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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여는 말
첫 총평을 싣습니다.
<은수저> 첫 술을 뜬 3월 보다 묵직한 의미가 손에 느껴집니다.
후배 여성 시인과 소설가들을 위해 마음을 내어주신
황현산, 김인환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긴 장마였습니다.
이제는 짱짱한 태양이 7월을 끌고 가는 중입니다.
쉬지 않고 마음과 글을 닦는 모든 여성작가들의 힘이 이러하기를 기원합니다.
3월호
유현아
｢활강하는 새들을 위한 잔소리｣는 아파트 창문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소녀들의 이야기를 주제로 삼고 있다. “슬로우 슬로우”는 엘리베이터의 속도이고, “퀵퀵”은 추락하는 몸의 속도이겠다. 경쾌한 시구들이 비극감을 높여 준다. 그러나 “아파트 13층”이라는 설정이 이 효과를 더해 주는 것 같지는 않다. 몇 개의 번거로운 시구도정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내 가방 속 그림자｣에서, 화자가 수집하는 남의 그림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어떻게 해석하건 그것이 슬프고 쓸쓸할 것은 틀림없다. 표현의 밀도도 높다. 특히 마지막 구절이 처연하다. 이 시는 구어체로 쓰였지만, 문어체로 다시 써서 양쪽을 비교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최옥자
두 편의 ｢매니큐어를 바르는 밤｣과 ｢가마우지가 나는 법｣이 모두 남미를 풍정을 담고 있지만, 이 이국적인 정서는 특별할 수도 일상적일 수도 있는 인간사의 한 단면과 연결된다. 다듬은 문장의 표현들이 매끄러워 읽기에 좋다. 그러나 ｢매니큐어를 바르는 밤｣의 두 번째 문단 첫 문장의 서술부가 너무 짧아 리듬의 균형이 깨진다. 이국의 리듬과 “내 사랑의 타이밍”이 맞추게 될 박자도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가마우지가 나는 법｣에서 가마우지의 비상연습은 흥미롭다. 그러나 “얼굴이 검은 저 페루남자”의 삶에 대한 해석은 상투적이다. 그가 기를 쓰고 날고 싶은 하늘”과 가마우지의 하늘에 대한 비교도 깊이가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워서 “물이 단단해져야 열리는 곳”같은 훌륭한 표현의 효과를 오히려 훼손한다. 가마우지 이야기는 가마우지 이야기로 끝내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김선향
｢곰국을 끓이는 동안｣은 살림살기와 시 쓰기가 양립되기 어려운 주부 시인의 고뇌를 담고 있다. 러브호텔에서 기다린다는 “참을성 없는 애인”이란 어쩌다 찾아온 시상과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살림살기는 시 쓰기를 가로막고, 시 쓰기는 살림을 망친다. 그러나 그 와중에 이 시를 쓰지 않았는가. 시는 늘 그렇게 온다. ｢중년｣은 먼저 늙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인이 제가 맞을 중년을 염려하는 시이다. “그리고는 안도한다, 열 살이나 어리므로”라고 말하지만 그 안도는 짧을 것이다. 허나 어떤 나이에도 그 나이의 행복과 불행이 있다. 중년의 병고도 다른 사건들과 똑 같은 사건이다. 두 시 모두에서 진솔한 일상사의 서술이 흥미롭다.
4월호
김은경
언어가 잘 정리되어 있고, 깊은 사색의 흔적을 보여준다. ｢구름의 해산｣과 ｢24시 셀프 세차장｣, 두 편의 시가 모두 시 쓰기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힌다. ｢구름의 해산｣에서 “탈장한 구름”은 상처가 많은 마음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가리고 변조하는 위안의 자리이다. 그러나 위안은 임시적이다. “먹장이 젖처럼 남아”도는 심정의 멍울은 어떤 창조적 열정이 아니라면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아령칙”은 ‘아령칙하다’라는 형용사로만 쓰기 때문에 ‘아령칙’으로 따로 떼어 쓸 수는 없을 것 같다.) ｢24시 셀프 세차장｣은 밤낮으로 자기 상처를 응시하고 핥는 사람의 고뇌를 알려준다. 말의 순탄한 리듬은 그 고통을 완화하는 방법일 것이다. 깊은 속내를 은유로 가리려 하지 말고 ‘쭉쭉’ 쓰는 것도 상처를 창조적 에너지로 바꾸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 같다.
안명옥
｢제부도 동창회｣는 진솔한 일상의 기록이다. “어느 시인은 자신을 키운 것은 팔 할이 바람이었다고 고백했는데” 같은 구절은 상투적이다. 쉽게 읽히지만 무언가 부족하다. 사색만이 언어를 힘차게 만든다. ｢신발 한 켤레｣ 같은 시는 조촐한 맛이 있다. 생각을 발전시키려고 애써 볼 필요가 있겠다.
김형미
시가 곱다. 선적 명상이나 가야금 연주 같은 고풍어린 활동은 그 자체가 시와 비슷한 향취를 품고 있어서 시적 분위기를 지닌 언어를 자아내는 데 도움이 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시가 사람들에게 부러움 이상의 감동을 주기는 어렵다. ｢물｣에서 ‘마냥’은 낭랑하게 들리지만 용법이 적절하지는 않다. 죽은 “흰둥개”가 너무 쉽게 돌아와 “주인의 마음을 듣는다”는 점도 걸린다. 죽음이야 말로 한 존재가 전적으로 해방되는 계기가 아닐까. ｢여음｣도 어조가 잔잔하다. 그런데 너무 많이 들어온 말 같다. 사실 이런 주제에서 독창적인 언어를 끌어내기는 쉽지 않다. 가야금 연주를 명인의 경지까지 끌어올리기가 쉽지 않은 것처럼.
5월호
고우란
｢高山으로 가는 길을 묻다｣에서, 오체투지하여 고산으로 가려는 열정은 감동스러우나 서술이 혼란하다. 화자가 “왜 고산으로 가야 하는지는 몰라도”라고 말하는데, 읽는 사람은 한 층 더 암담하다. “지상이 다 얼어도 춥지 않을 고산”이라는 말 정도로 그 세계에 대한 그리움의 공감을 독자에게서 끌어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누군가 내게 다가와 신발값이 너무 비싸다고 했다, 몸을 신는 경우는 없는 것이라고” - 필경 오체투지를 표현하고 있을 이 구절은 매우 훌륭하다. ｢분홍 벌레｣는 은유체계도 서술도 상당히 혼란스럽다. 여자의 에로티시즘과 관련하여, 남자에 대한 그리움과 두려움, 남자에 대한 사랑과 원망이 맺고 짜는 관계가 복합적이라는 데 원인이 있겠지만, 사색이 아직 영글지 않은 데도 원인이 있을 것이다.
박경희
｢꿈땜｣과 ｢상강｣은 농촌의 풍정과 늙어가는 부부의 정을 사투리 섞어 구성지게 읊은 시들이다. 재미있다. 다른 말이 필요 없겠다.
김영희
언어가 깔끔하면서도 감칠맛이 있다. ｢점지｣는 남편과 이별하고 이제 홀로 살아가야 하는 한 여인의 처지를 새로운 탄생에 비유한 시로 읽힌다. 비유체계가 조직적이면서도 감각적이고, 난삽한 듯하면서도 선명하다. “양수 같은 따스한 안개가 산자락을 휘감는다” - 이런 구절 참 좋다. ｢치통｣도 일찍 세상을 버린 남편에 대한 연민을 표현하는 시로 읽힌다. “깨금발”과 “까치발”로 찾아오다 “돋움발”로 멈춰서는 한밤의 방문이란 어떤 방문일까. 안타깝고 슬프다. “어둠속 뒤척이던 불면”은 좀 더 순탄한 말로 다시 고쳐 쓰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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