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문학 2021년 통권 100호(여름호) 신작시 2편]
바람의 법전
바람은 헌법이 없어도
헌법을 만드는 사람들의
마음으로 분다.
바람은 자유롭다.
바람은 자유롭게 분다.
바람은 헌법을 모르는 일자무식이라도
바람은 헌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원하는 길로 분다.
바람이 통하는 길은 자유의 길이다.
헌법을 모르는 바람이 분다.
헌법을 적어 놓은 법전을 날리며
바람은 분다.
법전의 글자들이 너무 어려워
바람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분다.
그러나 바람은 안다.
헌법에 적힌 글자들의 열망을 안다.
법전에 빼곡히 박혀 있는 글자들이
원하는 자유를 안다.
그 자유로 바람이 분다. 그
바람을 잡아서 사람들은 살고 싶었나 보다.
그 바람이 읽는 대로 사람들은
법전을 만들어 스스로의 삶을 자유라
말하지만, 바람은 법을 빌리지
않고도 자유를 아는 것이다.
법전을 외지 않아도
바람은 헌법의 정신으로 분다.
연애의 밑바닥
밑바닥을 모르는 너희가 연애를 알랴.
밑바닥을 기어 다니는 것들이 연애를 잘한다.
밑바닥을 모르고 사랑을 알랴.
나도 그녀의 발바닥을 보려다가
뺨을 맞았다. 누구나 밑바닥이 있다.
아마도 그 밑바닥이 그녀의 자존심이었나 보다.
그걸 보려니 누가 그걸 쉽게 보여주랴.
연애가 그렇게 쉬운 게 아니다.
밑바닥을 기는 밑바닥 인생이
마지막으로 자신을 견디는 그곳이 밑바닥이다.
그 밑바닥이 사랑인 것이며,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연애이다.
나는 연애의 밑바닥을 보려다 언어의 발바닥을 보았고,
언어의 발바닥을 보려다 사랑의, 연애의
밑바닥을 보았다. 겨우겨우
밑바닥을 기다가 밑바닥이 밑바닥으로 버티다가
올라서는 것들의 날개를 보았다. 가끔
내가 내 옆구리나 겨드랑이를 더듬어 보는 것은
그 날개의 흔적을 찾는 행위이다.
아마, 그런 곳에 잘 깃들어 있는
그것이 언어의 발바닥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런 곳을 쉽게 보이다가도 그 누군가에게
절대 쉽게 허용하지 않는 그 지점이
연애의 밑바닥일 것이다. 어느 날, 나는
언어의 발바닥을 생각하다가 연애의 밑바닥을 기게 되었다.
어쩌면 언어의 발바닥이 연애의
밑바닥이 될 수도 있다. 밑바닥이 운이 좋아
밑바닥의 사랑을 알게 되면
언어의 발바닥을 볼 것이다.
밑바닥을 모르는 너희가 사랑을 알랴.
여전히 밑바닥을 기는 너희들이 연애를 잘한다.
※ 나 정 욱 (필명: 나 욱) 시인
『한민족문학』(1990년)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며칠 전에 써 두었던 내 문장에서 힘을 얻는다』(2019년),
『눈물 너머에 시(詩)의 바다가 있다』(2019년),
『라푼젤 젤리점에서의 아내와의 대화』(2021년)의 시집이 있음.
한국작가회의, 울산작가회의 회원.
회원작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