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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아려본 슬픔
정철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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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스물둘
나는 스물하나
학교도 마치기 전에
우리는 눈이 맞았지
입대하던 날 훈련소 정문까지 쫓아와
내 짧은 머리를 매만지던 당신의 손길이
풀밭의 메뚜기처럼 아직도 툭툭 불거지는데
철없는 남편을 믿고 따라나선 곳이
반지하 단칸 셋방
당신은 까맣게 탄 곤로 심지를 가위로 자르며
눈시울을 적셨고 후룩후룩 라면 가닥으로
첫아이 입덧을 견뎠지
그때 우리는 다 살아버린 것이지
서랍장 위에서 꽃병이 떨어졌을 때
산산조각난 파편이
바로 아래서 잠자던
포대기 아기를 용케 피해간 순간
우리는 숨을 멈추고
서로의 얼굴을 멀뚱멀뚱 쳐다봤지
우리가 아이를 낳았으나
아이는 벌써 우리 것이 아니라고
삼신할매가 우리를 빤히 쳐다보고 있을 거라며
파편을 줍던 손이 얼마나 떨리던지
헤아려본 슬픔으로
오늘은 그렇게 내가 춥네
너무 일찍 살았기에 이리도 늦게 산다는 것인지
방 문을 열면 시멘트 담벼락 틈새로
노란 얼굴을 내밀던 민들레의 시절을 살았는데
나는 어느 날 너무 멀리 당신을 떠나왔지
왜냐고 묻지는 말아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고
내가 나를 잃었으니
몇 년 혹은 몇 달
나는 잃어버린 나의 행방을 생각하지
뒤늦게 집을 찾아왔는데
나는 차마 문을 두드리지 못하네
창문에 불은 꺼지고
제발 당신이 살아 있기를
정철훈1959년 전남 광주 출생. 1997년 창작과비평 봄호에 <백야> 등 6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살고 싶은 아침] [내 졸음에도 사랑은 떠도느냐] [개 같은 신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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