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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유실천위원회] [집회] 세월호 연장전 작가 행동 '4.16 낭독회'
이름 자유실천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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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와 슬픔을 잊지 않기 위한 문화예술인 연장전에 첨려하는
작가 행동이 15일 2시부터 광화문 세월호광장에서 열립니다.
작가와 시민이 세월호를 이야기하는 자리이니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망각은 죽음보다 더 깊은 절망입니다
작가들은 시민들과 함께 세월호 참사의 슬픔을
기억하고 기록할 것입니다.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모든 문화예술인들의 <세월호, 연장전>

 

4시간 16분 낭독·음악회

기억하라, 기록하라

 

 

●일시 : 2014년 11월 15일 토요일 오후 2시 30분

●장소 : 광화문 세월호 광장 야외무대

 

주관 :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 세월호 게릴라음악인 / 선언동참 문학인들

후원 : 문학동네 『눈먼 자들의 국가』

[차례]

 

4시간 16분 낭독·음악회

 

‘기억하라, 기록하라’

 

 

1부

사회자 : 김근

▪ 오프닝 음악|

▪ 여는 시|백기완

▪ 시 낭송|권현형, 송경동, 양은숙, 임동확, 임성용, 함민복

▪ 산문 낭송|이성혁

▪ 시 낭송|김사이, 김은경, 유병록, 최현우, 진은영, 심보선

▪ 산문 낭송|윤정모

▪ 클로징 음악|

 

2부

사회자 : 홍기돈

▪ 오프닝 음악|

▪ 여는 시|정우영

▪ 산문 낭송|박선희

▪ 시 낭송|신철규, 이용임, 이진희, 이영주, 이영광

▪ 산문 낭송|백가흠

▪ 클로징 음악|

 

 

3부

사회자 : 서영인

▪ 오프닝 음악|

▪ 여는 산문|이시백

▪ 산문 낭송|신혜진

▪ 시 낭송|김일영, 정세훈, 허은실, 김선우

▪ 산문 낭송|공선옥

▪ 클로징 음악|

 

에필로그

▪ 닫는 공연|이애주

▪ 닫는 말|이시백

 

● 출연 : 시인|권현형, 김근, 김사이, 김선우, 김은경, 김일영, 백기완, 송경동, 신철규, 심보선, 양은숙, 유병록, 이영광, 이영주, 이용임, 이진희, 임동확, 임성용, 정세훈, 정우영, 진은영, 최현우, 함민복, 허은실

소설가|공선옥, 박선희, 백가흠, 신혜진, 윤정모, 이시백

평론가|서영인, 이성혁, 홍기돈

무용인|이애주

연극인|

음악인|고성휘, 김유진, 박정환, 정미영, 현미

● 연출 : 최지인, 한송이

부러진 손톱, 부러진 날개

-팽목을 위한 ode 416

 

권현형

 

 

 

창문마다 창턱마다 분홍의 부러진 손톱이

부러진 날개가 놓여 있었다

봄 소풍 간다고 미용실에서 가다듬은

네 싱그러운 머리카락을 초여름 팽나무 잎사귀는 닮았다

 

이젠 바라보기에도 고통스러운 말, 팽목

 

씩씩한 척 지금껏 배워온 수학의 기울기 공식으로

기울어져 가는 배를 분석하고 있는 순간

슬리퍼를 벗어놓고 구명을 기다리는 순간

네 맨발은 불안을 울음을 참고 있었다

 

지구의 가장자리를 장난스럽게 걷다가도

엄마가 기다리는 저녁으로

밥 냄새가 나는 식탁으로 무사하게 돌아오던 너

힙합을 추듯 아파트 계단을 두 칸 씩 세 칸 씩

건너 뛰어오르던 리드미컬한 발

 

낯선 항구에서 오지 않는 어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너희들은 의심하지 않았으므로 영원히 돌아올 것이다

 

손톱이 빠지고 손가락이 부러지도록 살고 싶어 했던

너를 그냥 보낼 순 없다

드라이기로 젖은 발을 말리자

너무 배고프니까 밥 먼저 먹고 머리카락 말리자

또 감기 걸리겠다

 

그렇게 오래 물속에 바깥에 있지 말고 얼른 집으로 돌아와

세상에서 가장 쓴 감기약을 먹이기 전에

네가 삼키기 싫어하는 알약을 먹이기 전에

 

이대로 가면, 이대로 네가 가면

살아남은 자들의 손과 발과 심장은

이대로 꽝꽝 얼어붙어버릴 것이다

모든 계절은 추운 계절의 시작이 될 것이다

낮술

 

김사이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는 휴가철

문이란 문은 내 마음의 문까지 모두 열어놓고

옥탑방 평상에 앉아 더위를 들이킨다

 

어디로 갔을까

세상의 온갖 소리들이 어디로 갔을까

소름끼치는 불안

비행기 자동차 소리 왁자지껄 사람들의 말

몸을 열고 귀를 기울여 보아도

시간이 멈춘 곳

하늘과 땅 사이 바람의 길

소리들 세상에서 튕겨져 나왔나 보다

 

무엇을 꿈꾸는가

시끌벅적해야 사람 사는 곳이라고 안심하면서도

낯설고 별들이 속닥거리는 소리까지 귀찮다가

허겁지겁 소리들을 찾아가는

알 수 없는 게 마음 안인지 바깥인지

괴물 같은 괴물보다 더한 삶의 비밀

자꾸 자꾸 밑바닥이 드러나는 얄팍한 진실

알 것 같고, 안다고, 이해한다고 하는

모든 순간들, 그 문장들이

폭풍처럼 밀려와 나를 덮친다

 

벗기면 벗길수록 어두워지는 인간의 시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며 술을 붓는다

젠장 날은 아직 환하고

 

그해 봄 처음으로 神을 불렀다

 

김선우

 

 

 

1

그 아이가 겨우겨우 당신을 이해할 때라도

심지어 당신에 대해 냉담할 때라도

당신은 끝내 그 아이를 이해해야 하는 존재라고

 

그 아이가 겨우겨우 당신을 사랑하거나

심지어 당신을 미워할 때조차

당신은 끝내 그 아이를 사랑해야 한다고

 

그것이 신의 존재 이유라고 나는 소리쳤다

 

세상에 대해 아무런 죄 없는 그 아이를 살려내라고

이레 전 당신을 부른 내 목소리가 지금 나에게 닿는다

찢기며 금이 간 나의 내부가

수습할 수 없이 깨져버린 거울처럼 조용하다

 

불씨 한줌을 꼭 쥐고 바다 속으로 내려갔다

차마 입을 열 수 없는 슬픈 노래가

바다거품처럼 떠돌았다

차가운 배 안에 불을 묻었다

 

이레 동안 당신을 불렀고

이레 후 당신을 떠나보냈다

 

불모의 신을 호명해 눈물이 바닥날 때까지 울다가

면죄부를 쥐어주고 돌려보낸 후

너덜너덜해진 그해 봄이 기울기 시작했다

 

차갑게 언 아이들이 물속으로부터 떠올랐다

 

2

흐린 펜으로 봄의 목록을 적어갑니다

지금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기운을 차릴 것

기억할 것

노트를 마련할 것

증언할 것

눈앞의 아이들을 위해 작은 풀잎 창이라도 매일 닦을 것

 

언제나 인간으로부터 면죄부를 받아온 신이

먼데서 부끄럽고 슬픈 얼굴로 입을 열었다:

 

면죄부를 주어서는 안 되는 곳을 잊지 말아라.

 

면죄부를 받은 값으로 그가 우리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씀이었다

알 수 없는 것들

 

김은경

 

 

 

오늘도 우리는 구름을 흠모하고

곧 탄로날 거짓말을 공모하네

 

그 수북한 라이터는 매일 어디로 사라지나

 

물은 누가 마셨나

펜은 어디 두었나

흡혈귀 같던 장미는 누가 썩게 놔뒀나

 

햇반은

라면은

어느 구석에 있다가

유통기한 지나서야 찔끔 나타나는가

 

이 많은 바람은 누구의 부역인가

태풍은 어디서 오는가

안남마을 사과나무 과실은 누가 달았나

자욱한 안개는 누구의 몫인가

남은 자의 유산인가 떠난 사람의 상흔인가

 

만장 같은 시신은 대체 누가

나무에 매달아 놓았나

혐의는 추억처럼 펄럭인다

눈부시게

뻔뻔하게

안개속의 풍경

 

김일영

 

우리는 바람이 불지 않아도 떠도는 낙엽

안개를 건너며 너는

찬밥 같은 내 손에 입김을 쥐어주며 물었어

 

바다를 떠돌다 만난 나뭇잎들은

너무 깊이 젖어 있어 서로를 부를 수 없겠지

 

돌아갈 수 있는 것들은

눈동자를 가진 것들뿐

안개 밖을 보던

최후의 눈동자에 물기가 배기 전

바다를 건널 수 있을까

 

죄 없이 죽은 숨결처럼 바람도 없이

안개는 누구를 위해 바다를 숨겨두는 것일까

 

추억이 있는 것들만 눈을 가진 안개 속에서

우리를 데려가는 것의 뒷모습은 보이지 않고

이제 언 손을 어디에 두어야 할까

 

우리는 바람이 불지 않아도 떠도는 낙엽

안개가 걷히면 가라앉을 낙엽

왔구나 때가 왔다니까

 

백기완

 

 

너네들이 원통하게 학살당한 뒤에도

저 뻔뻔스러운 개망나니들은

이 세상을 몽땅 죽음의

어두움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하지만 분노의 서돌은

짓밟힐수록 불꽃으로 일어나는 것이니

그 불씨로 하여 저 잠자는 의기들을

아예 활화산으로 일으키시라

 

놈들이 끝까지 거짓의 폭력으로 나선다면

우리들은 생명의 복받침으로

놈들이 끝까지 협잡으로 속이려 든다면

우리들의 눈물과 피땀은 차라리 몽치와 뚝메가 되어

남김없이 자근자근 짓모을지니

 

아, 통한의 어린 넋이여, 아, 통한의 어린 넋이여

얼마나 차가우냐 하지만 그 잠 못 드는 눈빛으로

어영차 돌아와 저 거짓의 불야성을 와장창

질러버릴 때가 왔구나

요만큼도 참아선 안 되는 때 그때가 왔다니까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

 

송경동

 

 

 

돌려 말하지 마라

온 사회가 세월호였다

오늘 우리 모두의 삶이 세월호다

자본과 그 권력은 이미

우리들의 모든 삶에서 평형수를 덜어냈다

사회 전체적으로 정규적 일자리를 덜어내고

비정규직이라는 불안정성을 주입했다

그렇게 언제 침몰할지 모르는

노동자세월호에 태워진 이들이 900만명이다

사회의 모든 곳에서

‘안전’이라는 이름이 박혀 있어야 할 곳들을 덜어내고

그곳에 ‘무한 이윤’이라는 탐욕을 채워 넣었다

이런 자본의 재해 속에서

오늘도 하루 일곱 명씩이 산재라는 이름으로

착실히 침몰하고 있다

생계비관이라는 이름으로

그간 수많은 노동자민중들이 알아서 좌초해가야 했다

그렇게 수없이 많은 이들이 지하선실에 가두어진

이 참혹한 세월의 너른 갑판 위에서

자본만이 무한히 안전하고 배부른 세상이었다.

그들의 안전만을 위한 구조변경은

언제나 법으로 보장되었다

무한한 자본의 안전을 위해

정리해고 비정규직화가 법제화되었다

돈이 되지 않는 모든 안전의 업무가

평화의 업무가 평등의 업무가 외주화되었다

경영상의 위기 시 선장인 자본가들의 탈출은 언제나 합법이었고

함께 살자는 모든 노동자들의 구조신호는

외면당했고 불법으로 매도되고 탄압당했다

더 많은 이윤을 위한 자본의 이동은 언제나 자유로운 합법이었고

위험은 아래로 아래로만 전가되었다

그런 자본의 무한한 축적을 위해

세상 전체가 기울고 있고 침몰해가고 있다

그 잔혹한 생존의 난바다 속에서

사람들의 생목숨이 수장당했다

그런데도 가만히 있어라고 한다

돌려 말하지 마라

이 구조 전체가 단죄받아야 한다

사회 전체의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이 처참한 세월호에서 다시 그들만 탈출하려는

이 세월호의 선장과 선원들을 바꾸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이 위험한 세월호의

선장으로 기관장으로 갑판원으로 조타수로 나서야 한다

이 시대의 마지막 남은 평형수로 에어포켓으로

다이빙벨로 긴급히 나서야 한다

이 세월호의 항로를 바꾸어야 한다

이 자본의 항로를 바꾸어야 한다

검은 방

 

신철규

 

 

슬픔의 과적 때문에 우리는 가라앉았다

슬픔이 한쪽으로 치우쳐 이 세계는 비틀거렸다

 

신의 이름을 부르고 싶었지만 그것이 일반명사인지 고유명사인지 알 수 없어 포기했다

기도를 하던 두 손엔 검은 물이 가득 고였다

 

가만히 있으면 죽는다

최대한 가만히 있으려고 할수록 몸에 힘이 들어갔다

나는 딱딱해지고 있었다

 

해변에 맨발로 서 있던 유가족

맨살로 닿을 수 없는 거리가 그들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죽을 때까지 악몽을 꾸어야 하는 사람들의 뒷모습

학살은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꾸는 악몽 같은 것

 

손가락과 발가락까지 피가 돌지 않고

눈이 심장과 바로 연결된 것처럼 쿵쾅거렸다

 

모든 것이 가만히 있는 곳이 지옥이다

꽃도 나무도 시들지 않고 살아 있는 곳

별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멈춰서 못처럼 박혀 있는 곳

죽은 마음, 죽은 손가락, 죽은 눈동자

 

위로받아야 할 사람과 위로할 사람이 한 사람이라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기도밖에 없는 것인가

우리는 떠올라야 한다

우리는 기어올라야 한다

누구도 우리를 끌어올리지 않는다

 

가을이 멀었는데 온통 국화다

가을이 지난 지가 언젠데 국화 향이 이 세계를 덮고 있다

컴컴한 방에 검은 비닐봉지를 쓰고 앉아 있는 것처럼 숨이 막힌다

 

꿈속에서도 공기가 희박했다

해변은 제단이 되었다

바다 가운데 강철로 된 검은 허파가 떠 있었다

4월

심보선

 

 

나는 너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미지의 별빛과제국 빌딩의 녹슨 첨탑과꽃눈 그렁그렁한 목련 가지를창밖으로 내민 손가락이 번갈아가며 어루만지던 봄날에나는 너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손가락이 손가락 외에는 아무것도 어루만지지 않던 봄날에너의 소식은 4월에 왔다너의 소식은 1월과 3월 사이의 침묵을 물수제비뜨며 왔다너의 소식은 4월에 마지막으로 왔다5월에도 나는 너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6월에는 천사가 위로차 내 방을 방문했다가"내 차라리 악마가 되고 말지" 하고 고개를 흔들며 떠났다심리 상담사가"오늘은 어때요?"물으면 나는 양미간을 찌푸렸고그러면 그녀는 아주 무서운 문장들을 노트위에 적었다나는 너의 소식을......물론 7월에도......너의 소식은 4월에 왔다너의 소식은 4월에 마지막으로 왔다8월에는 어깻죽지에서 날개가 돋았고9월에는 그것이 상수리나무만큼 커져서 밤에 나는 그 아래서 잠들곤 했다10월에 나는 옥상에서 뛰어 날아올랐고11월에는 화성과 목성을 거쳐 토성에 도착했다우주의 툇마루에 쭈그리고 앉아 저 멀리 지구를 바라보니내가 가지런히 벗어놓은 신발이 늙은 개처럼 엎드려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12월에 나는 돌아왔다그때 나는 달력에 없는 뜨거운 겨울을 데리고 돌아왔다너의 소식은 4월에 왔다4월은 그해의 마지막 달이었고 다음 해의 첫번째 달이었다나는 너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아주 오래 기다리고 있었다​

광화문에 눕다

 

양은숙

 

 

 

내 멱을 따라,

아니면 내가 너의 멱을 따리,

 

풀에 대한 학살과 칼에 대한 분노를 이기지 못해

모가지를 내어라, 모가지를 내어라 외치며

가라앉는다, 가라앉는다,

남근 같은 이순신과 조잡한 세종 동상이 겹겹으로

청청한 나라를 가로막는 광화문의 불볕 여름

진실을 내어라, 진실을 다오,

나라가 가라앉고 나도 가라앉는다

 

이글대는 하늘 아래 누워버린 땅 밑에서 주기적으로

지하철이 지나가고 땅이 흔들렸다 나라가 흔들렸다

중장비처럼 덮치는 교통지옥

소음과 굉음 속에 달아오른 아스팔트 위

지친 노인처럼 꿀꺽, 목울대의 마른 침을 삼키고

광화문에 눕다

 

또다시 보름달이 뜨리

진실을 다오, 보름달이 뜨리

적청색 하늘을 소리 없이 올려다보며 내가 눕고

나의 나라는 광화문에 눕다

 

자,

내 멱을 따라,

아니면 내가 너의 멱을 따리,

유병록

 

파도가 간다

 

파도가 온다

며칠 먼 곳 다녀오다가 집이 보이는 곳부터 달리기 시작하는 소년처럼

여기에 가까워진다

 

기다리는 품에 안길 듯이

안기어 큰 눈으로 지난밤의 이야기 늘어놓을 듯이

숨 가쁘게 달려오는데

 

그저

떠난다는 마지막 인사를 남기러 온 것처럼

먼발치에서 머물 뿐

 

들려주지 않는다. 지난밤의 이야기

데려다주지 않는다. 지난밤의 놀란 눈동다들을

돌려주지 않는다. 지난밤을

 

지난밤은 이미 지난밤

그 이야기들은 꺼내지 않은 채

잠시 머물다

 

파도는 간다

너는 가다

 

지난밤의

비명과 기도와 눈물과 원망과 분노와 사랑을 그대로 안고

멀어지는 모습

 

그저

지각하지 않으려 학교로 뛰어가는 소년 소녀처럼

서둘러 출근하는 회사원처럼

저녁이면 아무 일 없이 귀가할 것처럼

 

파도가 간다

고개를 돌려 손 한번 흔들어주지도 않고

심장이 아픈 자여, 기억해주세요

 

이영광

 

 

 

아이들은 물속에서 이렇게 전했습니다

살고 싶어요 수학여행 큰일 났어요 나, 울 것 같아요 실제 상황이야……

죽임이 그 진저리나는 아가리를 벌리고 목을 죄어오던 시간에

막연하지만 무언가가, 국가라고 부르던 그것이 손 내밀어주리라고 아이들은

동영상을 찍고 있었습니다 움직이고, 웃고, 말하는 증명사진들을 보내왔습니다

걱정 돼요 한 명도 빠짐없이 구조될 수 있기를, 아멘…… 저 죽는 줄 모르고 어린것들은

다른 이를 기도해주고 있었습니다, 또 이렇게 소스라쳤습니다

기울어지고 있습니다 잠기고 있습니다 무서워요 난 꿈이 있는데……

 

그래요, 꿈이 있었는데, 꿈이라는 링거를 맞으며 미래를 당겨 살던 그 철부지들이

가만히 있어라 절대 이동하지 말고 기다리라는, 잡음 범벅 아수라장을 뚫고

내 구명조끼 네가 입어, 라는 천상의 목소리를 물밑에서 타전했을 때, 그때

그, 구하러 와줄 거야, 라는 단말마를 못 읽은 바깥의 우리는 다, 까막눈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전부를 다했고 우리는 아무것도 못해 발 동동 구르던

그때, 우리가 국가라고 부르던 영혼의 식물인간, 사이비 근무자는 어디 있었습니까

못 나오면 잠길 수밖에 없는 해저의 SOS를 들어먹을 의사도 능력도 고막도 없던

그것은 어느 가청권 밖에서 땡땡이 치고 있었습니까

 

옥좌엔 절망이 버티고, 궐엔 겹겹이 썩은 욕망들이 우글댄다는 풍문이 그저 풍문이라면

그날, 아아 4월 16일 그 아침에, 국가는 어찌해 그 바다로 나아가지 않았던 겁니까, 용산에서 쌍용에서 한진에서

기륭에서 밀양에서, 제 국민을 약탈하던 물리력을, 4대강에서 강정에서 평창에서

제 영토를 제가 침략하던 무지막지한 전투력을 왜, 쏟아 붓지 않았습니까

돌격하고 진압하고 체포 연행하던 그 힘으로 왜, 접근하고 진입하고 구조하지 못했습니까

어디에도 국가는 없었습니다 죽이던 손은 살리는 손이 아니었습니다

 

삶은 짓밟고 죽임은 방치하며, 국가는 우왕좌왕 지리멸렬의 먹통이었지만, 그러나

그 죽임은 혹 의도적 외면이자 조직적 방관이고 미필적 고의가 아니었습니까

도대체 왜 도대체 왜 우리 모두는 적진에 버려진 포로가 되었습니까

그렇게 팔팔 뛰는 꽃다운 웃음들이 다 지워져가는 동안

그것이 제 필요 없음을 제 불응으로 한껏 증명하는 동안 우리는

죽음의 바다에서 국가 실종사태에 직면했습니다 보트 피플이 되었습니다

이, 덜덜덜 몸이 떠는 바다의 아우슈비츠에서,

 

국가가 사라지자 목숨들이 떠났습니다, 정말입니까?

국가가 등 돌리자 그 바다의 집이 가라앉았습니다, 정말입니까?…… 아니요, 아니요,

우리가 사라지자 국가가 사라졌습니다 모두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썩어문드러진 이 괴물은 누가 낳았습니까

아무도 죽이러 오지 않는데 공포에 질린 이 손이, 모두를 죽이러 오는데 홀로 태연했던 이 손이

21세기에 투표로 왕을 뽑자, 세상 풍경에 핏기가 가셨습니다

왕이 있는 편이 유리하다고 이익이라고 우리가, 계산하는 포기가 되자,

바다가 피로 덮였습니다

그러므로 책임이라곤 모르는 이것은 바로 우리의 책임이 아닙니까

 

예술가여 심장이 아픈 자여 이제 한낱 나라 없는 시대의 ‘쟁이’들이여

카톡이 끊어지고 스마트폰이 숨 거둔 그 시간 이후의 바다 밑에서 사람들이 떠올린 것을,

최후에 찾던 나라를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상상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시민이여 심장이 아픈 자여 나라가 거둔 적 없는 백성들이여

자식 잃은 통곡과 부모 잃은 절규를, 눈 뜰 수도 눈 감을 수도 없는 육지의 아우슈비츠를 보아주세요

죽임이 쏟아져 들어오는 해저에서 칼을 숨 쉬던 동족의 얼굴을 기억해주세요

책임지는 나라를

생각하는 나라를

사라지지 않는 나라를

슬픔을 슬퍼하는 나라를, 기억해주세요

 

 

* 이 시는 <세월호, 연장전>의 전체 선언문을 대신해 쓰여졌습니다.

이영주

 

오늘

 

시간에 대해 오래 생각한다

오늘 모든 소식이 배달되었으면 좋겠다

그는 어머니의 죽은 발을 만져보고 나서 일어날 수가 없다

유리창 너머에 그가 있다

이것은 누구의 발인가

앉아서 구석으로 기어간다

나무 위에 재를 뿌린다

발바닥에서 땀이 난다

창틀은 그의 뒤통수를 천천히 가르고 있다

어디로 스며들었을까

재처럼 흩어지는 그의 머리칼

아무리 오래 생각해도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이 발은 어디에서부터 살인가

이 빛은 어디에서부터 피인가

오늘 모든 바람이 전달되고

먼 유랑이 시작되고

불타오르고 있는 딱딱한 이 물질은

바람을 타고 가야 할 텐데

부러질 것만 같아 그는 심장 근처를 두드린다

이것은 누구의 심장인가

죽은 발을 만진 손을 다른 손이 만져보고 나서

나는 울 수가 없다

유리창 안에 내가 있다

비가 내린다

 

이천십사 년 봄,부터

 

이용임

 

 

이천십사 년 사월에 핀 찔레꽃은 모두 열여덟 살이다

이천십사 년 오월에 핀 장미는 모두 열여덟 살이다

이천십사 년 유월에 핀 수국은 모두 열여덟 살이다

 

이천십사 년 봄, 바다는 온통 잠들지 못한 속눈썹이다

뜬눈으로 꾸는 꿈을 주워 먹고 몸을 불린 나무들이

푸릇푸릇 시반으로 피워내는 잎들이 모두 열여덟 살이다

 

이천십사 년 봄, 부터 노래는 모두 자장가다

잠들어라 아가 잠들어라 아가 잠들면 잊을 수 있단다

남은 생의 잠을 모두 끄집어내 바다에 내려놓는 어미가 노래다

 

멈춘 잠을 끌어안고 가만히 기다리는

너희가 흘린 몸이 푸르게 엉겨

바위를 핥으면 바람이다

눈물은 곧 너희이므로

이천십사 년 봄, 부터 바다는 소금을 잃는다

 

조그맣게 발을 구르는

저 어린 산책이 열여덟 살이다

처녀가 젖몸살을 앓는

계절이 열여덟 살이다

 

세계여, 그대가 열여덟 살이다, 모두

몸 버린 날의 비문을 칼로 새긴

벙어리의 혓바닥이 말을 빚는

이천십사 년 봄,부터

공기 속에서

 

이진희

 

 

폐와 부레의 형성 기원을 생각한다

코와 아가미의 전혀 다른 형태를 생각한다

부러진 손가락과 부드러운 지느러미가 생각난다

가까스로 살아난 이들의 상처 입은 심장과

 

끝내 돌아오지 못한 이름들의

생년월일 성별 직업 인종 국적 고향 마을

좋아하던 색깔과 노래 동물 첫사랑

부모형제 친구 이웃 동료들을 생각한다

지구는 둥글다

 

살아 있어서, 사람이라서

오른쪽으로 23.5도 기운 채 자전하는 지구와

왼쪽으로 기울어 가라앉은 배를

그 안에 끝까지 얌전히 앉아 있어서 살지 못한 이들을

아무래도 생각하게 된다, 울면서

 

비슷한말과 반대말을 가르는 기준은 누가 정했을까

아픈 말과 말 같지 않은 말이 생각난다, 하염없이

둥근 공과 평화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갸우뚱 한다

 

물속에선 곧장 물고기가 되었으면

두 다리가 스스르륵 뗄 수 없이 엉겨 붙어버리고

공기 방울뿐인 말밖에 할 수 없게 되더라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늘과 지느러미를 가진

생명으로 헤엄쳐 멀리 사라진 것이라면

 

비참한 세계의 공기를 호흡해야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전혀 모르는 사이에

서른여섯 번째 사람1)이기 위한 서른일곱 번째

사람으로서 살려고 애써야 한다

 

1)유대 문화에서는 이 세계가 망하지 않고 존재하는 이유가 36명의 의인이 세계의 고통을 모두 흡수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의인 하나가 죽으면 다른 의인이 나타나 36의 숫자를 채운다”고 한다(도정일, 「그 유명한 아틀라스, 그 유명한 거북, 그리고」,『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문학동네, 2014).

진혼의 노래

―‘4․16대재난’에 부쳐

 

임동확

 

 

 

차고 빠른 물살의 사월 바다 속으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난 내 아이들아.

 

검고 무서운 파도가 오래 굶주린 배를 채우는 악귀(惡鬼)들처럼 날뛰며 모든 것들을 집어 삼키는 심연 속에서 무기력하기만 한 우리들의 분노는 너희들의 슬픔을 대신하는 노란 리본, 그저 부끄러운 우리들의 피눈물은 너희들의 목마름을 적셔줄 한 방울의 물, 그리고 어찌해볼 도리 없어 그저 발만 동동 구르던 우리들이 켜는 촛불은 너희들의 앞길을 밝혀 줄 작은 등불.

 

하지만 그것들조차 애써 무시하며 오직 너희들의 의지와 힘으로 지옥 같은 맹골수도의 어둠을 벗어나라. 단 한 명도 구원하지 못한 공화국의 선무방송에도 흔들리지 말고, 팽목항에서 너희들 이름을 애타게 부르는 제 어미의 소리에도 뒤돌아보지 말고, 더 이상 미련 없이 결코 두려움을 모르는 영웅처럼 해 뜨는 동쪽, 불멸의 영혼을 가진 신들의 나라로 곧바로 가라.

 

“엄마, 난 어디서 났지?” “아빠, 우린 어디로 가는 거지?”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물으며 몰라보게 커버렸던 아이들아.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소용돌이와 사나운 개가 지키는 문들이 연이어 나타나더라도, 크게 놀라거나 허둥대지 말라. 설령 쉬 납득되거나 감당하기 힘들다고 해도, 그 시련과 고통들은 백 번이고 천 번이고 태어나길 거듭할 운명의 너희들이 마땅히 거쳐야할 관문들.

 

너희들은 그렇듯 한 걸음씩 마침내 불사(不死)의 하늘로 다가가고 있으리니. 그때서야 긴 잠에서 깨어난 신들이 하품하며 끝까지 아름다웠던 너희들의 깨끗한 육신과 해맑은 영혼을 부활의 제물로 기꺼이 받으리니.

 

어이 그렇지 않으랴. 필시 그 자체로 모두가 꽃이고 신이었던 아이들아.

 

끝끝내 구명정도, 구조헬기도, 구조 밧줄도 다가오지 않는 캄캄한 선실 속에서 밀려드는 바닷물과 싸우면서도 믿어 의심치 않았던 구원의 손길, 어린아이들도 두려워하지 않은 침묵의 노래 소리에 귀 기울이라.

 

결코 찢기거나 더렵혀질 수 없는 몸과 맘 그대로 마지막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들아.

기다린 죄

 

임성용

 

 

죄가 있다

기다린 죄가 있다

죄 아닌 죄가 있다

 

참혹한 죄

뛰쳐나가지 못한 죄

울부짖지 못한 죄

맨발로 맨몸으로

뒤집어 엎지 못하고

얌전하게 머리 조아린 죄

칭찬받아 마땅한 죄

 

어제 우리를 속인 자들에게

오늘 우리가 또 속은 죄가 있다

어제 우리를 묶은 자들에게

오늘 우리가 또 묶인 죄가 있다

 

적나라한 죄

치떨리는 죄

오장육부를 가르는 죄

우리들이 저지른 세상의 모든 죄가

우리들의 간과 쓸개에 있다

 

차마 어쩌지 못한 죄

차마 어쩔 수 없이 밥을 먹는 죄

죽은 죄 있어 산 죄가 부끄러운 죄

다시 또다시 살아야 하는 죄 있으니

이 얼마나 실성할 듯 좋으냐?

 

개밥바라기

 

정세훈

 

 

모든 그림자들이 어둠 속으로 저물어버린 초저녁이었다네.

저문 날 어두워진 밤하늘을 무심코 바라보고 있었는데

아 글쎄 어린 시절 이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살아왔던

금성이란 별이 마침 서쪽 하늘가에 걸려 반짝거리고 있었던 거야.

태양계의 혹성들 중에서 지구와 가장 가까이 있다는 저 금성은

새벽 동쪽하늘에 나타날 땐 샛별이라 불리지만

초저녁 서쪽하늘에 나타날 땐 개밥바라기라 불리고 있지.

개밥바라기라 불리고 있는 거기엔

물론 특별하고 심오한 뜻을 달리 담고 있는 것이겠지만

개밥바라기라는 글자 그대로만 본다면 개밥을 담아내는

아가리가 바라진 조그마한 사기그릇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한마디로 하잘 것 없어 보이고 천박스럽게까지 보이는

저 개밥바라기. 그 어느 곳으로 그 무슨 일을 하러 가는 것인지

해가 지면 맨 먼저 어둠 깔린 초저녁

서쪽하늘 외진 길을 따라 나타났다가는,

밤하늘 모든 별들이 마치 제 세상인양 마냥 활개치고 있는 동안

밤새도록 그 어느 곳에서 그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도무지 그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도,

밤하늘 모든 별들이 제풀에 지쳐 사라져 가는 새벽녘이 되어서야

새벽 동쪽하늘 외진 길을 따라 다시 나타나고 있단 말이야.

그 이름도 가슴 벅찬 샛별이란 이름을 찬란하게 달고서.

 

하잘 것 없어 보이고 천박스럽게까지 보이던 개밥바라기라는 이름이

눈물겹도록 고귀하게 보이고 찬란하게 보이는

샛별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나타나기까지에는,

저물어가던 서쪽하늘에서 떠오르는 동쪽하늘로 다시 나타나기까지에는,

어두워가던 초저녁에서 밝아오는 새벽으로 다시 나타나기까지에는,

그 어느 곳에 있는 그 어느 누구도

쉽사리 상상할 수도 없는 그 모진 곳에서

쉽사리 상상할 수도 없는 그 모진 일들을

저 홀로 감당해낸 용기와 아픔이 있었지 않았나 싶은 거야.

 

어찌했던 간에,

이 세상에 개밥바라기만큼 확실한 샛별도 없다는 거야.

 

정우영

 

팽목항

 

 

야위어 밭은목을 놓아

물의 문을 밀었다.

 

남현철님 박영인님 조은화님          허다윤님

고창석님 양승진님 권재근님 이영숙님 권혁규님

여깁니다. 이리로 돌아오세요.

 

물에게 안테나 달아놓자

저녁놀이 뜨겁게 타올랐다.

부르튼 입술 같았다.

 

뭍의 촉수 바닥까지 펼쳐

다만 한 음절의 말이라도

소환하고 싶었다.

   

창졸간의 소멸 거부하고

저 경계에서 놀 켜든 사람들

 

위하여.

죽은 엄마가 아이에게

 

진은영

 

 

 

진흙반죽처럼 부드러워지고 싶다

무엇이든 되고 싶다

작은 항아리가 되어 벤자민 화분과 함께 네 책상 위에 놓이고 싶다

네 어린 시절의 큰 글씨를 영원히 기억하고 싶다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알맞게 줄어드는 글씨를 보고 싶다

토끼의 두 귀처럼 때때로 부드럽게 접힐 줄 아는 네 마음을 보고 싶다

베여나간 오리나무 밑둥 향기에 공손히 인사하듯 길게 구부러지는 너의 훌쩍 자란 등뼈를 만져보고 싶다

 

세상의 모든 비밀을 전해 듣고

분노 속에서 네가 어떤 것도 다시 건드릴 수 없을 것 같은 고통을 느낄 때

단 하나의 사물이 되고 싶다

네 커다란 손에 잡혀 검은 벽을 향해 던져지며 부서지는 항아리가

단단하게 굳어 제대로 모양 잡힌 유일한 기억이

한밤중에 일어나 연인의 잠든 얼굴을 한번 만지고

나쁜 꿈의 물풀들을 네 손으로 천천히 쓰다듬는 날이 지나가고

너의 늙어가는 얼굴 가득 물결처럼 번져가는 흰 주름을 보고 싶다

공원 벤치에 잠시 지팡이를 세워두고

새벽의 별들처럼 아침이 고요하게 거둬들이는

네 마지막 숨결을 느끼고 싶다

 

‘찾아 주세요. 사위 권재근, 손자 혁규. 아직도 차가운 바닷속에 있나 봐요. 저는 베트남에서 왔어요.’*

 

진흙 반죽처럼 부드러워지고 싶다

무엇이든 되고 싶다

지금 내 곁의 빈 나무관 속을 떠돌며

반쯤 부패해가는 네 얼굴 위로 내려앉기를 기다리는 톱밥먼지만 아니라면

 

진흙 반죽처럼 부드러워지고 싶다

너를 위한 기억의 데드 마스크로

망각 법원의 길고 어두운 복도마다 걸려 있고 싶다

쌓인 먼지를 털면

가장 오래된 슬픔의 죄수들이 쇠창살 사이에서 기웃거리는 표정처럼

 

* 25일 오후 2시께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 차려진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합동분향소 들머리에 베트남에서 온 아버지 판만차이(62)씨와 딸 판록한(24)씨가 손팻말을 들었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는 사위 권재근(51)씨와 손자 혁규(6)군을 찾아 달라는 것이었다. “한 달이 넘게 언니의 장례식도 못 치르고 있어요. 함께 장례라도 치를 수 있게 빨리 형부와 조카를 찾아주세요.” 딸 판록한씨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 2014년 5월 26일 <한겨레신문> 기사

 

섬집 아기

 

최현우

 

 

혼자 집을 지키며 울지 마라

까치발 들어 밖을 보다가, 맨발에 물을 묻힌 아이야

낮달에 손가락 걸고

밤아 오지 말라고 약속한 아이야

깜밖 꿈을 꾸다

먼 지평선이 옮겨 붙어

두 눈을 가늘게 감아버린 아이야

웅크려 발톱을 만지는 사이

입김 가득 불어놓은 창문에

언 뺨을 부비며 몸 녹이는 아이야

그래서 얼굴 가득 황혼을 묻혀버린

잠든 아이의 영원한 저녁아

 

바다야, 바다야

잘 시간 오지 않은 아이에게 자장가를 부르지 마라

그늘에서 굴 따던 엄마

모랫길을 뛰어가다

넘어진다

 

마지막 에어포켓

 

함민복

 

 

 

DNA로 딸을 아들을 남편을 확인하는

진도 바다 곁 울음바다 팽목항에

또 한구의 희생자가 올라온다

저리 슬픈 느낌표를 보았느냐

움직이지 말라는 말을 신뢰한 죄로

영원히 움직일 수 없는 몸이 된

저리 슬픈 느낌표를 보았느냐

 

우리들에게 가만히 있지 말라고

이젠 앞서서 움직이라고

침묵으로 일갈하는

죽임당하며

살아나

물 밖 세상도 서서히 침몰 중이라고

우리를 자각시켜주는

원혼들의 외침

들리는가

 

우리들이 살아날 수 있는 마지막 에어포켓

양심과 연대와 정의와 사랑이여!

평등과 평화의 항로에서

우리들을 무한경쟁체제로 몰아대며

눈앞의 이윤만을 추구하며

나라를 기울어뜨리고 있는 자들이 누구인가

적시하며

이제 우리는 슬픔을 분노로 승화시켜야 한다

분노로 진정한 적폐들과 맞서 싸워야 한다

그래야 미래의 슬픔을 막을 수 있고

그래야 수백 명 희생자가

오천만 명을 구하는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구명조끼가 되어야 할 정부가

구명조끼가 필요 없는 세상을 펼쳐야 할 정부가

구명조끼를 입게 만들고 있는

이 땅에서

마음에 졸라맬 수밖에 없는 이 구명조끼를

훌러덩 벗어 던질 수 있게 될 때까지

우리는, 우리들의, 지금, 이 분노를

한 숨통으로

몰아치며 끝까지 전진해야 한다

 

저녁에는 이름을

 

허은실

 

 

새들도 저녁이면 제 식구를 부르는지

부리들이 숲을 들어올립니다

 

달은 저쪽에서 뜨고

나는 여기서 당신의 이름을 부릅니다

주저앉아 뼈를 추리는 사람처럼

획을 모아봅니다

소리 내지 못하여

속으로 부르는 이름은 기도가 됩니다

 

돌아서지 않을 등에 대고

이름을 부르던 어스름녘이 있었습니다

돌멩이처럼 날아오는 내 이름을

내가 맞고서

오래 서 있었습니다

 

도요라든가 저어라든가

새들도 떠난 물가에서 나는

이름을 부릅니다

검은 바다를 들여다보며

어둠에다 대고 이름을 부릅니다

 

쭈그리고 앉아

마른세수를 하는 사람이여

지난 계절 조그맣게 울던

풀벌레들은 다 어디로 갔나요

거미줄에 매달려 빛나던 물방울들은

물방울마다 맺혀 있던 당신의

얼굴 얼굴 얼굴은

세상은 다시 저물고

저물어 저녁에는 이름을 부릅니다

검은 바다를 들여다보며

어둠에다 대고

당신을 부릅니다

산문

우리에게 정치는 있는가?

―11월 15일, <세월호, 연장전>에 함께 하며

 

공선옥

 

 

 

작년에 인도에 갔었다. 인도가 영성이 가득한 신비의 나라 혹은 정신의 나라, 혹은 갔을 때는 힘들어도 갔다오면 또 가고 싶은 묘한 중독성이 있는 나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인도에는 정치가 없다’는 인상을 더 많이 받았다. 인도라고 왜 정치가 없겠는가. 그러나 그것은 부유한 사람들을 위한 정치일 뿐,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해당되는 정치가 있다면, 그 많은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환경이 그다지도 열악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가난한 사람들과 부유한 사람들의 생활환경 차이가 그다지도 크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수라인 거리에서 부유한 사람의 집 안으로 한발짝만 들여놓으면 거기는 낙원이다. 그러나 부자의 담 밖으로 한발짝만 나가면 거기가 바로 지옥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환경이 지옥인 나라에는 가난한 사람을 위한 정치가 없는 나라다. 그러나 멀리 인도까지 갈 일이 있는가. 바로 지금, 우리가 사는 나라가 그러지 않은가.

독일에서 잠깐 살아본 적이 있다. 나는 독일에서 가난한 이주민이었다. 당연히 방세가 싼 동네에서 살았다. 그런데 아침에 눈을 뜨고 집을 나설 때마다 나는 깜짝 놀라곤 했다. 내가 굉장히 부유한 동네에 살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한국에서라면 이 정도의 고요함이 있고 이 정도의 숲이 있고 이 정도의 안정된 느낌이 있는 동네라면 아주 부자동네임이 틀림 없기 때문이다. 독일부자들이 어떤 생활환경에서 사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독일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환경은 인도나 우리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의 환경 같지는 않았다. 나는 아, 돈 많이 없어도 사람이 이런 동네에서 살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을 독일에서 처음 알았다. 그러니까, 가난한 사람도 쾌적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최소한으로라도 갖춰진 사회, 나는 그런 사회가, 그런 나라가 가난한 사람을 위한 정치가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이 나라는 어떤가.

이제 이 나라에서 산다는 것은 생명을 잃지 않으려면 안전도 돈으로 지불하며 살아야 함을 뜻한다. 그런 나라가 어떻게 나라인가. 이 나라가 이렇게 된 것은 나라를 경영하라고 권력을 위임받은 자들이 그 권력을 사사로이 사용한 결과다. 이제 권력은 돈 많은 자들한테 아부하고 돈 많은 자들과 결탁하여 돈 많은 자들의 뒷배를 봐주고 선하게 쓰라고(선정을 베풀라고) 위임받은 권력을 돈 많은 자들이 돈 더 많이 벌 자유를 누리게(규제완화)하는 데만 쓰고 있다. 위임받은 권력을 사사로이 쓰는데 어떤 부끄러움도 없는 그들에게 있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죽어나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재주뿐이다.

그들의 재주는 참으로 현란하다. 그들의 선한 사람인척하는 연기력(선거철에 그 능력은 유감없이 발휘된다)에 속거나 속아주는 사람들 덕에 그들의 사익추구형 권력의 악행은 너무도 뻔뻔하게, 그러나 우아함으로 포장되어 자행되고 있다. 그러는 동안에 그것도 죄라면 이 나라에서 태어난 죄, 그리고 사는데 애쓴 죄밖에 없는 부모들과 그 부모들의 아이들이 죽어나간다.

이 나라 백성들은 언제쯤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쾌적하고 안전한 삶은커녕 죽지만 않으면 다행인 그래서 결국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겨우겨우 지탱해 나가는 삶을 살지 않아도 되는 걸까. 그리고 언제쯤이나 그런 백성 때문에 괴로워하는, 진실로 눈물 흘리는, 그런 백성들에게도 따뜻이 다가오는 권력자를 만날 수 있을까.

최종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 말만하고 실제로는 차갑고 매몰찬 대통령의 화사한 모습을 보는 일은 한겨울 얼음구덩이 속에 처박히는 것처럼 무섭고 괴로웠다.

이 나라 권력의 최정점에 있는 사람이 기거하는 곳처럼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을 바라지도 않는다. 이 나라에서 가장 돈 많은 사람의 집처럼 안락하고 좋은 환경도 바라지 않는다. 다만 이 나라에서 가난한 사람으로 산다는 이유만으로 언제 어디서 죽을지도 모를 삶을 살아가는 백성들이 존재하는 한, 자신이 가진 권력의 자리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잊지 않는 권력자를 갖고 싶을 뿐이다. 나의 이 소박한 꿈은 언제쯤 이루어질까.

이제부터 선거할 때는 정책이나 공약뿐 아니라 그 사람의 품성(따뜻한 사람인가, 아닌가)도 유심히 살펴야 하겠다. 나는 무엇보다 권력이란 원래 다 이렇게 차가운 것이라는 것만 배운 듯한 권력자의 모습을 보는 일이 너무나 괴로웠다.

나는 80년 광주에서 보통의 시민들이 자신들을 지켜주라고 세금 내서 거두는 군인들로부터 죽임을 당한 현장에 있었다. 그렇다면 그 군인들을 지휘 통솔하는 정점에 있는 사람이 제 나라 군인들이 제 나라 백성을 죽인 것에 어떤 식으로든(차마 잘못 지휘한 자책감으로 자결했어야 한다는 말은 못하겠다) 책임을 져야 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그때, 이 나라에서는 제 나라 군인들이 제 나라 백성을 죽인 사건에 대해 어떤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용산에서 철거민들이 불에 타 죽은 사건이 있었다. 그때도 제 나라 백성이 불에 타 죽었는데도 제 나라 백성을 끝내 죽음에 이르게 한 데 대한 자책감으로 괴로워하는 권력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 세월호다. 백주대낮에 시퍼런 바닷물 속으로 멀쩡한 자식이 수장되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기만 해야 했던 부모들이, 그 갈갈이 찢겨서 철철 피 흘리는 가슴을 붙안은 부모들이 왜 지난 여름 내내 그 고생을 해야만 했는가. 아이들이 수학여행가다 배가 뒤집어져 물 속에 가라앉았다. 그것은 사고다. 그러나, 선령 제한을 풀어 그 노후한 배를 운행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은, 그래서 끝내는 사고가 나는 결과를 불러온 것은 그놈의 규제완화를 뻔질나게 외치는 권력자들에 의해서다. 그리고 이 사고를 사건(사태)이 되게 한 것은 구해 줄 거라 믿고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을 한명도 구하지 못해 마지막 순간까지도 놓지 않았을 절박한 믿음을 산산히 깨버린, 안전과 구조를 포함한 국가경영의 힘을 부여받은 권력자들의 무능이다! 무책임이다! 그리고 자식 잃은 부모들과 그 부모들의 슬프디 슬픈 모습을 일상처럼 보면서도 슬퍼하지 않는 권력자들의 뻔뻔함이, 매몰참이, 또 한번 이 나라 보통의 백성들에게는 상처가 되었다. 제 나라 백성의 안전을 책임지라고 제 나라 백성들은 세금을 내고 권력자를 뽑았다. 그러나 그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권력을 연장할 수 있는 기회인 선거철만 빼고는 작든 크든 권력을 가졌다 하는 순간, 뻔뻔하고 심지어 위풍당당하기까지 하다. 자신들의 무능과 무책임과 권력 오남용에 대해 도무지 부끄러워 할 줄을 모른다.

그런 뻔뻔함, 그런 철면피는 이제 그만보고 싶다. 그만 볼 때도 한참 지났다.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안전한 삶은커녕 언제 어디서 죽을지도 모를, 죽어도 구조되지 못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풍경을 우리가 언제까지 보고 살아야 하는가. 이 나라에서 산다는 이유만으로 그 나라 백성들로 하여금 그런 괴로운 환경을 인내하며 일상을 살도록 강요하는 자들이 누구인가. 이런 판을 어떻게 끝장낼 수 있을 것인가. 언제! 어떻게! 누가!

그런 물음에 답하기 위해 11월 15일(토) 광화문에서 오후 2시부터 세월호 연장전이 열린다. 동료 문화예술인들이 창작의 도구로 쓰는 각종 ‘연장’들을 들고 나온다고 한다. 나는 어떤 ‘연장’을 들고 나갈까. 당신은 어떤 ‘연장’을 들고 나올 터인가. 함께 하자. 아직 세월호 참사의 아픔과 진상규명을 해나갈 ‘골든타임’은 끝나지 않았고, 우리 모두가 이젠 이 시대의 마지막 남은 구조대가 되어야 한다.

“왜”

 

박선희

 

 

 

그 날 이후 200일이 넘는 동안, 대한민국은 아직도 4월 16일입니다. 진도의 검은 바다, 세월호는 아직도 기울고 있고, 캄캄한 물속에 잠기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제 구명조끼를 친구에게 내어주며, 명랑한 목소리로 불안을 퉁겨내며, 실체 모르는 전언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절대 명령처럼 따르며, 60도로 85도로 배가 기울 때까지 삶의 마지막이 될지 모를 시간을 동영상으로 중계합니다. 자신의 몸이며 이야기였던 가족에게 사랑한다 미안하다 꼭꼭 접어두었던 고백을 전합니다. 공포가 출렁입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처럼 선실에 바닷물이 차오르고, 절규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난 살고 싶은데 왜!” “난 꿈이 있는데 왜!”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세월호는 더 많은 “왜”를 파문처럼 남기며 또 다른 4월 16일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갑니다. “왜”라는 물음에 응답할 듯 “언제든 찾아오라”던 여왕은 아이들의 부모 형제를 거리에서 떠돌게 하고, 만나 달라 애원하는 그들을 “감히 궁궐을 넘으려 하다니” 병력을 동원해 인정사정없이 내쫓습니다. 국가는 없고, 입을 꽉 다문 오만한 여왕만 있습니다. 수치심과 죄의식이 박제된 권력은 보상금의 숫자와 특혜의 크기로 추악한 거래를 하려 합니다.

 

구할 수 있었는데 “왜”, 백 년처럼 길었던 시간에 “왜” 동아줄 하나 내려 보내지 않았나. 세월호를 같이 저어 갔던 우리 탓이다, 백성들의 자책과 통곡이 노란 리본과 함께 이 나라를 뒤덮었습니다. 아직도 아들딸, 형제자매, 손자손녀의 시신을 찾지 못한 유족들은 스물네 시간이 암흑의 밤인 채 꿈속에서 아이들을 건져 올립니다. 시신을 찾은 유족들의 나무토막 같은 몸에선 “왜, 왜” 단장의 신음이 새어나옵니다. 일상으로 돌아간 우리는 놀다가 웃다가 기억상실의 죄를 깨닫는 듯 문득 문득 몸을 움츠립니다.

 

2014년 첫 4월 16일부터 214번째 4월 16일 오늘까지, 우리는 하나의 물음을 붙들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왜” 죽어야 했나. 이 하나의 “왜”는 수많은“왜”를 품고 있습니다. 답은 감춰졌고 의문만 무성합니다. 이 모든 “왜”에 대한 답을 건져 올릴 때까지 우리는 놓을 수 없습니다.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힌 진실에 대한 물음들을.

 

푸른 궁궐 여왕에게는 “왜”라고 묻는 유족들이 사람이 아닌 듯합니다. 재앙의 책임을 물을 희생양만 만들어내 죄를 묻곤 “가만히 있으라”, 바다 속으로 내려 보냈던 전언을 되풀이 내려 보냅니다. 내리깐 눈으로 시선 한 번 주지 않습니다. 그녀는 유가족도 만나보지 않은 채 조문 CF만 찍고는 분양소를 떠났고, 대국민담화 줌인하는 카메라 앞에서 눈물 연기를 펼치더니, 레드카펫을 걸어가며 “살려 달라” 절규하는 유가족들을 싸늘히 외면하고 한기 어린 웃음을 지었습니다. 빨주노초파남보 패션 외교를 하며, 검은 양복의 상대국 수장을 화사한 옷차림으로 맞고, 교황이 노란 리본을 달아 애도를 표할 때 블링블링 화려한 브로치로 패션을 완성했습니다.

 

국가 재난시 대통령의 사생활은 없습니다. 감춰야 할 7시간의 사생활이 무엇이기에 허술한 알리바이로 백성의 입을 막으려 합니까. “왜” 여왕은 사라진 7시간의 미스터리를 밝히지 못하고 “대통령 모독이 도를 넘는다” 히스테리입니까. 4월 16일 그 화창한 아침 잔잔했던 바다, 국가 재난 컨트롤타워여야 함이 분명한 그곳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전원 구조’의 오보가 오보가 아닌 사실이 되었을 것입니다. 사방팔방 구멍이 뚫린 국가, 수백의 생명은 물에 잠겼고 백성은 버려졌습니다. 이 기괴한 나라의 잔혹사가 가장 엽기적으로 또 한 번 굵게 복기됩니다.

 

권력 비호의 나팔수들이 백성을 선동합니다. 온 나라에 유언비어의 소음이 가득합니다. 유족이 벼슬이냐, 얼마나 큰 보상과 특혜를 바라는가, 이제 그만할 때도 됐다, 세월호 때문에 경제가 안 돌아간다……. 목숨 건 아빠의 단식투쟁을 삐뚤어진 입으로 비아냥거리고 폭식투쟁으로 조롱합니다. 죄 없이 죽은 아이들을 반복 살해하고, 심장 펄떡이던 자식과 형제자매를 산 채로 잃은 유족들 가슴에 수없이 독화살을 꽂습니다. 사람이 할 일이 아닙니다.

 

차디찬 해저에 갇혀 있을 아이들이 아직 아홉. 이들이 내 자식이라면, 내 형제요 자매라면 “왜”라는 물음이 지겨울 리 없습니다. 마지막 한 아이가 돌아올 때까지, 진실이 속속들이 밝혀질 때까지, 우리는 “왜, 왜, 왜” 노란 리본의 합창을 계속해야 합니다. 살았어야 할 목숨들이었습니다. 해원解寃이 없이는 진정한 애도도 없습니다. 원을 풀어주고 죽은 자들을 보내야 삶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아이들의 어미와 아비들이 거리에서 천막에서 피를 토하듯 “왜”라는 물음을 토해내고 있는 이유입니다.

 

“왜”를 밝혀줄 세월호특별법은 여야의 속물 정치에 불구의 모습으로 타결되었습니다. 진상규명의 기대를 저버리는 얍삽하고 사악한 법입니다. 합의 과정은 추했습니다. 정부와 여당은 더러운 뱃속을 다 드러냈고, 성역 없는 조사권 보장의 특별법을 약속했던 여왕은 비인간의 차가운 낯을 드러내곤 유가족을 잔인하게 내쳤습니다. 천박한 권력은 “세월호를 잊으라”, 민생을 무기로 책임을 뭉개버리고 단죄의 칼을 꺼내드는 파렴치함을 보입니다. 그들이 바로 세월호를 잊지 못하게 하는 장본인들입니다.

 

예술인들이 연장을 들고 나섰습니다. “잊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며, 어떠한 방해 공작에도 세상이 세월호를 기억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세월호의 모선母船인 대한민국 호가 수장시킨 생명들, 극한의 상황에서 덮쳐오는 죽음을 고스란히 느껴야 했을 그들에 대한 기억은 세월호의 공범자이기도 했던 우리에게 명합니다. 2014년 4월 16일의 비극을 모두의 가슴에 변화의 열망이 피어나게 하는 0416으로 만들라고. 총체적 비리와 부실 위에 탐욕을 쌓아올린, 대한민국이라는 난파선을 끄집어내 낱낱이 해부하라고.

9명의 실종자여, 돌아오라

 

백가흠

 

 

세월호 실종자 수색이 7개월 만에 종료되었다. 계절이 묻는다. 봄에서 여름으로, 여름에서 가을을 지나 겨울 문턱에 선 우리들에게, 무엇을 찾았는가. 피해자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온 것은 무엇인가. 아직도 실종자를 기다리는 가족들에게 우리가 찾아준 것은 차가운 바람뿐이던가. 험악한 파도뿐이던가 묻는다. 마음이 착잡하다. 점점 떨어지는 기온과 매서워지는 바람 앞에서 참담함과 절망감이 살을 뚫는다.

아이들은 겨울로 돌아왔다. 차갑고 절망스런 겨울을 같이 하자고, 우리들이 왜 죽어야만 했는지 알려달라고, 함께 봄을 맞이하자고 아이들은 칼날 같은 바람으로 우리 마음으로 돌아왔다. 계절은 바뀌었고 시간만 흘렀고 죄스런 마음만 늘었다. 아이들과 함께 겨울의 절망 앞에 서 있다. 따뜻했던, 뜨거웠던 바람은 멈추었고 이제 우리에겐 매섭고 냉정한 계절이 얼굴을 들이밀고 있다. 절망은 희망으로 바뀌지 않았고 가늠할 수 없는 더 깊은 절망의 협곡만 생겼다.

아이들이 왜 죽어야만 했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여전히 잊지 않았다. 죽는 날까지 기억할 것이다. 아이들을 누가 죽였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잊지 않을 것이다. 거친 파도와 절망의 바다가 아이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아이들의 죽음에 누가 책임을 져야하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아이들의 죽음을 바다와 바람에게 물을 수 없다. 파도는 잘못이 없다. 아이들의 죽어야만 했던 진실을 찾아야만 한다.

정부는 국민들의 가장이다. 어린 자식들이 억울하게 죽었다. 가만히 앉아서 지켜볼 아버지 있는가. 비통함과 원통함에 가득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정부는 피해자 가족과 실종자 가족들을 대하라. 자식들이 왜 그렇게 비통하게 죽어야만 했는지 아버지의 심정으로 진상을 밝혀 달라. 실종자 가족들이 수색중단이라는 결정을 내리기 힘든 마음의 고통 속에서 잠수사들의 안전과 배려를 우선했던 ‘가족’이라는 마음으로, 아버지의 마음으로 정부는 돌아오시라. 진심이 있다면, 사람의 마음이 정부에게 있다면 가능하지 못할 것이 하나도 없다.

가족들은 아이들을 차가운 마음 속 바다에 묻었다. 국민들은 형제들을 조카들을 절망의 바다에 묻었다. 정부라는 아버지여, 자식들의 죽음을 슬픔과 비통함으로 맞으시라. 모든 것을 운명의 탓으로 돌리지 마시라. 운명은 진실과 진상 뒤에 받아들이는 것이리라.

수색종료와 책임자 판결이 참사의 종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남겨진 진상규명의 시작이다. 7개월 간 죽음을 묵도한 우리들의 몫이다. 겨울 앞에 선 실종자 가족들의 절규가 타인에 대한 따뜻한 배려로 번졌다. 사고 해역의 물살이 거칠어지고 수온도 급격히 떨어지자 잠수사들의 안전을 걱정한 실종자가족들이 수색을 종료토록 정부에 요청했다. 수색은 마무리됐지만, 아직 돌아오지 못한 9명의 가족은 진도 체육관에 남기로 했다. 끝까지 마지막 9명의 실종자를 찾지 못한 잠수사들은 가족들 앞에 무릎을 꿇고 미안함에 눈물로 사죄했다. 잠수사들은 수색을 멈춘 게 아니다. 생이 끝나는 날까지 아마도 아이들과 선생님을 찾을 것이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피해자 가족들의 고통과 절규를 지켜보고, 실종자 수색에 대한 사명을 잃지 않았던 그들, 진도를 잊지 않을 것이다. 매일 마음 속 진도 앞바다에 몸을 던질 것이다. 우리의 마음과 죄스러움을 대신해 바다에 들었던 그들에게 위안과 평화가 깃들길!

아홉 명의 실종자여 돌아오라. 바람을 타고 구름을 따라 차가운 바다에서 나오시라. 그대들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이 우리의 몫인 것을 잊지 않고 있으니 이제 돌아오시라. 깊고 깊은 바다에 그대들이 있는 이유를 우리는 알고 있으니 어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시라. 그대들을 가족으로 안고 있는 우리에게 돌아오시라. 1반 은화야, 2반 다윤아, 6반 현철, 영인아, 양승진, 고창석 선생님, 그리고 권재근 님과 아들 혁규야, 눈물로, 죄스러움으로 그대들을 기다리고 있으니 어서, 어서.

아빠

 

신혜진

 

 

꿈을 꾸었다. 나는 구명조끼를 입은 학생 하나를 학부형에게 데리고 가는 중이었다.

“너희 아버지 여기까지 오시긴 했는데 걸을 수 없으셔. 차에서 기다리고 계시니까 따라와.”

긴 생머리 여자애였다. 그 아이가 무사히 살아 돌아온 아이인지, 주검으로 돌아온 아이인지, 혹은 아직 배 안에 갇혀 있는 아이인지 알 수 없었으나 몸에서 물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검은 승용차 뒷좌석에 몸을 묻은 남자의 뒤통수가 보였다. 차 뒷문을 여니 그 자리에 우리 아빠가 앉아 있었다. 어떻게 여자아이와 내가 같은 아빠를 두었는지 깜짝 놀랐고, 혹시 그 아이가 내 동생인가 싶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얼굴을 자세히 보려고 두리번거리며 학생을 찾았지만 아이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당황스러웠다. 아빠가 나를 올려다보는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했다. 나를 딸처럼 바라보는 아빠… 아니, 나는 딸이 맞는데…

울고 있는 아빠를 바라볼 수 없어서 고개를 숙였다. 구명조끼를 입은 내 몸에서 물이 흘러내려 땅을 흥건하게 적시고 있었다.

 

윤정모

‘416을 잊지 않겠다’는 말은 사회적 민주주의의 구축을 위해 싸우겠다는 말

 

이성혁(문학평론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날. 이 날을 한국인들은 오래 잊지 못하게 될 것이다. 어떤 시인은 1980년 5월 18일이 20세기 후반 내내 한국인들에게 막중한 부채의식을 가져다 준 것처럼, 21세기 초를 살아갈 한국인들에겐 이 4월 16일이 그러한 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감이 되는 말이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 참사에 대해 침묵하면서 예전의 일상을 되풀이하면서 살기는 힘들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저 선량한 이들의 죽음에 대해 어떤 책임감과 미안함, 그리고 부끄러움과 분노를 느끼고 있으며, 그 감정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날은 한편으로 한국에 감정의 공동체를 형성했다고 하겠다. 미안함과 분노의 공동체.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잊지 않겠다고, 행동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언론에서도 국화꽃 무늬 속에 잊지 않겠다는 문장을 지속적으로 내보낸 바 있었다.

그런데 과연 4월 16일을 잊지 않는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추모를 계속하거나 4월 16일을 기념일로 정하는 것으로만 ‘잊지 않음’을 다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저들이 그렇게 헛되이 죽어야만 했던 참사는 생명보다는 돈을 우선시하는 자본주의 논리에 점령당한 현재의 한국 사회에 의한 타살에 가깝다는 점이 명확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우리는 저들의 죽음이 사회적 타살에 가까운 일이었기에 분노를 마음에 품게 되었던 것이며, 또한 한국 사회가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방치하고 사실상 이 사회를 유지시켜 온 것이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에 부끄러움과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분노와 미안함의 공동체는 한국 사회가 근본적으로 새롭게 구축되어야 한다는 의지를 가지기 시작했고 더 나아가 그 새로운 구축의 지반이 되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어야 할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총체적 문제가 고름 터지듯 터진 것이다. 국가 권력이 재력과 유착하고, 각종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부패와 조작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며, 권력과 돈을 위해서라면 99% 사람들의 삶 ‘따위’는 언제든지 거리낌 없이 파괴하는 단계에 다다른 한국 사회의 현주소를 세월호 참사는 드러내주었다. 세월호 참사가 우리를 그렇게 분노케 한 것은 정부가 죽어가는 사람들을 방치했다는 데 있다. 그것은 성장 위주의 정책-여기서 성장이란 자본의 성장을 의미한다-을 펼친 정부가 그 동안 자살할 정도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방치해왔다는 행태를 보여 왔음을 생각할 때 자연스러운 결과라고도 할 것이다. 그렇기에 세월호 참사와 한국이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국가라는 사실은 깊이 연관되어 있는 일이다. 자본에 기능적인 역할을 할 뿐인 정부는 “사람들을 죽게 내버려두는” 현대 국가의 삶권력을 전형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래서 정당하게도,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에 항의하는 다중은 “이윤보다는 생명”이라는 삶정치적인 구호를 내세웠던 것이다.

그래서 송경동 시인이 「돌려 말하지 마라」라는 시에서 “오늘 우리 모두의 삶이 세월호”라고 말한 것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하게 된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질병의 ‘빙산의 일각’만 보여준 것이다. 진도 앞바다에만 세월호가 있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인식해야 한다. 지금 생활난으로 자살하고 있는 사람들, 유형무형의 권력에 의해 신음하다가 자살을 선택한 노동자들, 삶을 송두리째 빼앗겨 절망적인 저항을 해나가다가 목숨을 끊으신 밀양의 어르신들 모두 한국이라는 세월호에 승선했다가 수장된 이들이다. 정치적 민주주의만이 아니라 사회적 민주주의가 거의 허물어져 있는데, 99% 사람들에게 과도한 짐을 올려놓고 항해하고 있는 형국이 한국이라는 세월호인 것이다. 이 배가 언제 침몰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우리는 사회가 이렇게 항해하다가는 어떠한 재앙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가지면서 살게 된 것이다. 그 침몰은 구체적으로 핵발전소에 문제가 생기거나 거대한 신축 건물이 붕괴하면서 나타날지도 모르며, 국가 재정의 위기로 나타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 사회가 침몰할지도 모르는 이 시간에 가만히 있으면 재앙을 막지 못하리라는 사실이 우리에게 현실로서 다가오고 있다. 하여, 또 다른 거대한 참사를 막기 위해서는, 세월호처럼 가고 있는 한국 사회의 항해를 “이제 그만!”이라고 외치며 멈추게 하고, 생명을 돈보다 중시하는 가치를 통해 한국이라는 배를 전면적으로 다시 건조해야 한다는 과제가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우선 현재의 상태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삶이 어디에 있었는지 따져보면서 어떤 가치로 이 사회를 바꾸어야 하는지 궁리하고 상상해야 할 것이다. 각자의 궁리와 상상은 자유롭게 유통되어야 하고 토론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정치적 사회적 민주주의의 소생과 확장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그 궁리와 상상이 바로 돈과 권력이 지배하는 현 사회 체제의 폭주를 멈추기 위한 것이기도 하기에, 현존을 지탱하는 것들에 대해 저항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2014년 4월 16일의 참사를 잊지 않는다는 말의 의미는, 이윤을 위한 사회 시스템을 생명을 위한 사회 시스템으로 바꾸기 위해 자유로운 탐색과 다양한 방식의 실천을 행하고, 이를 통해 더 큰 참사를 막는다는 데에서 찾아야 한다. 이는 곧 사회의 각 방면에서 실질적 민주주의를 구축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세월호를 잊지 않는다는 일, 즉 실질적인 사회적 민주주의를 구축하고 이윤보다 생명을 중시하는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일은 실질적 민주주의의 구축을 저지하려는 정치적-물리적-경제적-이데올로기적인 권력과 부딪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2014년 4월 16일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은 생명의 이름으로 현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권력과 어떻게든 싸울 수밖에 없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너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11월 15일, 문화예술인 <세월호, 연장전> 함께 해요.

 

이시백

 

 

 

나의 딸이었을 아이야, 나의 아들이었을 아이야.

지금 너는 어디에 있느냐.

방에는 네가 벗어 놓은 옷들이 차곡차곡 걸려 있고, 네가 읽던 책은 책상 위에 그대로 펼쳐져 있는데 너는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느냐. 수학여행을 간다며 즐거워하던 너의 웃음은, 제주의 맑은 바닷가에서 주워온다던 조개껍질은, 몸 건강히 다녀오겠다던 너의 약속은 어디로 갔느냐.

봄꽃처럼 밝던 너의 웃음소리가 여전히 귀에 생생한데, 어깨를 주물러주던 네 손길이 아직도 따스한데 너는 어째서 차가운 물속에 누워 있느냐. 바람 부는 바닷가에서 울며 부르는 부모의 부름에 너는 어찌하여 대답이 없느냐. 나의 전부이며, 생명이며, 세상의 모든 것을 다 합쳐도 바꾸지 않을 내 사랑하는 아이야. 부르면 당장 달려와 품에 안길 듯한 너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눈을 감아도 잠들 수 없으며, 잠들어도 잊을 수 없는 네게 이 목소리가 가 닿는다면 너는 봄날의 보리밭 위로 날아오르는 종다리처럼 어두운 물속에서 솟구쳐 지금 당장 부모의 곁으로 돌아오렴. 내 사랑이 너를 일으켜 다시 네 얼굴을 볼 수 있다면, 내 슬픔이 너를 깨워 다시 너를 보듬을 수 있다면 무엇을 하지 못하겠느냐.

 

나의 딸이었을 아이야, 나의 아들이었을 아이야.

누가 내게서 너를 빼앗아갔더냐. 무엇이 너를 차가운 물속에 잠기게 했더냐. 슬픔은 해일 만큼 많은 눈물을 흘려도 풀리지 않으며, 원망은 가슴이 시퍼렇게 멍들도록 두드려도 풀리지 않는다.

어린 너를 태운 배가 탐욕의 짐을 내려놓았더라면, 배를 지키는 선장과 승조원들이 사람의 양심을 지녔더라면, 해경과 관리기관들이 조금만 더 성실했더라면, 바다에 쓰러진 세월호를 이 나라가 조금만 더 서둘러 달려갔더라면, 달려가 물속의 제 아이를 구하듯 배 안으로 달려 들어갔더라면, 기울어진 배 안에서 가만히 있던 너희에게 어느 어른 한 사람만이라도 ‘가만히 있지 말고 밖으로 나오라’고 외치기만 했더라면, 너는 지금 차가운 물속에 있지 않아도 되었으리.

네가 가라앉는 배 안에서 살려달라고 외치던 그 시간에 이 나라는 어디에 있었느냐. 네가 철문을 손톱이 닳도록 긁어대던 그 시간에 이 나라의 대통령과 어른들은 무엇을 했단 말이냐. 원통하고 가슴이 먹먹하여 눈물도 말라 버린다. 눈앞에서 기운 배와 함께 깊은 바다로 가라앉은 너를 생각하면, 이미 나는 숨을 쉬어도 나는 산 것이 아니요, 눈을 감아도 잠든 것이 아니다.

 

나의 딸이었을 아이야, 나의 아들이었을 아이야.

너는 도저히 물에 잠길 수가 없었다. 탐욕과 비리와 무능의 이 나라가 너를 물에 잠기게 한 것이다.

너에게 이 나라는 죄인이다. 너에게 이 나라의 대통령은 죄인이다. 너에게 이 나라의 모든 어른들은 죄인이다. 지금이라도 네가 돌아올 수만 있다면, 무릎이 해지도록 꿇어 엎드릴 것이요, 지금이라도 네가 무사할 수만 있다면 이 나라가 엎드려 용서를 빌고 빌어야 할 것이다.

 

용서하지 말아라.

네가 가슴에 손을 얹고 애국가를 부르던 이 나라를 용서하지 말아라. 네가 전철에서 자리를 양보하던 이 나라의 어른들을 용서하지 말아라. 너만 돌아올 수 있다면, 울며 기다리는 부모의 곁으로 돌아올 수만 있다면 이 세상의 누구도 용서하지 않아도 될 것이니, 오직 지금이라도 너의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흘리는 부모의 곁으로 성큼 돌아오너라.

네가 물속에 잠겨 있는 동안 누구도 편히 잠들 수 없으며, 누구도 환한 웃음을 지울 수 없으니, 네가 물에 잠기던 날, 이 나라도 함께 물에 침몰하였도다. 그것은 끝 모를 절망과 모멸의 시작이었으며, 씻을 수 없는 슬픔과 비탄의 수심이었다.

네가 무사히 돌아오지 못한다면, 2014년 4월 16일의 시간은 이 나라에 영원히 회복될 수 없는 부끄럽고 슬픈 낙인으로 남게 될 것이다. 영문도 모른 채 가만히 물에 잠긴 네게 이 나라가 할 수 있는 용서의 유일한 길은, 한 터럭의 의혹도 남김없이 이 비극적 사건의 진상을 낱낱이 규명하며, 온갖 비리와 무능과 탐욕의 단면을 내보인 참극에 대하여 이 나라가 무릎을 꿇고 엎드려 죄를 물어야 할 것이다.

 

천 개의 그림타일로 만드는

'세월호 기억의 벽'

 

* 세월호 타일 벽화란?

세월호의 아픔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가로 세로 각 10센티 미터의 초벌구이한 도자기 타일에 세월호에 관한 이미지를 글과 그림으로 표현한 뒤 다시 구워 단단하게 만든 뒤 정해진 벽에 이어 붙여 완성한 벽화.

 

* 기억의 벽에서 내 타일을  찾을 수 있나요?

타일마다 일련번호를 매겨 기억의 벽에 붙일 예정입니다. 기억의 벽이 완성된 후에도 번호로 자신의 타일을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 1차 제작 타일 수 : 1000장

- 참여 자격 : 다시는 이 땅에 세월호 참사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아이와 어른 누구나

- 제작 참여 비용 : 타일 장당 2000원 또는 3000원 (확정되지 않았음)

- 제작 기간 : 11월 15일부터 12월 마지막 주 토요일까지 총 7회

- 제작 장소 :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

- 기억의 벽 위치 : 추후 공지

- 기억의 벽 설치 공사 : 타일벽화 1000장이 완성된 직후

 

기억의 벽은 많은 분들의 참여로 이루어졌을 때 그 의미가 살아납니다.

15일은 전 문화예술인들의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연장전>을 하는 날입니다.

'세월호 기억의 벽'을 위한 타일벽화 그리기 작업 첫날이기도 하고요.

한뼘 타일에 자기만의 세월호를 표현하시기 바랍니다. 

 

■ 주관 : 어린이책을 짓고 만드는 사람들 / 어린이도서연구회 /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모든 문화예술인들의 <세월호, 연장전>

-세월호 추모 문화예술제

 

●일시 : 11월 15일(토) 2시 - 7시 30분, 광화문 세월호 광장

 

끝나지 않은 4.16

잊지 않을게! 밝혀줄게!

 

끊이지 않는 참사!

자본만을 위한 규제완화!

민영화 등 사회공공성 파괴!

세월호 진상규명 방해 및 유가족 외면!

우리의 ‘현대’는 왕이 필요 없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부터 책임져야 합니다.

성역 없는 진상규명!

청와대와 국정원도 조사해야 합니다.

한국사회 모두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

‘비정규직 제도’ 폐기!

모든 안전의 업무는 외주화 금지!

정규직화! 국가가 관리해야 합니다.

이윤과 특권층의 권력보다 모든 이들의 생명과 존엄이 우선되는 사회로

4.16 이후 한국사회는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합니다.

 

●개막 : 오후 2시 / 풍물굿

●추모와 진상규명을 위한 예술행동 : 오후 2시 30분 - 6시 30분

●함께하는 문화행동 ‘밝혀줄게’ : 저녁 7시

 

* 설치미술 ‘304개의 빈 자리’

* 4시간 16분 낭독․음악회 ‘기억하라, 기록하라’

* 천개의 타일벽화로 만드는 ‘세월호, 기억의 벽’

* 함께하는 책읽기와 노란배접기

*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한 만화인 동행전 ‘일어나라! 0416’

* 영화인들의 현장영화촬영 ‘이 선을 넘어가시오’

* 그림전 ‘잊지 않을게’

* 연극인들의 다양한 퍼포먼스

* 음악인들의 광화문 버스킹

* 춤꾼마당 ‘너를 위해서라면 1000번의 춤이라도 추리’

* 광화문 ‘그네타기’

* 에프에프그룹 말풍선 퍼포먼스

* 사진가들의 추모사진 슬라이드전

* 대학생 평화나비 접기

* 행동하는 신문 <세월호, 연장전> 발행

* 그 외 다양한 예술인들의 추모 문화 난장이 펼쳐집니다.

* 모든 문화예술인들이 자신의 창작의 도구이자 결과인 ‘연장’들을 들고 모입니다.

 

대안학교 학생모임(산청․금산․제천 간디학교, 간디 마을학교, 성미산학교)의 다양한 공연과 참여가 있습니다.

 

●공동주최 : 세월호 문화예술인 대책모임 /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위원회 /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

●후원 : ‘304개의 빈 의자’ - 이우학교, 성미산학교 / 문학동네 『눈먼 자들의 국가』

 

●문화예술인 대책모임 참여단체

극단 동네풍경,극단 함께사는세상,극단새벽,김포들가락연구회,내드름연희단,노동문화기획 판,노동예술단선언,노래극단 희망새,대안공간이포,대학생평화나비,대한민국 만화인행동,룰루랄라예술협동조합,리얼리스트100,마당극단결,문화공간북실,문화다양성포험,문화연대,문화예술센터결,뮤지션유니온,민족춤패출,살판,서울민예총,세월2014,세월호,게릴라음악인,세월호를 기록하는 미술인모임,세월호서명,세월호연장전,세월호특별법제정촉구 영화인모임,수도권노동자풍물패연합,아시아1인극협회,앗싸라비아창작단,어린이도서연구회,어린이책을 짓고 만드는 사람들,연극미래행동네트워크,예술마당살판,예술인소셜유니온,우리음악연구소,울산미디어연대,음향자유,의정부민예총,인문사회과학출판인협의회,일상의실천,전국시사만회협회,전남민예총,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사진가모임,풍물굿패 삶터,풍물굿패 참넋,창작집단 달,풍물굿패다스름,풍물굿패소리결,풍물마당터주,풍물패더늠,풍물패터울림,한국독립영화협회,한국독립춤꿈들모임,한국작가,회의,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행동하는 기억 4․16, 대구민예총,(사)강원민예총,(사)경기민예총,(사)경남민예총,(사)광주민예총,(사)대전민예총,(사)부산민예총,(사)울산민예총,(사)인천민예총,(사)전북민예총,(사)제주민예총,(사)충북민예총,(사)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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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자유실천위원회   10월 시사 좌담회에 모십니다 자유실천 2014.10.22. 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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