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흔복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먼 길 가는 나그네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솔출판사, 2007년 3월 2일)
1998년 첫 시집 <서울에서 다시 사랑을>을 발표한 이흔복 시인이, 9년 만에 묶어낸 두 번째 시집이다. 만물의 동질성과 차이성을 통합하는 우주적 존재론 속에서 태어난 시편들이 실려 있다. 이 시편들은 물(物)과 물(物) 사이, 주관과 객관 사이의 '경계'에 놓인다.
각각의 시편들에서는 대상과 주체 사이의 무수한 치환과 시선의 되먹임이 나타난다. 이와 같이 대상과 의식이 하나 되는 것, 상호 관통하여 심(心)과 물(物)이 하나로 아우르는 세계. 화(化) 또는 기화(氣化)가 이흔복 시인의 시적 사유의 기초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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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흔복
1963년 경기도 용인 출생. 1986년 문학 무크지 「민의」로 등단. 시집으로 <서울에서 다시 사랑을>, <먼 길가는 나그네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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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낙타는 길을 잃지 않는다
황허의 아침은 물안개로 시작된다. 밤새 밤안개에 젖은 깃을 털어내려는 듯 강바닥을 스치며 낮은 비행을 하는 새 신기루처럼 아른거린다.
생전에 누리던 영화에 비하면 볼품없는 반구상의 양귀비의 분묘를 보니 나의 지친 마음은 차라리 비장하여라.
드넓은 평야에 야트막한 언덕이며 호수며 나무를 군데군데 놓아 둔 푸른 초원을 지나 구름 높이 머리에 이고 앞을 보고 뒤를 보지 않고 내 그림자에 놀라고... 낙타를 믿고 의지하지 않으면 건너기 힘든 사막을 길을 횡단한다.
모래산 너머 모래바다 그 바다에 닻을 내린 밤, 바람은 매섭다
별빛을 등에 지고 늘어앉아 쉬어가는 둔황에서 서쪽으로 천 리 길 온통 사막이다.
실크로드를 가는 나그네는 절대로 신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다. 실크로드를 가는 낙타는 육안으로도 먼 길을 간다.
햇빛에 붉게 불타는 화염 켜켜이 쌓인 지평선 서쪽 끝으로 삼장법사 일행을 따라 간 곳은 지평선 붉게 물들이며 멀리 번져나가는 또, 사막이다.
::시인의 말
어느 날 내가 죽고 나는 울었다.
나타나엘이여, 내 죄가 많다.
내 그대를 아프게 했다. - 이흔복
::추천글
한 허무가 여기 있다. 이 노곤하고 아득한 마음의 행보는 세상에 속한 자의 것이 아닌 듯하다. 무심함이 아니라, 어디선가 넋을 놓은ㅡ또는 놓친ㅡ것이다. 가엾고 무섭고 슬프다. 가엽게도 집 없는 넋은 아이처럼 무구하게 놀고 있고, 넋을 잃은 빈 육신이 허청허청 어디론가 가는구나. 이흔복의 시에서 이런 기이한 혼의 풍경을 만나게 될 줄이야. 소월 이후 소식 듣기 어렵던 전율스러운 허무의 재림이 나는 황홀하고 무섭다. - 김사인 (시인, 문학평론가)
세속 속에서 신성을, 존재 안에서 우주를 발견하고 서로 소통하는, 일상적이고도 경건하며 자유분방하고도 자기 초월적인 세계. 이흔복의 시는 세속의 뭇소리들을 시적 화두의 불쏘시개로 삼아, 동양의 유서 깊은 형이상인 대승적 관음의 도를, 그에 상응하는 변주된 민요조와 취우처럼 듣는 우주음이거나 달빛에 취한 소요음의 합주로서 소리한다. 시인은 관음을 통해 보살행에 이르고자 하는가. 한국 시의 원천을 이루는 이 전통적 형이상의 세계가 오늘 다시, 새로운 모습을 드러낸 것은 자못 가슴 떨리는 일이다. 이는 오랫동안 잊혔거나 폐석과 잡석 더미에 가뭇없이 파묻혔던 한국 시의 금맥의 발견이요, 한국인의 마음 깊이 잠들어 있는 시혼의 부활의 노래라고 할 만하다. - 임우기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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