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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어둠을 꿰뚫어 보는 아르고스의 눈
- 이수화론
신기훈(시인)
이수화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발간 소식을 듣고 그 시집의 초고를 받은 나는 한 동안 이 어줍잖은 발문을 쓰지 못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시인으로서, 치열하게 아픔을 시로 승화시켜 내는 이수화 시인의 시를 나만이 독법으로 평을 보태는 것이 또 하나의 오만으로 보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또한 이수화 시인이 안고 있는 아픔을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개인적 기호에 따른 포즈에 지나지 않을까하는 부끄러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수화 시인은 자신의 세 번째 시집을 결과적으로 세상에 내보내지 못하게 되었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자본의 논리에 조종을 받는 출판시장이 그를 외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시집에 앞서 이전의 이수화 시인의 시세계와 연관해 최근의 몇 편의 글을 조망해 보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시각적 장애를 가진 시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 팍팍한 자본의 시대에 무엇보다 예리한 칼날을 겨누고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그의 행보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서이다.
굳이 문학작품을 비평하는 여러 관점 중에서 표현론적 관점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시는 그 시를 낳은 시인의 삶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수화 시인의 시를 살펴보면서 시각적 장애를 가진 그의 육체적 아픔을 배제하고 시를 읽는 것은 출발부터 잘못된 것일지 모른다. 동시에 그러한 선입관으로 인해 그의 시가 구축하고 있는 세계관과 언어를 경직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또한 위험한 일이다.
이수화 시인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2002년 경북대학교 졸업식장에서로 기억한다. 인연인지 모르겠지만 그날 그 졸업식장에서 이수화 시인과 나는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학위과정을 하는 동안 시력이 지속적으로 나빠져 학위논문을 쓰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들었다. 하지만 자신이 목표한 공부를 어려운 여건 하에서도 끝내 해내는 집념을 그는 보여 주었다. 그날 그 북새통 졸업식장에서 이수화 시인은 육체적 불편을 이겨내면서 학위를 수득한 화제의 인물로 많은 언론의 주목을 받은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언론의 속성이 그렇듯 그 ‘화제’는 카메라 조명의 눈부심만큼이나 오래 가지 않았고, 그는 오랫동안 자신을 포박한 어둠과 마주하며 살았다.
돌이켜 보면 대학 선배인 이수화 시인의 시를 읽게 된 것은 80년대 중반 경북대학교의 인문대학 주변에서 열린 시화전에서였던 것 같다. 그 시절 치기에 가득찬 이른바 문학청년이었던 나는 이수화 시인의 시를 보면서, 그 뚜렷한 세계관과 명징한 비유, 그리고 유장한 문체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이수화라는 필명을 가슴 한 켠에 간직하게 되었다. 그후 그의 시를 다시 보게 된 것은 《사람의 문학》 편집위원으로 일하던 중, 읽게 된 그의 첫 시집 『일등아 잘있거라, 칠등은』(1996)을 보면서였다. 그 시집은 산업화의 와중에 쓸쓸히 소외되어가는 많은 민초들의 삶을 다루고 있었고, 점점 나빠져 가는 시력으로 인한 내적 고민과 갈등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그의 두 번째 시집 『꿈은 슬픔을 가로 질러 자란다』(2000)또한 첫 시집에서 보여주었던 문제의식이 시인의 생활 속에서 더 깊이 천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10년의 세월을 격해, 세상에 내보내려고 했던 시집의 초고 또한 장애를 가진 사람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열악한 복지제도에 직접적인 비판을 담고 있다고 생각된다.
최근 시들 중 「우리들의 멀미」는 시인이 천착하고 있는 문제의식과 아픔을 집약해서 보여준다.
흔들리는 뱃전에 기대어
일렁이는 바다를 건너가다가
머리가 어질어질해지고
답답한 가슴이 울렁울렁이는 것은
귓속 평행기관의 놀라운 처세술과
여전히 하늘 먼곳을 향한 두 눈빛이
머릿속에서 우왕좌왕하는 탓이라지만
덜컹이는 차창에 기대어
가파른 산길을 돌아가다가
여린 살갗마다 핏기를 잃고
싸늘한 땀방울 맺히는 등줄기 아래
왈칵왈칵 내장이 뒤집힐 듯
아찔한 멀미에 시달리는 것은
귓전에 맴도는 세상의 바람소리를
눈앞에 아른거리는 그리움이
제대로 따라잡지 못하는 탓이라지만
더듬거리는 발걸음 휘청휘청이며
어두운 비탈을 넘어가다가
마른 입술 사이로 숨길 가쁘고
조여드는 가슴의 요동을 어쩌지 못해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어지러이
비틀거리는 우리들의 멀미는
팽팽히 날선 고막의 떨림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육중한 살아감의 소리들이
터널 같은 귓속으로 사정없이
세차게 불어오기 때문인가요
그런 것이 아니라면
푸른 빛살 꽂히는 창공을 타넘어
새들의 날개를 따라 훨훨 날아가지 못하고
내려앉은 눈꺼풀 아래에서
여전히 또아리를 틀고 앉아
꿈틀꿈틀거리고 있는
아득한 그리움 때문인가요
-「우리들의 멀미」전문.
이 작품은 시인이 평소 간직한 내적 열망이 현실세계 속에서 어떻게 상처로 남고, 세계의 폭력성 속에서 중심을 잡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근본적으로 우리가 멀미를 느끼는 것은 몸이 균형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몸이 본능적으로 회복하고자하는 균형상태가 깨어질 때, 우리의 몸은 그 불일치를 ‘멀미’로 드러내면서 환경에 적응하도록 만든다.
이 작품은 배나 차를 타고 갈 때 멀미를 느끼는 일반인의 경우와 세상의 빛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시인이 겪는 내면의 멀미를 병치시키고 있다. 여기서 시인의 주목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감각의 균형상태가 깨어졌을 때의 멀미가 아니라, ‘귓전에 맴도는 세상의 바람소리를/눈앞에 아른거리는 그리움이 제대로 따라잡지 못하는 탓’임을 보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시력이 정상적인 사람들과는 달리 세상의 풍경과 빛을 모두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나 보이는 것이 적기 때문에 그의 귀는 더 크게 열리고, 세상의 소리는 그의 귀속으로 더 섬세하게 들어온다. 그 소리들은 ‘육중한 살아감의 소리’들인데, 눈으로 그것을 보는 사람보다 귀로 그것을 들음으로써 그는 그 소리들의 파장을 더 섬세하게 받아들인다. 사람들이 ‘귓속 평형기관의 놀라운 처세술’로 그 멀미를 다스리고자 할 때 시인은 어둠 속에서 고스란히 세상의 소리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 소리의 속도와 양을 감당하기에 시인은 너무 따뜻하고 여린 가슴을 지녔다. 그래서 시인은 보이지 않는 세상을 육체의 눈이 아니라 내면의 눈으로 보려고 노력하고, 자신의 안에 ‘꿈틀꿈틀거리는’ ‘그리움’으로 인해 날것의 멀미를 그대로 드러내려고 한다. 세상의 폭력성을 입증하는 것은 멀미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멀미를 멀미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수화 시인에게 시를 쓰는 일은 무엇일까? 그에게서 시는 그의 내면에 간직하고 있는 그리움과 열망의 산물인 것처럼 보인다. 우리의 시가 20세기 말부터 대량화, 소비화의 메커니즘에서 자유롭지 못할 때, 많은 문학인들은 시의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일방적인 시장논리가 문화전반에 침투해 들어올 때, 시는 독립적인 시의 아우라 속에 자기를 유폐시키거나 대중문화의 소비주의에 백기투항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편 상황이 열악할수록 삶의 여러 부면을 정직하게 그려내고, 연대와 소통을 노래하는 시의 책무성은 더욱 커졌다. 이수화 시인이 생각하는 시는 약삭빠르게 시가 세상의 멀미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내부에 있는 멀미를 고통스럽더라도 정직하게 응시하는 것이다. 그 멀미의 괴로움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자본의 논리와 싸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들의 멀미」에서 이수화 시인은 ‘새들의 날개를 따라 훨훨 날아가지 못하’는 자신의 시력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그 날개들을 본다. 그리고 자신의 내면에 있는 그리움을 안고 세상의 소리를 받아들이고, 속도지상주의의 세상을 반성하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시는 세상의 속도에 거는 브레이크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시력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면서부터 이수화 시인이 조금씩 일상적 의미의 꿈을 포기해야 했음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그의 꿈은 ‘사진기 속이 필름처럼/작은 어둠상자 안에/납작하게 엎드려 있’을 뿐 결국 ‘현상되지 않은 얇은 희망’(「꿈」)으로 존재한다. 그는 이「꿈」이라는 작품에서 그 절망감을 ‘구름보다 가벼운 몸짓으로 두둥실/깊고 깊은 어둠을 타넘어/인화지 위에 곱게 내리려던 나의 꿈은//그러나 여린 살갗으로 감당하기에는/너무나 바싹 마른 빛살에 겨워 그만/새까만 어둠 속에 갇히고 말았네’로 토로하고 있다. 빛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안타까운 육체로, 다시 빛이 빼앗아간 ‘꿈’을 이야기하고 있는 아이러니는 우리를 더욱 안타깝게 한다.
그가 대학 재학시절 복현문우회에서 보여 주었던 시에 대한 열정과 세상에 대한 사랑을 참고한다면 그가 꿈꾸었던 꿈의 실체가 무엇이었을까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약자에 대한 사랑이며, 그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힘을 주는 사람으로 사는 삶일 터이다. 그러나 경제학을 전공하고, 세상의 경제적 약자들을 위해 이바지하고 싶었던 그의 꿈은 건강이 허락지 않아 많은 부분 좌절되었다. 그 와중에 그는 엄청난 좌절감을 느꼈을 테지만, 오뚝이처럼 자신의 마음을 다잡고 현실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꿈을 찾아 매진하는 용기를 보여준다. 이수화 시인이 가진 세계관의 미덕은 그가 사회복지관에서 자신처럼 육체적 불편과 고통을 겪는 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삶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이번 시집의 많은 시편들에서 그는 자신이 만난 이들의 상처에 손 내밀고, 그들을 어루만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에는 유달리 ‘어둠’과 관련된 시편들이 많다. 시각장애를 겪고 있는 그가 그만큼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 안간힘 Tm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온전한 시력을 가진 사람이 ‘보지 못하는’ 어둠의 실체를 시를 통해 보여주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가 생각하는 삶은 그 어둠 속에서 작은 희망이나마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것이다. 그는 ‘삶이란 언제나/한밤중 강한 갈증에 목말라 하며/어두운 부엌을 드덤어/약간은 묵직한 손목이 힘을 느끼며/냉장고문을 열었을 때/아스라이 비춰오던/냉장고 불빛과 같은 것’(「냉장고」)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불빛은 냉장고문을 닫고 나면 금새 꺼져버리기 때문에, 세상은 다시 캄캄한 어둠에 둘러싸인다. 냉장고 속에서 적당한 온도로 관리되는 먹거리처럼, 차갑게 식어가는 관계들을 보며 그는 변함없는 자세로 희망을 노래한다. 냉장고의 불빛처럼 ‘우리에게 불빛이란/그처럼 얼어붙은 대지에서/다만 바라보는 것에 존재하는/아득한 이정표일 뿐’이라는 쓸쓸한 시인의 진단은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아득한 거리에 있어 잘 보이지도 않는 그 이정표를 향해 안간힘 쓰며 걷고 있는 이수화 시인은 여러 시편들에서 냉장고 같은 우리 사회의 싸늘한 시선을 고발한다.
우리에게 ‘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본다’는 것은 보이는 대상의 실체를 정확히 진단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눈이 가진 힘(視力)’이 좋다는 것은 현상을 파악하는 데 있어 도움이 되긴 하지만, 현상의 이면에 있는 실체나 진실을 ‘바로 본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이수화 시인은 올바로 보는 것은 ‘보는 것’너머에 있는 상상의 세계를 충분히 ‘볼 줄 아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시각장애가 있는 사람이 왜 영화를 볼까를 의아해하는 사람에게 ‘하지만 그대여/드리워진 두 눈꺼풀 너머로 펼쳐지는/넓고 넓은 상상의 세계를/누가 감히 비교할 수 있단 말인가’(「두 눈 감고 영화보기」)라며 선입관을 뒤집어 보인다.
이수화 시인은 이번 시집의 여러 시편에서 장애인이 겪는 사회의 차별에 대해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다. 2008년부터 발효된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르면 ‘모든 생활영역에서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장애를 이유로 차별받는 사람의 권익을 효과적으로 구제함으로써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권 실현을 통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실현’을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현실은 이러한 선언적인 목표와는 한참 따로 가고 있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대책이 구체화되지 않고 있다. 시인은 이러한 현실의 문제를 누구보다 그 현장에서 아픔을 겪는 사람의 입장에서 날카롭게 지적한다.
꽃향기 짙은 바람 그리워
오랜 흐느낌을 딛고
가까스로 문을 나선 거리에는
날선 풍경들이 버티고 서있다.
파헤쳐진 길과 깨진 블럭들
인도를 질주하는 오토바이와
아무데서나 불쑥 튀어나오는 자동차들
난데없이 솟아난 갖가지 구조물들
계단이 많고 복잡한 지하철과
정해진 곳에 제대로 서주지 않는 버스
택시는 못본 척 슬그머니 지나가고
낯선 눈길들에 여린 살갗 찔리며
삐걱거리는 무릎은 사정없이
바닥으로 부서져 내리는데
허리를 휘감는 싸늘한 바람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휭하니 거리를 지나간다.
-「거리에서」 전문.
이 작품은 과연 장애인들을 우리 사회의 온전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고, 그들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 우리 사회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를 되묻게 한다. 어렵게 용기를 내어 거리에 나서지만 거리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깨진 블록’, ‘오토바이’, ‘자동차’, ‘계단’과 같은 ‘날선 풍경’이며, 장애인을 바라보는 일반 시민들의 ‘낯선 눈길’이다. 비장애인들은 단 몇 시간의 장애체험을 통해서도 몸은 녹초가 된다고 하는데, 일생을 시인과 같이 장애속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에게 세상은 그야말로 가는 곳마다 흉기와 다름없을 것이다. 이러한 불편은 복지단체나 보건복지부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먼저 우리 모두가 마음을 열고 장애를 가진 사람이 온전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다가가지 않는 한 결코 이런 불편들은 해소되지 않는다. 이수화 시인은 누구보다 이러한 장애인에 대한 사회와 일반인의 냉대를 잘 알고 있지만, 위축되지 않고 그러한 사회적 모순을 적나라하게 지적해 낸다. 어쩌다 장애를 가진 사람을 도와 주겠다는 사람도 ‘<떠날 때는 말없이>’(「버스를 기다리며」) 가버리는 현실, 점자도서관이 있다지만 영어단어 하나를 찾으러 점자도서관에 가서 단어를 찾고 나니 하루가 다 가는 현실(「점자도서관」)을 그대로 드러내며, 우리의 복지정책이 명목상의 시혜나 전시효과에 그치는 것이 아닌가를 적실히 되묻고 있다. 이수화 시인의 이러한 지적이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것은 자신의 생생한 체험을 통해, 우리들의 내부에 있는 이기심과 선입관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이처럼 장애를 가진 사람을 낙오자로 여기고 소외시키는 것은 효율성을 중시하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일상화된 결과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사물과 사물이 관계로 치환시키기 때문에 사물화를 필연적으로 초래한다. 이러한 사물화는 가시적이고 물질적인 관계를 승인하고 확대하는 결과를 낳는다.
가진 것은 몸뚱이 하나뿐인 삶
노동력을 팔지 않으면
아무 것도 먹을 수 없는 세상
어느 날 부터는 맵시와 표정을 팔라 하고
어느 날 부터는 벗은 몸을 팔라 하더니
급기야는 영혼마저 팔아야 하지 않을지
-「아 하 자본주의여 아 악」부분.
시인이 이 작품에서 풍자하는 것은 끊임없이 상품화를 심화시키는 자본주의적 경제구조의 비정성이다. ‘노동력’에서 출발해 ‘영혼’마저 팔아야 하는 자본주의 사회는 끊임없이 사회내적 주체를 억압한다. 자본주의 사회는 ‘사용가치’보다 ‘교환가치’를 중시하는 사회이며, 이때 교환가치는 원칙적으로 질보다 양을 우선시 하는 사회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는 시장의 타율적인 가치에 지배당하게 된다. 위 시의 제목이 ‘아 하 자본주의’로 시작하여 ‘아 악’이라는 비명으로 끝나고 있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닭」시 연작에서 볼 수 있듯이 ‘생산성이 전부인 것 같은 세상’(「닭3」), 혹은‘늙거나 생산성이 떨어진 녀석들 모두/라인에서 빼내어 구석에 가두어두고/아무 것도 먹이지 않고 금식을 시키’(「닭4」)는 비정한 현실에 대한 풍자이다. 결국 장애를 가진 사람에 대한 편견 또한 이러한 자본주의적 가치, 다시 말해 효율성 논리의 결과임을 시인은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가 이번 시집에서 보다 직접적으로 문제 삼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에 일반화된 ‘차별문제’이다. 장애인을 위해 지출하는 예산이 그 수혜자의 범위를 볼 때, 비효율적이라는 정책논리는 철저히 성장 우선 논리에 바탕해 있다. 그러나 정책수립에 영향을 주어야 할 비장애인들마저 이 논리를 당연시하고, 보이지 않는 차별에 공모하거나 가담하고 있기 때문에 장애인들이 인권은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 이수화 시인은 이런 우리 사회의 복지정책을 ‘아무도 믿지 못하고/오로지 서류만으로 평가하고/책임이 회피되는 나라에서/용의주도함과 순박함 사이에서/가짜는 어디서나 득실거리’(「아, 복지여」)는 사회라고 진단한다.
또한 그는 함께 돕고 살아야 할 장애인들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차별이 있으며, 그것이 심리적 박탈감을 낳는 원인이 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직접 경험을 통해 체화하거나, 당사자가 아니라면 그 차별의 아픔을 짐작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매우 날카로운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세제혜택을 통해 장애인들의 고용을 촉진하고 있다며 홍보하고, 장애인고용을 통해 세제혜택과 기업의 이미지 제고를 노리는 기업주가 있지만 실상은 그들의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이수화 시인이 개탄하는 것은 ‘시각장애인을 위해 일한다는 곳에서조차/중증장애인을 받아들이지 않고/장애가 심하지 않은 사람만을 원하는 현실’(「어떤 일자리」)이며, ‘어딘가 취직이라도 할라 치면 모두들 장애가 심하지 않는 사람들을 원하’(「1급 장애인」)는 현실이다. 그는 이 삭막한 현실의 도시를 ‘비탈 도시’로 명명하며, 이 메마른 비탈도시에서 ‘별빛 하나 반짝이지 않는/막막한 세월 앞에서 우리들은/또 얼마나 버둥거려야 하’(「어떤 일자리」)는지를 우리에게 묻고 있다.
그래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진정으로 하나 되는 소통임을 시인은 역설하고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일회적 도움이나, 연민이 아니다. 당당한 사회적 주체로 함께 손잡으려는 사람들의 용기이며, ‘작은 마음 서로 나누며/길을 같이 걸어가는 일’(「자원봉사자」)이다. 그래서 시인은 직접 삶의 현장에서 만난 이웃들을 껴안고 그들을 가슴으로 만난다. ‘진희’, ‘용범이’, ‘미선이’, ‘수현이’, ‘영지 누님’, ‘수연이’, ‘현정이’, ‘민희’, ‘김할머니’, ‘박씨’ 등 여러 우리 사회의 그늘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삶을 그는 시화하고, 그들의 절박한 아픔에 귀기울인다. 그것은 이수화 시인이 가진 따뜻한 마음과 사랑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의 소통방식이 소외된 이들에게 실질적으로 다가가지 못하면서 겉돌고 있음을 드러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내 사랑의 전부는
때절은 너의 손을 씻기는 것뿐이었음을
엄마가 보고 싶은 어린 너에게
울먹이다 지쳐 쓰러진 여섯 살의 눈망울에게
내가 줄 수 있었던 사랑의 전부는
건강하게 자라달라는 한마디 말뿐이었음을
철없는 작은 어깨를 바라보며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사랑의 노래」부분.
이 시는 어린 딸을 두고 떠나 버린 어머니가 그리워 눈물 흘리는 여섯 살 계집아이를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을 다루고 있다. 주정뱅이 아버지와 정신을 놓은 할머니 사이에서 이 여자아이가 감당해야 할 시간을 생각하며 시인은 진심으로 가슴 아파한다. 그리고 ‘때절은’ 그 여자아이의 손을 씻기면서 자신의 힘으로 해줄 수 있는 것이 적다는 생각에 안타까워 한다. 이처럼 이수화 시인은 관념적으로 당위적 사랑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 속에서 조금씩 이 세상의 빛이 회복될 수 있음을 확신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보이지 않는 눈’으로 끝까지 사회의 어둠을 ‘보는’ 존재이다. 그것은 마치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아르고스의 눈을 연상하게 한다. 아르고스(Argos)는 백개의 눈을 가진 거인으로서, 잠을 잘 때도 두 개의 눈만 감는다. 언제나 깨어 있는 그의 눈빛은 그가 지켜야 할 대상을 직시하고 있다. 이수화 시인을 아르고스에 비유하는 것은 그가 장애인을 비롯한 우리 시대의 소외된 사람들의 곁에 든든한 지킴이로 있고자함이며, 자기가 본 것을 시를 통해 되살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그가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나아갈 방향은 진정한 소통을 꿈꾸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서로의 마음을 물방울처럼 열고 합쳐지는 것이다.
빗물방울은 아무래도
홀로 있기가 힘겨운 모양입니다.
빗물방울은 아무래도
홀로 있어선 안되겠나 봅니다.
아득한 하늘 저편에서
저마다의 부푼 꿈을 안고
맑은 얼굴 한껏 뽐내며
힘차게 달려 왔을 텐데도
풀잎이 흐느끼면
기대어 이슬이 되어 주고
메마른 바람 휘청이면
촉촉한 미소가 되어 주고
그대 그리움에 사무치는 날이면
소리 없는 눈물이 되어 주는
그러다가
그러다가
작은 어깨 걸고 걸어
세찬 강물이 되는
빗물방울은 아무래도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가 봅니다.
-「빗방울 연가1」 전문
이 시에서처럼 사람들 모두가 ‘빗물방울’이 된다면, 우리 모두는 그 풍요한 생명의 힘으로 죽음의 세상을 삶의 세상으로 바꾸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만 된다면 서로가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물처럼 섞이면서 더 큰 물살이 되는 세상이 만들어질 것이다. 이수화 시인은 이전의 여러 시편에서 이 물의 이미지를 통해 건강한 세상의 모습을 그려 보인 바 있다. ‘불’의 이미지가 ‘죽음’과 ‘소멸’의 상징을 가지고 있다면 물의 이미지는 ‘생명’과 ‘소생’의 상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번 시집의 다른 시편에도 이 풍성한 물의 이미지는 빈번히 쓰이고 있다. 이를테면 ‘당신과 내가/서로에게 스미고 스미는/작은 빗방울이 아니라면/우리의 노래는/마른 눈물이고 말겠지요’(「빗방울 연가2」)나, ‘땅속 어느 깊은 곳으로부터 물이 모이듯/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고/항아리에 물을 길어 저마다 집으로 돌아가듯/서로의 가슴에 이야기를 채우던 곳’(「우물」)과 같은 표현에서는 물이 가진 연대와 공동체의 가치가 더욱 구체화하고 있다.
흔히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적이 없어진 시대를 살고 있다는 착각을 하곤 한다. 이를테면 파괴할 것과 새로이 세워야 할 것이 분명했던 과거에 비해 활을 관통시켜야 할 표적이 없어졌다는 판단이 그런 착각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신자유주의와 더 교묘해진 자본주의적 논리의 덫에 결려 보이지 않는 무수한 적과 마주하며 살고 있다. 그것은 삶 속에서 실재성과 사랑이 결핍된 사회가 되었음을 말한다. 80년대 이래 사회가 제도권 체제에 대한 해체 내지는 파괴와 새롭게 지향해야 할 체제에 대한 믿음의 언어들이 있었다면 지금의 사회는 일상화된 소비사회 안에서 이미지만 현란한 사회이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금방 시각적 피로를 느끼며, 끊임없이 색다른 자극을 찾는다.
그리고 많은 시인들은 지금 자본주의의 무서운 심연을 힐끗거리면서도 그것의 공포를 요설과 장광설로 풀어놓고 있으며, 그것을 시라고 믿는다. 이제 이러한 사회에서 시가 어떻게 비판의 몫을 담당할 것인가가 우리 시대 시인들의 화두이다. 지금은 분명 시적 매너리즘이 횡행하는 시대이며, 자본의 순환 운동 속에 문학이 함몰되어가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때 이수화 시인의 시가 가진 미덕은 육체적 불편과 삶에 대한 절망이 아니라, 아르고스처럼 현실을 직시하고, 가장 가까운 것에서부터 시적 사랑을 실천하는 용기에 있다. 이수화 시인은 현실을 장황하게 제시하지 않는다. 그는 담담히 고백하듯 일상을 돌아보고 은근한 시선으로 외롭고 힘든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손 내민다. 그는 남들만큼 세상의 사물을 ‘보지 못하지만’, 언제나 쓸쓸한 사람들의 보금자리를 ‘본다’. 그리고 그것이 시이자, 삶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이수화 시인의 변함없는 시적 열정과 함께 그의 시를 통해 따스함을 얻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앞으로도 쓸쓸한 사람들의 ‘손을 씻으며’ 아르고스처럼 마음의 눈을 뜬 채 햇살을 향해 가는 그의 여정이 자본의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더 눈부신 시적 성취로 이어지기를 기원한다.
사랑은 그런 것이지./강한 빛살에 두 눈 멀어도/ 길고 긴 어둠의 터널 너머/작은 빛줄기를 향해/
말없이 걸어가는 것이지. -<햇살 앞에 서면> 부분.*
□ 신기훈
19941년 『심상』등단, 계간 『사람의 문학』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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