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산다는 게 참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운 날들의 연속입니다. 모두들 잘 살아보려고 전속력으로 질주하며 달려가는 삶, 그러다가 부딪치면 흔적 없이 날아가 버리는 삶, 우리의 삶은 불안과 공포의 대지 위에 세워진 가건물 같습니다. 박후기 시인은 "세상 모든 길은 난간"이라고 말합니다.

세상 모든 길은 난간이다. 누군가의 걸음걸이가 위태로워 보인다면, 그는 분명 난간 위를 걷고 있는 것이다.
재개발지구에서는 꽃들도 난간 위에서 피고 진다. 버려진 꽃들이 생사의 경계 위에서 목을 길게 빼고 망을 본다. 가끔, 발을 헛디딘 꽃잎이 난간 아래로 추락하기도 한다.
지상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난간 위에 망루를 세웠다. 망루가 서 있던 난간은 무너진 하늘의 일부였다. 그곳은 철거민들의 소도였지만, 官吏들은 용산 4지구라고 불렀다. 누군가 망루에 불을 질렀고, 시커멓게 타버린 사람들이 들것에 실려 급하게 이승을 빠져 나갔다.
모두 난간 위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발아래 세상을 보지 못했다.

--- 박후기 '난간에 대하여'

세상 모든 길은 층계나 다리의 난간 위를 걷는 것처럼 위태롭다는 것이지요. 박후기 시인은 지난 1월 용산 재개발지구에서 참혹하게 죽어간 사람들의 삶 역시 난간 위의 삶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제 살던 곳에서 쫓겨나게 된 사람들이 옥상에 세웠던 망루도 난간위에 세운 망루나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곳은 철거민의 소도였다고 말합니다. 소도(蘇塗)는 피난처입니다. 그곳에 들어가면 쫓기던 사람도 잡지 않는다고 믿는 고대 우리 민족의 신앙이 만들어준 예외구역입니다.

그러나 살기 위해 옥상의 망루로 올라갔던 철거민들은 불에 타 죽은 시체가 되어 망루를 내려왔습니다. 재개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조원의 이익 앞에 그들의 죽음은 무참하게 묻히고 수없이 터지는 사건과 사고 속에 잊혀지고 있습니다. 다음 주면 그들이 불타 죽은 지 백일이 됩니다. 아직도 불에 탄 그들의 목숨은 냉동실에 갇힌 채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승을 떠났으되 저승에 묻히지 못한 그들의 삶은 책임규명도 되지 못한 채 얼어 있습니다. 검찰이 수사한 기록 중에 중요한 부분은 법원이 변호인들에게 공개하도록 명령해도 공개 되지 못하고, 사람답게 살아보려고 몸부림치던 그들의 가난한 일생은 난간 아래로 추락한 꽃잎처럼 시간 속에 묻히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언제든지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엄연한 현실입니다. 돈 때문에 사람이 죽었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돈이 더 큰 것이라고 믿고 아픈 죽음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비겁합니다. 원수의 죽음일지라도 죽음 앞에는 절하는 미덕을 지녔었습니다. 우리들은 졸렬해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난간 위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발아래 세상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며칠 있으면 그들이 세상을 뜨고도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냉동된 채로 버려져 있는지 백일이 됩니다.

<2008.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