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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풀 패밀리2
강영
“오나가나 내가 미쳐. 왜 자빠져 있니? 이제 앉지도 못하니? 쳐다보긴 뭘 보니? 그 잘난 니 애비가 아니라서 그래? 왜 놀래?”
대답을 할 수 없다. 한두 가지 물어야지. 겨우 한 가지 물음을 움켜잡았다.
“아빠에게 무슨 일 있어요?”
“하!! 아빠 좋아하시네. 니 애비? 유치장에 있어, 유치장에.”
“왜요?”
“내가 알으, 내가 아냐구? 내가 그걸 알믄 이렇게 있겠니, 이 백돼지야!”
심하다. 그래도 딸인데 ‘백돼지’라니. 엄마는 화풀이가 더 필요한 모양이다. 거울을 째려봤다. 스스로 비춰보며 다이어트 하라고 아빠가 내게 사준 거울이다. 안 돼! 그러나 늦었다. 엄마가 비스듬히 벽에 기대 있던 나의 거울을 치켜들었다. 다행 내 몸통 위는 피해 주었지만 오른팔 바로 옆에다 내동댕이쳤다. 거울이 박살 안 나면 것도 웃기는 거다.
어쩌자고, 통쾌하다. 다만 한 가지 진지하게 기원한다. 저 거울 조각 중에서 가장 날렵한 것을 엄마가 주워들지 않기를. 혹시 주워든다고 해도 날카로운 끝을 내게로, 내 심장을 겨누지 않기를. 만에 하나 겨눈다고 해도 정말로 찌르지 않기를 진짜로 빌고 빈다.
가장 바라지 않던 일이 일어날 모양이다. 엄마가 거울 조각을 집어 들었다. ‘어머니, 살려주세요’라는 게 말이 되어 입 밖으로 나가는 대신 끝이 잘린 혀뿌리처럼 안으로 들어가 기도와 식도를 막았다. 거울칼에 찔려 죽기보다 숨이 막혀 죽겠다. 거울칼은 내 코앞으로 다가온다. 칼끝의 고밀도 반짝임과 함께 얼이 빠져 산산이 흩어진다.
찢어지게 좋아졌다는 이 세상 한가운데, 게다가 이제 막 희망찬 아침 해가 떠오른 때에 이런 일을 사람인 내가 당해야 하는지. 좋은 세상이라면 좋은 관계라야 마땅한 모녀가 이런 꼴로 마주해도 된다는 건지. 내가 아직도 사람이긴 한 걸까? 고민까지도 못하고 나는 아마 히죽 웃고 있는 모양이다.
“웃어? 야, 이년아! 너는 왜 이렇게 됐니? 그냥 죽어버리면 안 되니?”
나는 눈을 감아버렸다. 엄마는 왜 내 방에 들어왔을까? 내가 살과 콘크리트벽 속에 이중으로 갇힌 지 한 달이 돼 가지만 한 번도 들어오지 않던 이 방에. 남편이 유치장에 갔으면 간 거지. 아니, 남편인지 아빤지가 유치장에 간, 중요한 때에 왜 하필 흰 돼지보다 몇 배는 더 살이 쪄버린 딸의 방에 들어왔을까. 참말로 딱 죽고 싶네. 나는 감았던 눈을 떴다.
“죽여라! 죽여!”
“이런 염병할 년아, 죽이라면 못 죽일 줄 알아? 그 전에 바른대로 말해! 왜 이러니? 잘하 더니 왜 이러냐구! 공부도 일등에 예쁘고 총명하더니 이게 대체 머냐구우?”
갈수록 참나. 왜 그게 하필 이런 때에 궁금한지 정말 갑갑하다. 일단 다행이다. 거울칼 끝은 더 이상 다가오지는 않을 모양이다. ‘죽여라!’고 한 명령이 역설로 작용한 거지.
사람, 참 별거 아니다. 칼끝이 조여 올 때는 그것만 멈추면 살 것 같았다. 하지만 좀 전 칼끝에 빛나던 반짝임의 밀도보다 천 배는 더한 뭔가 나를 압박한다.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 나야말로 그것이 자나 깨나 궁금하다. 그보다 엄마는 왜 하필 지금 그것이 궁금할까.
“몰라서 그러는데요, 그거 꼭 지금 말해야 돼요?” “낼 할래? 모래 할래? 천상 지 애비라니까. 그 꼴을 해서도 급한 게 없어.”
오해다. 내가 급한 게 없는 게 절대로 아니다. 지금 당장 엄마 당신이 나가고 나면 박살난 거울 조각들을 치울 일이 급하고, 그보다 엄마라는 여인의 분노를 어떻게 해봐야 하고, 더 급하게는 여인의 손에 거울 조각을 무사히 내려놓게 해야 한다.
“엄마, 한 가지 간절한 부탁이 있어요.”
“간절한 부탁은 귀신한테나 해!”
“손바닥을 방바닥으로 향하게 해서 그냥 손을 살그머니 펴셔야 베지 않아요.”
“지 애비 딸 아니랄까 봐. 이 판에 살그머니는 무슨…….”
엄마는 구시렁거리면서도 내가 시키는 대로 했다. 유리가 손바닥을 압박하긴 했지만 베진 않은 모양이다. 빨간 금이 두 개 옴폭 그려져 있지만 피는 나지 않는다. 속단이 방정맞았다. 두 줄의 빨간 이랑에서 피가 흐른다. 이는 또 어떻게 수습하면 좋을까.
“왜 그라고 멍청히 계세요? 얼릉 닦지.”
“이 오라질 년아, 이대로 꽉 죽었음 해서 그란다, 왜!”
귀청 터지겠네. 엄마가 흐르는 피를 보며 울기 시작한다. 울음소리가 이상하도록 빵빵하다. 이 문제투성이에서 엄마가 죽을 것인가는 문제가 못된다. 엄마는 죽지 않는다. 엄마의 생명력은 고래심줄이다. 혹시 엄마의 고래심줄이 지구 공중분해를 막고 있는 건 아닐까? 모순되고 이상한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일을 꾸미고 저질러도 지구가 공중분해 되지 않는 게 불쑥불쑥 궁금했다, 평소에도. 넘어가야 한다. 지금은 엄마 울음과 피가 문제다.
“아이, 씨이. 그 좀 닦아요! 닦고 내 치마라도 찢어서 쩐매요.”
“치마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이년아, 그 나이롱 치마가 찢어지기나 하니?”
엄마는 왜 오늘따라 이상한 질문만 하는지. 느닷없이 나일론 치마가 찢어질 것인지 말 것인지. 내가 왜 이토록 몸을 살찌웠는지 그 철학적인 물음까지. 게다가 뒤의 물음은 거울을 박살내어 칼을 만들어 심장을 겨누며 하질 않나. 정말 이상한 날이다. 어제 아침부터 예상은 했지만 이쯤 되면 예상의 천 배는 되겠다.
아빠는 출근하기 전에 내 방에 들려 한두 마디쯤 격려나 위로를 하고 집을 나섰다. 내가 학교도 못 가고 이렇게 방에만 있은 후부터 하루도 빼지 않고 하던 일이었다. 잘하던 그 일을 어제 오늘은 빼먹었다. 어제 빼먹고 출근을 했다가 유치장으로 가느라고 지난밤에 집에 돌아오지 못했으니 오늘 아침에도 올 수 없었다.
피가 흐르는 손바닥을 엄마가 높이 치켜들었다. 어쩌자는 거지? 설마 내 밀가루 반죽처럼 하얀 살덩어리에 지지, 문대는 건 아니겠지? 피 칠갑! 무슨 이런 날이.
엄마가 손바닥을 들어 내 허벅지를 철썩철썩 때리고 잡아 뜯는다. 허벅지가 금방 피 칠갑 되고 따갑고 쓰리다. 나는 엄마가 이상하게 빵빵한 울음을 그친 것만도 다행이라 참는다.
“그러니까 화는 좀 풀리셔요?”
엄마는 나를 힐긋 보곤 그만하자, 힘없이 말했다. 그리고 정상적인 몸짓으로 일어나 서랍장을 뒤져 내 속옷을 꺼내 손을 감았다. 한숨을 쉬기는 하지만 지극히 정상이다. 이 얼마만의 정상회복인가. 방금 있었던 일이 아득하다. 상처가 그다지 깊지 않아 다행이다. 그새 피가 멎었다. 엄마가 입과 안 다친 손을 도와 속옷으로 상처를 감고 매듭짓곤 도로 앉았다.
“니 애비가 성추행을 했다 그라더라.”
천신만고 끝에 얻은 정상이 순식간에 곤두박질쳤다. 정상회복이 곤두박질로 웃기는 재주도 있는 걸 처음 안다. 성추행이라니. 엄마의 악독한 농담이겠지. 나를 아예 영원히 저 세상으로 보내려고. 그러고 보면 저 여자는 방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일관성 있게 나를 죽음으로 유도하고 있다.
이년 저년도 용서할 수 있다. ‘백돼지’도 용서할 수 있다. 허벅지 난도질도 용서할 수 있다. 아빠 용돈 아껴 사준 거울을 박살내도 용서할 수 있고. 아빠를 모욕한 것만은 용서할 수 없다. 우리 동네에 뿌려진 콜타르에 혀를 박고 죽어도 ‘가아짜’ 시는 안 쓴다는 아빠다.
“무우슨 그런 소릴 해요?”
“농담 아니야. 진짜야. 내가 미쳤니? 비싼 밥 먹고 헛소리하게, 그렇잖아?”
엄마의 콧마루가 반들반들 윤기가 돌며 말갛다. 반들거림에 광기가 함께 떠올라 내 살들이 자극 받았다. 특히 내 볼이. 난 아침에 아빠가 내 볼을 쓰다듬어줄 때의 그 감촉을 지금 갈망한다. 아빠의 손이 내 볼 살을 부드럽게 오르내리는 순간 입술을 벌려 아빠 손가락을 깨물지 않기 위해 이를 앙다물어야 했다.
“무얼 그렇대요?”
“하긴 나도 여태 안 믿긴다, 얘. 호호!”
호호라니? 엄마는 분명 호호라고 하며 쌍꺼풀이 낀 예쁘고 큰 눈동자를 흰자위가 보이도록 천장을 향해 힐긋 그었다. 너무 빠르게 눈을 도로 내려떠서 엄마 눈의 파란빛이 꾸다 만 악몽 같다. 엄마 살결 어느 한 부분도 자극 받았을까, 호호라니.
엄마가 자신의 붕대감긴 손을 내려다본다. 누워 있으니 엄마의 내려다보는 얼굴을 더 자세히 볼 수 있다. 마주보면 잘 안 보이는 콧구멍이 빨쫌빨쫌, 안이 까맣게 보인다. 발랐던 립스틱이 지워졌는데도 입술이 붉다. 약간 도톰한 것도 이상 없다. 발랐던 파운데이션이 다 지워졌어도 살결이 희고 윤기가 흐른다. 저 얼굴,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예뻤지, 창포 꽃처럼 이뻤지. 지금도 웃으면 이쁘잖아. 아빠가 엄마를 일러 언젠가 한 말이다. 아빠의 말을 따라 엄마 얼굴에 웃음꽃 핀 때들이 줄줄이 기억난다. 엄마의 웃음소리는 하하와 호호의 중간소리가 난다. 그 중간소리가 와르르 쏟아지는 때, 참 많았다.
자운영 유려한 향기 날리던 내 태어난 앞태도 북쪽에 있는 ‘날망’이 왜 이렇게 가고 싶은지 모르겠다. 하필 이런 때에. 그 많은 웃음꽃 핀 기억들 중에 그 날망이 가장 앞을 서는지, 그곳의 자운영이 생각나는지, 노인네처럼. 날망은 우리 동네 작은 언덕으로 태안읍에 있는 내가 졸업한 중학교 지붕만한 규모다.
날망 한쪽으로 우리 할머니의 마늘밭이 있다. 지금도 있다. 마늘밭은 별일 없는 한 미래에도 있을 것이다. 모르지. 콜타르 칠갑된 우리 앞태도 앞 바다처럼 콜타르가 할머니 마늘밭까지 칠갑해버리면 더 이상 그곳은 할머니의 마늘밭이 아닐 수도 있겠다. 자운영 유려한 향기 날리는 날망도 더 이상 아름다울 수도 없겠다. 오늘, 내 방이 이 지경이고 보니 날망의 미래가 걱정된다. 날망에 보랏빛 자운영 고운 때, 난 살을 이토록 찌우지 않았다. 비교적 날씬해서 기분 좋은 날은 날다람쥐처럼 동백꽃 가지 위로 날아갈 것 같았다.
그날, 엄마와 아빠는 날망 한복판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손을 잡거나 하진 않았다. 엄마가 아빠 어깨에 기댄 것도 아니었다. 가까이서 봤더니 두 사람 사이에 작은 통발이 지나가도 될 간격은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와 두 사람을 찾아 나섰던 참이었다. 할머니가 ‘모올러, 풋고치랑 대파 한 폭찌 뽑아 온담슨 둘 다 한꾼에 나가더니 안 와여.’라고 조금 못마땅한 듯 일러주었기 때문이었다. 말을 하며 할머니는 입술을 비틀며 생굴을 씻었다.
“음머, 채까지 와여? 일루 와여. 우리 셋이 날망에 앉는 기 얼마만이니?”
아빠가 말하고 엄마는 입술만 빙긋 했다. 웃음을 쏟아내기 전에 하는 엄마의 입짓이었다. 아빠 얼굴은 새까맣고 엄마 얼굴은 빨간 했다. 자운영 자줏빛과 막 지고 있는 석양빛이 한꺼번에 물들어 있었다.
“뭐해?”
맹세코 그냥 한 나의 인사였다. 정말로 엄마와 아빠만이 할 수 있는 모종의 일에 대해 따진 건 아니었다. 엄마가 빙긋거리는 입술로 웃음 직전 동작을 계속할지 말아야 할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아빠가 손사래를 쳤다.
“아이야, 하긴 뭘 해여! 아무 짓도 안 했어여.”
“누가 뭐래여?”
내가 정색을 하고 되물었고 엄마가 와화화화, 웃음소리를 쏟아냈다. ‘엄마가 사랑스럽다’라고 나는 그때 생각했다. 자운영 향기가 내 콧구멍으로 밀려들었다.
“공연히 웃고 난리네…… 아, 파나 뽑아 퍼떡 내래가여!”
아빠가 앞말은 중얼거렸고 뒷말은 쥐어박듯 했다. 엄마는 파 뽑을 생각은 않고 와르르, 와르르 쏟아지는 웃음을 어쩌지 못했다. 나는 가벼운 행복을 느꼈다.
내가 행복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 지금은 조금 알겠다. 행복한 날에는 아무 생각이 없더니. 우선 아빠가 낙지를 잘 잡는 시인이기 때문이었다. 아빠가 낙지를 잘 잡아 행복한지 시인이라서 그런지는 명확하지 않다. 아빠가 동네 뒤 갯벌을 내 팔 길이만큼이나 깊이 파서 낙지를 한 바케스 잡아오는 날엔 우리 집안엔 웃음소리가 갑자기 분분해진다. 아침에 엄마와 아빠가 된통 언쟁을 했던 일이나 할머니가 엄마에게 ‘베라먹을 년’이라고 한 일 같은 것들이 똥게가 수챗구멍으로 사라지듯 싹 사라져버린다.
콜타르가 문제였다. 적어도 엄마와 아빠와 나를 비롯한 우리 앞태도 주민에게는. 우리 세 식구가 여기 이 반지하 집에 살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콜타르가 우리 앞태도뿐만이 아니라 온 태안반도를 다 칠갑했을 때 난리도 아니었다. 가을하늘과 경쟁하며 청청, 맑던 바다를 검은 먹구름이 순식간에 뒤덮었다.
그날 나는 할머니를 졸라 감꽃목걸이를 만들었다. 읍내 친척 집에 얹혀 숙식을 해결하며 중학교에 다니다 주말을 맞아 돌아온 때였다. 언젠가 할머니가 말해준 감꽃목걸이 실습을 했던 것이다. ‘베라먹을 여식’이라며, ‘구찮아 죽겄다’는 할머니 지도를 받아서 바가지 가득 감꽃을 주워 모아 낚싯줄에 꿰서 오중 꽃목걸이를 완성해 목에 걸던 참이었다.
할머니가 집으로 돌아오며 야야, 아범아! 바다가 노했는 갑서여, 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나갈 땐 혼자 나가더니 들어오며 꽁무니에 아빠가 달려 있었던 거다. 아빠는 저것이 워디서부텀 시작됐는지, 암튼지간에 클 나버렸네유, 엄니? 했다. 시작된 곳이 개차운 데라야 될 것인디이? 라고 덧붙였다.
잠시 후 엄마는 서쪽바다에서 굴을 쪼다가 서둘러 돌아와서 쫒은 굴을 사립짝에 말아서 세워둔 그물에다 다 쏟았다. 반이나 넘게 굴이 담겨진 굴 바가지를 일부러 엎어버린 거였다. 쏟아진 굴 바가지는 아랑곳없이 엄마는 아빠한테 말했다. 채 저으 아빠요, 이것이 무슨 조화대여? 여그 바다까지 이렇게까지 오염되믄 먼 일이래여? 아빠가 도대체 멍청하니 말이 없자 엄마는 할머니에게로 슬그미 몸을 틀었다. 아빠는 그물 위에 늘어진 생굴들을 벙벙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나는 무슨 일이 났기에 어른들이 하나 같이 저렇게 초랭이 방정이냐, 했다. 꽃목걸이를 실실 손가락으로 만지며 아빠 눈길을 붙든 그물을 나도 쳐다보았다.
아, 생굴들! 늘어져 있는 생굴을 나는 그날 처음 봤다. 추악했다. 침으로 일차 소화를 시켜 도로 뱉어낸 것들 같았다. 그렇다고 토사물 같지는 않았다. 우리나라 주 양념이 고춧가루로 흔히 토사물에는 붉은 기가 도는 반면 그것은 전혀 붉기가 없었다. 대신에 새까만 기름덩어리를 달고 있었다. 생굴은 하얀 뱃살이 통실통실하고 아가미가 가지런하고 뚜렷하다. 그물에 늘어져 있는 생굴은 생굴이 아니었다.
분위기가 좀 이상하긴 해도 나는 꽃목걸이를 목에서 걷어낼 생각이 없었다. 좀 멍청해서 감이 잡히지 않았다. 콜타르가 얼마나 폭넓게 얼마나 속속들이 칠갑되었는지, 그래서 그 피해는 어느 만큼인지 감지되지 않았다. 갑갑할 뿐이었다.
“선창으로 가서 확인하면 되잖아요!”
할머니, 엄마, 아빠, 세 사람은 나를 동시에 쳐다봤다. 나는 오금이 저렸다. 세 사람의 표정이 하나같았다. 내가 할머니가 먹다 둔 막걸리를 훔쳐 마시다 들켰을 때 표정이었다.
“어째서 그 생각을 시방 하니? 그래도 우리 채가 공부를 잘혀서 생각이 젤 거시기로 빠 르다이. 역시로 사램은 공부를 잘혀야 쓰겄다. 어서 선창으로 가여!”
비로소 세 사람은 표정을 풀고 내게서 얼굴들을 돌려 서둘러 선창으로 갔다. 경보를 하듯 앞서거니 뒤서거니 엉덩이를 씰룩거리면서 갔다.
나는 갑자기 심한 갈증이 일어 막걸리 생각이 났다. 설탕 넣은 막걸리를 머그잔에다 가득 따라 식도부터 직장까지 시원하도록 들이켜고 싶었다. 설탕 넣은 막걸리는 진작부터 나도 즐겨 마시는 음료다. 막걸리에 설탕을 넣는 건 할머니의 방식으로 손녀인 내가 배웠고 마시는 건 초등학교 오학년 때부터 했다.
그러나 난 그 시간엔 할머니가 마시다 숨겨둔 막걸리를 찾진 않았다. 내가 막걸리에 맛들이고부터 할머니와 나는 막걸리 숨바꼭질을 했던 것이다. 번번이 나는 술래였지만 보란 듯이 찾아냈다. ‘배라묵을 가스나가 훗날 머시 될랑가 몰러. 공부를 몬 함선 밉기나 하겄제만, 공부는 또 오지게 잘한단마시.’ 할머니는 입 안 가득 웃음을 채우고 구시렁거렸다. 아무리 갈증이 일어도 그땐 그래서는 안 될 일이었다. 막걸리를 찾는 대신 나는 목에 걸린 감꽃을 톡톡 따먹으며 세 사람이 경보를 해간 길 위로 나도 경보를 하기 시작했다.
이상했다. 앞선 세 사람은 갈 곳이 지구 끝이라도 끝까지 경보를 하듯 걸어서 목적지에 이르기로 작정한 듯 선창에 이르는 그 빤한 길을 엉덩이를 씰룩대며 끈질기게 경보로 헤쳐 나갔다. 뛰면 될 일이지. 끈질기게, 경보를 하며 세 사람을 뒤따르는 나도 갑갑했다.
상상을 초월한다는 말, 실감됐다. 벙어리가 된 기분이었다. 나는 내가 대한민국 중학생으로서 대한민국 바다를 그렇게 사랑하는 줄 그날 처음 알았다. 콜타르가 뿌려지지 않은 푸른 바다를 그렇게 애지중지 한 줄도 처음 알았다. 검은 바다를 보는 내 마음엔 처음 느끼는 배신감과 증오가 팽팽했다.
바다엔 검은 능구렁이, 검은 독사, 검은 아나콘다, 검은 이무기, 거대한 검은 지렁이, 세상에서 검고 길고 털 없이도 빛을 내며 징그러운 것들은 다 모여서 찬란한 무지갯빛 지느러미를 사악하게 흔들며 구물구물 기어 다녔다. 저녁 무렵이었나 보다. 사선으로 내리쏘는 태양빛에 그 많은 뱀류들이 한꺼번에 뒤엉켜 몸을 뒤채며 바다를 능멸하던 거였다. 바다를 휘감은 콜타르 띠는 사악, 그것이었다. 세상의 모든 사악함을 낳은 검은 자궁이었다. 그래도 내가 할 일은 내 목에 감긴 감꽃을 따먹는 일밖에 없었다. 감꽃은 떫고 쓰고 불쾌했다. 그래도 감꽃과 시비라도 걸듯 감꽃을 씹었다.
떫고 쓴 감꽃은 나만 먹는데 할머니와 엄마와 아빠, 세 사람도 떫고 쓴 표정이었다. 다시 봤더니 엄마의 표정은 그다지 떫고 쓴 건 아니었다. 뭔가 마구 떠들고 싶은 사람의 그것이었다. 눈이 반들거리고, 입술이 미세하게 달싹거리고.
“이게이게 무신 일이래여? 엄니, 이런 꼴은 첨이겄어유?”
할머니가 대답 없이 엄마를 쳐다봤다. 엄마는 대답을 기다리진 않았다.
“기름이 아깝다, 아까워. 돈으로 치면 얼매나 될 거여. 벌써 어제 유출 사고가 있었다고 뉴스에 나왔잖애? 이걸 우리가 다 거둘 수만 있어도 우리 떼돈 버는 건데, 여보야. 뭐라 고 말 좀 혀여. 입속에 꿀을 부었나. 어제 거서 일루 왔으니 콜타르 양이 엄청나겄제? 세상에, 물고기들이 살랑가 어짤랑가. 무섭네, 무서워. 해우고 미역이고 나발이고 다 물 알로 갔겄어유. 음마음마, 우짜 쓰까. 기름이라는 건 물 위에 둥둥 뜨고 낙지는 뻘 속에 있으이 괜찮겄지유? 돈 맹글기엔 그래도 낙지밖에 없잖애? 글잖애, 여보야? 아, 뭐라고 말 좀 혀봐여.”
“여편네가, 지금 낙지가 뭐여?” “지금 낙지가 아니믄 뭐래여? 낙지가 안 괜찮으믄 생계가 안 괜찮고 생계가 거시기 하믄 만사 끝장이잖아? 내 말 틀려여? 엄니, 이런 경험이 또 있었이유?”
“자네 입이 엄청 바쁘네. 이런 기막힌 경험을 또 했으믄 내가 이래 살았겄능가?”
할머니의 말투가 수많은 무수리를 거느리던 대비마마 같았다. 엄마가 콧구멍을 빨좀거리며 할머니를 쳐다봤다. 수많은 무수리 중 하나 같지는 않았다. 백치 같았다. 엄마가 가여울 수도 있네, 나는 엄마의 눈동자를 보며 문득 생각했었다.
할머니가 몸을 움직여 방파제 쪽으로 걸음을 뗐다. 몸짓과 걸음에 소리가 전혀 없다 보니 할머니가 귀신같았다. 아빠와 엄마와 나 또한 귀신처럼 할머니를 따랐다. 할머니 가장 가까이로 아빠, 그다음 엄마. 나는 아직 계단으로 내려서지 못하고 방파제이자 마을을 바다로부터 보호하며 길게 누운 선창 길 위에 서 있었다. 할머니가 막 물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자생 굴 밭으로 내려섰다. 아니 내려서지 못했다. 방파제 마지막 계단에서 뻘밭으로 한 발을 내딛는 순간 비명을 질렀기 때문이었다.
“이이거이, 이거이 뭐래여? 머이가 일키 징그래여?”
“엄니, 지 손을 잡으셔유. 되로 올라와유. 아, 어서 되로 올라가여!”
아빠가 앞선 할머니를 끌고 도로 올라오며 뒤에 구부정하게 서 있는 엄마에게 말을 쥐어박았다. 엄마는 얼른 물러나 올라오며 표정이 멍청했다. 나는 그들이 올라와서 설 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 뒤로 냉큼 물러섰다.
맙소사! 할머니 발이 반짝거리는 검은 장화를 신었다. 우리 세 식구는 할머니를 삼각으로 둘러싸고 장화를 쳐다봤다. 검정 장화는 새것처럼 반짝거리는데도 추악했다. 똥 밟은 발보다 더 추악했다. 저거를 어떻게 닦아내지? 내가 닦아낼 건 아니었지만 걱정이 앞섰다. 그리고 저렇게 추악한 것이라면 악마의 짓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갑자기 바다를 일으켜서라도 묻고 싶었다. 너를 이렇게 만든 건 악마지? 악마 맞지?
“저거를 어떻게 닦는대? 콜타르는 뭘로 닦는대? 퐁퐁으로도 안 질 거 아녀.”
“여편네가 지금, 닦는 게 문제여?” “밸일이네. 아까부텀 깐죽대네. 그럼 머시 문제야? 닦을 건 닦아야지!” 아빠가 맥없이 딴지를 걸었다가 엄마 말발에 쥐어 박혔다. 아빠도 그 상황에서는 실제로 다른 할 일이 떠오르지 않은지 입을 벙하니 벌리고 엄마를 쳐다봤다. 엄마는 아빠를 양양하게 흘겨봤다. 입을 삐죽거리고 턱을 치켜들었다. 콜타르 묻은 발은 아마도 엄마가 닦게 될 것이었다. 치켜든 턱은 불시에 찾아오는 노동을 다 하는 사람의 특권이었을 것이다.
가장 먼저 집에 도착한 엄마가 뚱한 표정으로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 와서 쭈그려 앉았다. 할머니는 툴툴거리면서도 발을 엄마에게 맡겼다. 할머니 표정이 난감하고 어리둥절했다. 일없이 양 옆을 휘휘 둘러봤다가 씻기고 있는 자신의 발을 봤다. 고개를 들어 멀리 바다를 보았다. 길게 한숨을 쉬었다.
“바다야 무신 걱정이겄니?”
“엄니, 그러니까 기냥 나가셔유.”
“무얼 말이여?”
할머니는 반문으로 잽싸게 고삐를 낚아챘다. 엄마가 실언을 아차, 하며 맹추 같은 얼굴로 위를 올려다봤다. 입은 벌리고 코는 찡그리고 잇몸과 이빨은 함께 드러내고.
“무얼유?”
발 씻기기는 막바지여서 할머니가 유리했다. 판을 엎어봤자 손해가 없었으니 평소보다 단호할 수 있었다. 게다가 교묘했다. 세숫대야의 어디를 발로 건드려야 안에 담긴 물이 어느 쪽으로 쏟아질지 정확히 계산했다. 일을 쉽게 하자면 할머니 쪽을 밟아야 할 것인데 할머니는 엄마 쪽 세숫대야 끝을 팍, 밟아버렸다.
엄마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세숫대야 물벼락을 피할 새도 없이 정면으로 맞았다. 피해보려고 뒤로 몸을 뺀 것이 벌렁 자빠지기나 했다. 엄마의 일갈이 이어졌다.
“웬 난리래유? 나한티!”
“방구만 퉁 해도 나가잔?”
“이게 지금 방구여유 예? 방구냐구유우? 이런 판국에, 안 나가믄 어쩌게유우! 목숨을 걸 어둔 바다가 절케 콜탕이 쌔까만 한디유?”
엄마가 할머니에게 삿대질을 했다. 나는 잠시 아빠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빠가 자기 엄마한테 우리 엄마가 대든다고 뚜껑이 열린 모양이었다. 상추밭 어귀에서 사태를 관망하다가 엄마의 삿대질을 결정적 계기로 간짓대를 깃대로 세웠다. 상추밭 머리에 가지런히 누워있던 대나무 간짓대를 꼬나 잡고 엄마를 목표하고 달려왔다.
간짓대? 우리 동네에는 대나무 간짓대 천지다. 김발도 해야지, 건조장하우스도 지어야지, 무화과도 따야지, 정 못쓰게 되면 군불도 지펴야지.
나는 아빠를 마주 달려 간짓대를 맞잡았다. 아빠를 꼬나 봤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생각과 말보다 행동이 먼저일 때가 있는 법이다, 살다보면. 낳아준 아비를 간짓대를 사이에 두고 천지간 원수처럼 노려봐야 하는 때도 있고.
그 순간 나는 아빠의 눈을 재발견했다. 뒤집힌 눈은 처음이었다. 민망하게 아빠의 눈이 거시기 그랬다. 눈알이 간짓대를 타고 탱탱볼처럼 내 손에 튀어 오를까 무서웠다. 하얗게 번들거리는 눈, 난감했다. 간짓대를 놓자니 엄마가 걱정이고.
그 순간 나는 별안간 깨달았다. 우리들의 청청 앞바다에 콜타르를 확 풀어버린 악마의 저의가 딱 잡혔다. 그렇다면 악마도 별거 아니라는 생각도 아울러 했다.
악마는 올망졸망 섬마을 주민들이 오순도순 행복하게 사는 꼴이 배가 아팠던 거지. 파란바다에서 나풀나풀 헤엄을 놀며 높은 하늘의 별을 헤는 꼴을 못 봐 주었던 거지. 악마 따위는 새까맣게 잊고 팡팡 행복한, 아니면 그럭저럭 행복한 꼴도 못 봐 주었던 거지. 악마의 존재를 잊고 주민들끼리 노는 걸 제일 못 봐 주었다. 자기 혼자선 외로운 거지.
“에에이이이 얍!”
기합과 함께 간짓대를 밀자 아빠가 밀렸다. 상추밭 한복판에 간짓대를 안고 벌렁 나뒹굴었다. 임무를 마친 내가 두 손바닥을 탈탈 터는데 할머니와 엄마의 멘트가 약 일 분 간격으로 섬마을에 울려 퍼졌다.
“염병헐 것들 자알들 노네. 채가 심이 많이 컸어여. 암케도 막걸리 덕일 거여.”
“지지배가 콱 기냥! 아빠를 갖다간…… 확 기냥!”
엄마가 나에게는 주먹을 먹였다. 아빠에겐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아빠가 잡은 간짓대 다른 쪽을 잡고 확 당겼다. 아직 버둥거리던 아빠가 상추밭에서 강시처럼 일떠섰다.
나의 힘에도 맥없이 밀렸던 아빠가 성추행을 했다고? 아직껏 믿기지 않는다. 엄마도 그런 모양이다. 엄마가 실없이 쿡쿡 웃다가 내 속옷을 감은 손을 요모조모 뜯어보기도 한다. 나는 불안하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거대한 개구리를 지켜보는 마음이다.
“우짜, 문도 안 걸고 화알짝 열어놓고선 무언 일이래니? 무언, 비린낼까?”
명탐정 코난처럼 목소리가 사뭇 진지했다. 범인을 밝히기 직전의 날카로움은 당연 없었다. 날카로움은 할머니의 정체는 아니니까.
어쩌라고! 할머니가 들이닥쳤다. 어떻게 할머니가 이런 때에 오시는지. 물론 할머니로서는 우리 서울 집 출현이 전혀 이상할 것 없고 이상해서도 안 된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네 집이다.
우리 집은 서민 중에서 빈민이 살아 마땅한 궁전빌라 18평형 반지하다. 궁전이란 말이 가끔 황송하고, 자주 짜증난다. 궁전이라니, 이 무슨 망발인지. 부엌 겸 거실에서 화장실로, 건넌방에서 안방으로, 안방에서 부엌 겸 거실로 이르는 델 거리라고 하기에 민망하다. 할머니가 현관에 들어섰다면 엄마와 난 속수무책, 대낮 날도둑을 맞은 모녀처럼 놀라기밖에.
“이이, 이 이거이 머대여!”
할머닌 픽 쓰러지듯 퍼질러 앉았다. 그리고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헉! 구역! 헉! 구역! 꾸엑! 꾸엑!”
할머니는 헉!과 구역! 사이 흰자위가 많아진 눈으로 사위스런 상태를 관찰했다. 나는 마음이 두 배로 복잡해졌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무시무시하고 큰 개구리가 둘이 됐다. 이렇게 감당이 안 꽂히는 경우는 머리털 나고 처음이다. 게다가 내 몸을 어쩌라고. 나로서도 남으로서도 감당이 불가한 내 살 속의 마음이 아무리 복잡해도 내 몸만큼은 아니다.
엄마는 ‘옴머!’ 소리를 낸 자신의 입술을 짓뭉개 누르고 있다. 이번엔 엄마 입술이 터져 피가 나면 어쩐다? 내 걱정은 아랑곳없이 엄마는 입술을 손바닥으로 짓뭉개기에 여념이 없다. 할머니가 헛구역질을 멈추고 누워 있는 내게로 온다.
엄마는 눈알이 휙 뒤집혀 검은 동자가 이맛살 속으로 사라진 듯하다. 정말로 엄마가 실성한 건 아닌지.
“엄마아-”
엄마를 걱정해서 부른 건 아니다. 할머니가 무서워서였다. 거대한 두꺼비처럼 툭, 툭, 발을 던져 걸어와서 할머니가 내 허벅지나, 가슴이나, 발 닿는 아무 데를 걷어차 버릴까봐. 할머니 성격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자신의 발을 씻겨주는 며느리에게 물벼락도 때리는데.
“이거이 뭐다니? 이거이 사램이라니? 사람겉은 짐승이겄제? 왜 이런 걸 키우고 그래여? 슝측하게스리. 요새는 이게 돈이 된다니?”
한꺼번에 여러 가지를 묻는 게 고부간 내림인가? 할머니는 걷어찬 건 아니고 슬쩍 발끝으로 건드렸다고 손사래를 칠지도 모르겠다. 나는, 걷어차였다. 서럽고 무섭다. 할머니가 이렇게 무서운지는 처음 안다. 무서움이 아니고 부끄러움일 수도. 부끄러움이 가장 큰 무서움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 오늘의 유일한 수확인 듯하다.
나는 지금 날렵히 움직일 수 없는 내 몸을 저주하며 맹렬히 궁금하다. 나는 짐승인가 사람인가. 나는 진짜 왜 살을 이렇게 찌운 것인가. 내가 살을 찌운 이유만 명확히 알면 당장 죽어도 이의가 없을 것 같다. 아니, 그 따위는 몰라도 좋다. 딱, 죽고 싶다, 지금!
“엄니, 발로다 그라지 마셔유! 애가, 긍게 애가…….”
엄마다. 우선은 고맙다. 엄마가 할머니를 막았다. 손은 대기도 징그럽다는 듯이 할머니가 이번엔 발로 배를 꾹꾹 눌렀기 때문이다. ‘사람겉은’ 동물인 줄 알았겠지. 할머니도 텔레비전을 보니까. 디엔에이에 대해서 알 수도 있을 테니까. 신종 양이나 소나 돼진 줄 알았겠지. 편리하게 방에서 키우라고 털까지 없앤 신종 가축.
할머니 큰 콧구멍이 이런 상황에서도 조금 우습다. 할머니 콧구멍을 보며 두 개 나란히 뚫린 고속도로 터널을 생각했다. 코는 그다지 높지도 커지도 않는데 콧구멍이 벌렁벌렁. 눈은 흰자위를 넓히며 뭔가를 끈질기게 탐색한다. 콧구멍은 우습고 흰자위는 무섭다.
“긍게 애가 뭐래는 거여?”
“엄니 애가유, 채여유, 채! 긍게유, 살이 오동통허니 예쁘다하고 본께 금방 일키 돼 버렸 어유우. 병원에서도 희한하다고는 하믄서도 도리가 없다고 허대유. 거시기 한 2년 전부 터 지 몸속의 지방을 거의 분해하지 못하고 쌓이기만 한다나 봐유. 체질이라믄 태어날 때부텀 그래야는 거쥬. 희한한 건 여태 아주 건강하게 잘 분해를 허다가 그란다는 거잖 유? 그때 그 의사가 그랬이유, 어느 때가 되믄 살이 쪄선 이렇게 된다는 거지유.”
“뭔 이약이 글큼 복잡시러버여? 그거이 왜 안 분질러진다니?”
“지도 몰지유. 인자 2년 밖에 안 됐다고 하믄서 의사도 고개만 갸웃 허니께유.”
“하필 2년이래여? 2년 전이라믄 콜탕이 바다에 삐리졌지여?”
“지도 콜타르 뿌려진 거이랑 살떵이랑 무신 상관이 있냐구 물었시유. 그게 좀 거시기 한 디유, 콜타르 얘기 나오고부텀은 의사가 아예 암것도 몰겄다는 말만 혀유.”
“다른 디도 가 봤어여? 2년은 워디서 나왔다니?”
“서너 군데 다 갔는디 다 그래유, 하나겉이. 쌓인 지방을 정밀검사를 하믄 만들어진 년 도와 달도 정확히 나와서 알 수 있대유. 의학이 엄청 발달했어유우.”
“봉사 장에 가는 소리 허고 자빠졌네. 시방 의학이 문제여?”
여태 구부려 나를 살피고 있던 할머니가 엄마 앞으로 가서 픽, 쓰러지듯 도로 앉았다.
“근디 엄닌 여근 워쩐 일이셔유?”
“요런 젊은것이 정신이 일키 없대니? 거시기 갖고 오라고 안 혔어여?”
“하이고머니나! 내 정신 쟌 봐유. 갖고 왔시유?”
“글키는 하다마는 너그 둘은 원대로 쌍나발로 벌어다 돈 다 어따 써여?”
“하이고오, 엄니! 이 도시 생활이란 거이 말이유, 발걸음마다, 숨을 내쉴 때마다, 똥을 눠 도, 다아 돈이래유. 젤로 발 빠른 늠이 돈입디유. 돈이유, 들어왔다 하믄!”
“씨끄러!, 원 어짠 호들갑이래여? 누가 돈을 달랬으믄 그 혓바닥이 남아나겠어여? 이 방 부터 쟌 치워 놓고 야그 허자. 대체 무언 일인지 몰겄다.”
할머니가 저렇게 양양하시면 엄마가 원하는 걸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신호다. 엄마도 그것을 알아차렸다. 엄마가 할머니 눈치를 보면서도 방을 치우는 건 사사삭, 해치웠다. 살이 찌기 전엔 나도 웬만큼은 하는데 엄마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엄마 나이쯤 되면 자연히 엄마처럼 사사삭, 일하게 될까 몰라.
나? 엄마가 밀어주어서 방에서 가장 한가한 공간으로 이동해서 안전히 누워 있다. 할머니는 나를 돌봤다. 미지근한 물에 수건을 적셔 피 칠갑인 내 허벅지를 알뜰히 닦아주었다. 끝까지 말없이 닦기만 했다. 한숨도 안으로 쉬었다. 내 얼굴은 쳐다보지 않았다.
내 살덩이들은 뭔가 분노하고 있다. 콜타르와 의사와 콜타르를 뿌린 사람 모두 나와 똑 같이 살 속에 갇히라고 저주했다. 그새 할머니와 엄마가 들어와 마주 앉았다.
“그게유, 여자 화장실에서 직장 상사의 거시기를 거시기 혀었다고 그래유.”
엄마는 첫 번째 ‘거시기’를 발성하면서 가슴께에 두 손바닥을 얹었다. 두 번째 ‘거시기’를 발성하면서는 엉성하게 손가락을 펴서 가슴을 주무르는 시늉을 했다.
“그것이 다여? 그런디다 데고 그렇게 오도방정을 떨고 감옥소까지 처넣었어여? 거시기를 거시기 하지도 않았는데 유치장엘 쳐넣었대여?”
할머니는 첫 번째 ‘거시기’를 내뱉으며 가랑이 가운데쯤을 손바닥으로 눌렀다. 두 번째 ‘거시기’를 내뱉으면서는 손바닥을 돌렸다. 자세히 봤더니 빙글빙글 돌리는 손의 가장 긴 가운데 손가락이 구부러져 까딱까딱 까불었다. 엄마의 눈동자가 한 바퀴 빠르게 구르며 할머니를 흘겼다. 할머니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엄니, 요새 법이란 것은 꼭 거시기를 거시기 해야 죄가 성립되는 거이 아니지유. 남녀 쌍방에 다 적용되기도 하구유. 말로 거시기 해도 걸려유.”
“인저 봤더니 니 오살나게 유식허다이? 이것이 별 씨알머리 없는 소리나 찾아내 갖고 나 발거려여. 그래, 니가 원하는 게 뭐여!”
“머슬유?”
“아, 돈 장만해 오라고 했잖여? 필요 없음 나 갈란다.”
그랬던 거구나.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듯 기막힌 타이밍에 타나난 할머니가 좀 이상했다. 할머니 표정이 단단해졌다. 엄마의 표정이 살짝 흔들렸다.
“그렇게 되면 누가 갑갑해유? 엄니 아들 진짜로 콩밥먹어유. 무얼 암시랑 그러셔야지유.”
햐, 젊은 며느리 이기기 힘들다. 이기기는 고사하고 대등한 입장도 이제 물알로 갔다. 할머니 표정이 금방 두려움에 절었다.
“그러이 말을 혀보란 말이제, 누가 뭐라해여?”
“단도직입적으로 말씸드려서 천만 원 필요해유. 지한티 그간 모은 게 천은 있으니께유.”
“그람 이천만 원인디 그걸로 다 뭐다게여?”
“합의 봐 주고 엄니 아들 데리고 와야지유!”
“젖이나마나 거시기 월매나 거시기 주물렀으면 거시기 값이 이천만 원이래니?”
“월매고자시고 거기사 저짝이 부르는 게 금이지유. 피해자가 왕 아니겠어유?”
할머니는 되는 대로 입을 풀어놓곤 눈으론 뭔가를 열심히 맞춰보는 모양이다. 나랑 막걸리 숨바꼭질을 하던 때의 눈 움직임과 비슷하다. 특히 내가 결정적으로 막걸리 가까이 다가갔을 때의 눈. 불안이 일렁거릴 수밖에.
뭔가를 맞춰보기론 엄마도 마찬가진 듯, 엄마 눈알이 바쁘다. 저러다 방바닥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것도 잠시, 이미 할머니 돈이 자신의 지갑 쪽으로 기어오고 있다고 믿는 확신이 꼭 다문 입술에 스몄다.
“며눌아!”
“아, 왜 그래유? 왜 자꾸 불러쌓유! 사람 미치겠구먼유!”
“염병헐 젊은것이 여객선 불통을 삶아묵었나, 소래기는 지르고 그래여!”
“지가, 지가유, 녜? 불통 안 묵게 생겼시유?”
“그래도 니가 정신을 채리야제, 팽생 이라고 섬에서 살고 있는 나를 봐서라도 저엉신을 놓치믄 안 돼지여. 여어 돈 혀 갖고 왔어여어. 내 평생 밭농사 하고 굴 쪼고 낙지 파서 맹근 돈이여. 언능 가서 죄 값 당당히 치르고 채 저으 애비 데불고 와여.”
엄마는 아빠를 ‘데불고’ 와서 곧 출근을 서둘렀다. 이방 저방 들락거렸다. 현관쯤에서 ‘낮에 잠도 못 잤잖여?’라는 아빠의 어눌한 목소리가 들렸고, ‘내 걱정은 무슨!’이라며 팩 쏘는 엄마 소리가 들렸다. 이어 엄니 지 다녀와유, 목소리를 조금 크게 해서 내 방으로 들여보냈다. 할머니가 내 방에 계셨던 거다. 엄마 목소리에 피곤함이 진했다. 엄마는 24시 해장국집 알바를 한다. 돈을 좀 더 벌자고 밤에만 일한다. 할머닌 눈을 흘기며 구시렁거렸다.
“잘 댕겨와여!……. 잠도 안 자고 염병허겄어여. 글키 섬에서 나오고 싶어 발광하더이 나 와서 허는 짓이 개우 식당 식모살이여? 것도 잠도 안 자고?”
“엄니도 차암, 채 엄마도 고달플 것인디…….”
아빠가 내 방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할머니가 뚱한 표정이지만 대꾸는 않았다. 아빠가 벽에 등을 기대 할머니와 마주 앉으면서도 나에겐 눈길 한번 안 준다. 나는 할머니 곁에 누워있다. 내 배가 대형 소쿠리처럼 솟았다. 당연 부끄럽지만 눙치는 수밖에. 아빠의 고생이 짐작되어 내 마음이 의외로 담담하다. 무사히 돌아온 게 어딘가. 그리고 나는 아빠가 내 방에 오지 않은 이틀에 대해 이해해 버렸다. 위선의 한계. 비난할 생각 전혀 없다.
“요새 바다는 워떠유?”
“바다야 잘 있제만. 섬이 잘 몬 있지여.”
“섬이 워쩌유?”
할머니는, 내 아들이지만 참 갑갑하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고 아빠를 쳐다봤다.
“섬이 워쩌기는 워쩌? 맹 콜타르 땜시 시커멓게 죽어가지여!”
“벌써 이 년이나 지났잖여?”
“이 년 겉은 소리하고 자빠졌다. 자네 속이고, 창세기믄, 지름에 한 번 죽어서 이 년이믄 깨깟이 깨나겄어여? 그라고 사람들 마음이 더 상했어여! 나라에서 젤 큰 회사가 일부러 그랬든 무연히 그랬든 콜탕을 온 바당에 거시기했으믄 책임을 져야잖여? 보상이 그게 머 시대여? 이장네 김발보상이 오십만 원이대여. 김밭이 거시기 오만 평인디. 그라고 우리 네는 김발도 읎고 굴밭도 읎응게 한 푼도 읎읍서!”
“것도 그 회사에서 보상한 게 아니라유 보험금 타서 나눠준 거지유우.”
할머니는 아빠가 콜타르 뿌린 회사의 책임자라고 여기듯 눈을 부릅뜨고 아빠를 쳐다본다. 아빠의 눈길은 어쩐지 안으로 도망질이다. 할머니는 내친김에 뭔가를 따져야 한다는 듯 무릎걸음으로 일보 전진했다.
“말은 잘허네. 자네를 잘 몬 키웠어여. 지금부터라도 화악실히 키워야 쓰겄어여!”
아빠보다 내가 먼저 몸을 더 구석에 우겨넣었다. 할머니 서슬이 하도 갑작스러워서. 같은 강도의 무엇이라도 너무 갑작스러우면 효과는 배가되지 않을까. 아빠에게도 효과는 배가된 모양이다. 엉덩이 걸음으로 일보 더 물러앉았다.
“무얼 확실히 한다고 그래유? 느닷없이…….”
아빠는 잊고 있던 자신의 크나큰 비리가 이제야 생각나는 모양이다. 나도 그것이 새롭게 상기된다. 아빠가 다급해졌다.
“엄니, 거시기유, 그게 말이유, 그게 거시기 그게 아니구 말이유…….”
“말이고 소고 간에 워째 사람이 그래여? 글키 서둘러 얼렁뚱땅거리지 말고 찬찬히 야그 혀어보소. 밤새라도 들어줄 용의가 있어여. 자네는 누가 뭐라 혀어도 내 아들이여!”
나도 들어줄 용의, 충분히 준비됐다. 누가 뭐라 해도 아빠는 내 아버지인 것이다. 아빠는 준비되지 못한 모양이다. 손만 바쁘다. 머리를 긁으랴, 목을 만지고 비틀랴, 입술을 손바닥으로 문대랴. 두 눈도 바쁘다. 할머니를 쳐다보랴, 일없이 티브이 화면도 쳐다봐야 하고.
“손녀야, 우리 막걸리 묵어여?”
놀래라. 그러나 움츠렸던 세포들을 이내 조금 풀렸다. 거울을 깨서 들이대고 죽이자거나 함께 죽자는 건 아니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할머닌 아빠를 직시했다.
“가서 막걸리 한 비이 사 와서 사탕가리 담뿍 타서 컵이랑 채려서 갖고 들어와여!”
할머니 최고, 나는 속으로만 소리쳤다. 오늘 내가 겪은 일들이 얼만가. 지금 또 아빠의 찬찬한 ‘야그’를 들어야 한다. 우리들만의 특별한 음료가 빠져선 안 된다.
아빠가 마뜩찮은 표정으로 나간다. 나는 불안하다. 할머니는 불안하지 않은가 보다. 나를 보고 씽긋 웃었다.
“할머니, 아빠 너무 잡지 말아요.”
“하이고, 가재는 게 팬이라더니. 알았어여. 내 목이 몰라서 그랬어여. 니도 한 잔 주고. 니 애비도 한 잔 주고. 술이라도 들어가서 속이라도 뜨뜻해야 야그가 술술 나오잖겄니? 그 란데 니는 살이 쪄도 너무 쪄부렀어여. 여자는 살이 너무 없어도 글기는 하제만은.”
“그렇기는 해요.”
아빠가 준비한 걸 들고 들어왔다. 할머닌 아빠가 내려놓은 쟁반을 두루 훑어봤다. 아빠는 조금 초조한 기색이다. 나도 조금은 초조하다. 또 일이 비틀어지면?
“되얐어여! 안주도 좋네여.”
할머니가 콧구멍을 넓혀 반색했다. 쟁반에 차려진 안주는 풋고추랑 오이 썬 거다. 그 옆에 쌈장이 있고. 막걸리 한 잔이 따라져 있는데, 사탕가리를 넣으려다 보니 따라냈을 것이고, 아빠가 마실 것이다. 아빠는 달달한 막걸린 안 마신다. 아빠가 이미 따라져 있는 막걸리를 냉큼 마신다. 이내 트림 겸 한숨을 뿜었다.
“자아, 손녀야. 한잔 혀어여. 원샷 혀어부러여.”
할머닌 먼저 손수 한 잔 따라 마시곤 다시 따라 내게 권했다. 술 마시기에 좋은 목소리다. 나는 마지못한 척, 원샷 해버렸다. 어쩌라고. 잔을 할머니께 드렸다. 꼴꼴꼴. 할머니 입에 두 번째로 들어갈 막걸리가 먹음직한 소리로 컵 속으로 쏟아졌다.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아빠의 눈길이 별안간 세져선 나를 찔렀다. 어쩌라고요?
“자아, 인저 말해보소! 걱정 말고. 내 재산을 다 내놘 마당에 무신 트집을 잡겄다고?”
“거시기, 모함이여유, 모오함!”
“모오함? 그거이 뭐여?”
당황은 할머니가 했다. 모함이라는 말을 몰라서. 할머니 자존심이 무사했으면 좋겠다. 할머니는 워낙에 자존심이 센 사람이다. 초년과부 자존심.
“모함은 말유? 다른 사람을 생으로 잡는 거유, 쌩으로.”
“아무 짓도 안 혀었는디? 그람 야그 못헐 것도 없잖여? 맘 편히 술술 말해여.”
“거시기 회사 팀장이 꽤나 미인인디 지가 여자화장실에 있는디 와서 엥겼시유.”
“갈수록 기절허겄어여. 여자 거시기에 머단다고 자네가 가여!”
“그러게유, 그것이유, 거시기 그것이…….”
“오늘밤에 거시기 바닥나겄어여. 자네가 여자 거시기에 있었담, 성추행 맞잖여?”
“그게 아니구 전유, 직업이 거시기여유.”
“참말로 갑갑해 죽겄어여. 하고 많은 직업 중에서 직업이 워째 거시기여? 거시기가 여자 통시간이래여, 뭐여! 여자 통시간에서 여자 거시기 맨지는 거이 직업이여?”
“인저사 말씀인디 저유, 화장실 청소혀어유우.”
“뭐시여? 화아장실 청소라혀었어여? 이 무신 자다가 봉창이여! 이거이 뭐여?”
할머닌 느닷없이 혼자 잘 놀고 있는 티브이를 가리켰다. 거긴 스마트폰 선전이 발랄하다.
“광고유, 과앙고유.”
“에라이, 화아상아! 자네가 뭐랬어여? 과앙고 머시기 헌다고 혀었잖여? 그려, 인저 생각나 네. 광고카피 하러 간다했잖여? 내 아즉 기억 쌩쌩혀여. 부우자 되셔유우- 자네도 그런 거 맹글어 대에박을 터뜨리겄다고 설레발을 쳤잖여? 대에박은 고사허고 이거이 뭐허자는 소리여? 화아장실 청소라냐? 것도 모자라 써엉추행이래여? 이거이 뉘기여? 비가 오나 바 람 부나 굴따다, 낙지 파다 대에학까지 댕기게 헌 내 아들 맞으여?”
“지송허지만 맞아유. 이걸 워떻게 말씀드려야 될지 몰겄지만유. 지도 카피를 허는 줄 알 고 좋다구 갔잖유? 근데 마악상 입사혔더니 그게 웃겨유. 처음 며칠간엔 제법 책상도 주 고 이것을 써봐라, 저것을 지어봐라, 그래유. 근데 바쁘다고, 화분 관리하는 사람이 바쁘 다고, 초랭이방정을 한 이틀 떨며 지한테 도와달라고 혀유?”
“귀한 내 아들이 청소부가 되어부렀것어여? 글컸지여. 저들찌리 그물코맹이 착착 짜고 치는 짓고땡을 누가 말리겄어여. 것꺼정 나무랄 생각 없어여. 첨부텀 미심쩍었어여. 써엉추행은?”
“거시기…….”
“에라이, 거시기가 아즉 남았어여? 내 이즌 다 알아먹었어여. 화장실 청소를 허고 있는디 고 팀장 가스나가 자네한티 턱허니 엥겼다, 이 말이고, 자네는 거시기를 거시기 허다 말 았다 이 말 아녀여? 워째 거시기를 다 하도 몬혀었을꺼나? 시간이 부족혀었어여?”
“그게 아니구유. 지는 아무 짓도 안 혀었는디 팀장이 거시기 소리를 쳤시유. 사아람 살려! 이렇게 말유. 놀래서 지가 그미를 안고 입을 막았는디 사무실 사람들이 다 몰려왔시유.”
“꼼짝없이 잡혀간 거로고?”
대답 대신 아빠의 한숨이 깊었다. 할머니 한숨이 이어졌다. 할머니 것은 아빠 것보다 깊진 않았지만 훨 길었다. 뭔가 깊이 생각하시는 품이다. 아빠는 나를 보고 눈독을 피울 겨를도 없이 할머니를 힐금거린다. 눈치를 봐야 할 것이다. 무섭기도 하고. 나도 할머니 눈치가 보인다. 산전수전에다 해양전까지, 저번엔 콜타르전까지, 이번엔 아들 성추행전까지, 전이란 전은 다 겪는다.
“아까참에 모함이라 험은?”
“거시기 다음 달이믄 지 계약기간이 끝나잖유? 딱 일 년 지났잖유.”
“그람, 자동 해고되는 것이쟈?”
“잘 아시네유. 일 년 간 준 월급이 아까운 거지유. 도로 뺏어가자는 수작이지유. 글잖유?”
“머시 그랴?”
“어차피 원유유출에 대한 피해주민 무마성 취직이었으니 꼭 있어야 하는 일자리가 아니었 으니 일 삯도 꼭 줄 필요 없다, 이렇게 판단했겄지유. 그라고 지가 다닌 회사는 원유를 유출시킨 회사의 하청업체니까 따져봐야 책임도 없으니께유. 지난 일 년 동안 일을 시키면서도 이미 계획이 서 있었다고 보면 되는 거지유.”
“콜탕을 뿌린 본 회사가 아니었어여?”
“아니었쥬. 절 취직시키라는 거꺼정 하청 준 거지유. 본 회사는 어마어마하게 커유우.”
“어마어마허게 커믄 지가 저지른 뒤치다꺼리를 새끼 회사에다 미루믄 되여? 오라질 늠 들. 원래 그라는 거여. 아흔아홉 개 가진 늠이 백 개 채운다고 한 개마저 뺏어간다고 이전부텀 말이 있어여. 거시기 다른 사람도 자네처럼 해고된 갱우가 있어여?”
“그람유, 그람유. 많아유.”
“워찧게 알았어여?”
“용케 두어 달 전에 전화가 왔시유. 여즉 다른 디도 취직이 안 된다고유. 화딱지가 나서 회사를 찾아와 불을 화악 지르고 싶다구유, 그라믄서 지보고 조오심 하랴유. 자기처럼 받은 월급 다 토하고 쫓겨난다구유.”
할머니가 말없이 막걸리 병 주둥이를 움켜쥐고 빙빙 돌렸다. 가라앉은 앙금을 띄우기 위한 거라면 다 돌린 듯한데 할머닌 계속 돌린다. 아주 느릿느릿 비잉비잉! 눈길은 반은 지하에 반은 지상으로 난 내 방 창 쪽으로 던져두었다. 할머니 콧구멍 안으로 슬픔 덩어리가 꽉 찬 게 보인다. 콧구멍이 아무리 커도 그 덩어리는 빼내지 못할 것 같다. 처음으로 할머니 콧구멍이 커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작았으면 오늘 같은 날 할머닌 숨까지 막힐 테니까.
나는 술이 이제야 취하려는지 머릿속이 빙빙 돈다. 할머니 얼굴을 따라 창밖으로 눈길을 주었다. 두툼한 어둠이 우리를 가두고 있다. 어둠의 무게에 눌려 방 전부가 점점 더 가라앉는다. 아빠는 속말을 다하고 나자 시원한 모양이다. 그새 벽에 기대 잠들었다. 크캬아, 캭! 아빠 코고는 소리가 어둠에 부딪혀 쭈그러진다. *끝
□ 약력: 2002년《실천문학》등단. 장편『나비, 사바나로 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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