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이소리 시인의 네 번째 시집 [바람과 깃발]
(바보새, 2006년 4월 20일)

시집 『노동의 불꽃으로』『홀로 빛나는 눈동자』『어머니 누가 저 흔들리는 깃발을 잠재웁니까』를 펴내며 활발한 문단활동을 펼치던 이소리(47) 시인이 지난 1996년 12월, 홀연히 서울을 떠난 뒤 소식이 없다가 12년 만에 네 번째 시집 『바람과 깃발』을 들고 서울문단에 다시 나타났다.

이소리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낙향한 뒤 내게 닥친 세상살이가 어찌나 지독했던지 이렇가 할 말들조차 몽땅 잊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라며, “글만 쓰더라도 가족들 배 고프지 않게 먹고 살 수 있는 그런 날들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소리
1959년 창원 상남 출생. 1980년 월간 <씨알의 소리>에 「개마고원」「13월의 바다」 등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1978년 3월부터 1986년 3월까지 8년 동안 창원공단 현장노동자로 일했으며, 펴낸 시집으로 『노동의 불꽃으로』『홀로 빛나는 눈동자』『어머니, 누가 저 흔들리는 강물을 잠재웁니까』등이, 장편소설로 『미륵딸』이 있다.

문학평론가 김윤태는 “이소리의 이번 시집에 드러나는 두드러진 면모는 노동현실의 고발과 적대적 계급인식 같은 지난 시절의 경향이 현저히 김소하고 다양한 시적 제재를 통한 여러 실험적인 시도를 감행히고 있다”라며, “이번 시집은 이 땅의 어디에서든 만날 수 있는 자연물들이거나 삶의 곡절들, 혹은 사회 현실적 과제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평가했다.

12년 만에 펴내는 이소리 시인의 네 번째 시집은 ‘달팽이’ ‘송곳대’ ‘조선 고추’ ‘수세미외’ ‘나팔꽃’ ‘쌀 한 톨’ ‘지리산의 봄’ ‘겨울강’ ‘자화상’ ‘몽당연필’ ‘간절곶’ ‘들’ ‘탱자’ ‘대추’ ‘용선대를 오르며’ 등 65편이 5부에 나눠 실려 있다.

::책 속에서

바람과 깃발

바람은 사물을 흔들 때
비로소 잊혀진 제 얼굴을 찾는다

깃발은 힘차게 휘날릴 때
비로소 죽어버린 제 생명을 일으킨다

바람과 깃발은 서로 아끼고 두려워 하지만
제 의사와 아무런 상관없이
철천지원수가 되기도 한다

바람과 깃발은 현실을 부벼
꼭 하나가 되는 그날
비로소 이 세상의 참사랑을 낳는다

::추천글

저 암울한 군사독재시절, 민족문학작가회의 첫 총무간사를 맡았던 이소리 시인은 민활하고 세심한 업무처리 능력으로 작가회의 초창기 사무국의 기틀을 세우는 중추적 역할을 감당했다. 재야단체의 중심에 서 있었던 작가회의의 실무자로서 타 재야단체와의 연대 등 폭주하는 업무 속에 무상으로 일관한 그의 2년여의 헌신은 문학인으로서의 역사적 소임을 다하는 모범을 보임과 동시에 작가회의의 발전에 탁월한 기여를 한 바 있다.

그가 문학행정가와 잡지발행인 그리고 언론인을 거쳐 다시 시인으로 돌아와 12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시집은 눈부신 서정과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세상의 슬픔과 희망과 분노를 밀도 높은 언어로 그려내고 있어 우리에게 남다른 감동을 전한다.-김명수

이소리는 가열찬 노동 현실과 서정을 한몸으로 만드는 힘을 지닌, 보기 드문 시인이다. 개인의 단단한 껍질, 겉만 화려한 포스트모던이 횡행하는 풍토에서, 이번 시집은 얼굴만 바꿔 더욱 조여드는 일터의 실상을 절절한 서정으로 형상화한 데서, 그의 시적 입지를 확고하게 만든 점이 돋보인다.-박몽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