 씹을 때 나는 소리야." 자매들이 발끄을 들면서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그러니 조심해!

- '웨하스로 만든 집' 중에서

::시인의 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내 소설이 이랬으면 좋겠다. 당신의 갈피에 숨어들어 불현듯 당신을 씩, 한번 웃게 했으면 좋겠다. - 하성란

::추천글

데뷔작 '풀'에서 시작된 하성란의 마이크로적 카메라 워크가 아직도 유효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에 놀란다. '영상이 대세가 되고 있는 시대에는 특히 영상적 기법이 가장 금물'이라는 소리를 스스로도 늘 일러듣고 있지만, 이 작가의 방법은 전혀 예외적인 것이다. 묘사가 카메라 포커스로 바뀌면 기왕에 보아온 온갖 영상의 잔영들이 삽시간에 그 공간을 메우고 대체되면서 기성 이미지로 전락하고 죽어버리기 일쑨데 이 작가의 그것은 놀랍게도 문학적 사고력을 자극하는 그것으로 재빨리 바뀐다. 카메라의 속성과 한계를 빤히 꿰뚫고 있다기보다 이것은 작가의 순발력과 천품의 힘이다. - 이제하 (소설가, 제11회 이수문학상 수상작 선정 이유중에서)

사라진 시간 속에서 초라한 개인의 기적을 기억하고 존중하는 데 문학의 양보할 수 없는 윤리가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하성란 소설은 소설언어의 미학적 가능성에 대한 다양한 탐구를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도 지극히 낮은 목소리로 문학의 그 최저선의 윤리를 묵묵히 실천해왔던 것이다. 등단 십 년의 꾸준하고 성실한 행보가 촘촘히 새겨져 있는 이번 소설집에서 그것을 새삼 확인한다. - 정홍수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