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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
박병례
궁리를 갖지 않았으면 궁리를 해라. 먹고살 궁리, 입에 풀칠할 궁리, 새끼를 잡도리할 궁리. 말귀를 알아들을 나이부터 귀에 딱지가 올라앉도록 들은 잔소리였다. 하지만 앞으로는 누가 타박을 하지 않더라도 그녀가 벌어먹어야 한다는 건 그녀를 아는 이라면 누구나 수긍하는 심란한 사실이 되었다.
사람들은 청천벽력이라 했다. 어느 날 지진해일이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거라고, 불시에 혼자 겪는 불행처럼 외롭고 대책 없는 건 없을 거라고, 타인의 불행을 얼마든지 넘겨짚어 떠들 수 있었는데……. 운명은 그녀로 하여 남 말 하며 편히 살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남편의 상을 치루는 내내 원통하고 절통하다고 악을 쓰며 혼절하던 시어머니의 대찬 기는 언급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그녀의 기가 세서 남편을 잡아먹었다는 시집 식구들 간의 공고한 믿음이 그녀를 남편 죽인 주범으로 몰아가기까지 그녀는 그들의 생각에 일말의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고통스런 심기를 주체 못해 벌이던 눈싸움을 뒤로 하고 기꺼이 시어머니의 편이 되던 시집 친지들의 비쭉거리는 입 모양이 잔상으로 남아 그녀를 괴롭혔다. 돌연사를 한 남편의 사인에 관한 온갖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그녀에게 누명을 씌우는 게 기막혔지만 가닥가닥 갈라져서 나오지 않는 쉰 목소리를 거두어들이며 총총 떼로 몰려다니던 시집 식구들이 오히려 황감했다. 정을 뗀다는 게 과연 어떤 건지 터득하게 해주었으니 감사할 따름이었다고나 할까.
주말을 온전히 시집에서 보내고 온 월요일 아침, 고스란히 당했다는 느낌이 온다는 게 심 상한 일이 아니었기에 약이 바싹바싹 올랐다. 어른들 모시고 사는 여자도 있는데 어지간히 별난 성질머리를 가졌다고 빈축을 산다 해도 피폐해져 가는 자신의 삶에 분통이 터졌던 것이지, 정녕 시집 식구들과의 사이를 모질게 가지고 가고 싶어 고의로 까탈을 부렸던 건 아니었다. 매번 소모적인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게 힘에 부쳐 안달을 했건만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하고 허망하게 끝날 줄이야. 헐렁하게 살자고 떼를 쓴 건 아니었는데 그 또한 그녀의 허물이 되었다. 그래도 그렇지 전화를 받아서 흐뭇한 적 없고 흔쾌히 전화를 걸고 싶었던 적이 어쩜 그렇게도 없었는지. 안부를 묻지 않는 게 편했고 오는 전화 받고 싶지 않아 망설였던 숱한 기억들이 제 안에서 곪고 터지며 부스럼을 유발했다. 때 되면 어련히 알아서 챙길 텐데 사람 마음을 흔들어놓으며 그녀를 못된 여자로 만드는지 그게 시집 식구들과의 대면에서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다.
시어머니는 그녀가 탐탁지 않았는지 어깃장을 놓으며 노골적으로 내치곤 했다. 아들이 없는 자리에서는 유치하고 저급하지만 그 연세에도 며느리를 수중에 넣고 흔들어보겠다는 속셈인지 드레드레 심술을 떨며 그녀를 자극했다. 아들이 좋다고 하는 여자를 마지못해 며느리 삼은 시어머니의 사나운 심사를 나 몰라라 하는 건 아니었지만 세월이 흐르면 좋든 싫든 가족으로 묻어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 모든 책임을 어그러지고 비뚤어진 그녀의 성정 탓으로 돌려도 해결이 나지 않았으니 그녀의 인생에서 파르르 독이 오른 때라면 바로 그 시기였다.
세상에 둘도 없는 금쪽같은 귀한 자식이요, 각별한 아들이었으니 오죽이나 억울하고 억장이 무너져 내렸을까. 죽을상을 하고 몸을 도사리고 있던 모습. 모르긴 몰라도 보는 눈이 없었더라면 기진한 몸을 추슬러 며느리 머리끄덩이를 쥐고 흔들고도 남을 시어머니의 무작스런 모습을 간파했는지 부득불 집에 들어가시라고 해도 연로한 친정엄마는 사위의 장례를 치르는 줄곧 병원을 떠나지 않고 구석에서 딸의 안위를 살폈다.
시집과 친정 식구들로 패가 나뉘어 있던 예사롭지 않은 장례식장의 분위기가 남편 잡아먹은 여자를 경계하던 시집 식구들의 눈초리에 맞선 친정 식구들의 일종의 시위였음을 나중에야 알았다. 친정붙이가 시원찮은 여자들은 어떻게 하지. 그녀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
하기는 예민하고 까탈 맞고 가정교육 제대로 받지 못해 그들이 보기에 고분고분하지도 않으며 돈 벌이 한 푼 못 하는 며느리가 눈에 찰 리 없었다. 차마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그녀만 보면 그들의 얼굴에 선사시대의 바위그림에서나 보일 법한 간절한 소망이 부활하고 강렬한 이미지의 기원이 표출되었으며 불만투성이의 서사들이 살아났다. 주술적인 힘도 없이 그녀 혼자서 그 많은 시집 식구들의 온갖 기원을 수습해 해결해야 했으니 크고 작은 시집의 잦은 행사를 제쳐두고서라도 그녀는 숨이 가빴다.
살림만 하는 여자를 순전히 놀고먹는 여자로 분류해 한심하게 보는 사람들이었으니 하루 종일 집 안에 틀어박혀 뭘 하는지도 모르는 며느리를 이해하기는 어려웠겠지. 대살진 시어머니와 층층시하의 앙칼진 시누이들이 아니라 하더라도 무언의 압력을 행사하는 시집 식구들 앞에서 그녀는 늘 쪼그라들었다. 금강석을 뚫고라도 뿌리를 내릴 만큼 생활력 하나는 타고 난 사람들이었으니 집에서 놀고 있는 며느리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있으면 안 되었다.
친정엄마는 어려서부터 뚱한 그녀를 홀대했다.
“이것아, 말 안하면 귀신도 몰라.”
‘귀신이 왜 몰라? 나도 아는 걸.’
그녀의 내면에서 쏟아진 항변이었다. 워낙 말수 없고 뚝뚝한 그녀를 엄마는 답답해했지만 그녀의 의사는 달랐다. 사람이 말로써 본심을 전한다고 여기는 건 오산이다. 진심을 담은 말은 원래 잘 나오지 않는지라 말을 하고 나서 잘했다는 사람보다는 실수한 것 때문에 밤잠을 설치며 괴로워하는 사람을 더 많이 보아왔다. 그것으로도 부족해서 사람을 만나자마자 자신이 실수한 부분을 수정하려다 더 큰 실수를 저지르고는 쩔쩔매는 걸 한두 번 본 게 아니다. 실컷 떠들어놓고 누구한테는 이 말 하지 마. 하지만 그때까지 그 사람한테만 그 말을 안 했을 뿐 남들한테는 이미 다 떠벌리고 다녔음에야. 그녀는 근거 없이 떠도는 말의 속성과 허풍이 싫었다. 딱히 말과 바람의 상관성을 따지자면 미덥지 못하고 상서롭지 못한 어떤 예감이 그녀를 졸졸 따라다녔다고나 할까. 아무튼 그들이 한통속이라는 것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
남편 사후로 살아갈 방도를 모색해 보았지만 별 뾰족한 수가 나지 않았다. 그간 남편 덕으로 호사를 했던 게 밝혀진 마당이었으나 그렇다고 시어머니를 위무하고 싶지는 않았다. 며느리가 아들 덕에 편하게 사는 게 새록새록 심통이 났던 게라고. 아들만 혼자 죽어라 고생한 것이 안타깝고 가슴 저며 며느리에게 도끼눈을 뜨고 있던 시어머니 심중을 헤아리지 못했던 불찰을 부디 용서하시라고. 편안해서 죄송했다고. 하지만 경우가 아니지요. 먼저 가다니요! 아무런 채비도 하지 않았는데 훌쩍 가버렸으니 패악을 부린 거나 다름없지요. 그러니 어머니 아들을 잡아먹었다는 혐의는 그만 거두어 주세요.
그녀는 아망이라도 떨고 싶었지만 참았다. 시집 식구들도 그녀도 누구 하나 섣부르게 속을 드러내어 손해 날 짓은 하지 않았다. 그 상태에서도 그들은 계산을 하고 있는 걸 그녀라고 해서 모르지 않았다.
“말 안 하면 귀신도 몰라.”
‘뭘 모르는데.’
그녀는 친정엄마에게 유감이었다.
다 제하고 그녀에게 남은 재산이라고는 그녀의 발목을 잡는 대출금을 낀 집 한 채와 다만 얼마 안 되는 보험금이 전부였건만 시집 식구들은 ‘땡 잡은 거’로 여기는 눈길을 여과 없이 보냈고 그녀 역시 ‘먹고 떨어져라’는 심정으로 보험금의 절반을 시어머니 통장으로 부치며 손을 탁탁 털었다. 이미 피장파장의 감정의 골을 넘어선 마당이니 그런 표정은 백 마디 말보다 몇 백 배의 큰 파급력을 발휘했다. 남편 죽이고 남편 덕에 호강하게 생겼다고 비록 악담을 퍼붓지 않더라도 보상금 앞에서는 새삼스럽게 체면 따질 경황이 없었는지 내비치는 기색이 직설적이고 적나라해서 오만정이 싹 떨어졌다. 그래 그만하면 됐다고, 후련하다고 여기는 그녀였지만 그녀의 입에서 터진 불평은 그녀 스스로 여겨도 어처구니없고 면구스럽기 짝이 없었다. 다 지나간 고릿적 시절을 떠올려 뭐 하겠는가마는 이십대의 그녀 자신에게는 포한이 졌던지 그 순간에 자신에게 흠구덕을 씌울 줄은 몰랐다.
‘시를 썼어야지, 시를.’
자신의 능력을 포장할 만한 게 변변치 않다손 치더라도 그렇지 시를 썼어야 했다고 투덜거린다는 건 어딘지 터무니없고 가당치 않은 변명이 틀림없었다. 만에 하나라도 바람 핑계를 대려는 건 아니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게 없는 건 분명했다. 탄력을 잃은 중년 여성의 몸에서 근육이 차지하는 비율은 갈수록 부실했고 팔뚝의 살은 탄성을 잃은 바지 허릿단의 고무줄처럼 축 늘어져 늙음을 절로 실감하게 했다. 평소에 그녀는 바지런한 여자들이 에어로빅 장에서 과감하게 몸을 흔드는 모양을 구경하곤 했다. 운동을 하고 샤워를 마친 중년 여성들한테서는 왠지 불경스러울 만한 생기가 철철 넘쳤지만 그녀가 범접하지 못할 것이었다. 그녀들은 뭉쳐서 유명하다는 밥집을 찾아 다녔고 다음 날 타잔같이 소리를 질러대며 살을 흔들고 지방을 태우느라 고심했다. 활달하고 거침없는 또래의 여자들에게 저절로 감탄이 쏟아졌지만 무턱대고 등록할 수가 없었다. 끝나면 뭉쳐 다니는 게 겁났고 음악에 맞춰 흔들 숫기가 없었으며 하루하루를 격정적으로 살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은 강박증을 이겨낼 자신감이 없었다. 무엇보다 그녀의 삶에 제꺼덕 끼어들며 참견을 할 바람이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그녀와 눈만 마주치면 사설을 늘어놓았다. 엄마의 넋두리를 들어줄 상대로는 입 바른 소리 할 줄 모르고 앙알거리며 대들지 못하는 그녀가 제격이었다. 그녀가 아니면 엄마는 토방 한쪽에 세워져 있는 절구통 보고라도 시끌시끌한 속을 풀어야 했을 테니 누군가는 엄마의 으름장을 수굿하게 받아줘야 했다.
“네미, 살아 갈 궁리를 해야지. 나가서 줴 빨래거리만 투들겨다 놓으면 어떡하라고!”
우렁이를 잡아 오느라 옷과 신발이 진흙으로 어지럽혀진 그녀의 행색을 보고 엄마가 눈살을 찌푸리는가 싶더니 이내 식구들을 잡아먹기라도 할 것처럼 을러대었다.
“옘병, 남들은 어떻게 하면 한 푼이라도 더 모을까 기를 쓰는데 우리 집 화상은 멀쩡한 살림살이를 저 모양으로 우그러뜨려놔. 어디 딸년을 나 혼자만 키워? 다 큰 년을 내가 무슨 수로 잡아 족치냐고? 지 몸띵이 하나 건사를 못 해서 처녀가……. 아이구, 남사스러워서. 이년아, 너도 네 몸띵이 잘 건사하고 목구멍 풀칠할 궁리를 해야 써. 에이, 급살 맞아 꺼 꾸러질 것들.”
궁리! 까막눈이었던 어머니의 삶의 방식은 단순했지만 사람이 살아갈 궁리를 고민하는 게 철학의 영역이라면 어머니는 대단한 철학자였다. 올곧게 일생토록 꺾이지 않는 불굴의 철학적 신념이 있었으니.
그녀에게는 시를 쓰는 후배가 있다. 후배는 시를 쓰나 정작 시를 써서는 먹고 살 수 없으니 영어 강사로 생활을 꾸려나간다. 후배는 평생 시를 써서 받을 고료를 두어 달 만에 벌어놓고 시 쓰는 것에 대한 그 어떤 구속을 받지 않는다고 큰소리 쳤으나 그처럼 허허롭게 들릴 수가 없었다. 그녀는 후배를 위로하고 싶었지만 후배는 그녀만 보면 그녀를 위로한답시고 한마디씩 던지곤 했다.
“언니는 남편도 있고 자식도 있잖아. 언니는 좋겠네. 아쟈씨, 코가 커서 좋겠네.”
자식도 있고 코가 큰 남편도 있으니 소설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였으리. 코가 큰 남편이 있었으나 밤일은 실하지 못했고, 밤일이야 어떻든지 간에 그녀에게 코가 큰 남편이 있다고 해서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남편은 때때로 밥값 할 거지? 호기롭게 물어오곤 했다. 술 한 잔 걸치고 건넨 농담이 아니라도, 남편이 코가 크지 않더라도, 진정으로 글을 써서 밥값을 하고 싶었다.
남편이 늦은 나이에 철이 들기 시작했는지 농담으로라도 다시는 곤혹스럽게 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시도 때도 없이 화기가 올라왔다. 글을 못 쓰더라도 자연스런 노화의 현상으로 한차례 홍역을 치를 시기였건만 무슨 구실이라도 내세워야지 그러지 않으면 견딜 재간이 없었다.
‘하여간 시를 썼어야 했어. 그랬으면 내 목구멍에 풀칠할 염은 냈을 거 아냐.’
아무리 푸념을 한들 죽은 남편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 돌아올 리 없었다. 전업주부였던 여자가 남편이 돌연사를 하고 난 뒤 실업자로 전락한 자신의 존재를 용인하기란 간단하지 않았다. 남편이 죽었을 뿐인데, 그랬을 뿐인데……. 마냥 오기를 부리고 있는 자아를 들여다보는 건 인생의 참패를 수용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남편이 살아 있을 적에는 그녀가 굉장한 직업여성이라도 됐던 것처럼 착각하게 하다니! 그녀는 보이지 않는 어떤 것에 자신이 농락당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 두리번거렸다. 그게 숙명이든 운명이든, 가혹하든 가혹하지 않던 간에 시어머니의 야박하고 집요한 주장을 떠올리기 싫었지만 그녀 자신이 남편을 잡아먹은 건 아닌가 하는 가책이 들었다. 어쨌든 남편을 잃은 것이 부끄러웠고 밥벌이를 할 재주도, 젊음도, 건강도 지키지 못한 허약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가족만을 상대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던 전업주부의 삶에서 이제는 타인과의 확장된 세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냉엄한 현실 앞에서 그녀의 혈압이 출렁거렸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죽었으니 농부는 어떻게 살아가지!”
막막함을 뛰어넘는 무력감 앞에서 그녀는 수시로 중얼거렸다.
느긋하게 청소를 하고 차를 마시던 소소한 일상이 그녀의 생애에서 영영 사라져 버렸다는 걸 깨달았을 때 평소에 그녀가 물건을 어딘가에 잘 두고 찾아 헤매던 습관처럼 아무 일 없던 일상을 잘 두고 못 찾는 건 아닐까 해서 안절부절 못하기도 했다. 잘 두었으니 언젠가는 나오겠지 하던 물건이 실제로 나오지 않은 것들도 꽤 되던 것처럼 그녀는 받아들여야 했다. 과정이 무참하고 가련하다고 할지라도 그녀는 고개를 한없이 떨어뜨렸다. 피어 보지도 못하고 세찬 빗줄기에 후드득 떨어진 꽃의 처지가 그러할 것이라고. 남편도 그랬을 것이라고. 그녀에게 일어난 나쁜 일들이 모두 허황된 소문이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심경으로, 때로는 살아온 날을 참회하는 처절한 기분으로 고개를 숙였다.
주말에 숲 해설가로 활동하기도 하는 후배는 종종 그녀를 불러내어 꽃에 관한 얘기를 계통도 없이 들려주었다. 후배는 그녀가 즐겨 듣지 않아도 엄마의 훈수에 견줄 만한 집중력으로 꽃에 대해 설명하기를 좋아했다.
“우리 주위에 있는 갈래꽃 중에서 아마 제일 큰 게 목련꽃이지! 참 희한한 꽃이야. 처음 으로 꽃잎을 만든 꽃이라고 해. 음, 무슨 뜻이냐면 목련꽃이 바람을 믿지 못하겠다고 반 란을 일으킨 시초라는 거지. 바람에 맞선 나무라고나 할까. 지구상에 곤충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나무들이 꽃잎을 만들 고안을 했다지. 그 전에는 한마디로 꽃잎이 없는 꽃들이 판을 쳤던 거지. 바람을 믿고 봄에 무식하게 꽃가루를 날리며 들이대는 것들 말이야. 자세히 봐봐, 걔네들은 꽃잎이 없다고. 그 무렵 목련은 꽃잎을 발명해 곤충들에게 수분을 부 탁한 선구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나. 이어서 너도나도 목련을 모방해 꽃잎을 만들었다는 거야. 처음 하는 일이 대개가 그렇듯 목련꽃은 색의 선명도를 높이지 못해 쌀뜨물 비스므레 한 색을 지니고 있잖아. 뜬 비지 색 같기도 하고. 거기다 목련은 갈래꽃이라 한 번 들어온 벌과 나비들이 쉽게 빠져나가 실속이 없다는 거야. 갈래꽃보다 진화를 한 게 통꽃이잖아. 통꽃에 갇힌 곤충들은 나가는 길을 찾느라 헤맬 테고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꽃가루를 옮길 확률이 높겠지. 혹시 통꽃이 떨어지는 거 본 적 있어? 툭 떨어질 때 통증이 느껴지는 것 있지. 나는 그렇더라고.”
갈래갈래 흩날리는 꽃잎은 떨어질 때도 바람과 함께했고 떨어져서도 바람에 휩쓸려 다니며 가녀린 꽃잎을 과시했다. 그렇지만 통꽃은 눅눅한 이슬이 내린 다 저녁때 이슬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툭, 떨어져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아무런 감동도 없이, 전조도 없이. 그저 쉬고 싶다는 듯 허무하게, 허랑하게 떨어져 내렸다. 잦은 야근과 회식에도 끄떡없던 남편은 명퇴명단에 오른 동료의 생활고를 염려했고 돈 문제로, 여자 문제로 목숨을 끊은 친구들의 부음을 접할 때마다 비탄에 빠져들었다. 굳이 동료와 친구의 사고가 아니었음을 그녀라고 해서 눈치를 못 챘을까. 이성을 배반하며 살아온 날과 살아갈 무수한 날이 주는 중압감이 남편만의 과제가 아닌 것을. 고독과 죄책감과 허탈감이 뭉텅이 뭉텅이로 밀려오는지 오십이 가까워오는 남자의 고개가 정중앙으로 푹 꺾일 때 할 수만 있다면 그녀는 남편의 목을 잡아 빼 주고 싶었다. 그러면 못 쓴다고, 그러지 말라고.
“바람이 아니라면 풍매화들은 무슨 수로 살아남았겠어. 바람을 신뢰하지 않고 기발한 안목으로 꽃잎이란 카드를 꺼내 든 목련도 대단하지만 바람을 의지하고 생존한 나무들은 더 위대하지. 꽃가루를 대량 포화하며 까마득한 날부터 현재까지 자신들의 존재를 변함없이 각 인시키고 있잖아. 처녀들의 가슴에 바람이 들게 하는 냄새, 어쩌면 그것이 바람 짓이 아니었는지 몰라.”
그녀는 바람결에 번지는 송화 가루를 내려다보았다.
떼를 입히고 난 뒤에 보니 남편의 무덤에 노란 꽃가루가 내려앉아 있었다. 그녀는 문득 바람이 왔었다고, 바람이 남편을 데려간 것이라고 단정했다. 그렇게 바람이 들지 않게 단속을 했건만.
봄에는 그것들 때문에 정신이 쏙 빠지곤 한다. 창문을 닫아 놓아도 걸레질을 하다보면 걸레에 노란 가루가 들러붙어 있었다. 야단스런 꽃가루가 잦아들고 스멀스멀 바람 난 것들끼리 수정이 이루어질 무렵, 남편은 훌쩍 가 버리고 앞으로 수고하고 늙어갈 일이 남은 그녀만 덩그러니 던져진 기분이었다.
후배는 그녀가 건성으로 들어도 그다지 상관하지 않았다.
“삼사월에는 곤충이 막 잠에서 깨어나 굶주려 있는데 꽃이 뭐 하러 에너지 낭비를 하겠어. 일찍 피는 꽃들은 진한 색감과 향기, 곤충에게 나눠 줄 특별보너스인 꿀을 생산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야. 그렇지만 유월에는 눈을 들어봐. 온 천지사방에 깔린 게 꽃인데 그때 피는 밤꽃은 대비책을 세워야 했겠지. 꽃은 볼품없겠다, 노란 빛마저 곤충의 눈에 잘 띄지 않겠다, 무슨 수를 내야 했던 거지. 밤꽃 향기 맡아 봤지? 천지사방에 핀 꽃들과 경쟁하려는 가장 좋은 묘안을 낸 게 그 냄새잖아. 비리직직한, 그 냄새! 유독 유월에만 내가 남 자를 밝히는 이유가 그 냄새 때문이 아닌지 몰라. 육이오가 왜 터졌을까 그런 의혹을 품은 적 없어? 발정 난 것들이 참다 참다 한 방 탁 터트린 건데 추잡하게 잘못 터트린 거지. 아랫도리를 깐다는 게 그만 총부리를 까고 말았던 거 아니겠어? 그래서 무진장 슬프기도 해, 유월은. 아, 언니는 좋겠네. 아쟈씨, 코가 커서 좋겠네.”
세상없어도 후배 시인은 고매한 표현은 쓰지 못했다.
그녀는 햇살 아래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그러다 베란다에 쓰러지다시피 엎드렸는데 그런대로 견딜 만했다. 생선 자반이 채반에 꾸들꾸들 말라가듯 간간한 소금기가 입가에 스미는 듯도 했다. 가만히 있으니 어디선가 도랑물 흐르는 소리도 들려왔다. 긴장할 대로 긴장했던 근육이 하나둘 풀어지는 게 느껴졌다.
그녀가 늙어 갈 일만 남았듯 아이들은 커 갈 일만 남았으니 꾸준히 돈이 들어간다는 셈이 나왔다.
‘몇 푼 있는 것마저 몇 년 안 가 바닥이 나겠지. 시를 썼어야 했어. 꽃가루가 날려 가려움증이 도지는 봄이 와도 시를 썼어야 했던 거야.’
그녀는 일 년에 한두 편의 소설을 지방지에 발표했다. 지방지라 해도 과히 나쁘지는 않았다. 그녀의 글을 읽을 독자들의 숫자에 연연해하지 않는다면 청탁을 받는 자체로 흥감했다고나 할까. 그러나 한 번도 들어본 적 없거나, 들어봤을지언정 채 5호를 넘기지 못할 잡지사로부터 받은 원고청탁서에 실린 정중함이 오히려 낯간지럽고 송구스러웠던 건 고료 때문이었다. 그녀의 수고와는 거리가 먼 원고료가 입금되었고 소설가로서의 자긍심이라고는 코딱지만큼도 발견하지 못할, 차라리 아니 받느니만 못할 고료는 황망한 심정을 거두기 어려워 워리 개야, 워리, 이것 너나 먹어라 하면서 개에게 던져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다.
중앙지의 고료가 얼마인지 관심을 꺼버렸던 시기에 그녀는 기꺼이 전업주부가 되기를 자청했다. 자잘한 봄꽃들로 집을 화사하게 꾸미는 일이 글을 쓰는 일보다 그녀에게 위안이 되었다. 더러 살아남은 알뿌리들이 이듬해 새순을 밀어 올릴 때는 감히, 워리 개야 이거 너나 먹어라 따위 짓은 절대로 하지 않을 안식과 평온을 가져다주었다. 글은 써도 그만 안 써도 그만이라면, 그녀의 삶에서 경제성 없는 일은 더는 하고 싶지 않았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죽었으니 농부는 어떻게 살아가지!’
종잡을 수 없는 생각일망정 조금도 전개되지 않고 맥없이 끊어지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더불어 축축 처지는 몸을 추스를 일이 시급했으나 보름 넘게 무기력한 날이 계속되는 데는 그녀 자신도 속수무책이었다.
‘아무려면 이대로 앉아 있기야 하겠어. 일어나서 뭐라도 해야지.’
어렵게 다진 각오였지만 스르르 주저앉았다. 그녀는 아침이면 아이들을 떠다밀다시피 학교로 보내버리고 해가 들어온 베란다에 두세 시간씩 엎드려 있곤 했다. 교실에 앉아 있을 그녀의 아이들은 젖은 몸을 말리기라도 하는 걸까. 운동장 가에 앉아 슬픔을 말릴 시간이 아이들에게도 필요한데……. 아비가 죽었어도 아이들은 이상하게 울지 못했다. 그때부터였다. 집 안이 온통 눅눅한 습기로 젖어들었던 때가. 온수를 틀지 않았는데도 욕실에는 뿌옇게 김이 서려 욕실에 있다 나오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마룻바닥을 베고 있던 몸을 돌려 그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인조 마룻바닥의 골이 이마부터 턱 선까지 칼침을 맞은 듯 흉악하게 그어져 있을 터였기에 먹을 것이 없다 해도 당장은 외출을 하지 못할 게 확실하다. 만약 그런 모습이 사람들의 눈에 띄기라고 하는 날이면 아이들의 아비가 죽었다는 소문에다 아이들의 어미마저 얼굴을 칼로 긋고 자해를 했다는 흉흉한 풍문이 덧보태져 아이들은 흘러 다닐 소문에 휘말린 채 내리 살아가게 될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햇볕을 골고루 묻히고자 애를 썼다. 남편이 없어도 저녁이면 어둠은 그악스럽게 그녀 품으로 기어들었고 그녀는 다시 눅눅해졌다. 아침마다 볕에 말려서 뭘 하려는 건지 그녀도 알 수 없지만 자꾸 물기가 도는 게 정상은 아니었다. 그녀는 외출을 하기 위해서라도 젖은 몸을 말려야 했다.
논두렁을 지날 때 도랑을 내려다보노라면 노란 양은냄비의 검은 뚜껑을 빼닮은 우렁이 기어 나와 있는 게 눈에 띄곤 했다. 어린 그녀의 손에는 두 개의 주전자가 들려 있었다. 하나는 아버지에게 갖다드릴 막걸리가 담겨 있는 주전자였고 또 하나는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져 뚜껑이 닫히지 않는, 엄마의 저주가 담긴 주전자였다.
아버지에게 막걸리를 내려놓고 돌아오는 길에 어린 그녀의 눈은 도랑가로 향했다. 그 새에 도랑가 진흙 벽에 달라붙어 있는 우렁이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해가 떨어지기 무섭게 우렁이는 다시 도랑가의 물속으로 콕 처박힐 것을, 하루 한나절 꼬박 기어올라도 도랑가의 질척한 물가를 떠나지 못하면서도 필사적인 몸부림이 어린 그녀에게는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해를 향한 기약 없는 도약이 우렁이의 꿈이었을까. 우렁이도 등껍질 속에 고인 슬픔덩어리를 털어내고자 길을 나섰던 것인지 우렁이 잡이로 소일을 하던 어린 그녀로서는 알 턱이 없었다.
포대 가득한 무를 두엄더미에 쏟아버리던 어머니는 아까워서 혀를 끌끌 찼다. 겨우내 싸매고 여며 두어도 무는 바람이 들어 못 먹을 때가 많았다. 아깝긴 해도 무를 못 먹는 것쯤은 대수로운 게 아니었다.
“단단히 바람이 들었어, 저년이.”
언니는 동네 청년의 애를 뱄고 뻔뻔하게도 처녀가 아무렇지 않게 애를 낳아 아비의 집에 던져놓은 뒤 도시로 떠나가 버렸다. 입던 옷을 훌러덩 벗어 빨래 가에 던져놓듯, 아이는 철퍼덕 던져졌고 언니와 동네 청년은 각자의 길을 찾아 떠나갔다.
“바람을 믿지 마. 맞서려 하지도 말고.”
말짱 헛소리에 불과했지만 언니의 말은 그녀의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
언니만 바람이 들었던 건 아니었다. 결국 바람은 사지육신 멀쩡하던 아버지까지 채뜨려놓았다.
“느 아버지 풍 맞았다.”
아버지의 입은 한쪽으로 돌아갔다. 바람은 중독성이 강해 아버지는 풍 맞은 몸에 또 풍을 맞고 말았다. 그랬어도 아버지의 돌아간 입은 끝내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시골에 던져진 언니의 핏덩이는 천덕꾸러기로 자라더니 노인네들의 돈을 몽땅 들고 가출을 했다. 이른 나이에 바람이 들었으니 바람을 다룰 기예라도 익혔으면 좋으련만 한 번도 찾지 않는 것을 보면 바람 이는 도시를 정처 없이 헤매고 있거나 제 태생이 그러하듯 끊임없이 던져졌다 상처받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리라.
그녀 인생에 찾아올 바람, 그게 무엇이 되었든 식구들이 막무가내의 바람 앞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가련한 신세로 내몰리며 낭패를 당할까 집을 장만한 뒤 그녀는 잠을 설치곤 했다. 한겨울이 되기 전에 창문을 뺑 돌아가며 일일이 문풍지로 틀어막는 것은 의당 그녀의 몫이었다.
모처럼 딸내미 집 나들이에 나선 어머니는 입구에서부터 끌탕을 했다.
“원, 집구석에 온기라고는……. 이것아, 작작 아껴라. 사람이 집 덕을 봐야지. 집이 사람 덕을 보게 생겼다, 이 답답한 것아.”
냉기가 뻗쳐오르는 집 안 공기를 의식하며 친정엄마는 으스스 진저리를 쳤다.
‘집 안이 훈훈하면 대번에 찬바람이 든 걸 알잖아. 제 식구 드나들듯 찬바람이 풀썩이는 게 싫어서 그래.’
그녀는 나름 할 말이 있었으나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난방비 아끼려다 사람이 병나면 어쩌니? 집에서 지독하게 주모를 떨어봐야 다 소용없다. 밖에 나가 한 푼이라도 벌 꿍꿍이는 사리고 있어야지. 남편 벌어오는 것만 쳐다보고 있다가 덜컥 뭔 일이라도 생기면 손가락 빨고 있을래?”
살 방도를 하라고 일러주어도 통 말귀를 못 알아먹는 딸에게 배신감이 들었는지 엄마의 구박은 자심했다.
아파트를 처분해야 하나 비과세 기간이 되려면 족히 이 년은 남았기에 그녀와 아이들은 남편이 없는 집에서 당분간 살아야 할 것이다. 그녀의 아이들만 한 나이였을 때 남편은 넓은 집에서 살아 보는 게 소원이었다며 극구 고집을 부리더니 그예 대출금까지 그대로 상속해 주는 일을 벌였다. 넓은 집에는 바람이 그만큼 많이 드나드는 것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투자에 그녀만 가위눌려야 했다.
그녀는 무거운 몸을 가까스로 일으켰다. 해 먹은 것은 없지만 먹지 않고 견딜 재간이 없기에 냉장고에 있던 상하기 직전의 것들을 꺼내 먹긴 먹었는데 뭘 먹고 견뎠는지는 도통 기억에 없다. 집에는 먹을 만한 게 없으니 뭐라도 사러 나가긴 나가야 했다.
근 이십일 만에 현관 밖으로 나온 그녀는 일층에서 발길을 멈췄다. 구인 안내문이 눈에 들어왔고 그녀는 머뭇거릴 새도 없이 관리 사무실을 찾았다. 오전에 할 수 있는 일이니 가능 할 거라고, 찬밥 더운밥 가릴 형편이 아닌 게라고, 더군다나 잡념이 많은 때 몸을 쓰는 일이 적격이라고 자신에게 성화를 해보았다. 옆에서는 에어로빅 수업이 한창이었다. 과연 봄은 봄인지, 여자들은 꽃가루를 털어내려는 듯 격렬하게 흔들고 있었다.
그녀가 내민 서류를 훑어보던 여직원의 침묵이 길어졌다. 동과 호수로 평수를 어림하고 있겠지. 내심 그녀는 여직원의 표정을 좇으며 초조한 빛을 감추지 못했다.
“궂은일을 하실 수 있겠어요?”
의아하다는 눈빛이었다가 이내 충분히 이해하고 남는다는 조소의 음영이 입가에 묻어났다. 침묵의 내막에는 그녀의 남편을 힐난하는 말이 생략되어 있음을 모르지 않았다.
‘허영심에 일부러 넓은 평수에 전세를 사는 작자들이 있지. 걸레질 한 번 하지 않고 쓰레기 한 번 버리지 않을 놈이, 에이 나쁜 놈. 마누라를 등 떠밀어 아파트 청소를 시켜!’
그녀는 타인의 말보다는 표정을 더 신뢰하고 존중하는 편이다.
“어쩜 좋아요! 여기 사시는 분을 고용했더니 싫은 소리 하기 어렵다는 민원이 제기 되었지 뭐예요. 안내문을 다시 붙였는데 전에 것을 보셨나보네요. 어쩌죠?
얄궂을 게 뭐 있겠냐고, 딴에는 그렇겠노라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큰맘 먹고 들어갔던 관리사무실을 나왔다.
이따금 본 적이 있던가. 엘리베이터에는 죽은 남편의 나이 대중으로 보이는 남자가 통화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그만두시면 어떻게 합니까? 살림도우미를 딴 분이라도 보내 주시든가. 여, 여, 여보세요.”
남자는 난감한지 어깨를 내려뜨렸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녀는 그녀의 집을 향하던 발길을 돌려 닫히려는 엘리베이터를 막아섰다. 엘리베이터 안에 갇힌 남자가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저기…….”
그의 집은 맨 꼭대기 층이라 볕이 속속들이 스며들어 밝고 화사했다. 도저히 바람이 들 거 같지 않은 안돈된 집, 아늑했다.
병약한 시나리오 작가가 여러 날 먹지 못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 기사는 새삼스럽게 충격적인 일도 아니었다. 그녀 자신도 남편을 만나지 않고 애오라지 돈이 되지 않는 소설을 쓴답시고 죽치고 앉아 있었더라면 그렇게 됐을 수도 있었을 거라는 그녀의 소견은 과장이 아닐 것이었다. 원래 글이란 게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일이라고 합리화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글 써서 잘 먹고 잘 사는 작가들도 있지 않은가. 딱하게도 그녀 자신이 재능이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단념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거라고. 분발해도 되는 것이 있고 안 되는 게 있지 않느냐고. 노여워 말고 순순히 인정을 하자고. 자식을 부양하는 일이 시급하니 무슨 일이든 닥치는 대로 해야 한다고 선언을 하고 나서야 머릿속이 명징해지다니. 슬플 건 없지만 오래도록 자신을 어르고 달래야 하리라.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욕실마다 널려 있는 빨래를 모아 세탁기를 돌리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는 것은 그녀의 집에서도 하던 일이었다. 단지 그녀의 집을 청소할 때보다 박박 문지르고 구석구석 먼지를 닦아내는 게 다르다면 다를까. 그녀는 몸을 혹사시켜 상념에 빠지지 않게 하려했다.
오전에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보다 더한 강도의 노동이라도 너끈히 할 수 있다고 자신에게 세뇌를 시켜야 했다. 다행히 저녁에는 과외 팀이 꾸려져 과외선생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녀의 오지랖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지만 문상을 온 아이 친구의 엄마들이 기꺼이 과외 주선을 해주었다. 그러나 그녀는 얼마 못 가 과외가 깨지리라는 것을 헤아리고 있었다.
‘왠지 꺼림칙해서. 여자가 우울해 보이지?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게 아니구나!’
환청이 아니더라도 가히 짐작할 만한 수준의 수군거림이 그녀를 또 다시 실업자로 만드는 데 한몫할 가능성이 높았다. 수업 준비를 하는 건 어렵지 않았건만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고충이 따랐으니 그녀는 자신이 없었다. 애석하게도 발이 넓지 못한 그녀에게는 과외부탁이 들어올 일은 만무했다.
하여튼 오전에는 파출부로, 저녁 시간에는 과외강사로 먹고 살 마련을 하게 되었으니 그녀로서는 천만다행이랄 밖에. 얼결에 아버지를 잃은 아이들에게 엄마의 부재로 말미암은 혼란을 장시간 갖게 하지 않는 배려를 하는 건 편모의 설움을 겪어야 하는 아이들에게 합당한 조처이기도 했다.
그녀가 입을 다물고 있으면 파출부 생활을 한다는 건 숨길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몸을 쓰는 일이 흉이 될 리 없지만 마땅히 그 일 말고는 달리 일거리를 찾을 주변이 없다는 건 부끄럽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특히 친정엄마에게는 면목이 없었다.
그의 집에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때까지 그녀는 묵묵히 할 일만 하고 시간 되면 그 집을 나왔다. 그런데 그날은 그가 있었다. 눈에 띄게 까칠해 보이는 인상이 면도를 하지 않아서만은 아니었기에 그녀는 그를 외면했다.
“강좌가 개설되지 않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네요. 허긴, 해마다 조마조마하긴 했죠. 신경 쓰지 마시고 일하세요.”
그는 그녀가 일하는 앞에서 얼씬거려 불편을 초래한다거나 민망하게 내외를 해야 하는 어색한 환경을 제공하지는 않았다. 파출부인 그녀가 집주인을 방 안에 몰아넣은 거나 마찬가지 상황이 되었지만 그녀는 익숙하게 일을 했다. 그녀가 일을 마치고 나서려고 할 때 그가 서재 문을 열었다.
“베란다에서 말이죠. 실은 무척 놀랐어요. 몇 시간씩 뭘 하시나 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렴풋하긴 해도 알 것 같아요. 아, 네 미안해요. 오해하지 마세요. 보려고 해서 본 건 아니고. 아주머니가 새가 되는 줄 알았어요.”
“…….”
날개처럼 도드라진 아파트 구조 때문에 그의 집에서 그녀의 거실이 훤히 보였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지만 그녀에게는 사생활 노출을 염려할 수준의 여유가 없었고 자신의 입장을 하소연할 의욕 같은 건 없었다.
그녀는 일주일에 사흘, 그의 집으로 일하러 갔고 그때마다 그를 볼 수 있었다.
“이 나이에 여직 자리를 잡지 못한 채 대학을 떠돌고 있으니 능력이 없는 거죠. 와이프는 지방대학이기는 해도 전임으로 승진을 했네요. 이러다 내쫒기기 십상이지요.”
자조 섞인 어투로 무덤덤하게 자기 처지를 토로하던 그가 서재로 들어갔으니 그녀는 그를 어디에서 내쫒느냐고 물어보지 않아도 되었다. 유일한 대화상대가 낯을 가리는데 그녀라고 해서 상심이 되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표를 내지는 않았다.
주말 동안 어질러진 집이 월요일 아침이면 깨끗하다고 할 수는 없어도 그가 집에 들어앉은 이후로 집 안이 아수라장이 되는 일이 잦았다. 부부싸움을 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정체모를 살기와 어수선함이 교차하는 가운데 이면에 드러나는 비릿함, 남편이 살아 있을 적에 그녀의 집에서도 걷잡을 수 없을 격분과 애증의 흔적에 휩싸이곤 했다.
“식은땀이 나서 잠을 잘 수가 없네요. 새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펄펄 날고 싶은 게 남자의 의지였는지 몰라도 그는 고꾸라지듯 고개를 떨어뜨렸다. 흡사 날개 속에 머리를 파묻고 있는 새처럼 보이기는 했으나 지칠 대로 지쳐 비행은커녕 날개를 펼칠 기운조차 없어보였다. 그녀는 그의 머리를 빼내어 제자리를 찾아주고 싶었다. 그 안의 절망과 환우의 깊이를 가늠할 수만 있다면……. 뭐라도 해야 할 의무감이 들 정도로 남자의 행동은 남편이 취하던 자세를 닮아 있었다.
수척해질 대로 수척해진 남자한테서는 마른 꽃에서나 풍길 법한 먼지 냄새와 흙가루 냄새 유사한 게 풍겼다. 빗방울이라도 떨어질라치면 그 바람에 자취도 없이 튕겨 사라질 작은 먼지 덩어리가 주는 퍼석함까지 그녀에게 전해졌다. 잘하면 흔들리는 남자의 어깨를 잡아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욕심이 생기며 손길이 자꾸 그의 머리 쪽으로 내뻗치려 했다.
그녀는 서둘러 집을 나오다 베란다 문이 열려 있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들어갔다. 발코니 확장을 한 집은 느닷없이 소나기라도 한차례 쏟아지면 빗물이 마룻바닥으로 흥건히 고여 마루가 뜨고 썩을 위험이 있기에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그녀가 확장한 집에서 살았을 적에 외출을 했다가도 날이 꾸물거리면 뛰어 들어와 문을 닫았던 경험이 있었기에 일을 끝내고 돌아갈 때마다 다른 건 몰라도 문이 닫혀 있는 가는 꼭꼭 챙겨야지 안심이 되었다. 그는 그제까지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고개를 빼줄 수만 있다면……. 그녀의 손이 남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자꾸 움찔거렸다.
‘작은 구유만한 배를 타고 고래를 잡아오라 대양으로 밀어내는 사람이 있던가요? 이러지 마세요. 당신은 억센 등줄기가 받쳐주는 기력을 잃은 나이에요. 그러니, 고래잡이는 나가지 않아도 돼요. 고래라니요! 괜찮아요.’
그녀는 그녀 자신에게 들으라는 듯이 오금을 박아가며 이를 사려 물었다.
사람이 집 안에 있는 데도 발코니 문을 닫고 열린 문이 더 있나 주위를 둘러보다니.
유난히 해가 좋았다. 졸지에 아비를 잃은 아이들에게 불행이 겹겹이 찾아오기라도 할까 그녀는 자신의 신체에 생기는 작은 변화를 세심하게 살폈다. 다분히 심신의 안정을 취하면 임파선의 부기가 빠지는 건지 의사의 처방에 회의를 품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심신의 안정을 취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기에 해바라기를 하며 보냈다.
그녀는 깃털을 고르며 일광욕을 즐기는 새처럼 사지를 펼쳐놓았고 곧바로 무너져 내렸다. 오늘은 하루 종일 집 안에 있어도 되는 날이다. 눅진한 몸이 한결 가벼워져 아이들을 맞을 때면 물기를 비치지 않아도 될 테다. 설핏 잠이 들었던 걸까. 후끈거리는 열기가 한층 더 해 창문을 여는데 아래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서너 명의 경비가 허둥대며 달려오는 심상치 않은 광경이 목격되었다. 사람들이 화단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지만 일제히 응시하는 곳이 화단 쪽이었으니 사달이 났어도 크게 났다는 정황이 들었다. 불안하고 섬뜩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는 와중에 그녀는 질끈 눈을 감았다. 애써 둘러보지 않아도 금세 한눈에 들어올 맨 꼭대기 집, 활짝 열린 문으로 바람이 드나들 것 같은 불길함을 떨쳐버리듯 그녀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무려면 어때! 애꿎을 건 없어. 없다고!”
그녀는 흐느끼다시피 흥얼거렸다. 요란하던 사이렌 소리가 잦아들고, 모여 있던 사람들이 흩어질 때까지, 그녀는 바람 때문에 달라붙는 옷자락을 마구 뜯어내었다.
끝.
박병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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