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인터뷰>창립 30주년 작가회의 염무웅 이사장

[연합뉴스 2004-11-07 15:50]



민족문학작가회의 새 이사장에 염무웅씨


"남북 분단상황에서 민족 개념은 여전히 유효하다" "세계문학사와 민족문학사에 새 역사 써왔다 자평"
(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 "민족의 이름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직 많 이 남아 있습니다."

오는 18일로 창립 30주년을 맞는 민족문학작가회의 염무웅(63) 이사장은 7일 연 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분단상황에서 남북은 `민족'의 이름으로 만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족문학작가회의를 외국어로 번역하다보면 `민족'이라는 단어 때문 에 보수적이고 국수적인 단체로 오해받을 때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민족' 은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이 사용했던 배타적이고 억압적인 의미와는 정반대"라고 말 했다.

그는 "분단체제의 장벽이 완화되고 남북교류가 완전히 자연스러운 단계에 이를 때까지 남북이 공유하고 있는 `민족'의 개념은 유효하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염 이사장과 일문일답.

--창립 30주년을 맞은 소감은 어떤가.

▲아시다시피 민족문학작가회의(작가회의)의 전신은 1974년 11월 18일 출범한 자유실천문인협의회(자실)이다. 당시 엄혹했던 유신체제에 맞서 유신헌법 철폐와 직 선제 등의 깃발을 내걸고 출발했다.

70년대가 끝날 때까지 이 같은 주장을 일관된 목소리로 주장했고, 데모에 참여 했다. 자실이 출범할 때 이미 김지하 시인은 투옥된 상태였지만 이후 투쟁과정에서 많은 문인이 감옥에 갔다. 해방 후 문학사에서 이때처럼 여러 문인들이 `공밥'을 먹 은 일은 없다.

전두환의 5공 정권 이후 1987년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종교계, 지식인, 대학생 들과 더불어 민주화 투쟁에 일익을 담당했다. 6월 항쟁 이후에는 남북작가대회를 추 진하다 일부 문인들이 잡혀가 고초를 겪기도 했다.

6월 항쟁이 분수령이 돼 그해 9월 조직을 확대해 작가회의로 이름을 고쳤다. 또 직접적인 싸움보다 활동 폭을 넓혀 문화활동을 제대로 하면서 사회적으로 꼭 필요할 때 발언하는 등 문인단체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지난 30년을 돌아보면 권력의 탄압에 의해 굴절되지 않았고, 대체로 한 길을 걸 어왔다고 본다. 그 나름의 이념적인 것을 중심으로 모인 문인들이 30년간 단체를 유 지해온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것으로 안다. 소속회원들은 어디에 작품을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이 나라의 대표적 작가들을 포괄하고 있다. 과장됐다고 여길 지 모르나 작가회의는 세계문학사와 민족문학사에서 새로운 역사를 써왔다고 자평한 다.

--1974년 자실의 출범을 알렸던 `문학인 101인 선언'을 썼는데.

▲당시 덕성여대의 전임강사였다. 대학의 전임을 맡고 있는 상황에서 선언문을 작성한 것은 모험이었다.

당시에 대해 그리움을 갖고 회상하는 사람도 있지만 유신체제와 긴급조치로 숨 이 막힌 상황이었다. 당시 선언에 참여했던 문인 가운데 선배격인 고은, 이호철 씨 가 40대 초반이었고 대부분 30대 젊은 문인들이었다.

근대화와 경제발전이 필요했지만 너무 강압적이어서 후유증이 심각했다. 노동자 에 대한 탄압, 무너진 농촌으로 인한 사회적 모순, 언론 탄압, 작가들의 표현의 자 유의 억압 등으로 문학의 존립근거 자체를 위협하고 부정하는 상황이었다. 종교계와 언론계에서 거의 동시에 저항운동이 일어났는데 그것은 "제대로 숨 좀 쉬고 살자"는 외침이었다.

이런 내용과 함께 김지하 시인을 포함해 긴급조치로 구속된 지식인, 종교인, 학 생들을 석방을 촉구하는 선언문을 당시 세종로 의사회관 앞에서 고은 씨가 낭독했다. 그랬다가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경찰에 연행됐다.

지금까지 말한 적이 없는데, 당시 `문학인 101인 선언'을 언론에 알리는 데는 리영희 선생이 수고를 했다. 통신사의 외신부에 근무한 적이 있는 리 선생이 국내 주재 외신기자들에게 연락해 외신을 타도록 했다. 물론 국내 신문에도 보도가 됐지 만 당시 언론탄압이 심한 상황에서 외신에라도 알리려는 방편이었다. 선언문을 낭독 하면서 보니 길 건너편에서 리 선생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30년의 세월이 흐르다 보니 당시 선언에 참여했던 소설가 이문구와 한남철 씨, 시인 조태일 씨 등이 벌써 세상을 떠났다. 창립 때 101인이었던 회원이 이제 1천 명 을 넘어섰다. 아전인수식 해석이라고 할지 모르나 소속 작가들이 제대로 활동하고 내실있는 작품을 발표하는 문학단체는 작가회의가 유일하다고 말하고 싶다.

--문학계 내부적으로 민족문학의 개념이 아직 유효하느냐는 논란이 있는데.

▲`민족'이라는 단어는 보수적이고 국수적인 이미지를 풍긴다. 동남아 등에서 온 해외 노동자들에게 `민족'이라는 단어는 억압적 뉘앙스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아직은 `민족문학'의 깃발을 지키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세대의 생각 이다. 분단상황에서 남북은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만날 수밖에 없다. 공통의 이념적 터전이 달리 없기 때문이다.

작가회의는 그동안 칠레, 몽골, 베트남, 팔레스타인, 이라크 등 우리보다 열악 한 제3세계 작가들을 초청해 문학적 교류를 했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민족문학'은 과거 제국주의 국가나 강대국들과 이해관계를 함께 하는 것이 아니다. 이렇듯 작가 회의의 `민족문학'은 배타적이라거나 억압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은 설명이 불필요하 다고 본다.

분단체제의 장벽이 완화되고 남북교류가 완전히 자유로워진다면 `민족'의 개념 을 강조할 필요가 없어질지 모른다. 그 때는 민족보다 진전된 보편성 있는 깃발을 들자고 말하게 될 것이다.

--지난 8월 열리려다 중단된 남북작가대회는 계속 추진되나.

▲분단 후 처음으로 열릴 남북작가대회가 성사될 뻔 했다가 중단돼 아쉽다. 아 시다시피 김일성 10주기 조문불허, 강도 높은 을지훈련 등을 이유로 북쪽에서 모든 남북교류를 중단시켰다. 거기에 따라 남북작가대회도 저절로 냉동됐다. 그것을 다시 따뜻하게 데워서 먹을 수 있을지, 아니면 새롭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만 실무대표들에 따르면 북쪽 작가들도 굉장히 열의를 갖고 대회를 준비한 것 만은 분명해 보인다. 북쪽 체제에서 작가나 시민사회단체들의 자생력, 또는 자기결 정권이 약한 것 같다. 때문에 북쪽 당국의 허용문제가 절대적이다. 남북관계가 정치 적으로 유연해져야 대회가 열릴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향후 작가회의가 나갈 방향은 무엇인가.

▲그동안 해오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반도의 평화와 민주화가 뿌리내리는 데 문인의 역할을 다할 것이다. 남북교류를 통해 분단의 장벽을 낮추는 데도 기여하 겠다.

무엇보다 작가들이 좋은 작품을 발표할 수 있도록 비평적 풍토를 마련하겠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문화비 지출을 줄이기 때문에 작가들에게 가장 먼저 여파가 미친 다. 작가들의 사회적 대우를 개선하도록 복지문제에도 신경을 쓰겠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민족문학의 개념은 분단상황에서 상당기간 지속되겠지만 이 를 넘어 보편성 있는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산업화와 세계화에 따라 지구적 문제로 등장한 환경생태문제 등으로 활동범위를 넓혀가야 할 것이다. 이런 문제들을 작가회의 나름대로 의제화하도록 힘쓰겠다.

ckchu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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