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숙의 세 번째 소설집 [나의 얄미운 발렌타인]
(문학사상사, 2005년 9월 12일)
1996년 「진주신문」과 2001년 「문학사상」을 통해 등단한 작가 조명숙의 세 번째 소설집. '삶과 맞닿아 있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급작스레 날아든 지인의 부고에서 모티프를 얻어 쓴 7편의 소설을 수록했다. 각각의 이야기에는 '타인의 죽음에 빚진' 채 살아가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살아 있음의 치욕스러움에 몸을 떨면서도, 무언가에 대한 희망과 믿음으로 하루하루 살아간다.
표제작 '나의 얄미운 발렌타인'은 '소설 쓰기'에 관한 소설이다. 화자인 '나'는 아무도 읽어주지 않을 소설을 쓰는 작가다. 주인공에 대한 구상만 20년 째 붙들고 있지만 작품 완성에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이런 식의 암담한 소설 쓰기 과정과 '나'의 지리멸렬한 일상이 교차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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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숙
1958년 경남 김해 출생. 1990년 장편소설 [표]로 작품 활동을 시작. 1996년 진주신문 가을문예에 중편소설이, 2001년 <문학사상> 신인상에 단편소설이 당선. 지은 책으로 [겨울 지나기], [작은 의자], [헬로우 할로윈], [우리 동네 좀머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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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나도 한 때는 젊은 여자였고, 모든 여자들이 그렇듯이 멋진 남자를 사랑하게 되리라고 믿었다. 준수하고 지적이며 다정한 남자를 알게 된다면 말 한마디 건네보지 못한 채 끙끙 앓다 죽어도 좋으리라고., 오랜 밤 꿈꾸기도 했다. 나의 발렌타인. 해마다 이 월 십사 일이 오면 마음속에 밝은 촛불을 켜고 기다린 그날에야 고백할 수 있는 사랑이, 흥식이였음을 깨닫게 된 것은 흥식이로 얼룩진 습작기를 통과하고 간신히 소설가가 된 뒤였다. 그리고 나는 흥식이에 대해 더 이상 쓰지 않게 되었다.
- 본문 106쪽, '나의 얄미운 발렌타인' 중에서
::작가의 말
삶은 그런 것이 아닐까. 저마다 발산하는 기호들이 해독되지 못하고 부딪치고, 그때 발생하는 스파크가 배합된 모래밭. 누군가는 소설을 쓰고 누군가는 그림을 그리고 누군가는 시계를 고치고 누군가는 쓰레기를 치우는, 그리고 누군가는 대학에서 강의하고 누군가는 해장국을 끓이고 누군가는 기획회의를 하고 누군가는 판금과 밀링 작업을 하는, 모래알처럼 분화되어 있으면서 모래밭을 이루는 유기적인 결합 상태.
그 모래밭에서 오래 소설을 써 온 나는 미미한 모래 한 알에 불과할 테지만, 그 한 알 모래로라도 존재할 수 잇음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 것 같지만 언제 어느 때 누군가가 내 말을 참을성 있게 들어줄지도 모르고, 그렇게 된다면 못다 한 말이 만들어놓은 참을 수 없는 심연에서 한 줄기 빛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 조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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