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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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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시] [경남] 김진 / 귀목나무 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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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사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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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목나무 엽서
김 진
아버지는 매일 밤 엽서를 쓰셨지요 가로 세로 선을 긋고 빨강 노랑 연두로 색도 칠했어요 이장의 밭에 콩을 베었고, 새벽에 누렁이가 새끼를 낳았고, 참깨를 털었고, 마도요의 바다의 이야기를 한 장에 쓰지 못해 매일 밤 쓰고 또 썼지요 논에 갔다 올 때면 귀목나무에게서 잔뜩 엽서를 사오셨어요 행여 헤진 문풍지 사이로 누가 볼까 어머니가 묻어 둔 주발의 밥을 이겨 조각조각 붙이곤 했죠 쟁기질에 갈라진 손에서 피가 떨어져 자국이 생겨도 곱다, 곱다 하셨어요 손톱뿌리를 찾을 수 없는 손가락으로 선을 긋고 색을 넣어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인 어느새 경계가 없어진 일생을 꾹꾹 눌러 쓰셨어요 손바닥보다 작은 엽서에 이야기를 담고 담아 무거워지면 신작로도 요란히 바람 우체부가 옵니다 한 자루 가득 찬 엽서를 구름 가방에 꾹꾹 눌러 담아 노을길을 타고 서둘러 자전거 몰아요 우체부의 꼬리가 귀목나무 가지를 흔들면 새 엽서가 생겨납니다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미처 보내지 못한 사연이 떠올라 아버지는 밤새 엎드려 꾹꾹 엽서를 씁니다.
□ 김 진 : 1981년 경남 산청 차탄 출생. 2007년 경남작가 신인상으로 등단. 현 단국대학교 박사과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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