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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학자들은 영어를 ‘언어 살해자’라고 부른다. 그들에 따르면 전 세계 언어의 숫자는 5000종에서 6700종에 이른다. 하지만 해마다 적게는 수십종에서 많게는 수백종씩 사라지고 있으며, 그 빈자리를 대체하는 최대의 언어가 바로 영어다. 인류 문명이 다양성을 상실하기 시작한 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건만 이런 보고서를 접할 때마다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그러나 언어 살해는 서로 다른 언어들 사이에서만 생기는 일이 아니다. 한 언어 내부에서도 언어 살해가 일어난다.
많은 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고 고운 우리말은 이제 사전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어차피 언어란 서로 갈등하고 투쟁하면서 변화 생성하는 것이므로 무작정 옛말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과거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사물이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새로운 말을 찾아내고 만들어내는 건 아직 우리의 상상력과 창조력이 녹슬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말 가운데 고유어가 소멸해가는 현상이나 심각한 반성 없이 자발적으로 새로운 언어를 받아들이는 현상도 언어 살해의 한 유형이겠지만, 정작 심각한 우리말 내부의 언어 살해는 그런 곳에 있지 않다.
유언 혹은 유서는 한 사람이 스스로의 삶을 통틀어 만들어낸 언어다. 그 삶이 짧든 길든 온 생이 깃들어 있는 언어의 무게를 가늠할 수 있는 저울은 없다. 저울의 눈금이 영혼의 무게를 가리킬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그러므로 유언 혹은 유서는 우리의 영혼에 스며드는 언어이며, 그럴 때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남는다. 더이상 뜻이 통하지 않는 말, 그것이야말로 언어의 죽음이며, 그 언어의 진심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언어 살해이다. 단말마와 같은 저 짧은 유언과 유서마저 내치는 자들이야말로 진정한 언어 살해자들이다.
<2009. 4. 28 손홍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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