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새라의 첫 소설집 [민들레꽃 사랑]
(푸른나무, 2005년 12월 9일)

1996년 단편소설 '코를 잃어버린 최씨'로 실천문학 신인상을 수상한 홍새라의 첫 번째 소설집이다. 홍새라는 많은 작가들이 유행처럼 개인의 내면을 응시하며 탈출구 없는 절망과 삶의 비장함에서 스스로를 구원하려 매진하는 동안, 개인을 넘어선 우리네 삶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던 작가. <민들레꽃 사랑>에는 이 땅의 뒤틀린 모습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일곱 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군위안부 생활로 인해 단란한 가족을 꿈꿀 수 없는 일순씨와 말자씨, 찜질방에서 화장을 짙게 한 여자들의 표피를 박박 미는 횡성댁, 이름 석 자를 쓸 수 있게 되면서 자아정체성에 눈을 뜨고, 그 대가로 집에서 쫓겨나는 선미엄마 등 우리 사회의 차갑고 쓸쓸한 음지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이 소설집의 등장인물들. 작가는 잔인한 역사적 상처와 문명의 뒷골목을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한다.

홍새라 1965년 강원도 횡성 출생. 1993년 여성신문사 여성문학상에 중편소설 '절망의 끝'이 당선. 1996년 단편소설 '코를 잃어버린 최씨'로 실천문학 신인상 수상.

::작가의 말

북풍처럼 요란한 바람 또 한 차례 불어온다. 함박눈처럼 날리던 나뭇잎들이 땅바닥을 휩쓴다. 농구를 하는 아이들, 뛰고 걷는 아줌마, 아저씨들 속으로도 몰려가고, 철봉 밑으로도 몰려온다. 하늘가를 날아다니고 사람들 사이를 몰려다니는 나뭇잎들을 한참 본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생각한다. 저와 같아야 하리, 생각한다. - 홍새라


::책 속에서

암만 생각해두 요늠에 서울은 사람이 너머 많어유. 저 많은 사람덜이 죄 우데서 쏟아져 나왔대유. 그래. 구석구석 틀어 백혀서 용케두 잘 먹구살구 용케두 잘 입구 사네유. 나 겉은 년이야 이래해서 산대지만 모둥덜 그래 뭔 일을 해가민서 산대유... 그래두 뭐 다 지 입하구 새끼덜 입에 풀칠핼 구석은 있으니 저래 살겠지유? 공일마둥 목간탕두 오구유. 히히히. -- '서울에 온 횡성댁' 중에서

어머니가 떠오른 까닭일까. 일순씨는 뜨락 안을 환하게 내리쬐는 햇살이 더없이 그윽하게 느껴졌다. 마당가의 따듯한 흙냄새가 마루를 넘어 방안까지 소복이 흘러드는 것 같았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민들레 꽃송이들이 눈으로 가득 들어왔다. 그래, 어서어서 많이들 피어라, 일순씨는 사람과 얘기하듯 중얼거렸다. 설렁설렁 불어온 바람이 민들레꽃 모가지를 흔들며 지나갔다. 푸른 싹이 돋아나기 시작한 개나리의 늘어진 가지도 흔들흔들 휘젓고, 옆으로 뻗은 가지만 보이는 참꽃의 대궁도 툭툭 건드렸다. -- '민들레꽃 사랑' 중에서


::추천글

그의 문체는 편법을 생리적으로 거부하는 건강한 생활감각의 언어적 등가물이다. 홍새라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이러한 생활감각은 부르주아적 미학이 기대고 있는 '원초적 감각'이나 정신분석적 방법에 집착하는 문학이론가들이 내세우는 욕망의 적나라한 표출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것은 우리의 물질적 일상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제도적 각질과 상업적 이미지들을 불편해하거나 부당한 권력에 억압되거나 파괴된 심성을 복원하려는 '올바름에 대한 의식', 다시 말해 '삶의 진정성'을 올곧게 유지하려는 사람들의 생활감각이다. - 황광수 (문학평론가)

홍새라의 소설들은 건강하고 정직하며 은근하고 묵직하다. 참을 수 없이 가벼워져 가고 있는 이 시대 소설의 흐름에서 비켜 서 있다. 그는 형식의 기교와 문체와 수사에 매달리지 않는다. 넉넉하고 풋풋한 문장과 서사 구조로 우리를 자신의 소설 마당에 끌어당겨 놓고는 소나무 가지처럼 질박한 인물들을 만나게 해준다. 그리고 붕괴되어 가는 전통적 가치의 회복과 인간 본연의 진정성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갖게 해 준다. 우리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작가가 올곧은 정신으로 서서 울리는 종소리를 듣게 된다. - 이원규 (소설가, 동국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홍새라의 글은 고요한 울림을 자아낸다. 잔인한 역사로 인해 상처 입은 자들의 아픔, 그리고 현대문명의 값싼 화려함 속에 감추인 조악한 발전의 모습들을 담백미 넘치는 문장으로 이야기한다. 굳이 시선을 주지 않았던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거론한 작가의 용기는 거꾸로 우리의 소시민성을 질타하고 있지는 않은지. 개인의 해체된 삶을 화두로 삼는 문단의 흐름 속에서, 홍새라는 '우리에게 소중했던 것들의 부재'를 보고하며 우리를 깊은 잠에서 깨우고 있다. - 윤정모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