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용주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은근살짝]
(시와시학사, 2006년 1월 31일)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의 유용주 시인이 세 번째 시집을 펴냈다. 두 번째 시집인 <크나큰 침묵> 이후 10년 만이다. 중국집 배달원, 구두닦이, 막노동판 시다 등 밑바닥 삶을 통해 배운 삶의 진실과 정직은 유용주 시인의 가장 큰 무기다. 그 무기를 바탕으로 시인은 삶의 고달픔과 아픔을 읽어낸다. 총 44편의 시가 수록되었다.
::책 속에서
누더기, 누더기,
되새김질 할 틈이 없다
덧꿰맨 흉터가 또 터진다
상처는 가만두어도 비집고 나오는 것이니 - '길 위의 날들' 중에서
그대가 없는 날에도 햇빛은 투명하고 고바우 슈퍼는 문을 열고 우체국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그대가 없는 날에도 꽃은 피고 바람이 불고 강물은 제 갈 길로 가고 그대가 없는 날에도 병원과 약국과 술집과 터미널이 붐비고 붐비고 그대가 없는 날에도 마루는 빗자루와 걸레의 애무를 받고 의자 위로 두툼한 엉덩이들이 내려앉고 - '시마(詩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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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주
1960년 전북 장수 출생. 1991 <창작과비평>에 '목수' 외 2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 1997년 제15회 신동엽 창작 기금을 받았으며, 2000년 <실천문학> 가을호에 단편소설 발표. 지은 책으로 시집 [가장 가벼운 짐], [크나큰 침묵], 산문집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 [쏘주 한잔 합시다], 자전적 성장소설 [마린을 찾아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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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글
일찍이 충청도 땅 이정록 시인은 "유용주가 소설로 갔다. 하나도 슬프지 않았다"고 대침을 꽂았다. 시보다는 소설이 차라리 낫다는 혈인지, 제아무리 그래도 시를 버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의 혈인지 '은근살짝'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보아라. 시원스레 대침을 뽑아낸 자리에 거침없는 시의 피가 솟구쳐 일순 '동매(冬梅)' 향이 낭자하다. 저 처참한 인생 역정이라니. 유용주, 죽지 않고 살아줘서 고맙다. 몸 밖으로 나가야만 비로소 몸을 살리는 시의 피 또한 고맙고도 고맙다. - 안상학 (시인)
한때 그는 달아오른 무쇠가마솥 같았다. 하지만 그 식식거리던 무쇠 솥이 보이질 않는다. 언젠가 가슴 안창에다 솥을 걸어놓았기 때문이다. 눈 밝은 이들만 그의 손에서 솥뚜껑의 흔적을 짐작할 뿐이다. 가슴에 솥을 거는 방법은 퍼주는 일밖에 없다. 그가 장수 뜬봉샘 옆에 앉아 가마솥을 닦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가마솥을 들어낸 가슴팍에는 그을음이 수북했다. 깊고 아득한 우멍눈, 그 그을음 눈썹이 씨줄 날줄이 되어 빚어낸 속울음을 본다. 물도 솟고 불도 솟구쳐야 가슴에 솥을 걸 수가 있다. 제 갈비뼈와 등뼈를 장작 삼을 수 있어야 부뚜막에 고양이 한 마리라도 품을 수 있다. 그의 가슴을 툭툭 치자 너털웃음이 밥 짓는 연기처럼 피어오른다. 혀엉, 하고 불러보니 밥 냄새가 나의 허기를 감싸고돈다. 뜨건 솥뚜껑이 쓴 시, 그의 시가 밥을 푼다. - 이정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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