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그들의 죽음은 지나간 추억이 아니다! 김형수/소설가·민족문학작가회의 사무총장 - 먼 바다 고기잡이배와 원양어선, 어느 말이 좋습니까? - 먼 바다 고기잡이배요.
- 개인이 사대주의를 하면 머저리가 되고 민족이 사대주의를 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말은 옳습니까, 틀립니까? - 옳아요.
- 개새끼야, 그래서 너더러 간첩이라 하는 거야. 북한 것만 좋아하잖아.
사람잡는 ‘진행형 악법’
국어선생이 왜 이런 수사를 받아야 했는가? 주인공 이광웅 시인은 금지된 시집을 소지했다는 이유로 감옥에서 수년을 살고 나와 암으로 죽었다. 감방 동지 김남주 시인도 똑같은 병으로 이듬해에 죽었다. 그리고 10년이 안 되어 학생들은 문제의 시들을 교과서에서 배우지만, 그 분들의 희생을 알지 못한다. 쓸쓸한 일이다. 국가보안법은 이미 잊혀져 버렸는지 모른다.
오늘날 국가보안법은 그 전천후적 사변을 목격하지 않았거나, 목격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중요시하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전혀 다른 법처럼 이야기되고 있다. 혹자는 국가 안위를 위해 존속해야 된다는 말에 속고, 혹자는 뜯어고치면 된다는 말에 속는다. 몇 번씩이나 군사쿠데타를 묵인하고, 틈만 나면 민주주의의 뿌리를 흔들었던 파렴치한 정치 활극의 주역들에 의해, 아니 그 사기 당하기 쉬운 애국심 흉내와 유치찬란한 균형주의에 휘둘려 여론 응답자들이 속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리 고쳐도 악법일 수밖에 없다. 국가보안법이 문제 삼는 것은 국헌문란 목적의 내란, 폭발물에 의한 테러, 국가기관의 기능마비를 가져오는 여러 가지 형태의 폭력행사가 아니다. 그것은 보다 먼 거리에 있는 무형의 것을 심판한다. 목전의 이익보다 크고 원대한 가치를 주장할 사상과 표현들에 담긴, ‘위험성을 유발할 위험성’이 범법의 실체이다. 기가 막힌 일이다.
우리는 최하 반세기가 넘는 세월을 차 타고 세 시간 이상을 무사통과할 수 없는 편협한 공간에서 살았다. 반드시 검문소를 만나거나 초소 혹은 철책 아니면 다른 분단의 실체와 만났다. 사람이 어느 곳을 향해서도 마음껏 가면 안 되는 공간에서 살았을 때 나타날 결과는 뻔하다. 서커스단의 코끼리도 30분 이상의 거리를 벗어날 때마다 응징을 가하면 얌전히 그 안에서 산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만취한 상태에서도 분단의 경계선을 잊지 않는다. 잠을 잘 때도, 꿈을 꿀 때도, 무의식의 저 깊은 곳, 상상력의 저 깊은 곳까지 동강나 있는 것이다.
몸 묶고 상상력까지 묶어
그래서 국가보안법이 남긴 업적이 있다면 비열한 색깔공세와 불법연행, 장기구금, 고문과 조작이었으며, 그것이 국민에게 경험시킨 것이 있다면 우리의 의식을 심층에까지 내려가 억압하고 자기검열을 강요하는 통제장치의 기능이었다. 얼마나 무서운 인간성에 대한 침탈이며, 민족성에 대한 학대인가! 우리는 분노할 수밖에 없다. 국가보안법은 우리들이 밑줄을 그어가며 당당하게 ‘시(詩)’라고 노래했던 그 신성불가침적인 가치를 이미 수십 년간이나 파괴해 버렸다. 신동엽 시인은 ‘북쪽 사람’이라는 표현을 ‘후고구렷적 장수’라고 썼으며, 김지하 시인은 ‘지리산’을 ‘빈 산’이라 하고, 신석정 시인은 이상주의적 체제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언급할 수가 없어서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아시나요?”라고 썼다. 도대체 어느 나라 독자가 이렇게 심한 묵시 언어를 이해한다는 말인가? 몸을 낮추지 않는 문학은 머리를 잘린다. 국민 대다수를 독자로 거느린 조정래의 <태백산맥>까지도 국가보안법에 계류돼있다. 이런 야만 속에서 어떻게 세계적인 문학이 나올 수 있는가? 우리에게 노벨문학상이 돌아오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국가보안법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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