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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에세이] 인물들의 에필로그
이름 유중원 이메일



인물들의 에필로그

 

사하라를 읽은 독자들을 위하여

 

우리는 살아가면서 가끔 어떤 인물과 사건, 사물, 풍경의 ‘그 후’가 매우 궁금할 때가 있다. 흔히 있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애매한 기억을 붙들고 후일담을 이야기한다. 「사하라」에서 그때 다 쓰지 못하였거나 밝히지 못한 이야기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인물들의 사연이 있다. 그들이 주인공이건 조연이건 간에 말이다. (물론 나는 조연이라는 말에 심한 거부감을 느낀다. 조연도 인간인데……)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추적해서 추가하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작가의 노파심 때문인지 모른다. 단편소설집 「인간 해방」에 실린 대부분의 작품들과 기타 소설집에 실린 몇몇 작품들은 그 후에 관한 것이다. 이야기의 연장과 반복, 수정과 수정, 연속성과 불연속성, 완성과 미완성이 있다. 작가들은 언제나 충분히 말해야하는 것과 너무 많이 말하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고 멈춰야 할 순간을 잘 알지 못한다. (특히 나의 경우는 그렇다.)

그러나 쓸데없는 부연 설명이거나 사족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숨어있는) 주제를 찾아내고 확장하고 심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완성되었다고 언제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완성과 미완성을 구별할 수 있을 것인가. 폴 세잔은 ‘그림은 절대로 완성되지 않는다. 어느 순간 그리기를 멈출 뿐이다.’라고 말했다.)

김규현의 주검은 회장님의 특별한 배려로 화장하지 않은 채 운구 되어 고향인 벌교의 선산에 묻혔다. 2000년 여름. 담장이넝쿨이 무성한 회사 건물의 앞뜰에서 새삼스럽게 회사장으로 장례식까지 거행했는데, 그때 박상길 상무는 남몰래 묘한 웃음을 지었고, 회장님은 염치불구하고 무척 많이 울었다.

김규현의 아내 심현숙은 10년이 지나고 나서야 예쁜 딸아이를 데리고 그의 무덤으로 찾아왔는데 그때 김규현은 심현숙과 반갑게 해후하였다. (결별의 기억)

다 지나간다

다 잊혀진다

상처는 아물어 / 언젠가는 꽃으로 피어난다

김규현은 젊은 나이에 유명한 건축가로 명성이 자자하였는데, 왜, 무슨 일로 그는 유명하게 되었는가? 그의 건축철학은 무엇이고 건축가로서의 생애는 어떠했는가?

새로 밝혀진 사실은, 그가 매일 그림을 그리지 않고는 못 배긴다는 것이다. 그는 형태의 비밀을 알기 위해서는 사물의 내부로 들어가서 사물의 본질과 생명력을 캐내야 하기 때문에 그림을 그린다고 하였다. 그러나 사막에서는 사막을 경외하니까 손이 마비되고 떨려서 도저히 그릴 수가 없었다. 신을 언젠가는 찾을지 (만날지) 모르지만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신이 형상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신을 그린 적은 없었다고 하였다. (달빛 죽이기)

그가 티베트를 여행하면서 생사의 기로를 헤맬 때 마침내 뭘 깨달았던 것인가? (티베트 기행)

고집불통인 손희승은 기어이 신문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를 선언한 후 아프카니스탄의 북동부 바다흐샨 지역으로 가 국제안보지원군(ISAF)와 탈레반의 교전 장면을 찍었다. (이별)

김규현은 파리 유학 시절 H와는 어떻게 만났고 헤어졌는가. 그 후 H는 어떻게 되었을까? (파리의 이별)

박상길 상무는 김규현이 사막에서 비명횡사한 덕분에 대신 전무로 승진했으나 성폭행과 뇌물수수 등 비리로 4년을 복역하고 출소하였고 한강 잠두동 선착장에서 자살하였다. (시인 혹은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던 남자)

불모의 사막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이 험난한 세상을 은유하는 것인가…… 그러면 여행이란 인생의 삶을……. 그러므로 사막을 여행한다는 것은 다름 아닌 고달픈 삶의 여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필멸의 운명을 타고 났으므로) 반드시 죽는다. 그러면 김규현은 왜 사막으로 갔는가? 무엇을 찾으려고? 아니면 누굴 만나려고? (나는 걷는다)

변화무쌍한 바다는 원초적인 힘과 심연과 광기를, 전설과 신화를 품고 있다. 바다에 대한 끝없는 향수. 고향 마을은 언제나 바다를 바라본다. 그러나 바다는 포효하면 악마가 된다.

바다에 대한 오마주 (바다)

사막 이야기에는 낙타를 빼놓을 수 없다. 사막의 배이니까. 낙타가 자신의 속내를 전부 털어 놓았다. 낙타는 예민한 감각이 있고 풍부하게 감정을 느끼고 깊이 사유한다. 왜 아니겠는가. (낙타)

수많은 신들과 세계적 종교는 모두 사막에서 태어났다. 김규현은 그 이유를 알고 싶고 자신만의 신을 찾아서 사막에 갔다. 하지만 사막을 떠난 종교는 방종했고 말할 수 없이 타락했다. (신의 대리인)

인간이 현명하다고…… 비트겐슈타인은 말했다. ‘나는 흔히 인간 속에서 인간의 모습을 찾지 못한다.’ 인간은 오직 두 발로 우뚝 서서 걸을 뿐이다. (호모 에렉투스)

자살은 구원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먼저 자기 자신에 대한 배신이고 또한 자신의 삶이 둥지를 틀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한 배신이 아닐까.

배신, 배신자.

배반, 배반의 장미.

그리고 자살은 상실이다. (배반의 장미)

메콩 강은 알고 있다네. 강물은 깊어라. 슬픔도 깊어라. 강은 시시로 변하네. 아침에 푸르던 그것이 저녁이면 핏빛으로 물드네. (강물은 흐른다)

인생에는 두 가지 원칙이 있다. 첫 번째는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마라. 둘째는 모든 게 사소한 일이다. (젠네의 대사원을 찾아서)

익명의 화자는 누구일까? 이제야 밝혀진 사실인데 그는 20대 초반 젊은 시절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 그러나 벌써 70대가 되어 노회하고 지저분한 늙은이로 변모하였다. (인간의 초상)

(화가 지망생이었던) 김규현은 왜 그렇게도 반고흐에 빠져 있었던가? 작품 때문인가? 아니면 그의 인생 역정 때문인가?

이브라함의 사촌형 무함마드 알가잘리는 카사블랑카에 정착했고 이슬람 사원의 무에진이 되었다. 언젠가는 이맘으로 올라갈 것이다. (카사블랑카)

마르세유의 마약상 말리크 알리드레미는 감히 두목의 신성불가침의 영역에 도전하였고 결국 잔인한 두목의 집요한 추적을 피하지 못하고 킬러들에게 붙잡혀서 대서양 깊은 물속으로 사라졌다. (두목)

이브라함의 절친한 친구였던 하딤 마흐메드는 얼마간의 돈이 모이자 영주권도, 사회보장제도의 혜택도 포기하고 말리로 돌아가 성공한 아프리카인이 되었다. (하딤 마흐메도)

투아레그족 이브라함은 사막의 남쪽에서 탈수증으로 죽었다. 그때가 삼십 남짓이었을 것이다. 그는 만수라를 사랑했던가? (사하라 사막의 남쪽)

그러나 그 후 만수라는?

여인숙 주인 엘리제는? 늙은 여자란 무엇인가? 반드시 서글픈 인생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마르세유)

플라톤은 국가론 제10권에서 심판과 환생에 대해 기술하였다. 오디세우스는 자신이 참여했던 트로이 전쟁을 회상하면서 야망의 덧없는 꿈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그는 다음 생애에는 아무 근심 걱정 없이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의 삶을 선택하였다. 평범한 인간의 삶을 발견한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차례가 맨 마지막이 아니라 맨 처음이어도 그 삶을 선택했을 것이라고 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선택한 것이다. (오디세우스의 영원한 여정)

H

그녀의 이름은 《에블린 하자지》이다. 김규현은 파리 유학시절 그녀를 사랑했다. 그리고 헤어졌다.

그녀는 김규현과 헤어지고 (그러나 그 이별은 어떻게 생각해도 이별 같지도 않은 이별이었다.) 일 년 후, 국립 공과대학 건축학과를 졸업했다. 그때 그녀의 나이가 25살이었다. 한 동안 꽁꼬르드 광장 근처의 가난한 예술가들이 밤늦게까지 모여드는 허름한 카페에서 일했다. 그러나 프라하의 (아주 부유한) 부모님께 편지를 쓰거나 연락을 하는 일은 점점 줄어들었고, 마침내 완전히 끊겼다.

그 무렵, 취미삼아서 인상파 회화를 배우러 다니다 어떤 화가를 만나 동거를 시작했다. 몽마르뜨 공동묘지 뒤쪽. 허름한 낡은 집의 일층에 있는 작업실에는 그리다가 만 미완성 상태의 화폭들이 겹겹이 포개져 있고, 그러나 기가 찰 정도로 붓들과 물감들, 화판, 액자에 끼우지 않은 채 벽에 걸어 놓은 스케치들, 더러운 접시들이 어질러져 있어서 온통 뒤죽박죽이었다. 이층에 거실과 침실, 식당을 겸하는 코딱지만 한 공간이 있었다.

그녀는 카페에서 일하면서도 자기보다 네 살이나 아래인 젊은 화가의 뒷바라지에 열심이었다. 집안을 깨끗이 정리하고 아침과 점심, 저녁 세끼를 챙겨주고, 캔버스와 물감을 사다주며 화가가 창작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안식처를 제공했다.

그러나 그는 위대한 화가가 될 수는 없었다. 그의 그림은 대부분 미완성인 채로 버려졌다. 그는 항상 밑그림 단계에서 그쳤고, 그림을 완성할 줄 몰랐다. 그는 작품에 생명을 불어 넣기는 커녕 거장들의 작품을 흉내 내기 위해 무거운 색채로 두껍게 덧칠을 하였고 그림은 그릴수록 배경과 전경이 조화와 균형을 잃어버렸다. 그는 간판을 그리거나 싸구려 모작을 그리는 것 외에 다른 가능성이 없었다.

더욱이 그 화가는 발기 불능에 가까워 잠자리 상대로는 별로였으니, 에블린은 그 좁은 침대에서 몸을 붙이고 있어도 아무런 감흥을 느낄 수 없었다.

그녀는 이제 건축 관련 월간 잡지사에 정식으로 입사하였다. 그리고 그 잡지사의 포르투갈 출신 유부남 사진기자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그들은 모든 게 잘 맞았다. 그들은 열광에 취한 나머지 환희의 현기증을 느꼈다. 그들의 몸속에서 동시에 혀를 날름거리는 강렬한 불꽃이 타올랐다. 그녀는 오랫동안 이 순간을 기다려왔던 것일까. 그녀는 승리의 미소를 흘리며 구원을 받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전신의 분노와 참을 수 없었던 혐오와 증오감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녀가 갑자기 임신을 하면서 그녀는 화가와 헤어져서 그 집을 나왔고 사진기자 역시 그 무렵 (고집이 정말 세고, 성질이 깡마르며, 평범한 것은 싫다면서 야수파처럼 소름끼치는 괴물을 주로 그렸던 삼류 화가인) 프로방스 출신의 부인과 이혼하였다.

그녀는 나이 어린 화가에게 헤어져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야 했다. 그러나 차마 임신했다는 말을 할 수가 없어서, 사랑이란 언젠가 식게 되어있고 연인들은 결국 헤어져야할 운명이라는 것, 이별의 이유를 명확히 설명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고 파리에서는 특히 그렇다고, 자신은 이 저주받은 파리를 하루 빨리 떠나고 싶다고, 아주 멀리 동양 아니면 아프리카로 떠나고 싶다고 말 하였다.

그리고 그에게 《기욤 아폴리네르》의 미라보 다리를 되풀이하여 읊어줬다. …… 사랑은 가버린다. 흐르는 이 물처럼 사랑은 가버린다. ……지나간 시간도 사랑도 돌아오지 않는다.

엘리제 바르델리

이브라함이 마르세유의 여인숙에서 청소부로 근무할 때 여주인이었다. 그가 자크가 죽은 후, 그 여인숙을 떠날 때 쯤 그녀는 60대 초반이었다. 그녀는 세 번 결혼하고, 세 번 이혼했으므로 그녀의 일생은 나름 긴장감도 있었겠지만 딱히 행복했다고도 불행했다고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본인의 생각이야 알 수 없지만.

그녀는 이제 나이가 80대를 바라보게 되었다. 약간의 당뇨 증세와 가벼운 현기증, 고혈압이 있기는 하지만 건강하다. 그러나 여전히 외롭고 쓸쓸하다. 밤이면 깊은 잠을 잘 수 없고, 자주 꿈을 꾸지만 깨어나면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자신이 하릴없이 늙어가는 것에 대한 당혹감 때문에 때때로 눈물을 흘렸다. 흘러간 시간들의 여백이 새삼 아쉬웠다. 지금은 생사마저 알 수 없는 바다로 떠나간 첫 번째 남편도, 약간 듣기 어려운 발음으로 말했던 아프리카 흑인 청년 《모세하난 이브라함》도 그립다. 둘 다 몹시 보고 싶다. 정말 독신은 좋지 않아.

그녀는 여인숙을 딸에게 물려주고 은퇴하였다. 딸은 역시나 아프리카의 기후 풍토를 이기지 못하고 남편과 합의 이혼한 후 조용히 딸을 데리고 마르세유로 돌아왔다.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딸은 지금 스페인계 유대인인 세파르디 2세 남자와 동거하고 있다.

엘리제는 한 동안 신시가지의 현대식 아파트에 살았지만 역시나 그 지독히 역겨운 아프리카 냄새가 그리워서 마그레브의 이민자들이 주로 사는 도시의 북쪽 노아유 구역에 있는 작은 아파트로 이사 왔다. (백인종은 거의 없고 주로 흑인종에 가끔 황인종만이 뒤섞여 사는 곳. 아프리카인 특유의 지독한 냄새가 거리 곳곳에서 풍기는, 가지각색의 억양이 뒤섞여 알아듣기 힘든 언어가 들리는, 늙은 개와 고양이들이 어슬렁거리는, 떠돌이 넝마주이들이 낡은 손수레를 끌고 돌아다니며 폐품과 빈병을 찾아 거리를 뒤지는, 마약 중독자들과 불구자, 거지들이 보도를 따라 굼벵이 걸음을 걷는, 자메이카 출신 부두교 도사가 헐렁한 검은 옷을 입고 중얼거리듯 끊임없이 주문을 외우는, 밤이면 술 취한 여자들과 선원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비틀거리는, 반평생을 살았던 그 거리가 새삼 그리웠던 것이다.)

그녀가 이브라함의 죽음을 알았다면 얼마나 애통해 하였을까. 다정다감한 그녀는 아마 목 놓아 울었을 것이다. 그가 떠난 후 이브라함의 소식을 여태껏 전혀 모른다.

나디아 만수라

그녀는 이브라함이 그의 팔뚝에 문신으로 그녀의 이름을 새길 정도로 처음이자 마지막 여인이었다. 사막의 부족 출신이지만 딱 부러지게 똑똑했던 그녀는 암스테르담에 간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

만수라의 소식은 아직까지 아무도 모르고 있다. 지금도 암스테르담에 살고 있기는 하는 걸까? 개성이 강한 그녀가 동업자와 싸우고 떠난 것은 아닐까? (그곳에서 일시 새로운 애인이 생겼다면, 또는 이익배분을 둘러싸고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만약 그녀가 암스테르담을 떠났다면 어디로? 다시 마르세유로 아니면 마라케시의 제마엘프나 광장으로?

그녀가 타만라세트로 이브라함을 찾으러 갔다가 그의 죽음을 알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는 자포자기 했을까? 지금 어디에서 살고 있는 것인가? 마르세유에 있다면 무엇을 먹고 살까? 다시 카페의 종업원? 또는 고급 창녀나 포주 노릇은?

하지만 그녀는 이제 나이도 들었는데 직접 매춘이 가능하겠는가. 무엇보다도 그녀는 자존심이 강한 여자인데 칼을 들고 강도짓을 해도 그건 아닐 것이다.

섹스와 매춘은 인류의 오래된 문화이고 문명이다. 그것은 아주 고대에서부터 존재했고 (고대 그리스의 신전에도, 카르타고의 신전에도, 로마의 신전에도, 예루살렘의 신전에도 사람들이 모여들면 그 중에는 매춘부들이 끼어있었으니까. 우리는 시대를 통틀어 인간의 기본적인 사고방식과 생활상이 놀라울 정도로 똑같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TV, 비행기, 휴대폰, 컴퓨터와 인터넷 시대에도 그렇다는 것이다.) 지금은 더욱 번성하고 있고 아무리 완벽한 세상이라고 해도 성매매를 막을 수 없다. 그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어느 시절에나 우리 주변에 있었던) 청교도적 위선은 물러가라. 남자들은 누구든 자기만이 알고 있는 내밀한 경험이나 충동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현대문명과 도시의 일부이고 각계각층을 연결한다. 성매매는 일종의 산업이 되었으므로 경제적 관점이 중요하고 더 나아가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가를 인식론적, 가치론적 관점에서 고찰해야한다.

그러므로 복잡한 사회일수록, 은밀한 거래일수록 믿을만한 중개인이 필요하다. 그는 필수불가결한 존재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똑똑하고 현실적이니까 충분히 포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언니 같으니까, 완벽한 브로커이자 인생 상담사, 관리자가 될 자질이 충분하다. 그것도 중개 수수료가 많이 남는 고급 콜걸들의 포주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가정에 불과하다. 쓸데없는 가정. 그녀가 들으면 불같이 화를 낼 수도 있는.)

빈센트 반 고흐

건축가인 김규현은 파리 유학시절부터 반 고흐를 좋아하고 사랑했다. 아마 김규현 이상으로 그 불행했던 화가를 뼛속 깊이 이해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젊은 시절 한 때 순전히 반 고흐 때문에 화가가 될 수 있을까, 꿈을 꾼 적이 있었다. 그는 (이미 죽어서 아를의 무덤 속에 잠들어 있는)빈센트에게 깊은 연민의 정을 느꼈다. 그가 두려워했던 것을 김규현 역시 두려워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 그는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에서 몇 번씩이나 보았던 빈센트의 모든 그림을 떠올렸다. 그것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의 어쩔 수 없는 광기가 삶을 비극으로 몰고 가기는 했지만, 그가 맑은 정신일 때 황홀경에 빠져서 쏟아낸 그림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자연과 깊은 교감을 나누었는지를 잘 알 수 있었다. 그는 노랑색 ㅡ 색 바랜 유황의 노랑, 흐릿한 레몬빛 노랑, 강렬한 태양의 눈부신 노랑, 밀밭의 오래된 황금빛 노랑 등 ㅡ을 너무 좋아해서, ‘아! 아름다운 노랑이여!’라고 찬탄하였고, 남쪽 들판의 사이프러스 나무들과 밤하늘의 푸른 별들을 특히 사랑했다.

그는 생각했다.

건축물에도 고흐의 그림과 같은 강렬한 색과 꿈틀거리는 선이 필요하지. 그는 그림에서 자연의 살아있는 생명력과 강렬한 색채의 힘을 보여주었어. 그의 그림은 사람들의 지친 영혼을 위로해 주었지. 이 화가는, 정말 격렬하게 고뇌하였다고 말 할 수 있을 정도의 경지에 이르렀으니까, 그를 존경하지 않고는,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기지……. 그도 심한 우울증을 앓았지. 그래도 말이야, 그것 때문에 사물을 또렷하게 보지 못하거나, 본 것을 화폭에 옮기지 못한 것은 아니야. 미치고 정신이 나갔어도 여전히 위대한 화가의 영혼을 지니고 있었지. 화가로서 그의 관심은 대상을 초월해서 훨씬 너머에 가 있었지. 살아생전에는 아무도 그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말이야. 세상은 그때 그에게 너무 과도하게 냉담했어. 생전에 그는 단 한 점의 그림도 팔지 못했지. 화상을 한 동생 테오가 돌보지 않았다면 그림은커녕 진즉 굶어 죽었겠지. 세상살이에 대해 도통 몰랐으니까. 그래서, 그는 파계한 수도사처럼 살아야 했어……. 이 세상은 참으로 믿을 수 없는 거야. 변덕이 죽 끓듯 하니까. 생전에는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고 의식적으로 무시했기 때문에 마침내 미쳐서 그는 정신병원에 갇혔고, 끝내 자살까지 했어. 그는 강렬한 빛과 색을 위해 장엄하게 순교한 거지. 그제서야, 그가 죽고 나니까 빈센트의 그림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그림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이제는 모두 이구동성으로 빈센트의 그림만 얘기했다. 빈센트는 그때나 지금이나 일종의 유행병이 되었다. 이 세상이란 그런 거다. 인간들이란 본래 그런 거다. 쥐떼처럼 우루루 몰려다니니까. 그러나 그 불행한 천재는 살아있는 동안에도 충분히 배반을 맛보았고 죽은 후에도 역시 배반을 당하고 있는 거지. 가짜 작품이 진짜처럼 수도 없이 나돌고 있으니까. 그건 그렇고,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에 걸려있는 「아를의 늙은 여인」을 다시 보고 싶군. 우리 어머니와 닮은 모습이거든. 또, 「잿빛 펠트 모자를 쓴 자화상도 보고 싶어. 그 자화상은 나의 자화상일지도 모르지. 그래, 나의 자화상이 틀림없는 거야. 나는 그 자화상을 바라볼 때마다 그에게서 동병상련을 느끼지. 화가들은 자화상을 그릴 때면 거울에 비친 자신을 그린다지. 그때 고흐는 거울 속 우울하고 수척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마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서 다른 사람을 발견했을지도 모르지. 또는 거울에 비친 사람은 어느 누구도 아닌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 어쩌면 심한 자괴감을 느꼈을 거야.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강박적 욕구에 내몰렸으니까. 그 날카로운 눈초리는 어딘지 모르게 공허하고 불안해 보이지. 눈이, 눈동자뿐만 아니라 흰자위까지 온통 푸르스름한 색으로 칠해 있지. 그는 그때 이미 미쳐 있었던 거야. 그는 권총의 방아쇠를 당길 수밖에 없었어……. 나라도 그 상황에서는 당겼을 거야.

나는 그가 보고 싶다. 그를 만나고 싶다. 지금 (물론 여전히 무명 화가로) 살아 있다면 말이다. 천 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걸어서라도 적색 포도주 한 병을 사들고 만나러 갈 터이다. 그가 나의 말을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을까. 그러나 나는 그에게 해줄 말이 없을 것 같다. 그의 떨리는 손에 쥐고 있던 권총을 빼앗아야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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