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입만 열면 ‘문화강국’을 이야기하는 정부와 공영방송이 뒷전에서는 ‘시장논리’만 앞세우고 있는 것이다.

워낙 숨 가쁜 정치·사회적 이슈가 많은 탓인지 문화 이슈는 어지간하면 논란의 중심에 서기 어렵다. 가령 이 정부 들어 불거진 인사상의 불협화음은 예술위원회 사태에서 보듯 문화계 역시 뜨거운 쟁점이다. 언론의 공공성이라는 구조적인 이슈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 같지만, 가령 최근 여러 방송국의 프로그램 편성에서 나타나듯, 콘텐츠가 탁월한데도 석연치 않은 이유로 폐지되는 양질의 문화 프로그램 문제는 거론조차 되지 않는다.

가령 나는 공영방송인 KBS가 사장이 교체된 후 와 같은 인문교양 프로그램을 과감하게 폐지하는 일이나, EBS 라디오가 7년 동안 문화계와 애청자들에게 열띤 호응을 얻어온 <한영애의 문화 한 페이지>를 석연치 않은 ‘퀄리티의 수준’을 근거로 폐지하는 일이 매우 우려할 만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 양질의 프로그램들은 ‘막장 드라마’와 ‘떼거리 잡담’으로 일관하는 오늘의 방송 환경 속에서도 의연하게 방송의 공영성을 뒷받침해온 훌륭한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들이 폐지된 실제 이유는 ‘경영상의 문제’, 더 정확히 말하자면 방송사의 광고 수입 마케팅에 별다른 도움이 안 될 것이라는 상업적 판단에 근거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철저히 상업적인 동기로 문화계를 바라보는 이런 단세포적 발상은 최근의 ‘국립 오페라 합창단’ 해체 결정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입만 열면 ‘문화강국’을 이야기하는 정부와 공영방송이 뒷전에서는 ‘시장논리’만 앞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러한 현상에 대해 대중조차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고 있다는 점 역시 심각한 문제다. 사실 문화란 일종의 공기와 같은 것이어서 그것이 부재하는 순간에나 그 절실한 필요성을 자각하는 삶의 기초영역이다. 그런데 한국의 대중은 위로부터 배포되는 ‘경제성장 이데올로기’에 중독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임박한 삶의 붕괴에 대한 불안 때문에 문화란 배부른 자의 액세서리 정도로 치부해온 경향이 없지 않다. 물론 이러한 문화로부터의 대중적 소외 현상을 구조화해온 부류는 정치·경제적 엘리트들이다.

문화는 대중으로 하여금 반성적 사고를 촉진하게 하고 삶의 근원적 의미를 묻게 한다. 동시에 그것을 향유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왜 탁월한 문화의 향유가 고액의 경제적 비용을 수반해야 하느냐는 정당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 문화를 향유할 수 없는 계층이 광범위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은 역으로 오늘의 문화영역이 경제적 부를 지나치게 소유한 계층의 차별적 독점지대임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문화는 공공재다. 구미 선진국이 시장 부문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문화영역을 국가나 기업 차원에서 대규모로 지원하고, 양질의 문화 콘텐츠에 대한 시민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진력하는 것은 문화의 민주적 향유가 공동체의 덕성과 삶의 전망을 근저부터 지탱하는 핵심적 요소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의 문화적 상황은 모든 것이 ‘살아남기 게임’에 매몰되어 있다. 이는 대중적 일상의 불모성을 문화적으로 승화하는 일을 장기적인 안목에서 적극 지원해야 할 국가와 공영방송의 공적 의무를 저버리는 행위다. 동시에 오늘의 한국 문화의 위상이 쇠퇴기에 있는 ‘한류’ 콘텐츠 상품을 제외하고는 도대체 얄팍하기 그지없다는 비관주의를 심화하는, 부정할 수 없는 이유기도 하다.

<2009. 03.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