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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전야
김규성
날마다 전화 점호를 하는 친구, 해마다 보릿가실 때면 보리 한 섬, 벼 수확 때면 잘 손질한 쌀 한 섬을 연하우편처럼 보내 온다 나도 심심하면 이것저것 챙겨 속달우편으로 보낸다 그러면 친구는 또 "평생 자네 은공을 어쩌고 갚는 당가"하고 엄살한다
도시에 머물면서부터 부동산이라곤 아버지 묘소와 작고 낡은 아파트뿐인 내게도 제법 전답이 생겼다 친구는 진짜 주인에게 보고라도 하듯 수시로 농사 근황을 설명하며 자기 전답을 일러 나에게 "자네 논, 자네 밭"이라고 귀에 달콤한 못을 박는 등살에
그 농사가 올해는 대풍이라고 한다 헌데 하필 태풍이 몰려온다고 한다 친구는 "자네 벼, 피해 없도록 하늘에 기도해 주소"하며 가만 웃는다, 나는 "비는 어쩔 수 없지만 그보다 더 고얀 바람만은 피하게, 하느님과 타협을 봤네" 하며 따라 웃었다 허나 웃을 일이 아니었다금수강산이 어둡고 숨가쁜 태풍전야를 치르고 있었다 저 벅찬 우리 것이
김규성-시인. 전남 영광 출생. 200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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