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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설] 국가보안법 위반죄
이름 유중원 이메일



국가보안법 위반죄



법정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피고인은 여전히 벨기에제 특수 수갑을 찬 채 서있다. 헝클어진 긴 머리와 덥수룩한 수염이 거의 얼굴을 삼켜버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형형한 눈빛은 정면으로 재판장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방청석에는 수십 명의 교도관, 사복 경찰들이 자리를 전부 차지하고 무표정하게 앉아있다. 그때 피고인의 가족들은 법정 밖 복도에서 겨우 서성거리고 있을 뿐이다. 법정 입구에는 제복을 입은 건장한 법정 수위 몇 명이 지키고 서있었는데, 법정이 만원이어서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다고 위압적으로 말하면서 거칠게 밀쳐냈다.

변호인: 공소사실에 대하여 사실심리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 사건은 체포영장도 없이 수사기관의 불법감금과 고문에 의해 조작된 것이기 때문에 공소사실은 무효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피고인은 고문에 의해 자백한 것이란 말입니다. 더욱이 변호인의 접견이 이루어지지도 않았습니다. 따라서…… 제 생각엔 말입니다, 공소제기의 적법성 여부가 문제가 됩니다.
재판장: 변호인이 이 사건 공소제기가 무효라고 가당치 않는 소릴 지껄이는데 검사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이 자들은 누구랄 것 없이 수사기관에서 고문이나 학대를 받았다고 주장하고, 자신은 절대 결백하다는 거지.
검 사: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불법감금이라고 주장하지만 그건임의동행이었습니다. 또한 말입니다…… 피고인은 수사 당시 고문 받은 사실이 전혀 없습니다. 피고인이 변호인의 접견을 요청하거나 기타 변호인의 조력을 요청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건 너무나 명백한 사실입니다.
재판장: 그것 보시요. 검사가 그러한 사실이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변호인은 다시는 그런 헛소리를 삼가 하기 바랍니다. 검사가 할 일이 없어서 그런 사건을 기소했겠습니다? 검사님, 안 그렇습니까?
변호인: 다시 말씀드리지만…… 피고인은 30여 일 동안 불법 감금된 상태에서 고문수사를 받았고, 기소된 이후에도 변호인이나 가족의 면회가 극도로 제한되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피고인은 변호사의 조력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변호인은 공판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오늘 공판을 연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재판장: 변호사는 자리에 앉으시오. 앉으란 말입니다.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 그걸 누가 모릅니까? 지금 변호인은 판사에게 헌법 강의를 할 셈인가요? 피고인은 신속한 공개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어서 빨리 이 사건을 종결할 책무가 법원에 있는걸 왜 모르십니까? 어떠한 경우에도 재판 연기는 있을 수 없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재판장이 화가 나서 변호인과 피고인을 번갈아서 쏘아보며 거친 어조로 으르릉거렸다. 그때 검사가 힐끔힐끔 법대 위를 훔쳐보면서 재판장의 비위를 맞춘다.

검 사: 매우 지당하신…… 지극히 온당하신 말씀입니다.
재판장: 지금부터 공소사실에 대한 심리를 진행합니다. 공소장이 250페이지나 되던데 건성건성 읽기도 벅찹니다. 대충 공소사실의 요지만 진술하시지요.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검 사: 지금부터 공소사실의 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20개 항목의 공소사실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피고인은 소위 민족민주혁명에 의하지 않고는 이 정권을 쓰러뜨릴 수 없다 ……. 이 정권은 소수 지배집단이 대다수 민중을 탄압하는 억압적 도구에 불과하다……. 그런데, 민족민주혁명론이란 게 사실은 위장에 불과하고 실제는 사회주의 혁명론, 즉 마르크스주의 혁명론 또는 레닌 혁명론인 것입니다…….
그러니깐, 북괴의 남조선 해방 전략을 추종한 것입니다. 피고인은 반외세, 반군부독재, 반파쇼를 타도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해야 한다는 미명 하에 일자불상 경에 옥호불상 지하 음식점 또는 주소불상 조직원의 자취방 등에서 수차례 회합을 갖고 이적단체를 조직해서 북괴의 지령을 받아 수괴로 활동하였습니다.
그리고 피고인이 전부 자백한 경찰과 검찰에서의 피의자신문조서와 기타 피고인이 직접 작성한 진술서…… 반성문…… 탐독했던 불온서적…… 이런 서적에 대한 내외정책연구소의 전문가가 감정한 감정서를 증거자료로 제출합니다.

재판장은 자신이 완벽하게 법정을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반짝이는 거만한 눈빛으로 법대 아래쪽을 쭉 훑어보았다. 아무도 그의 말에 이의를 제기해서는 안 되었다. 무슨 말을 강조할 때마다 검은 뿔테 안경을 벗어서 법대 위에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그는 신경질적인 어투로 빠르게 지껄였다. 그때마다 좁은 이마에 거의 완벽한 형태로 골이 깊숙이 패였다가 다시 펴지기를 반복했다.

변호인: 다시 간곡하게 재판장님께 말씀드리지만…… 피고인은 불법 감금과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혹독한 고문 끝에 자백을 한 것입니다. 검찰에서도 혹독한 고문의 연장선상에서 자백을 하였습니다. 고문의 악몽과 후유증 때문에 검찰에서 묵비권을 행사하거나 부인할 수 없었단 말입니다. 그러므로…… 검찰조서 역시 강제자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실을 밝히기 위해서 고문 경찰을 증인으로 신청합니다.
재판장: 왜? 그렇게 끈질깁니까? 그들도 우리나라 경찰 공무원인데, 공무원이 할 일이 없어서 그런 몹쓸 짓을 했겠습니까? 그들은 훌륭한 공무원입니다. 경찰이 지금 국가안보를 위해 불철주야 얼마나 바쁜데, 그들이 여기 와서 증언할 시간이 있겠습니까? 증인 신청을 기각합니다. 보다 분명하게 말하지만, 기각합니다.
그리고, 변호인에게 주의를 환기시키겠습니다. 지금 법원의 권위에 도전할 셈인가요? 이 재판에서 증인 신청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주의하기 바랍니다. 아시겠습니까?

초겨울이었다. 그날은 눈발이 흩날리고 사방이 유난히 캄캄했다.
그는 경찰서 유치장에서 당직 형사가 황급히 깨우는 바람에 부스스 눈을 떴다. 잠이 덜 깬 채로 엷은 옷을 주섬주섬 꿰어 입고 유치장을 나섰다. 이른 새벽이었다. 검은 어둠이 아직 두껍게 주위를 내리 덮고 있었다. ‘이렇게 고마운 일이…… 이른 새벽에 석방해주다니.’ 그가 어리둥절한 채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수사과 사무실을 지나 좁은 복도로 막 나오자마자 여러 명의 사복 경찰이 그의 앞을 가로막고 에워 쌓다.
그들은 평범한 얼굴에 평복을 입고 있었다.
그는 직감적으로 어디론가 어둠의 곳으로 끌려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갑자기 눈앞이 아찔하고 두 다리가 와들거리고 온몸이 떨린다. 그는 수척했고, 덥수룩했으며, 지저분하였다. 그리고 몹시 불안정 하였다.
그가 외쳤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구속영장 있어요.”
“씨발 새끼…… 구속영장 좋아하네.”
그의 얼굴에 날카로운 주먹이 연이어 날라들고 코와 입에서 피가 흘렀다. 그들은 눈에 검은 안대를 가리고, 입에는 강력 접착테이프를 붙였다. 숨이 턱턱 막힌다. 발목엔 족쇄가 채워졌고, 손목엔 벨기에제 특수 수갑이 채워졌으며, 투박한 포승줄이 복부를 칭칭 감았다. 그리고 경찰서 뒷쪽에서 시동을 건 채로 대기하고 있던 검은 지프차에 태워져 어디론가 사라졌다.
어느새 죽음의 도살장에 도착하였다.
바람결에 기차가 덜커덩 거리며 지나가는 소리, 기적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그 소리는 평화스럽고 아늑하였다. 그 기적 소리는 어린 시절 남쪽 바닷가로 그를 데려다 주었다.
낡은 회색 건물에 들어서면서 검은 안대가 벗겨지고, 입에 붙였던 테이프를 떼어 내주었고, 그의 몸에 부착되어 있던 모든 철물이 제거되었다. 그는 방금 들어선 녹슨 철문을 뒤돌아보았다. 그 문은 사람이 들어가거나 나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항상 닫혀있기 위해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긴 지하 복도를 지나면서 고문 기술자들의 고함소리와 고문당하는 사람들의 비명소리…… 그 끔직한 비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소리는 끊이지 않고 들렸다. 그는두 손으로 귓구멍을 틀어막았지만 계속해서 음산하게 울려 퍼졌다.
지옥 같은 심문실.
천장에는 백열 전구 하나가 덩그러니 달려 있다. 모든 게 낯설고, 어색했고, 비현실적이었다. 벌써부터 온몸이 오그라들었다.
첫날부터, 본격적으로 날 선 심문이 시작되었다.
묵묵부답.
‘거절해야 되는 거야. 단호하게 거절해야……. 거짓말을 할 수는……. 끝까지 버텨야……. 차라리 침묵을 지켜야…….’
“너 빨갱이 자식…… 진술거부를 잘 한다지. 여기가 어딘지 알기나 해. 여긴 경찰서가 아니야. 솔직하게 다 불어. 너 몸도 좋지 않다며…… 그 몸으로는 도저히 못 견딜 거야.”
고문 기술자들이 번갈아 버럭 소릴 질렀다.
“정말 버틸 거야? 어림없어 이 자식아……. 여기서는 진술거부 그거 안 통한단 말이야. 제발…… 우리 신사적으로 하자. 술술 불면 얼마나 좋아……. 나도 가정이 있는 사람이야. 빨리 퇴근하면 얼마나 좋겠어. 내게도 고3 딸이 있단 말이야……. 그 애가 대학을 잘 가야, 시집이라도 잘 갈 거 아냐…….”
“우린 가택수색영장을 정식으로 발부받아 네놈의 집에서 책과 편지 나부랭이 등을 이미 압수했어. 다 알고 있으니까. 진술을 해. 진술을. 이 새끼야.”
“이 용공분자 새끼…… 프롤레타리아 혁명가 새끼……. 정 버티면 할 수 없지. 뜨거운 맛을 보여주지. 우리는 널 반드시 부셔버릴 거야.”
심문은 밤낮으로 진행되었다. 똑같은 질문이 지루하게 끝없이 반복되었다. 침묵을 지키면 어르고 협박하고 대답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다시 그 부분부터 시작해서 파고드는 그 악명 높은 ‘양파 까기’ 심문 방식이었다.
처음에는 잠 안 재우기 고문부터 시작했다. 잠이 잠깐 들면 깨우고, 또 깨우고. 눈알이 뜨거워지며 튀어나올 것만 같다. 입술이 부르트고, 입안이 헤어졌다.
“나는 모릅니다. 동지는 없어요. 그냥 친구들이에요. 다 거짓입니다. 거짓말이란 말입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그들은 그의 옷을 완전히 벗긴 다음 담요 위에 눕혀 돌돌 말아서 꽁꽁 묶었다. 가슴, 배, 허벅지, 무릎 윗부분, 발목 등 다섯 군데를 묶었으므로, 손가락하고 발가락, 머리 이외에는 꼼짝달싹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칠성판 위에 올려놓고 완전히 결박하였다.
그가, 노련한 고문기술자가 히죽거리며 말했다.
“넌 지금 칠성판 위에 누워 있지. 칠성판이 뭔지 모르지. 내가 자세히 알려 주겠어. 칠성판은 말이야…… 죽은 사람을 매장할 때 땅을 파고 그 다음에 목재판을 깔고 그 위에 관을 올려놓는데, 그 목재판을 칠성판이라고 하지. 그러니까…… 넌 관 속에 든 시체에 다름아니지…….”
그들은 단 한순간의 주저도 없이 물고문을 시작했다.
그의 얼굴에 검은 색 타월이 덮어 씌어지고 그들은 샤워 꼭지를 틀어 사정없이 얼굴에 물을 쏟아 부었다. 또 다른 자는 그것도 부족한 지 큰 주전자에 물을 가득 담아 동시에 붓고 또 쏟아 부었다. 그는 숨이 탁탁 막히고 속은 메스꺼워지다가 완전히 뒤집혔다. 몸은 완전히 땀으로 젖어 버리고 담요 역시 땀과 물에 흠뻑 젖어 버렸다. 그는 온몸을 버둥거리다 실신하였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떠들고 음산하게 웃음을 흘리면서 그렇게 한 시간을 계속 하였다.
그는 처음에는 뱃속에 들어있는, 창자 속에 있는 모든 걸 토하기 시작했다. 그 다음에는 설사 같은 물만 나왔다. 방귀가 나오고…… 물똥을 싸고…… 그래서 그의 내장이 완전히 물로 씻어졌다. 그는 실신했다가 깨어나고, 이를 반복하였다.
얼마쯤 시간이 지난 것 같다. 이제 물고문은 멈췄다. 온몸이 으슬으슬 떨리고 온갖 기억과 악몽이 머릿속에서 뒤죽박죽이 되었다. 잠이 잠깐 드는가 싶으면 다시 깨어나 한참 동안 어두운 허공을 응시하였다. 그는 그때 날짜와 시간을 헤아려 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여전히 얼굴에 쏟아지는 물의 감촉…… 물이 쏟아지지는 그 무서운 공포가 온몸에 덮쳐오고…… 그것은 죽음의 형체로 다가왔다.
‘그래…… 진술거부는 미친 짓이야. 묻는 대로 솔직하게 답변할 수밖에 없어. 더 이상 버티는 것은 무리야.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야 하지 않겠어……. 젊은 나이에 죽을 수야 없지……. 그건 진짜 개죽음일 테니까.’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묻는 말에 뭐든지 대답하겠다는 거지. 아직 멀었구만……. 너하고 입씨름할 시간이 없어. 우리는 빨갱이와 빨갱이 아닌 사람 두 가지로 나누지. 이 빨갱이 자식아…… 완전히 항복하란 말이야. 우리는 너의 인격을 해체하는 것이 목표란 말이지……. 알겠어.”
또다시 수건이 얼굴에 덮어 씌어지고 샤워기는 맹렬하게 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숨이 턱턱 막히는 답답함. 무서운 공포. 아득한 절벽 밑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절망감.
“그래요…… 완전히 항복하겠습니다.”
“이제서야 정신 차렸군. 너는…… 첫째, 사회주의 폭력혁명분자임을 자백하고…… 둘째, 북괴의 지령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 지금을 지원 받았고…… 셋째, 너희 조직의 실체, 다시 말하면 조직의 구성도, 핵심인물을 죄다 대고…… 넷째, 언제 무장 폭동을 일으키기로 하였는지 그 거사 일자를 대란 말이야. 하나도 빠짐없이.”
“솔직히 말씀 드립니다. 전…… 왕성한 호기심 때문에, 도저히 읽지 않고는 배길 수 없어서, 엥겔스의 <공산주의의 원리>, 마르크스의 <자본론>,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 이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 E.H.카의 <러시아 혁명사>, 트로츠키의 <나의 생애>, 칼 코지크의<구체성의 변증법>, 사미르 아민의 <제국주의와 불평등 발전>, 폴 스위지의 <자본주의 발전론>, 에리히 프롬의 <마르크스의 인간관> 등과 어떤 단체에서 배포한 <학생운동의 인식과 방법>이라는 유인물을 읽었습니다. 저는 그걸 읽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현실이 너무 암담했으니까요. 그러나 읽고 또 읽어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맹목적으로 읽은 것입니다.”
그가 철제 책상을 사이에 두고 앉아서 띄엄띄엄 힘겹게 말을 이어간다. 눈에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임에 몇 번 참석해서 함께 식사하고 소주 몇 잔 마신 게 전부입니다. 전 사상적 미숙아 입니다. 아직 지적으로 성숙되지 않았고…… 어떤 사상도 형성되지 않은 것입니다. 방황과 모색을 거듭하고 있을 뿐입니다.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더욱이 배후 인물이나 핵심 인물은 누군지…… 모릅니다. 정말입니다… ….”
“그럼…… 그때 모임에 만나서 함께 식사한 사람이 누구누구야. 누가 주도했어. 아니면…… 누가 이러쿵저러쿵 가장 말을 많이 했어. 밥값은 누가 냈어. 너는 지금 우릴 완전히 핫바지 취급하고 있어……. 그건 국가전복을 기도하는 무시무시한 반국가단체이지…… 단순한 친목 모임이 아니란 말이지. 우리가 모를 줄 알아. 너는 애써 모임으로 격하시키고 있어.”
“저는 공산주의자이고, 빨갱이이고, 폭력혁명을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기억이 잘 안나요. 아니…… 잘 모르겠어요. 무슨 조직체가 구성된 적이 없었어요. 말하자면…… 조직의 실체가 없어요. 그저…… 모여서 현 정세에 대해 토론하고, 울분에 차서 개탄하고. 그러나…… 모두들 이론적인…… 추상적인 얘기만 하였지요. 그게 우리들의 병폐이지요. 모두 샌님 같았어요.”
“이 자식, 물고문으로는 안 되겠군. 조금 봐주니까 말이지……. 그래, 보답이 겨우 이것뿐이란 말이지. 너 이 새끼…… 완전히 항복했다더니 아직도 입이 살아있군. 배후를 안 대면 콧구멍에 고춧가루를 퍼부어서 폐기종을 만들어 죽여 버리겠어. 그래도…… 안 댈거야?” 그가 신경질적으로 악을 썼다.
“다시 묻겠는데, 이놈…… 저놈…… 무슨 소릴 지껄이고, 무슨 일을 했는지 불으란 말이야. 그렇지 않으면…… 네놈이 수괴가 되는 거지. 위대한 지도자가…… 어때?”
“………”
“그렇다면…… 할 수 없지. 다음 단계로 넘어 가야겠어. 전기 고문을 당해봐야 정신 차리겠군. 김 부장…… 이 과장 좀 오라구 하지.”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사장이 직접 지시하였다. 그들은 관행적으로 서로 사장님이니 전무님…… 부장, 과장으로 불렀다.
역시 그들이 가장 알고 싶어 하는 것은 배후 세력이었다. 예컨대, 재야 정치인, 가톨릭 또는 개신교의 반체제 지도자, 특히 도시산업선교회의 지도자, 재야 민주화 운동의 핵심 세력인 청년운동단체의 조직과 지도자, 운동권 취업자, 노동자 단체의 조직이나 상호 연계성을 캐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는 그때 마땅히 둘러댈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배후란 없다고 솔직히 말하였다.

그는 담배를 꼬나물고 007가방 비슷한 사무용 가방을 어깨에 메고 방으로 들어섰다. 그는 거기에 고문 기구를 넣고 다녔다. 건장한 사나이였다. 전형적인 어깨 타입의 풍모를 풍겼다. 그의 장난기 어린 눈길이 불쌍한 먹잇감을 삐딱하게 꼬나보았다. 그리고 담배꽁초를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뱉어 발로 문지르면서 또 한 개피를 피울 것인지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호탕하게 웃으면서 한껏 비웃었다.
“그동안 일감이 없어서 손이 근질근질 했지. 모두 물고문 단계에서 끝났거든. 그동안 내 단골 장의사가 한가하였는데 드디어 일감이 생겼구만. 하여간에 살 맛 나네…… 각오는 돼 있겠지. 사람들은 오해한 나머지 이걸 전기 고문이라고 하는데 실은 ‘배터리 고문’이라고 할 수 있어.”
그는 또다시 완전히 발가벗겨진 채 담요에 쌓여 칠성판 위에 꽁꽁 묶여졌고, 기술자들은 민첩한 동작으로 그의 발바닥과 발등에 붕대를 여러 겹 감았다. 그러고 나서 새끼발가락과 그 다음 발가락 사이에 전기 접촉면을 끼우고, 그것이 빠지지 않도록 단단히 묶었다. 그리고 발바닥과 사타구니, 배와 가슴, 목과 머리에 주전자로 물을 들이 부었다. 그는 물의 섬뜩함과 함께 무서운 공포를 느꼈다. 그들이 계속 뭔가 쉴 새 없이 즐겁게 떠들고, 그러다 그에게 겁을 주고 협박을 하였다. 그들은 물고문부터 시작했다. 물고문이 어느 정도 진행되어 몸에서 땀이 솟아서 담요가 흥건히 젖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전기 고문이 시작되는 것이다.
기술자는 처음에는 짧고 약하게, 다시 점점 길고 강하게, 중간에 다시 약해지고, 전류의 세기를 능수능란하게 조절하였다. 이제 몸과 담요는 완전히 바싹 말라 버렸다. 그러면 전기가 잘 통하도록 다시 물을 뿌렸다.
그는 노기등등하였다. 그는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꽁꽁 묶여있는 그의 몸뚱이에 올라타고 쿵쿵 잔인하게 짓밟기까지 하였다. 그때 갈비뼈가 부러지거나 아니면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리고, 격심한 가슴 통증이 뒤따라 왔다. 그의 눈에서는 요괴의 사악한 빛이 강렬하게 쏟아졌다. 그는 잔인한 칼잡이였고 그는 도마 위에 놓인 생선이었다.
그것은 온몸의 핏줄을 뒤틀어 놓고 신경을 팽팽하게 잡아 당겨서 마침내 모든 관절의 마디마디를 끊어 버렸다. 몸의 각 부분이 해체되고 있었다. 발끝에서부터 고통이 시작돼 속이 뒤틀리고 머리가 빠개지는 것처럼 통증이 왔다. 전기 고문은 외상을 남기지 않으면서 치명적으로 내상을 입혔다. 그는 고통을 못 이겨 너무 소리소리 질려 대서, 목 안에서는 피가 쏟아지고 콧속에서는 역한 냄새가 났다.
고문은 격렬하고 포악스러웠다.
그곳에 끌려온 이래 며칠 동안 단 한숨의 잠도 자지 못했고, 한 끼니의 식사도 하지 못했다. 호흡곤란 증세가 점점 심해지고 기침이 자꾸 나왔다. 벌써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극도의 고통과 공포가 그를 덮쳤다. 그는 잔인하게 해체되었다. 갈가리 찢어져 버렸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었고 형체와 의미를 상실하였다.
“이 빨갱이 자식…… 너 죽어도 우리는 상관없어……. 심장마비라는 의사의 진단서만 발급 받으면 얼마든지 빠져나갈 수 있거든. 남민전 사건의 이재문이 어떻게 죽었는지 알아? 우리한테 고문을 당해서 속이 다 부서져 죽은 거야. 알겠어?”
“전부 다 인정하겠습니다. 반성문도 쓰겠습니다. 몇 번이고 쓰겠습니다……. 당신들이 바라던 대로…… 저는 지금 인간의 자존심을, 인간의 품위를 상실하였으니까요.”
그들은 좋아서 히히덕거렸다. 그들은 번갈아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추궁하였다. 죄 없는 사람의 피에 굶주린 사악한 고문자들은 끊임없이 증오와 분노를 조장하였다. 그는 그들이 시키는 대로, 원하는 대로 반복해서 진술서를 작성하고, 그들이 맘에 안 든다고 갈기갈기 찢어버리면 그들이 부르는 대로 또다시 쓰고, 피의자신문조서는 수 십 번씩이나 작성하였다(다만, 그가 평양에 다녀왔다거나 북괴의 자금을 지원받았다는 부분은 노련한 기술자들도 어떻게 엮을 수가 없었기 때문인지 이 부분은 제외되었다).
그는 재야 운동권과 종교 운동권의 인사 중에서 기억나는 대로 배후 인물을 지목하였다.
그리고 그 내용을 몇 번이고 암기하고, 복습하였다.
“이렇게 해서…… 끝난거군요.” 그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여기는 암흑세계…… 지옥의 불구덩이지……. 나도 인정할 수밖에 없어……. 누군 근무하고 싶어서 여기 있는 줄 알아. 위에서는 실적 올리라고 마구 닦달을 해…… 그러면 우리 속은 다 타서 숯검정이 돼 버리지. 여기서는 누구도 무엇 하나 감출 수 없어. 홀딱 완전하게 벗어야 하지. 진작 다 털어놓았으면 고문도 받지 않고 좋았을 텐데 말이지. 당신이 왜 이렇게 고문을 당하고 미움을 받는지 알아. 처음부터 묻는 말에만 대답했기 때문이지. 그것도 찔끔찔끔 부분적으로만 말하니까…… 고문당하는 것이 당연한 거야. 그런데, 고문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야. 인류 역사상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자행되고 있지.”
기술자는 이제 대충 마무리되었으므로 홀가분한 기분이 드는지, 그를 달래려고 조용조용 얘기를 이어갔다.
“우릴 원망해도 쓸데없는 일이지. 너에게 알려줄게 있어. 누군가 우리에게 너가 적성한 보고서…… 아주 잘 쓴 현 정세를 분석한 보고서를 보내주었지. 고자질한 거지. 항상 기회주의자들이 널려 있지. 그때서야 우리는 너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된 거야.
너는 머리가 좋으니까 일류 대학에 갔겠지. 그 좋은 머리로 냉철하게 판단하기 바라. 검찰이나 법원에 가서 여기서 고문 받았다고 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어. 다들 우리 편이야. 관제 언론도 당연히 우리 편이지. 언론은 당신 이야기 절대 믿지 않지. 우리 말만 믿어. 그렇게 돼 있어. 우린…… 모두 한편이란 말이야. 이 정권의 파수꾼이지…….”
‘그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진술서나 피의자신문조서에는 단 한마디의 진실, 단 한 줄의 타당성 있는 말도 들어있지 않지요. 오직 무의미한 중언부언, 앞뒤가 안 맞는, 뒤죽박죽의 말들만 끝없이 나열되어 있는 거지요.’ 그는 눈을 감은 채 마음속으로 항변하였다. ‘그렇지요…… 그건 무의미한 기호와 문자의 나열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참회와 회개, 개종을, 세례식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지요.’
지하실.
좁은 복도를 따라 똑같은 크기로 붙어있는 방들. 아무런 장식도 없는 회색 시멘트벽의 방. 낮은 천장에 낮인지 밤인지 분간할 수 없는 흐릿한 전등이 매달려 있는 방. 악몽과 망상, 광기, 환각, 색채의 여왕인 찬란한 빛, 기이한 느낌의 방.
설핏 잠이 든 것 같다. 주위는 갑자기 칠흑처럼 어둡고 텅 비어 있다. 밤이 되어 어둠과 정적이 추상적인 분위기를 드러냈다. 그 축축한 밤은 다시는 깨어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고문의 악몽은 그 순간 사라졌다. 모든 것이 단순화 되었다. 바닥은 물기로 축축하고 미끄러웠다. 비틀거리며 일어서다 넘어지고 다시 일어섰다. 지하 감방의 독특한 악취가 코를 찌른다. 그는 벽에 기댄 채 서서 불안한 눈빛으로 사각형의 방을 새삼스럽게 둘러본다. 모서리의 각도가 예각으로 변했고, 나머지 두 각도는 둔각으로 변하였다. 마침내 각이 사라지고 원으로 변모하여 회전을 시작하면서 그 회전은 무한정 증폭되었다.
그는 그때 보이지 않는 하늘을 향하여 고해성사를 하였다.
“저는 지금 혹독한…… 또는 마땅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입니다. 군사독재 정권이니…… 억압받고 소외당한 민중들이란 저에게는 단지 하나의 관념에 불과하였지요. 저는 너무나 공허한 이론 속에서…… 짙은 어둠에 둘러싸인 비밀의 강 같은 그 모호한 추상 속에서 방향을 잃고 허우적거리고 있었습니다. 결국 추상적인 것이 문제인 거지요. 일종의 비겁한 몽상가였으니까요. 그리고 …… 소심했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행동이……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는 않았던 거지요. 전, 행동할 용기 같은 건 애당초 없었던 것입니다. 제가 처벌 받아야 마땅하다면…… 그 때문이겠지요.”
이 사태는 그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운명으로 미리 예정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굴욕은 참회이고 모든 실패는 영광스런 승리이다.
얼마 후 그는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죽음과도 같은 깊은 잠이었다.

그는 30여 일 간의 불법 감금과 고문 수사 끝에 검찰에 송치되었고, 그때서야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
그는 검은 지프차에 실려 구치소로 호송되었다. 차가 석양 무렵 서울역을 지나 염천교를 넘었다. 그는 차에서 내리는 순간 눈이 부신 채 하늘을 올려다본다. 황혼의 빛깔은 불타는 분홍, 장밋빛 분홍에서 회색 분홍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는 짧은 순간, 겨울 저녁의 냄새와 빛을 느꼈다.
건물은 낡고 칙칙했다. 그 건물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구치소 건물은 원래 짙은 진홍색 벽돌 건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그 폭력적인 색깔을 부드럽게 완화시켜 놓았다. 언젠가 그의 기억 속에 그 건물의 퇴색한 빛깔은 황혼의 그것과 혼동되어 구분되지 않을 것이다.
그의 독방은 어둡고 우울했으며 북풍이 직접 몰아치는 벽은 칼날처럼 매섭게 얼어붙었다. 그해 겨울은 지독히도 추웠다. 매트리스 밑에는 습기가 배어 있었고 곰팡이 냄새까지 풍겼다. 벽 위쪽에 붙은 작은 창문은 북동쪽을 향하고 있어서 항상 두껍게 성에가 끼어 희뿌옇게 보였다. 그러나 겨울 내내 햇빛은 이른 아침 잠깐 동안만 건너편 담벼락을 비추다가 이내 회색 그늘 속으로 사라졌다. 햇빛은 믿을 수 없었다. 그림자가 망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극히 짧은 순간의 그림자는 허망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서 쇠창살이 달린 그 창문은 세상을 향해 열려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그 작은 창문을 통해 하늘을…… 하늘을 가로질러 나지막하게 지나가는 조각 구름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아주 멀리서 인간이 사는 거리의 소음…… 난폭하게 울리는 자동차의 경적 소릴 들을 수 있었다.
가끔 구치소 의무과에 불려가서 의사의 치밀한 처방에 따라 링거와 영양제 주사를 맞고, 아스피린이나 소염 진통제, 항생제를 억지로 먹었다. 상처가 난 부분은 연고를 발라서 흉터가 생기지 않도록 하였다. 그는 재판정에서 아주 건강하고 멀쩡한 사람으로 보여야 했다.
그러나 그는 국가의 폭력에 의해 완전무결하게 짓밟혔다. 몸과 마음에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깊은 상처를 입었다. 그는 악몽 같은 현실 속에서 짐승의 단말마와 같은 신음소리를 토해냈다. 간헐적으로 선잠에 빠져들고 비몽사몽간을 헤맸다. 가끔 희미한 꿈속에서 그 기적 소리를 들었다. 기차의 뒤쪽으로 교외의 풍경이 묻혀 들어가고 있었다. 남쪽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비로소 안도감을 느낀다.

언제나 밤안개가 짙은 곳이다. 아침이면 해안가를 뒤덮고 있던 옅어진 안개가 여전히 뭉그적거리다 햇빛에 쫓겨 불현듯 사라졌다. 이따금 바다 쪽에서 강한 바람이 불어왔고 파도는 으르렁거리며 밀려와 해변의 모래톱에서 하얀 포말로 부서지며 사라졌다.
석양이 완전히 물러나고 밤이 되면 별들이 하나 둘 하늘에 돋아나기 시작하면서 저녁의 푸른빛이 비린내가 가득한 해안을 뒤덮었다. 바람이 거세어질 때마다 별빛이 깜빡거렸다. 바닷가의 저녁은 서늘하고 감미로웠다. 밤이 깊어가면서 마을 뒷산의 검은색 윤곽이 또렷하였다. 케케묵은부두는 깊은 어둠 속에서 버림받은 듯이 홀로 남겨져 있었다.
바닷가에는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엔 잔잔했던 바다가 거칠게 출렁이며 파도가 방파제를 거세게 때렸으므로 방파제와는 계류용 밧줄에 의하여 연결되어 있던 낡은 목선들이 격렬하게 서로 부딪치며 몸부림을 쳤다.
바닷가는 아름답고 쓸쓸하였다.
고향에서는 투박한 뱃사람들의 역겨운 땀 냄새, 입 냄새가 났고, 억센 여자들의 까무러칠 듯 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무지하고 노골적이다. 본능적이고 저질스럽다. 그러나 건강하고 순박하다. 그런데 오래 전에 고향을 떠난 자가 어쩌다 고향에 들리면 고향 앞에 막막한 심정이 되고, 고향 역시 낯선 이방인 앞에서 더욱 막막해지는 법이다. 그땐 고향은 무인도와 같다.
그는 오랫동안 지명수배 중이어서 벌교에 내려 갈 수가 없었다. 그리고 고향의 형님이 부쳐주던 생명줄도 끊겼다. 그는 그 무렵 동가숙서가식 하면서 너무 배가 고팠다. 그의 동지들도 형편은 똑같았다. 그래서 손이 닿는 지인들에게 어렵사리 소액의 돈을 부탁했지만, 모두 그가 벌레인 것처럼 쳐다보면서 외면하였다. 그러나 딱 한번 예외는 있었으니……. 중학교 동창생인 김규현의 회사로 찾아갔을 때 (그때 (주)공간은 동숭동에 있었고, 그는 고참 사원 아니면 대리였는지 모르겠다.), 그는 두말없이 몇 달치 월급을 가불해서 쥐어 주었다. 그리고 헤어질 때 아무 말도 못하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가 체포되기 일 년여 쯤 전의 일이다.

공안부 검사가 거들먹거리며 당당하게 말했다.
“피고인은 경찰에서 사실대로 진술했지. 아무런 이의가 없지… ….”
“저는 30일 동안 불법 감금된 상태에서 고문 수사를 받았습니다. 그 경위를 밝혀 주십시오……. 고문 경관들을 꼭 처벌해 주십시오……. 그리고 저는 변호인과 면회가 금지되어 있어서 변호사의 조력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를 즉시 시정해 주십시오.” 그는 호흡곤란 증세가 심해지고 연이어 터지는 기침 때문에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가 없다.
그러나 검사실의 분위기는 금방 험악해졌다. 검사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참으로 가소롭다는 듯이 면박을 주었다.
“우리가 면회 금지를 한 것은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기 때문이야. 경찰들이 할 일이 없어서 당신에게 고문을 했겠어. 쓸데없는 소리하지 마라. 너희들은 만날 수사기관에서 고문 받았다고……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하는데…… 우리가 조사해보면 그건 근거 없는 헛소리인 거지. 알겠어. 넌 분명히 자술서를 썼고, 피의자신문조서에서 모두 자백을 하고 스스로 무인을 찍었단 말이지. 어떻게 부정할 수 있어.”
“다시 번복하면 혹독한 대가가 따를 거야. 다시 그곳으로 보내버릴 거야. 당신만 손해인 거지. 맘대로 하시지.”
“난, 당신과 입씨름할 시간이 없어. 그 놈의 사회주의 혁명론은 지겹고, 역겹지. 나 같은 무식한 검사가 너의 장황한 이론을 어떻게 당해 내겠어. 나도 가정이 있어. 빨리 퇴근해서 집에 가고 싶지. 너하고 밤샘하고 싶지는 않지.”
“네가 순순히 자백하면 말이지, 담당 재판장한테 얘기해서 관대하게 처벌받게 해주지. 우린 대학 동기이고 연수원 동기이니까 서로 잘 통하는 사이이거든. 내가 그 사람을 잘 알지…… 틀림없이 출세할 사람이야. 실용적이고 현실 감각이 풍부하거든. 어때?”

겨울의 짧은 해가 기울어가고 있었다.
재판장이 선심 쓰듯이 공판을 마치면서 피고인의 최후 진술을 듣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시간이 없으니 가급적 짧게, 짧을수록 좋다고 하였다.

피고인: 저는 한 달 동안 그 칙칙한 건물에 불법 감금된 채 지독한 고문을 당했습니다. 짐승처럼 매 맞았고 동물처럼 능욕을 당했습니다. 저는 짓이겨진 벌레보다 못했습니다(그때 검사가 황급히 제지했다. “재판장님,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 피고인이 지금 소설을…… 허무맹랑한 소설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안 들은 것으로 해 주십시오. 정말 죄송합니다.” 그러나 그는 검사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 했다.)
이 사건은 그곳에서 자행된 비인간적이고 불법적인 고문,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시키려는 악랄한 의도 하에 인간 생명에 대한 위협에 의해 조작되었습니다.
저는 고문의 심각한 후유증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도 머리가 끊임없이 지끈거리고 속이 뒤틀려 소화가 되지 않으며, 몸의 균형이 깨져 제대로 걸을 수조차 없습니다. 모든 게 엉망입니다. 무엇보다도 정신적인 상처입니다. 저의 인간으로서의 자존심과 주체성은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저의 고결한 영혼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인간과 사회에 대한 신뢰와 희망은 사라졌습니다(피고인은 말하는 도중에도 간헐적으로 심하게 헐떡이며 기침을 콜록거렸다. 그는 그때마다 잠시 동안 깊은 숨을 들이쉬며 “재판장님, 죄송합니다. 거듭 죄송합니다. 기침이…… 걷잡을 수 없이.”라고 말했다).
저는 결코 용서를 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말입니다… … 죄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훌륭하신 판사님…… 현명하신 판사님…… 실체적 진실만을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재판장: 역겨워서 더 들을 수가 없구만. 그 소리 지겹단 말이지. 그걸 당신이 쓴 탄원서에도 미주알고주알 썼을 거 아냐. 물론 그 탄원서를 난 읽지 않았지. 그걸 읽을 만큼 한가하지 않거든. 하여간에 말이지, 내 눈으로 보지 못했으니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야. 어떻게 믿을 수가 있느냐 말이야.
가령, 고문이 있었다고 해도 누가 당신더러 굴복하고, 자백하라고 했느냐 말이야. 왜? 자백했느냐 말이야. 왜? 끝까지 버티지 못했어. 공소장이 250페이지에 달할 만큼 그럴듯하게 꿰어 맞추도록 자백하고 협조하였으면서, 이제 와서 부인하면 안 되지. 손바닥 뒤집듯 회까닥 하면 안 되는 거지. 아주 지저분한 일이지.
이제 와서 고문을 당해서 그랬다느니, 어쨌느니 해봐야 다 소용없는 일이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그건 당신 사정이고, 그러니 법원을 원망해서는 안 될 거야. 역사에는 고문 받은 사실은 안 남고 자백만 남는 거지.
재판장: 피고인은 재판 받는 태도가 불순했지. 즉, 반성하는 기미가 조금도 보이지 않았지. 공연히 열심히 일하는 경찰을 고문했다고 모함이나 하고 말이지. 피고인은 전부 유죄야. 너무 명백해서 이유를 달 필요도 없어…….
다만, 이 말은 해주고 싶구먼. 이 정부는 민주주의가 굳건하지. 삼권분립도 철저하고. 재판의 독립성도 보장되어 있고 말이지. 그런데도, 반독재니, 반파쇼니 운운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거야. 너희들의 민중민주혁명론은 다름 아닌 공산주의 계급혁명론인데도 불구하고 이 법정에서는 자신들은 어떤 경우에도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가 아니라고, 그와 유사하지도 않다고, 한사코 부정하고 있지……. 법원이 그 속셈을 모를 것 같아…….
그리고 너희들은 혁명한다면서, 뭐 말만 무성하지. 말만 가지고 혁명한다면 누가 못하겠어……. 역시, 너무 추상적이란 말이지. 그러므로 관대하게 처벌해 주겠어……. 피고인은 행동할 만큼 용기는 없었으니까……. 현실적으로, 구체적으로 위험한 것은 아니었으므로 무기징역 대신 유기징역을 선택하기로 하지.
피고인에게 국가보안법을 적용해서 징역 10년과 자격정지 10년에 처한다. 피고인이 이 판결 선고에 불복하면 7일 이내에 항소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친절하게 충고해 주겠는데 항소심이나 상고심이나 모두 똑같이 상소기각이야. 그러니까 상소해봐야 소용없는 거야. 쓸데없는 일은 할 필요가 없겠지.
마지막으로, 피고인의 양해를 구할 일이 있는데 판결문이 이 사건 공소장과는 한 자도 틀리지 않으니까…… 그렇게 알라고…….

그 소름 끼치는 선고는 꿈처럼 모호하게 그의 귀에 웅성거림으로 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는 그 순간 검은 법복을 걸친 그 판사의 뒤틀린 입술을 쳐다보았다. 그 입술이 뱀의 혀처럼 날름거리며 무시무시한 말을 내뱉고 있었다. 그의 입은 저주와 거짓, 사악한 속임수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심장이 방망이 치고 그 고동소리가 들린다. 모든 것이 정지하였다. 하얀 공백이 법정을 메웠다.

재판장이 무거운 어조로 선고하였다. “…… 수사기관의 불법 감금과 가혹행위 끝에 혐의를 인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피고인의 공소사실에 대해서는 증거가 부족합니다. 무죄를 선고합니다. …… 그 당시 피고인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법원이 당연히 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 우리 재판부가 법원이나 국가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법부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당시 진실을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유죄 선고를 한 점에 대해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김정우(金正宇)는 만 6년 동안 감옥에서 살았고, 38세 되던 해 겨울에 형 집행정지로 가석방되어 풀려났으며, 그 2년 후 여전히 가슴을 쥐어짜는 듯 한 기침 때문에 시달리고 편집증적 정신분열증세로 고통 받다 자살했다. 그리고 공동묘지에 묻힌 지 20년이 지나서야 재심 재판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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