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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가 자주 이용하는 버스는 배차간격이 길어서 딱히 출퇴근 시간이 아니더라도 승객들로 꽉꽉 차곤 한다. 승차는 앞문으로, 하차는 뒷문으로와 같은 준칙들도 무용지물이다. 앞문이건 뒷문이건 탈 수 있고 내릴 수 있으면 그만이다. 예전 같으면 버스기사가 일부러 급출발과 급정지를 반복해 우격다짐으로 사람들을 뒤쪽에 쟁였으련만 이제 그런 고약한 일은 드물다. 그래도 내려야 할 정류장이 다가오면 빽빽한 사람의 숲을 헤치고 지나갈 각오를 해야 한다. 종종 때를 놓치는 이들이 있다. 어제도 그런 사람을 보았다. 그이는 문이 닫히자 모기 목소리로 아저씨 내려요, 라고 말했다. 안타까웠다. 버스는 매정하게도 출발하고야 말았다. 그때 어디선가 우렁찬 목소리가 났다. 아저씨 내려요! 버스는 다시 멈췄고 문은 열렸다. 모기 목소리는 후닥닥 버스에서 내렸다. 물론 우렁찬 목소리는 내리지 않았다.
나는 우렁찬 목소리가 부러웠다. 아니 우렁차게 목소리를 낼 용기가 없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이처럼 낯선 누군가를 위해 대신 외쳐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묘한 위로가 되어 주었다. 내 고향은 남쪽인데도 지형의 영향으로 겨울이면 폭설이 잦았다. 몇 해 전 겨울 밤새 눈이 내린 날이었다. 어린 시절처럼 들뜬 마음으로 넉가래를 쥐고 길로 나섰지만 내가 할 일은 없었다. 거대한 넉가래가 이미 길을 한바탕 쓸고 지나간 때문이었다. 쟁기를 단 트랙터 한 대가 저만치서 눈을 밀며 갔다. 누가 알아주는 일도 아닌데 트랙터는 매년 겨울 눈 내린 날이면 그처럼 나타난다고 했다. 옆 마을 나이 지긋한 농민이라고 했다. 나는 좀 뜬금없지만 기계가 퍽 아름다운 사물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곧잘 사람을 하늘에 비유하는 이유는 세상 어디에서도 하늘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이라면 굳이 피할 이유도 없겠지만.
<2009.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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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in 미디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